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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 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5.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6.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대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는,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 저녁때가 되면, 예수와 제자들은 으레 성 밖으로 나갔다.(마가복음11:12-19)
12. The next day, as they were coming back from Bethany, Jesus was hungry. 13. He saw in the distance a fig tree covered with leaves, so he went to see if he could find any figs on it. But when he came to it, he found only leaves, because it was not the right time for figs. 14. Jesus said to the fig tree, “No one shall ever eat figs from you again!” And his disciples heard him.
15. When they arrived in Jerusalem, Jesus went to the Temple and began to drive out all those who were buying and selling.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changers and the stools of those who sold pigeons, 16. and he would not let anyone carry anything through the Temple courtyards. 17. He then taught the people: “It is written in the Scriptures that God said, ‘My Templ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the people of all nations.’ But you have turned it into a hideout for thieves!”
18.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heard of this, so they began looking for some way to kill Jesus. They were afraid of him, because the whole crowd was amazed at his teaching.
19. When evening came, Jesus and his disciples left the city.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2. The next day, as they were coming back from Bethany, Jesus was hungry.
어제 주님은 왕으로써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왕의 입성이라면 백마를 타신 주님을 그려 볼 수 있었을 텐데 주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것도 사람이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였습니다.
키가 작은 나귀의 그것도 새끼이다 보니 주님의 발이 땅에 끌렸을 것입니다.
훈련받지 못한 나귀니 비틀거렸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모습을 고집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왕과 다른 하나님 나라 왕을 표징하기 위함입니다.
그 분은 세상 왕처럼 사람들 위에 군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아마 동키호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을 표징하자면 칼을 차고 말을 탄 일본 순사놈 같았을 것입니다.
새끼 나귀를 탄 일본 순사?
이 새끼 나귀는 현대 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님의 정신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눈에 아주 바보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주님의 하실 일은 분명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실 것입니다.
사람 살리려고 주님이 제물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은 어제는 예루살렘을 입성하셨는데 오늘은 성전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세상의 배꼽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성전 앞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푸른 잎이 무성했습니다.
주님은 그 때 배가 고프셨는데 그 무성한 겉모습이 무화과로 주님의 배를 채워주고도 남을만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 가까이에 가셔서 그것을 보셨는데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나무는 다음날 말라 죽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상한 지적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가 열매를 맺힐 시기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스스로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때가 아니라서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를 뿌리까지 말리시다니!
이전 주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표징 행위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무화과나무도 역시 이 시각으로 보셔야 합니다.
나귀가 예수님을 표징했다면 이 무화과나무는 성전의 운명을 표징합니다.
제가 어려운 말을 썼는데 제 말은 주님은 지금 나무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날벼락을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무를 들어서 성전의 운명을 이르셨던 것입니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3. He saw in the distance a fig tree covered with leaves, so he went to see if he could find any figs on it. But when he came to it, he found only leaves, because it was not the right time for figs.
먼저 주님이 멀리서 성전을 살펴보셨습니다.
그 성전은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플랭카드 걸어두고 부흥회 하고 각종 봉사로 바쁘고 성전은 푸른 잎으로 무성했기 때문입니다.
하도 그럴듯해서 주님도 기대를 가지시고 가까이 가서 보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무 열매도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전은 껍데기를 가지고 엄청난 지지를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마가복음13:1,2)
제자들조차 종교의 이름으로 치장된 껍데기에 현혹되어 있었지만 주님은 냉정하게 판단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돌 하나 위에 돌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완전히 파괴될 것입니다.
주님은 거기에서 아무 열매도 찾지 못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배고프셨는데 이 일로 화가 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일로 나무에게 책임을 물어서 그것을 심판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전은 거기까지 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차 타고 거창읍으로 나가다 보면 의동으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덮여있습니다.
이제 여름이 갔습니다.
나뭇잎이 문책당한 것이 아니라 가을이 온 것입니다.
새 때가 되면 나뭇잎들이 미련 없이 땅에 버려져 왔습니다.
이 때에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은 은행 나뭇잎처럼 말끔하게 땅으로 떨어져서 사람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그것이 여름 내내 푸른색이었는데 제 색깔조차 잃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복음의 때가 오고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성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4. Jesus said to the fig tree, “No one shall ever eat figs from you again!” And his disciples heard him.
이 성전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주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주님은 똑같은 일을 성전에서 하시고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13.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14.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제자들은 '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요2:13-17)
주님은 나흘 후에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이제 공생애를 마치시며 바로 그 장소에서 3년 전에 하셨던 똑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은 물 위를 걸으시고 미친 물을 향해 명령하셔서 그것을 잔잔케 하신 그리스도께서 로마를 공격하시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엉뚱하게도 하나님 백성의 성전을 공격하신 것입니다.
