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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피엄즉도 하다마는 백설이 분분하니 필지 말지, 어화 세상사 가소롭다."
이 때 추월의 방에 놀던 한량들이 노래를 듣고 의심하니 추월이 무색하여 하는 말이,
"내 집의 사환하는 놈이, 서울 이춘풍이라 하는 놈이 소리를 하니 신청치 마소서.“
한량들이 이 말 듣고 하는 말이,
"서울 산다 하니 불쌍하다."
하고 술 한 잔 가득 부어 주니, 춘풍이 갈지우갈하여 받아먹으니 가련하더라.
각설 이 때 춘풍의 처, 가장을 이별하고 백 가지로 생각하며 주야로 탄식하는 말이,
"멀고 멀은 큰 장사에 소망 얻어 평안히 돌아오기 천만 축수 기다리오."
하되 춘풍이 아니 오고 풍편에 오는 말이 서울 사는 이춘풍이 평양 장사 내려가서 추월을 작첩하여 호강으로 노닐다가, 수천 금 재물 다 없애고서 추월에게 구박맞아 사환한단 말을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말이,
"애고 애고 이 말이 웬말인고. 슬프다, 가장 나와 같이 만났건만, 어이 그리 허랑한고. 청루미색에 한번 치패도 어렵거든 천리타향에 막중국전을 대돈변으로 내어 가지고, 또 낭패하단 말가. 애고 답답스런지고, 뉘를 바라고 산단 말가. 전생에 무슨 죄로 여자가 되어 나서 가장 한번 잘 못 만나 평생 고생하는구나. 이내 팔자 이렇도록 되었는가.
어찌하여 사잔 말가. 박명한 이내 팔자 도망하기 어렵도다. 종남산 다다라서 물명주 질긴 수건 한 끝은 나무에 매고 한 끝은 목에 매어 죽고지고. 여자가 되어 나서 이런 팔자 또 있는가. 염마국 십전대왕 아귀사자 빨리 보내어 내 목숨을 잡아가오."
이를 갈며 하는 말이,
"평양을 찾아가서 추월의 집 찾아 불문곡직 달려들어 추월의 머리채를 감아쥐고, 춘풍에게 달려들어 허리띠에 목을 매어 죽으리라."
악을 내어 울다가 도로 고쳐 생각하되,
"이리도 못 하리라. 어이하여 사잔 말가. 내 가장을 경성으로 데려다가 살리재도 어찌하리요. 아무리 생각하여도 할 수가 전혀 없다. 소년에 패가하여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야로 품을 팔아 전곡 빚을 갚은 후에 의식 걱정 아니 하고 우리 양주 백년화락 하겠더니, 원수로다, 평양 장사 원수로다."
이렇듯이 지내는데 뒷집의 참판 댁이 있어, 노대감은 돌아가고 맏자제 문장으로 소년급제하여 갖은 청환 다 지내고 참판으로 근년에 평양감사 부망으로 불구에 평양 감사 한단 말 듣고 춘풍의 처 계교를 생각터니, 그 댁이 빈한하여 국록을 타서 수다식구 사는 중에, 그 대부인 있단 말을 듣고 침재품을 얻으려고 그 댁에 들어가니, 후원 별당 깊은 곳에 참판의 대부인이 평상에 누워 행세 가난키로 식사도 부실하고 초췌하다.
춘풍 아내 생각하되 이 댁에 부치어서 가장을 살려 내고 추월을 설치하여 보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침재품을 힘써 팔아 얻은 돈냥 다 들여서 참판 댁 대부인 조석 진지 차려 가니, 부인이 이외에 때마다 받아먹고 감지덕지하여 생각하되,
'이 깊은 은혜를 어찌할꼬.'
주야로 근심하더니, 하루는 춘풍의 처더러 이른 말이,
"네가 형세도 어렵고 침재품으로 살아간다 하는데, 날마다 차담상을 지어오니 먹기는 좋다마는 도리어 불안하다."
