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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책
 
카페 게시글
자료실-동학,증산 스크랩 모심에 관하여
멩이 추천 0 조회 39 08.01.26 09: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모심에 관하여


      지난해 섣달 보름날 밤.
      나는 양산 통도사 자장암慈藏菴에 있었다. 보름달이 떠오를 무렵
취현루醉玄樓에 올라 백현초百玄草를 달여 마시며 건너편 영취산靈鷲山
흰 눈 쌓인 산정山頂을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었다.
      보름달이 온 골짝을 두루 비추는데 시살등에 부딪친 서북풍이 사
방에서 우우 솔바람을 일으켰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
      솔바람을 가로질러 이쪽에서 저쪽 영취산 산정에까지 단박에 이
르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솔개가 되어 날아가지 않는 한 발로 허공을 딛고 뛰어야 한다.
      이 허공!
      이 허공에 대한 앎이 내겐 없었다.
      앎이 없으니 어떻게 발을 내밀어 감히 딛겠는가?
      왜 없을까?
      허공에 대한 앎은 평소 나날의 삶 속에서 관철되는 허공에 대한
‘모심’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모심!'
      늘 ‘모심’에 대해 말해 왔으면서도 나는 모심을 잘 몰랐고,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했다.
      자장암 뒷바위 조그마한 구멍 속에 산다는 금개구리, 금와보살金
蛙菩薩이 바로 이 ‘모심’의 살아 있는 비유가 아닐까?
      건너편의 아스라한 산정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 금개구리의 비밀
은 풀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이때 내 머리를 스쳤다.
      이쪽과 저쪽 사이의 벼랑과 허공이 없다면 ‘모심’의 참뜻을 알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스쳐 지났다.
      그리고 ‘모심’에 의해서만 금개구리의 숨은 뜻이 밝혀지리란 생
각도.



      ‘모심!’
      생각하자면 아득하다. 우리 민족사상의 핵심이면서 이제부터의 새
로운 인류문명의 윤리적 기둥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모심’은 도대체 ‘산다
는 것’, 즉 생명이나 존재의 비밀일 듯도 싶었다.
      중국인들이 고대로부터 동이東夷를 일러 군자국君子國이라 부른
까닭이 바로 이 ‘모심’에 있었으며, 남명南冥과 퇴계退溪의 성리학이 주자
朱子 등과는 달리 성誠보다 경敬에 더 깊은 무게를 둔 것과 후천윤리後天
倫理와 세상의 삶의 중심을 ‘시侍’ 한 글자에서 찾은 동학東學의 비밀, 바
로 우리 민족과 고대 인류의 삶의 핵심사상이 모두 다 ‘모심’이 아니겠는
가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더욱이 불교의 ‘삼보三寶’ 또한 바로 ‘모
심’이 아닌가!


그렇다.
      모심은 존재와 인식과 관계의 비밀이며, 생명과 신神의 수수께끼다.
      모시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생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모
심이다. 무엇을 모심인가? 허공을 모심이다. 그러나 바로 이 허공의 모심
이 일체 창조와 가치의 핵인 것이다. 허공은 때로 생명으로, 신으로, 부처
로, 타자他者로, 연인으로, 부모와 자식과 인류와 뭇 민중으로 바뀌지만
그 중심에 살아 있는 무無, 즉 허공에 대한 모심으로서만 이 사람들이 그
근거를 얻는 듯하다.
      따라서 참된 존재론도 참된 인식론도,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진
정한 관계론, 공경과 우애의 네트워크도 모두 그 근거로서 ‘허공에의 모
심’을 파악, 실천해야만 되는 것 아닐까?
      모심.
      허공에 대한 모심.
      이 모심이 없이는 이쪽 취현루에서 건너편 저 아스라한 흰 준 쌓
인 영취산 산정으로 비약할 수 없다.
      감히 허공을 딛는 것이 바로 모심이다.
      모심 없이는 허공을 발로 디딜 수 없다. 존재와 생명의 비밀을 깨
달을 수 없다.

      세계는 소란스럽다. 한반도도 시끄럽다. 그러나 이 소음은 근원적
인 변화, 근본적인 삶의 대전환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진보도 개혁도 이젠 이 근원적인 변화에 대한 깊은 사유와 본격적
인 실천 없이는 모두 헛소리다.
      특히 우리나라와 동아시아는 전 인류적인 혼돈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한 줄의 시행詩行에서 한 차례의 상행위商行爲에 있어서까지도 관
통되는 인간적 신뢰와 우주적 공경 곧 모심, 미적 인식과 존재론에서 정
치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신성한 존중과 우애 곧 모심이 없이는
새 지구와 새 인류 문화는 건설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나는 철학적 ․ 미학적 ․ 사회적인 각 방면에 걸쳐서 이러
저러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해왔다. 실천문학사가 이것들을 전집 형태로
묶는다. 물론 『생명과 자치』나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의 대부분은
제외되었다. 그러나 기타의 글과 말들이 포함되었다. 이 말과 글들의 그야
말로 시끄러운 그 잡다성이 한 차원 높은 곳에 도달하도록 이쪽에서 저
쪽 아스라한 눈 쌓인 산정으로 비약이 가능하려면 모심, 허공에의 모심이
속속들이 관통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모심은 이제부터의 나의 과제다.
      지금과 앞으로의 과제의 발견은 과거까지도 연속된다. 지금 삶을
바꾸는 자, 지금 삶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자는 비록 아무리 시끄
럽다 해도 과거를 수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간은 지금 여기 나의 안에 살아 있는 깊은 허공으로부터 과거와
미래, 사방 팔방 시방으로 끝없이 차원 변화를 하며 질적으로 확산, 진화
하기 때문이다.
                                                

      단기 4335년 2월 17일
      일산에서
      김지하 모심

김지하 전집 머리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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