일관되게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승리란 무력으로 땅의 소유를 넓히는 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승리는 죽음에 있는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성전이 죽은 생명을 살리는 제 기능을 제대로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의 회복을 위해 싸우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주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일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성전을 리모델링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두매인이 정치 목적으로 쌓아두었던 엄청난 돌멩이 하나를 남기지 않고 제거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요2:19)
물론 헤롯이 세운 성전에 비교되는 새 성전은 예수님을 이릅니다.
그 믿음을 이릅니다.
주님은 옛 성전도 멋진 유물 정도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미련까지 뿌리조차 말라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나무에 동정심을 보이는 듯이 가소로운 의를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전은 말라비틀어져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전한 것은 옛 성전을 버리고 새 성전이신 예수님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새 성전이신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복음으로 안디옥 교인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1차 전도를 떠났습니다.
그 바울이 전도를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의 그 가르침이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전과 율법에도 열매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온 것입니다.
그 유대에서 온 사람들이 화려한 성전에도 부족하기는 하지만 열매가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유대 기독인들이 그 거짓을 안디옥 교회에 가르친 것입니다.
1.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신도들을 가르치기를 "여러분은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2.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드디어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와 신도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찾아보게 하였다.(행15:1,2)
당시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을 바울 혼자였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일단 안디옥에서 터진 것은 사실이지만 예루살렘 교회를 포함하는 초대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신학적인 문제임을 바울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예루살렘 총회를 연 것입니다.(사도행전15장)
결국 예루살렘 교회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신학적인 결론을 받아내 듯이 보였습니다.
11. 우리는,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습니다."(행15:11)
하지만 유대 기독인들은 바울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조차 최소한의 상징적인 율법 행위를 통해서 이방 기독인들을 일단 유대인으로 포함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안에 불평등이 없는 하나님의 한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방 기독교인들이 자신 유대 기독교인들과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믿음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수천 년 우리가 따라왔던 율법이 있는데.......
25. 그리고 신도가 된 이방 사람들에게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결정해서 써 보냈습니다."(행21:25)
주님은 지금 이방인 기독인들이 일단 유대인 기독인이 된 다음에 하나님이 자녀가 되는 단계를 밟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알고 보니 유대로부터 예수님을 믿는다는 기독인들에게 성전은 완전히 허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 한 귀퉁이 남은 뿌리에서 그것이 다시 기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성전의 나무뿌리까지 말라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영원히!
그것은 주님의 배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대는 죽을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성전이 사람들의 그 영적 필요(need)를 채워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은 생명을 주는 일에 전혀 그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그 배고픔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9.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10. 이 뜻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오직 한 번 바치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10:9,10)
그래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성전 앞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그 첫 번째 것의 운명을 표징하셨습니다.
주님은 옛 성전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 존재조차 사라지고 말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 행위에 배를 채울 열매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죽을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13.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3. because it was not the right time for figs.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새 생명의 때가 온 것입니다.
주님은 그 성전을 상징하는 그 나무를 향해서 단언하셨습니다.
14.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14. “No one shall ever eat figs from you again!”
그러면 구약의 말씀은 이제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율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9.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3:19,20)
옛 성전은 스스로 부정되며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것입니다.
뿌리부터 저기 꼭대기의 이파리까지 말라버림을 통해서 예수님만이 새 성전임을 증거할 것입니다.
율법은 엄청난 제 역할을 잘 감당했던 것입니다.
즉 율법은 죄를 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생명을 결실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옛 성전과 율법의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즉 복음은 생명을 보장하지만 율법은 생명이 아닌 죽음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9.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10.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1.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12. 그러므로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롬7:9-12)
율법과 성전은 그렇게 예수님만이 새 성전 되심을 드러냈으므로 그 소명을 다한 것입니다.
의동으로 올라가는 은행나무 언덕길 위로 노랗게 덮인 이파리들이 여름 내내 나무에 초록으로 달려 있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은행이 달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제 제 역할을 다해서 땅바닥에 우수수 다 떨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성전을 개선하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색깔조차 초록에서 노랑으로 바꾸어서 딸바닥으로 떨어질 때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돌 하나 위에 돌을 남기지 말고 부셔버리라는 것입니다.
성전으로 대표되는 구약의 전통은 끝나고 복음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제 성전은 사라지고 그리스도 등장의 때를 맞은 것입니다.
과거의 개선이 아닌 예수님을 통한 불연속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행위에서 믿음으로!
예수님 이전의 시기는 열매가 없는 시기입니다.