춘풍 아내 여쭈오되,
"소녀집에 음식 있어 혼자 먹기 어렵삽기로, 마무랏님 잡수실까 하와 드린 것이옵나니 황송하여이다."
대부인이 이 말 듣고 매일 사랑하고 기특히 여겨, 못내 생각하시더라.
하루는 참판 영감 문안하고 여쭈오되,
"요사이 무슨 좋은 이리 계신지 화기 만안하시닛까?"
대부인 말씀하되,
"앞집의 춘풍의 처가 좋은 음식 차담상을 연일 차려오니 내 기운 절로 나고, 그 계집의 정성 감격하다."
참판이 이 말 듣고, 춘풍의 처를 청하여 보고 치사하니 더욱 기특히 보고 매일 사랑하더라.
천만의외의 참판 영감이 평양 감사를 하였구나. 희희낙락 즐길 적에, 춘풍의 처 대부인께 온공히 여짜오되,
"이번에 천은으로 평양 감사하셨으니 이런 경사 없사이다.“
대부인이 말씀하되,
"나 평양가려 하니, 너도 함께 내려가서 춘풍이도 찾아보고 구경이나 하는 것이 어떠하뇨?"
춘풍의 처 여쭈오되,
"소녀는 고사하고 오래비 있사오니, 비장 한 몫 주십시오."
대부인 이 말 듣고,
"네 청이야 아니 들을소냐?"
하고 감사께 통기하니, 감사 허락하고,
"제가 비장할 양이면 바삐 거행하라."
하니, 춘풍의 처, 없는 오래비 있다 하고, 제가 손수 가려고 여자 의상 벗어 놓고 남자 의복 치장한다.
외올 망건 대모관자 당줄 놀라 질끈 쓰고, 깨알 같은 제주탕건, 삼백쉰돌임 계양태 제모립에 엿돈 오푼짜리 은귀 영자 산호격자 두 귀 밑에 달아놓고 통해전의 삼승 버선, 쌍코신에 쥐눈징을 다문다문 그어서 맵시 있게 지어 신고, 양색단 웃저고리 자개묘초 양등거리, 양피두루마기 희천주 겹 창의에 갑사쾌자 장패띠로 융랑을 눌러 띠고 서피 돈피만 선두리 두 귀 담쑥 눌러쓰고 대모장도 내외고름 비껴 차고, 소상반죽 왜금선을 이궁전선 초달과 한삼소매 늘어지게 쥐고 흐늘흐늘 걸어가는 거동 황홀한 귀남자라.
감사 댁에 들어가서 하인을 단속하고, 황혼을 기다려서 차담상 별로 차려 대부인께 드릴 적에 복지하여 여쭈오되,
"춘풍의 처 문안드리나이다."
부인이 경악하여 말하되,
"춘풍의 처면 남복은 무슨 일인고."
비장이 여쭈오되,
"소녀 지아비 방탕하여 청루에 외입하여 두세 번 패가하고, 호조돈 이천냥을 대돈변으로 얻어 내어 평양 장사 가서 추월을 작첩하여 주야로 즐기다가, 이천오백 냥 돈을 달리 한 푼 아니 쓰고, 추월에게 다 없애고 추월의 집 사환 되었다 하옵기로 소녀의 마음이 매양 절통하옵더니, 천행에 사또 덕택으로 비장이 되어 내려가서 추월도 설치하고 호조돈 수쇄하고 지아비 다려다가 백년동거하게 되면 마누랏님 덕택이니 의심 없이 하옵소서."
대부인 청필에 크게 웃어 말하기를,
"네 말이 그러하니 불쌍하고 가련하다. 소원대로 하여 주마."
이 때 마침 감사 안에 들어오다가 이 거동 보고, 대노하여 호령하되,
"이 놈이 어떤 놈이관대 임의로 대청에 출입하니, 저 놈을 바삐 결박하라."
천둥같이 분부하니, 대부인이 웃으며 감사더러 춘풍의 처 소관사를 자세히 이르시니, 감사 대소하고 당장에 불러들여 기특하다 칭찬하고 좌우를 불러 구외불출하라 하고, 삼일 잔치 연후에 현신하니 감사 하나밖에 다 초면이라. 수군수군하는 말이,
"회계 비장 잘도 났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흠이로다."
