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 건드린다는 것
홍 성 자
이 맛있는 블랙빈 쏘스 랍스터를 보고도 안 먹어야 하다니.......
다른 음식을 먹는 체 하다가 또는 배 아픈 척하며 애꿎은 화장실만 들락거린다, 마음은 랍스터에 가 있으면서.......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시면 꼭 들려야 하는 코스로 랍스터 식당을 가게 된다. 한국 사람들에게나 중국인들에게는 토론토의 명물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랍스터 식당이다. 랍스터는 해산물종류 대표중의 하나로 바다가재를 말함인데, 바다가재 요리 중에 블랙 빈 쏘스를 얹어 나오는 요리가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랍스터 뿐만 아니라 오징어, 낙지, 새우, 문어, 골뱅이, 소라, 해삼, 전복, 비늘 없는 생선으로 갈치, 꽁치, 고등어 등을 포함한 해물들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해물 알러지가 있음을 나이 60넘어 너무 늦게 알았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졸업까지 충남 대천에서 살았는데, 대천시내에서 그 당시 버스로 40여분 거리랄까, 머지않은 곳에 조개껍데기가 부서져 모래처럼 된 대천 해수욕장이 있다. 물론 모래와 섞인 조개가루지만 조개가루가 엄청 많다. 칼슘 성분이 많아서 노인 분들이 무릎이며 허리에 모래찜질을 하러 대천 해수욕장에 가신다.
음력으로 4월 20일이면 모래가 햇볕에 뜨거워져 ‘모래의 날’ 이라 하여, 점심 보따리를 싸고, 머리에 수건을 얹어 햇빛을 막으며, 모래사장에 노인 분들이 무릎에 뜨거워진 모래를 덮고 죽 앉거나 누워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올해 2022년으로 보면 음력 4월 20일이 양력으로 5월 19일이다.
작은 게나 조개, 고동 등이 사는 펄까지 5-10kM 정도에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바구니를 들고 고동이나 조개 등을 채취하러 가는 것을 가끔 보아왔다. 고동이나 조개들을 줍거나 펄 속에서 캐어내어 깨끗이 씻어서, 냄비에 보글보글 5분 정도만 삶아도 뽀얀 국물이 나온다.
그 국물에 소금 조금타서 마시면 재첩국이라 하여 향긋한 바다냄새에 감칠맛이 그만이다. 나는 조갯살이나 고동을 참 좋아했다.
삶은 고동은 송곳니로 구멍을 폭! 뚫어 쏙! 빨아 먹으면 어찌 그리 쫀득쫀득 맛이 있던지....... 바다 향기가 그윽한 그때의 추억이 새롭다.
어린 시절 나는 양 다리의 여러 곳에 상처가 있었다. 벌겋게 부어오르다가 노랗게 곪으면서 욱신거리고 아픈 것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고름을 닦아내는 쓰라린 아픔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밖에 나가 흙장난하고 놀다가 딱지 진 부위가 가려우면 흙장난하던 손톱으로 긁으면서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고, 약을 바른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참 무지한 세월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딱지가 질 무렵이면 상처 부위가 근질거려 계속 긁기 시작하다가 아파도 시원한 맛에 울면 서도 딱지를 떼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러면 엄마는 왜 딱지가 완전히 아물 때 까지 그냥 두지 않고 덧 건드려서 곪은데 또 곪게 하느냐며 야단을 치셨다. 살갗이 찢어져도 가려움이 끝나질 않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덧 건드린다는 데에 있다. 나으려면 왜 또 그렇게 가려운지, 피가 나도 긁고 딱지를 떼면서까지 계속 덧 건드리게 된다. 그러면 늘 서혜부에 멍울이 생기고 부어서 아팠다.
그때는 그러기를 반복하면서도 왜 그런지 모르니까 항상 고동을 사먹었다. 고동 파는 아주머니는 작은 종이를 고깔처럼 말아서 고동을 넣어 팔았다. 계속 고동을 사먹으니 내 두 다리는 상처가 끊일 날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공무원이셨는데 대천을 떠나 예산으로 전근 오시면서 내 두 다리는 깨끗해지기 시작하였다. 예산은 바닷가에서 멀기 때문에 고동이 흔치 않았고, 사 먹지 못했기에 자연히 다리에 상처는 안 생겼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알고 보니 나는 해산물 알러지(allergy)가 있는 사람이었다.
70이 넘었는데도 해산물을 먹으면 발등이나 손등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그러면 항생제를 먹든가, 벌겋고 욱신욱신 하며 뜨거워진 부위에, 얼음을 랩에 싸서 대고 있기를 여러 번 한 후, 그 다음날엔 현저히 좋아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외식을 하게 되면 해물 종류를 안 먹으려고 하지만, 발등이 부어오른걸 보면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해물이 다녀 간 국물 한 수저라도 먹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음식물 무엇을 먹었나? 추적하게 된다. 몸은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음으로.
주변에 보니 나처럼 해산물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더러 있음을 보았다. 해산물 알러지 뿐 만 아니라, 벌 알러지, 피넛(땅콩) 알러지, 수박, 오이, 우유, 계란, 복숭아 등 알러지 종류도 많고, 특히 피넛 알러지는 목숨까지 잃는 무서운 알러지다.
어렸을 때 죽을 고생을 그토록 했으면서도 해물 알러지가 있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모르긴 왜 몰라, 모른다고 하고 싶었겠지, 펄펄 끓는 물에 물오징어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니 먹고 봐야지,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닫고 싶지 않았겠지, 깨달으면 안 먹어야 하니까.
이제는 그런 종류를 안 먹으니 종아리나 발등이 부어오를 일이 없고 덧 건드릴 필요도 없어졌다. 해산물에 대한 상식도 생기고 몸의 반응에 순응하는 것이 편한 줄을 이제 서야 깨닫고 실천하게 되다니 나이가 가르치는 것일까?
안 아파야 사는 게 수월함으로.
모든 인생사도 그렇다, 아프고 괴로웠던 일들을 다시 꺼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쳐본들 그 무슨 소용인가. 건드리지 말고 덮고 가야하는 일들도 또한 있지 아니한가.
덧 건드렸다간 큰일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 2022. 5.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