거기에서 열매를 찾는 사람은 아주 헛고생을 할 것입니다.
이제 다른 때가 왔습니다.
어제가 지나므로 오늘의 아침 해가 뜬 것입니다.
어제는 사라졌지만 어제가 있음으로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성전은 완전히 무너짐을 통해서 그 뜻을 다 했습니다.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문입니다.
나무가 말라죽은 것은 꼭 저주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성전의 그 때를 다 한 것입니다.
15.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5. When they arrived in Jerusalem, Jesus went to the Temple and began to drive out all those who were buying and selling.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changers and the stools of those who sold pigeons,
주님이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은 삼 년 전에도 성전에서 똑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대제사장이 바뀌고 율법사들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주님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다시 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밝히시기 전에 행동부터 먼저 하신 것입니다.
상과 의자를 뒤집어엎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누가 보아도 예수님의 행위는 불경한 일에 속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신 주님은 그 돌아가는 모든 종교적인 봉사들을 뒤집어 버리신 것입니다.
우상이 그려진 동전을 유대의 동전으로 바꾸어 주고 있는데 웬 날벼락입니까?
그 일을 해야 성전에 헌금이 제대로 걷힐 것이 아닙니까?
멀리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의 제사를 위해 짐승을 준비해 주었는데 웬 말입니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소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그 역할이 없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멈추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돈 바꿔 주고 너무 이익을 많이 남겼다고 합시다.
주님은 이윤을 작게 남기라고 호통치신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제 식구들로 장사하게 했다고 합시다.
공평하게 기회를 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주 상을 엎어버리신 것입니다.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옛 구조를 부정해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즈음 자동차 공장에는 로봇이 용접하고 페인팅을 합니다.
옛적에 사람들이 했던 일입니다.
요즈음에는 사람들이 스크린을 보면서 스위치 조작하는 일을 합니다.
페인트 통을 들고 자동차에 그것을 칠하지 않습니다.
개선이 아니라 아주 그 체계가 바뀐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 보기에는 성부 소장사, 성자 양장사, 성령 환전소 간판만 모조리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는 시장바닥이었습니다.
거기에 분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조리 돈을 세고 있었습니다.
거기 주인공은 맘몬이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하나님은 경제행위의 빌미에 불과했습니다.
아침에 성전을 갈 때 오늘 이윤을 많이 남길 생각뿐이었습니다.
또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속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전 안에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속여먹고 속고......
껍데기는 종교 행위로 하얀 회칠을 했는데 내부는 썩은 시체였습니다.
주님께서 그 장소에서 행동부터 먼저 하셨습니다.
뒤집어엎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동물로 제사 드리는 일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에 그 미련이 2,000년 지난 교회 안에서 다시 도진 것입니다.
여전히 교회 안에 이파리만 무성합니다.
하나님을 외치고 쉬지 않고 일하는데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붕어빵 장사, 짜장면 장사, 소장사, 말장사, 부흥회, 여전도회 세미나, 남전도회......
성전은 그 때를 다 해서 예수님께서 그 뿌리까지 말려버리신 일들입니다.
16.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16. and he would not let anyone carry anything through the Temple courtyards.
또 직접 상거래를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상거래가 용이하도록 성전은 그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성전뜰은 양을 몰고 다니는 사람 소를 몰고 다니는 사람으로 바빴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명분과 열심이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훌륭한 벽돌 건물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무슨 의미를 가진다는 말입니까!
그 열매가 없는 나무 이파리들이!
그것이 최소한 비를 막아주고 우리로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면 그 정도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성전은 건물의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사건입니다.
복음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 성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믿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엎어져야 합니다.
23.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마23:23,24)
지도자들은 제 세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거짓 안정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종교 행위가 주는 거짓입니다.
“십일조 했으니 됐다. 이제 부는 보장 되었다.”
안심하라고 선언하는 거짓 평화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막상 하나님의 자녀가 갖추어야 할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 여러분의 정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식사 봉사하는 일이 여러분의 자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헌금을 많이 하고 바이든이 날리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꼬락서니입니다.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7. He then taught the people: “It is written in the Scriptures that God said, ‘My Templ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the people of all nations.’ But you have turned it into a hideout for thieves!”
주님은 성전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엎으신 다음에 이 일들의 원인을 설명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17.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7. “It is written in the Scriptures that God said, ‘My Templ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the people of all nations.’ But you have turned it into a hideout for thieves!”
교회는 성가대 대원, 식당 당번, 주차장 봉사.......