뉘 아니 칭찬하리요.
명일 발행하여 떠날 적에 기구도 찬란하고 위엄도 엄숙하다. 빛 좋은 백마등에 쌍교 독교 사인교며, 좌우청장 호강 있게 내려갈 제, 전배비장 후배비장 책방까지 치레하고, 호피 돋움 높이 타고 금선의 이군전은 일광을 가리우고 평양을 내려갈 제, 호사도 장할씨고. 이방 호방 예방 수배 인배 통인 관노역마부며 각청 방자 군노 나장이 좌우에 늘어서서 홍제원을 바라보고, 구파발 막 숫돌고개 얼른 넘어 파주읍에 숙소하고 임진강 다다라서 전후창병 둘러보니 보던 바 제일이라.
임술지추 칠월기망에 소자첨 놀던 적벽강산 수한경 여기저기 구경하고, 동파역 얼른 지나 장단읍에 중화하고 취석교 건너가서 소파 가서 숙소하고, 청석골 다다라서 좌우 산천 구경하니 벽제 소리 권마성에 산천이 다 울린다.
금천읍에 중화하고 도저울 지나서서 웃고개 엄어서니 평산 땅이라. 앞고개 넘어서서 태백산성 바라보고 남청역에 말을 먹여 총수관에 숙소하고, 홍주원 다다라서 병풍바위 말을 몰아 구월산에 다다르니 산세도 기묘하다.
봉산읍에 중화하고 동선령 넘어서서 정방산성 바라보니 좌우산성 경개 좋다. 수목이 우거지고 비금은 날아들고 취타 소리 더욱 좋다. 황주병영 숙소하고 진동에 말을 몰아 중화읍에 숙소하고 형제교를 다다르니, 영본부 관수들이 읍정에 지대하여 도임차로 들어간다.
작대 대소관 현신하고 전배비장 후배비장 전후로 뫼시는데 천총 파총이 장대하여 군문에 늘어서서 좌청룡 우백호에 동서남북 청홍흑백 어즈러이 늘어섰고, 길 나장군 악대 새면치는 소리 산천을 진동하고 육각 풍류 취타 소리 더욱 좋다.
아름다운 미색들은 녹의홍상으로 좌우에 늘어섰고, 전배 후배 비장들은 좋은 말에 높이 앉아 법제 있게 들어갈 제 장임을 다 지나서 대동강변 다다르니 녹수청파 두교산은 적벽강 큰 싸움에 방사원의 연환계로 육지같이 모았는데, 대동문 들어갈 제 전후 좌우 구경꾼은 성지 위가 무너질 듯 초성루를 지나 객사에 현알하고, 문에 들어가서 선화당에 좌기하고 방포삼성 후에, 백여 명 기생들이 낱낱이 현신한다. 사또 분부하되,
"비장 책방 다 현신하라.“
하더라.
하루는 사또께서 회계 비장더러 농담으로 조롱하되,
"각처 비장 책방까지 수청을 두었으되, 자네는 어이하여 평양 같은 물색에 독수공방한다 하니 그 말이 참말인가?"
회계 비장 여짜오되,
"소인은 소첩으로 사오 년을 단방하와 색에 뜻이 없나이다."
회계 비장 숨은 회포 사또밖에 뉘 알손가. 기특히 여기더라. 백사 더욱 진실하고 사또 날로 사랑하여 일마다 미루어 맡기어 수삼 삭에 수만 냥을 상급하니 뉘 아니 칭찬하리.
이 때 회계 비장이 춘풍․추월의 일을 염탐하여 자세히 듣고, 하루는 비장이 추월의 집을 찾아갈 제 사또께 귓속하고, 그 년의 집 찾아가서 중문에 들어가니, 물통 진 춘풍 저 놈 형용도 참혹하고 모양도 가련하다. 봉두난발 헙수룩한 놈 낯조차 못 씻던가, 추잡하기 그지없다.
