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붓꽃 》
하늘에 석양이 질 때면
활짝 피어 있는 붓꽃 사잇길로
바람과 함께 꽃섬을 걷고 싶다
파로호 바람 타고 날아오는
붓꽃 향기에
고단한 하루를 충전한다
붓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붓꽃인가
꽃밭에서 붓이 되어
마음의 그림 그려본다네
희망을 꿈꾸어본다네
땅거미 내려와 술래잡기하듯
붓꽃 하나둘 어둠 속에 잠들고
달그림자 재촉하여 아쉬움만 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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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기차는 그렇게 직선을 바라본다 》
낙동강 강물은 말없이 흘렀다
실타래같이 엉켜 있는 매듭을 풀지 못한 채
칠월의 장맛비를 맞으며 레일처럼 걸었다
부산행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떠난다
서로를 응시하며 밤과 밤사이가
양파의 양면처럼 길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두 점과 점은 직선이다
우리는 그렇게 직선을 바라보았다
저 레일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레일과 바퀴 사이에서 그와 나의 청춘도
레일처럼 뜨거웠다
열차가 고압선을 긁는 소리
바퀴가 레일을 훑는 소리
레일을 달리는 바퀴 소리가 심장처럼 뜨거웠다
레일을 건너가던 상현달은 은하 속에 숨어들고
복을 내려주신다는 북두칠성도
민망한 듯 자정의 꼬리를 감춘다
말없이 흐르던 강물도 수위를 높이고 있다
레일을 밀고 달러 온 기차가
기적을 울려도 우리는 하나였다
귀 막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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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그날의 비명을 읽다 》
철원 백마고지에 올라
비무장지대를 읽는다
굵은 밧줄처럼 살이 오른 삼팔선이
한숨을 토해내며
사내를 붙잡고 있다
팔팔 올림픽이 햇살처럼 눈부시던 그 해
끓는 피 다독이며 부름에 이끌려
철원 6사단에 입대했던 그,
바윗돌 같은 군장으로 심장을 억누르고
준령을 타며 생긴 물집
군홧발로 터트리며
포천에서 철원으로 양구로 전선을
돌고 돌아 멈춘 삼팔선
DMZ 지뢰를 밟던
그날의 비명
환청의 꽃 내음이
뼛속에 젖어들어 뒤척일 때
산산조각으로 사라진 그곳에
젊은 날의 안식처가 늙지 않고 멈춰서버린,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새끼노루처럼 떨었다는
기상청 일기예보 보다 빠른 그의 몸을
소낙비 같은 후유증이 퍼붓는다
사내가 능선 언저리에서
비무장지대가 낳은 오늘의 비명을 읽으며
몸을 떨고 있다
요통에 산하는 앓고 있다
( 2024년 6월 DMZ 공모작품 장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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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망부석이 된 큰어머니 》
뱀의 혓바닥같이 갈라놓은
남북은 아직도 얼음장 같은 냉전이다
새들은 쌍쌍이 저 휴전선을 넘나들고 있는데
비무장지대에 둘러앉은 풀꽃들
신혼부부처럼 뿌리를 내리는데
전쟁터에 나갔던 큰아버지는
아직도 그 생사 알 수 없다
결혼 첫날밤을 뜬 눈으로 보내고
남몰래 훌쩍이며 떠나보낸 남편
그 남편을 망부석처럼 기다리는 큰어머니
자식 하나 품 안에 두지 못한 미망인이다
뒷동산에 올라 세상을 등지려고도 했다
강물에 비친 달을 보고
하소연도 해 보았다는 큰어머니
전쟁은 얼마나 많은 여인을 미망인으로 내몰았던가
누가 누구의 한 생을 오랏줄에 묶어놓고
생이별의 서러움을 곱씹게 하였는가
가시 철망에 두터워진 벽 아래
망부석이 된 큰어머니
꿈에라도 찾아와 첫날밤처럼 불 밝혀 보자며
뜨겁게 타오른 그림자 되어
제비처럼 살자던 그 기도 소리가
메아리 메아리로
녹슨 철책선을 빙빙 돌고 있다
( 2024년 6월 DMZ 공모작품 장려상 )
카페 게시글
조갑숙
문학지 27집 시 4편
조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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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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