아니면 무슨 날개, 무슨 코스, 부흥회, 성경....... 마구 잡이로 프로그램을 돌려서 정신을 홀딱 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란 가마니 위에 앉으면 내 입이 저절로 하나님 하면서 눈물이 좍 흐르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 하고 부르면 예수님께서 나 여기 있다고 답을 해주시는 곳입니다.
내가 하나님 하고 부르면 나 여기 있다 그 하나님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곳입니다.
누구라도 교회에 앉으면 그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헬라인이라도 유대인이라도!
수많은 행사로 하나님의 실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즉 기도하는 장소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종교 행위로 채우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는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초대 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그 교회는 대리석이 깔리고 스위치 올리면 냉난방이 해결되는 우리들의 교회와는 달랐습니다.
어르신들은 가마니 깔고 거기 주저앉아서 톱밥 난로 때우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도 눈 매운 그 톱밥 타던 연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을 넘어 새벽 기도회를 갔습니다.
그 분들은 정말로 기도하기 위해 거기에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무너뜨리신 그 성전을 서울에 세워놓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이 시골 거창에도 그런 성전이 번쩍이던데.......
지금도 그런 성전은 무너져야 합니다.
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마가복음13:1,2)
믿음을 방해하는 그 벽돌들은 다 무너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화려한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성전으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공공연히 무너진 성전을 운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은 성령의 역사를 불신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물리적인 돌덩이로 금붙이로 확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눈에는 성전이 다름 아닌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
거기는 맘몬을 하나님으로 포장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18. 대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는,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18.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heard of this, so they began looking for some way to kill Jesus. They were afraid of him, because the whole crowd was amazed at his teaching.
특별히 그들을 인도하던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죽여버릴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죽이는 것입니다.
저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목표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죄인을 살리시는 일입니다.
죄인이라고 죽이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이 죽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복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새 성전을 세우셨는데 사람들은 이 영광의 현장을 전혀 달리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30.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너라!" 하였다.
31. 대제사장들도 율법 학자들과 함께 그렇게 조롱하면서 말하기를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 하였다.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도 그를 욕하였다.(막15:30-32)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를 위해 새끼 나귀를 타셨습니다.
주께서는 그를 위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생명을 건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마구 뒤집어엎고 계셨습니다.
당시에 경건하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분노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경건의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은 틀림없이 마귀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경건의 기준으로 가장 경건하신 자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곡해될 가능성이 앞에서 주님은 엄청난 위기를 자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대단히 위험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한 가지 행위를 두고 다른 해석의 문제입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자신을 위해 남을 죽이려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간단히 죽일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간단히 죽일 수 없었습니다.
18.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18. They were afraid of him,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했던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18.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18. because the whole crowd was amazed at his teaching.
예수님의 가르침의 힘 때문입니다.
혼돈이 깊음 위에 있던 현실에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빛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눈 앞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곧바로 빛이 그 첫째 날에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 군중들의 눈이 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군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바로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한 것입니다.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번째 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결과 그들이 성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동안 그들이 믿어왔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 강도였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눈을 씻고 다시 보았습니다.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백성 무리들이 제대로 무장하고 자신들을 저항할까 보아서 그 무리들이 두려웠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하신 주님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목사들이 이렇게 올바른 지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민중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력을 성령을 통해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을 통해 그 가르침이 있자 그 강도들이 주님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의 지적대로입니다.
목사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가르침을 가르칠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쉽습니까?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어려운 일은 이미 십자가에서 다 홀로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불같은 성령을 부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차려진 밥상이네!
주님이 가르치신 내용은
17.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7. “It is written in the Scriptures that God said, ‘My Templ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the people of all nations.’ But you have turned it into a hideout for thieves!”
주님은 성전을 제대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가마니 깔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 때 이 교회와 이 나라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오직 기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있는 것을 가져다 바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옛 성전에 동전 장사, 소 장사, 양 장사....... 아주 시장 바닥이 된 것입니다.
교회란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성전뜰을 8톤 트럭을 몰고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교회에 앉기만 해도 “하나님!” 내 입이 저절로 하나님을 고백하더니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곳입니다.
성전과 율법이 뿌리까지 부정되는 때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 새 때입니다.
돌 하나 위에 돌이 남지 않는 거기에 예수님께서 새 성전으로 세워지시는 것입니다.
19. 저녁때가 되면, 예수와 제자들은 으레 성 밖으로 나갔다.
19. When evening came, Jesus and his disciples left the city.
주님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십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 성이 주님께 안식을 주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 곳은 나흘 후에 아주 피바다가 될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의 군홧발 소리
주께서 비명을 지르실 것입니다.
내 상식이 로마 군인들의 회초리에 제대로 맞아 피를 흘리면서 땅 위에 뒹굴러다닐 것입니다.
그렇게 새 생명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