삼 년이나 아니 빤 옷 주루룩이 누덕여서 얽어 입고 앉은 것이 제 서방인 줄 알았으되, 춘풍이야 제 아내인 줄 어찌 알랴. 비장이 슬프고 분한 마음 서려 담고 추월의 방에 들어가서 간사한 추월이 회계 비장 또 흘리려고 교태하여 수작하다가 각별히 차담상을 만반진수로 차려 드리거늘, 비장이 약간 먹는 체하고 사환하는 걸인을 내어주며,
"불쌍하다. 네가 본디 걸인이냐? 네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느냐?"
춘풍이 엎드려 크게 말하기를,
"소인도 경성 사람으로 이리 온 사정이야 어찌 다 여짜오리까? 나으리 잡수시던 차담상을 소인 같은 천한 몸을 주시니 은혜 감사무지하여이다."
비장이 미소하고 처소에 돌아와서 수일 후에 사령을 불러 분부하되, 춘풍을 잡아들여 형틀에 올려 매고,
"이 놈 네 들으라. 네가 이춘풍이냐?"
춘풍이 대답하되,
"과연 그러하오이다."
"막중 호조돈 수천 냥을 가지고 사오 년이 되도록 일푼 상납 아니하니, 호조관자 내어 너를 잡아 죽이라 하였으니, 너는 그 돈을 다 어찌하였는가. 매우 치라."
분부하니, 사령놈이 매를 들고 심여 개를 중타하니 춘풍의 다리에 유혈이 낭자하거늘 비장이 보고 차마 더 치진 못하고,
"춘풍아, 네 그 돈을 어디다 없앴느냐? 바로 아뢰라."
춘풍이 대답하되,
"호조돈을 가지고 평양 와서 일 년을 추월과 놀고 나니 일 푼도 남지 않고, 달리 한 푼 쓴 일 없삽나이다."
비장이 이 말 듣고 이를 갈고 사령에게 분부하여 추월을 바삐 잡아들여 형틀에 올려 매고 별태장 골라잡고,
"일분도 사정없이 매우 치라."
호령하여 십여 장을 중치하고,
"이 년 바삐 다짐하라. 네 죄를 모르느냐?"
추월이 정신이 아득하여 겨우 여쭈오되,
"춘풍의 돈은 소녀에게 부당하여이다."
비장이 대노하여 분부하되,
"네 어찌 모르리요. 막중 호조돈을 영문에서 물어 주랴, 본부에서 물어주랴? 네 먹었는데 무슨 잔말 아뢰느냐? 너를 쳐서 죽이리라."
주장대로 지르면서,
"바삐 다짐하라."
50대를 중히 치며 서리같이 호령하니, 추월이 기가 막혀 질겁하여 죽기를 면하려고 아뢰되,
"국전이 지중하고 관령이 지엄하니, 영문 분부대로 춘풍의 돈을 다물어 바치리이다."
비장이 이르되,
"호조에 관자하여 너를 죽이라 하였으되, 네가 먼저 죄를 알고 돈을 무수히 바치마 하니 그런 고로 너를 살리나니 호조돈을 지체 말고 오천 냥을 바치라."
하니 추월이 여쭈오되,
"십일 말미만 주시면 오천 냥을 바치리다."
다짐 ᄒ써 올리니, 춘풍과 추월을 형틀에서 내려놓고 춘풍더러 이르되,
"십일 내에 오천 냥 받아가지고 서울로 올라오라. 내가 유고하여 먼저 올라가니 내 뒤를 미처 올라와 집을 찾아오라."
하니, 춘풍이 황황하여 아뢰되,
"나으리 덕택으로 호조돈을 다 수쇄하오니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서울 가서 댁에 먼저 문안하오리다."
하고 여쭙더라.
비장이 사또께 여쭈오되,
"추월 설치하고 춘풍도 찾삽고 호조돈도 수쇄하오니, 은혜 감축무지하온 중 소인 몸이 외람되이 존중한 처소에 오래 있삽기 죄송하와 떠날 줄로 아뢰나이다."
