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에 끼인 연속되는 이런 즐거운 휴일에, 어린이가 없는 나로서는 어디 풍광 좋은 곳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는 그쯤의 소원 하나 있었는데, 날씨가 나 좋아하는 꼴 보기 싫은지 비가 오고 있다. 게다가 기후불순에 몸도 따라 불순해져 밤새도록 여기 저기 뼈다귀가 욱신거리고 배겨 뒤척거리다가, 새벽녘에 몸도 지쳤는지 잠잠하다.
6시 반쯤. 일어나 잠깐 앉았다가 배가 고파 깼다는 것을 걸 눈치 챘지만, 그 때부터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어서 그대로 쓰러져 내처 잤다. 잠결에 멀리 들리는 빗소리. 빗물에 한참을 떠내려가다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잠으로 인생을 까먹는 짓은 몹쓸 짓이라는 나의 정신이 나의 낡은 몸을 꾸짖어 깨웠다.
아랫도리는 어차피 젖을 거라 슬리퍼 신고, 거기에 걸맞은 낡은 추리닝(이런 추레한 옷에 딱 맞는 명칭이라니!)을 꿰차고, 오래되어 버릴까 말까 하는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후, 우산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가다가, 거울에 비친 봉두난발이 눈에 거슬려 밖으로 나가 비를 좀 맞은 후 손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휘저어 가라앉혔다.
머리카락아. 세상이 아무리 개판이어도 너까지 나를 개판 만들면 안 되지. 조금 흡족해진 마음으로 멀리 좋은 풍광 구경이라도 갈까하고 차에 시동을 걸어 앞으로 전진을 시켰는데, 어라? 차바퀴가 밤새 마치 전차 바퀴로 변신한 듯 못 듣던 소음이 요란하게 들린다. 내려서 차를 둘러보니 왼쪽 앞바퀴 펑크. 신차 사고 4년 만에 첫 펑크다.
그렇게 차바퀴에 바람이 빠지자 서비스를 불러야 하고, 부르니 자동응답기가 나서서 위치가 어디니 차가 어떤 상태니 묻는 말에 답하다가 갑자기 맥이 풀려, 사람 미음이란 게 그렇듯이 어디로 훨훨 자유롭게 나서자던 마음도 저절로 가라앉아 버렸다. 서비스 기사가 오고 차 펑크가 무슨 대수도 아니라는 듯 순식간에 고치고,
차 안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다 안다는 듯, 계기판에 차바퀴 에러가 떠있을 겁니다마는 차를 몇 백 미터 움직이면 저절로 사라지니 걱정마시구요. 자, 저는 그럼...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휑하니 다른 차 수리하러 떠나고, 한참을 멍하니 섰던 나는 정말 그런가 테스트도 할 겸 요기도 할 겸 차를 몰아 읍내로 나갔다.
7시 반. 정말 읍내를 반 바퀴도 돌기 전에 공기압 부족 경고 문구는 사라지고, 읍내를 한 바퀴를 돌았어도 밥 먹을 데는 국밥집 한 군데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국밥을 딱히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럴 경우 선호라는 말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당연히 가게 들어서자마자 메뉴판 맨 첫 번 째를 찍었다. 시래기 해장국!
최근 의사로부터 경고를 몇 번 받은 나는, 이제 해장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씩씩한 군번이 아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전체 회식 때 딱 3잔만 하기로 나 혼자 약조한 나는, 그게 무슨 금강불괴의 언약이라도 되는 듯 착실하게 잘 지키는 중이다. 부모 살아생전 나더러 집에 좀 붙어 있으라시던 그 고귀한 말씀도 헌신짝처럼 내던졌던 내가 말이다.
숙소 가서 거기 살아있을 단 하나의 생명, 스파트 필름ㅡ, 그 놈에게 물을 주고 그리고 청소 좀 하고, 비 오거나 말거나 세탁기 돌려 세탁이나 할 것이다. 나머지 음악 듣다가 모자란 잠이나 보충하면 오늘 하루해가 저물 것이다. 때는 늘 그렇듯 행복하지도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은 생의 후반부 시간인 것이다.
사람들이 거의 밖으로 나간 어제 오늘 잘 팔리지 않은 시래기 해장국은 굵은 힘줄 박힌 아랫도리 심지들까지 녹아 입에 넣어 몇 번 우물거리면 다 목을 타고 넘어가고, 그러는 사이 어제의 영육을 되찾은 나는 내일부터 공사 피크 정점에 나를 또 던져놓을 것이다. 집중하자,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시래기 해장국을 먹는 시간. - 音 박주원_마지막 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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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맛 있었을거 같은데요
세상살이에 행복만 은 없죠. 시래기가 몸에 좋다니까 많이 드셔.ㅎ
ㅋㅋ 원체 육괴기 물에 빠진 것을 안 좋아하는데, 딱 하나 시래기 해장국은 느끼하지 않아 가끔 이용.
집에 혼자서
지내나봅니다
삼시 새끼 다
찾아드시길요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
늘 건강하세요
그 따위 갑갑한 집은 내삐리고, 객지서 40년 넘게 사는 중.^^
딱히 크게 맛도 못 느끼고, 그저 굶어죽기는 억울해 먹는 수준이요~
보릿고개때는 시래기를 주식으로 여겼지만 요즘에는 웰빙 식품으로 먹지만 몸에도 좋다고 하니까. 시래기 된장국 맛있던디 나는그래.
난 저게 좋아서 먹는다기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나 할까?
순대국밥처럼 텁텁하지도 않고
돼지국밥처럼 느끼하지도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