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환장속으로
김미순
<차녀힙합>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가 강력 추천한 책이 <걸어서 환장속으로> 다. 작가 곽민지.는 작가, 방송, 모바일콘테츠, 광고, 책 칼럼 등을 쓰거나 만든다. 가구를 만들거나 캘리그래피 작업도 한다. 작가, 디렉터, 칼럼리스트, 출판사 사장 등 붙일 수 있는 이름이야 많겠지만 뭔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작가로 통칭되기를 가장 좋아한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둘째 딸이어서 장녀 언니에 비해 부모로부터 사랑을밭지 못했고 그 사랑을 받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부모님에게 손이 안가고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똑순이였다. 이 책에서도 아버지의 은퇴를 기념하여 엄마도 모시고 스페인으로 자유여행을 간다. 아이가 있는 언니의 부러움을 뒤로하고 비혼주의자임을 자랑스러하며~ 내가 아들 버금가는 효녀라고 자랑치고 싶어서, 언니보다 한층 뛰어난 딸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스페인 여행이라 지명부터 나를 설레게 했다. 내가 유럽 여행에서 처음 스페인을 갔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톨레도,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아, 론다 등 낯이 익은 지명이다.
사그라다 패밀라아, 구엘공원, 알함브라 궁전은 특히 읽기 편했는데 이 책에서 엄마의 환호와 아버지의 신중한 태도가 멋진 여행에서 내가 유럽 여행을 하며 지내는 우리사회에서 상위층에 속했다는 우쭐대는 마음이 조금 생겼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데 참 어렸던 시절이었다. 나는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타래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곡을 검색하고 들으면서 차츰 다른 곡도 알게 되었던 거다. 톨레도 성당을 구경하면서 천주교에 더욱 깊이 빠졌고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눈이 생기게 되었다.
책 속에는 페키지 여행에 익숙해진 나를 떠올렸다. 걸음이 빠르지 않는 나, 물이 부족하다니 가이드가 주는 물병은 꼭 챙기는 모습, 화장실이 없다니 가이드가 알려주는 화장실은 잽씨게 챙기는자세~ 더구나 가이드가 있어서 가만 있어도 되는데 한마디라도 해보려고 올라, 그라시아스 등 스페인어 몇 개를 알아두려고 작은 회화 사전을 끼고 다녔다. 게다가 수첩과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가이드가 알려주는 걸 다 적으려고 애를 썼다. 가이드의 기침 소리까지 적었으니 편한 여행이 아니라 긴장되고 온 몸이 굳어지곤 했다.
이 작품에서는 딸의 실력을 믿고 그야말로 자유스럽게 즐겁게 따라다니는 부모님이 참 좋아보였다. 가이드인 작가는 매끄럽고 가성비가 높은 먹거리와 숙박장소, 운행 수단 등 신경쓸 것이 하도 많아 가는 곳마다 맥주와 와인, 맛난 안주로 하루 여행을 마감한다. 혼자 여행할 때와 부모님 모시고 그들의 취향과 바람을 생각해야 해서 힘이 빠진다. 더구나 아버지의 여권이 사라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일도 발생한다는 걸 몰라서 엄청 당황하는 모습이 나에게 생긴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여행을 포기했을 것이다. 우선 옆에 있는 스페인 사람에게 짧은 말로 사정을 말하고 침착하게 사태를 수습하는 작가가 대단해 보였다. 물론 다정하고 섬세하고 오지랖 넓은 스페인 사람들의 인정이 있어서 좋은 여행지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작가는 똑똑하고 실력있고 마음 넓은 딸이 되고자 하는 욕심(?) 에서 길들여졌겠지만, 거부할 수 없는 건 작가의 대단한 실력이다. 책 속에 여행지에서 찍은 부모님의 사진이 책을 빛내는 별이 된다.
나는 지금이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스페인 사그라다 패밀리아에 가고 싶다. 꿈 속에서라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