감사 그러히 여겨 허락하니, 이튿날 감사께 하직하고 상급한 돈 오만 냥을 환전 부쳐놓고, 떠나서 여러 날 만에 집에 와 정돈 보고 환전도 찾은 후 남복은 벗어 놓고 춘풍 오기 기다리더라.
이 때 사또 평양 비장에게 회계 비장을 겸하고 분부하여 추월을 잡아들여 돈 오천 냥 바치라 하시니 뉘 영이라 거역할까? 성화같이 재촉하여 불일 내에 받아가니 춘풍이 비장덕에 돈 받아 실어놓고 갓 망건 의복 치레하여 운안준마 놓이 타고 경성을 올라와서 제 집을 찾아가니, 이 때 춘풍의 처 문밖에 썩 나서서 춘풍의 소매 잡고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어이 그리 더디던고. 장사에 소망 얻어 평안히 오시닛까?"
춘풍이 반기면서,
"그 새 잘 있던가?"
춘풍이 이십 바리 돈을 여기저기 벌이고 장사에 남긴 듯이 의기양양하니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주찬을 소담히 차려 놓고,
"자시오."
하니 저 잡놈 거동 보소. 없던 교태 지어 내어 제 아내 꾸짖으되,
"안주도 좋지 않고 술맛도 무미하다. 평양서는 좋은 안주로 매일 장취하여 입맛이 높았으니, 평양으로 다시 가고 싶다. 아무래도 못 있겠다."
젓가락을 그릇에 던져 박고 고기도 씹어 뱉어 버리며 하는 말이,
"평양 일색 추월이와 좋은 안주 호강으로 지냈더니 집에 오니 온갖 것이 다 어설프다. 호조돈이나 다집하고 약간 전량을 수쇄하여 전 주인에게 환전 부치고 평양으로 내려가서, 작은 집과 한가지로 음식을 먹으리라."
그 거동은 차마 못 볼러라.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춘풍을 속이려고 상을 물려 놓고 황혼시에 밖에 나가 비장 복색 다시 하고, 오동수복 화간죽을 한발이나 빼쳐 물고 대문 안에 들어서서 기침하고,
"춘풍아, 왔느냐?"
춘풍이 자세히 보니 평양서 돈 받아주던 회계 비장이라, 춘풍이 황겁하여 버선발로 뛰어 내달아 복지하여 여쭈오되,
"소인이 오늘 와서 날이 저물어 명일에 댁 문안코자 하옵더니, 나으리 먼저 행차하옵시니 황공만만하외다."
"내 마침 이리 지나가다가 너 왔단 말 듣고 네 집에 잠깐 들렀노라."
방 안에 들어가니, 춘풍이 아무리 제 안방인들 어찌 들어올까? 문 밖에 섰노라니,
"춘풍아, 들어와서 말이나 하여라."
"나으리 좌정하신 데를 감히 들어가오리까?"
"잔말 말고 들어오라."
춘풍이 마지못하여 들어오니, 비장이 가로되,
"그 때 추월에게 돈을 진작 받았느냐?"
"나으리 덕택에 즉시 받았나이다. 못 받을 돈 오천 냥을 일조에 다 받았사오니, 그 덕택이 태산 같사이다."
"그 때 맞던 매가 아프더냐?"
"소인에게 그런 매는 상이로소이다. 어찌 아프다 하리이까?"
"네 집에 술이 있느냐?"
춘풍이 일어서서 주안을 들이거늘 비장이 꾸짖어 말하되,
"네 계집은 어디 가고 네게 일을 시키느냐? 네 계집 불러 술 준비 못 시킬까?"
춘풍이 황겁하여 아무리 찾은들 있을소냐? 들며나며 찾아도 무가내라 제 손수 거행하니 한두 잔 먹은 후에 취담으로 하는 말이,
"네 평양에서 추월의 집 사환할 제 형영도 참혹하고 걸인 중 상거지라, 추월의 하인 되어 봉두난발 헌 누더기 감발버선 어떻더냐?"
춘풍이 부끄러워 제 계집이 문 밖에서 엿듣는가 민망하건마는, 비장이 하는 말을 제가 어찌 막을손가. 좌불안석하는 꼴은 혼자 보기 아깝더라. 비장 말하되,
"남산 밑 박승지 댁에 갔다가 술이 대취하여 네 집에 왔더니 시장도 하거니와, 해갈이나 하게 갈분이나 한 그릇 하여 오너라."
춘풍이 황공하여 밖으로 내달아서 아무리 제 계집을 찾은들 어디간 줄 알리요. 주적주적하더라.
비장이 꾸짖어 말하기를,
"네 계집을 어디 숨기고 나를 아니 뵈는고?"
차왈피왈하니,
"너는 벌써 잊었느냐? 평양 일을 생각하여 보라. 네가 집에 왔다고 그리 체중한 체하느냐?"
춘풍이 갈분을 가지고 부엌에 내려가 죽 쑤는 꼴은 차마 볼 수 없더라. 한참 꿈적여서 쑤어들이거늘, 비장이 조금 먹는 체하고 춘풍을 주며,
"먹으라. 추월의 집에서 깨어진 헌 사발에 누른밥 토장덩이에 이지러진 숟가락도 없이 먹던 생각하고 먹으라."
춘풍이 받아먹으며 제 아내가 밖에서 다 듣는가, 속으로 민망히 여기더라. 비장이 말하되,
"밤이 깊었으니 네 집에서 자고 가리다."
하고 의복 벗고 갓 망건을 벗으니, 춘풍이 감히 가란 말을 못 하고 속마음으로 해포 만에 그리던 아내 만나서 잘 잘까 하였더니, 비장이 잔다 하니 속으로 민망히 여기더라.
관망탕건 벗어 놓고 웃옷을 훨훨 벗은 후 일어서니 완연한 제 계집이라. 춘풍이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분명한 제 겨집이라. 춘풍이 어이없이 묵묵무언 앉았으니 춘풍의 처 달려들며,
"여보소 아직도 나를 모르시오?"
춘풍이 그제야 아주 깨닫고 깜짝 놀라며, 두 손을 마주 잡고,
"이것이 웬일인가? 평양 회계 비장으로서 지금 내 아내 될 줄 어이 알리. 이것이 생신가 꿈인가, 태중인가, 귀신이 내 눈을 어리어 이러한가?"
하며 파경이 부합하여 원앙금침에 구정을 다시 이뤄 은근한 정이 비할 데 없더라. 춘풍 하는 말이,
"어떻게 평양 비장으로 내려왔으며, 또 내가 아무리 잘못하였기로 가장을 형틀에 올려 매고 볼기를 친들 그다지 몹시 치니 그 때 자네 마음이 상쾌하던가?"
하니 춘풍 아내 말하기를,
"그 때 자청하여 일푼전 일두속을 불부착수할 뜻으로 맹세하고 수기를 써서 내 함롱에 넣어놓고, 무슨 미친 마음으로 호조돈 수천 냥을 내어가지고 평양 장사 갈 제 말린다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 가계도 한 푼 없이 거지 꼴 되었으나, 그 후 저는 참판 댁과 친근하여 참판 댁 대부인께 침재품 판돈으로 차담상을 자주 차려 정성으로 대접하고 비장으로 내려갈 제는 임자를 보게 되면 반만 죽이려 하였더니 만나 보니 차마 불쌍하여 더 치지 못하고 용서하였거던, 사오 년 내 고생하던 생각하면 그 때 맞던 매가 깨소금이오."
하더라. 내외가 서로 웃고 전후사를 서로 타이르며 호조돈을 다 수보하고 춘풍이 개과하여 주색잡기 전폐하고, 치가를 일삼아 형세도 요부하고 유자생녀하고, 감사기 과만하여 올라온 후 안팎없이 다니며 평생 신을 끊지 않고 대대손손이 섬기더라. 이에 춘풍의 아내를 여중호걸이라 하더라.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