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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타이 박
이 홍사
-형,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야돼요?
후배시인 K가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집으로 가야 되지.
-농담 말고.
-국도를 이용했으면 벌써 다 갔겠다. 완전히 Z자로 가잖아? 쭉 내려가다가 새로 생긴 상주 영덕간 고속도로가 나오면 상주방향으로 타고 동상주에서 내리면 돼. 그러면 거기가 낙동대교야. 이 집 커피 맛이 깔끔하다.
그렇게 일러주고 커피를 홀짝였다. 하행선 안동 휴게소였다. 매고 있던 검정색 넥타이가 이제는 거추장스레 여겨졌다. 나는 넥타이를 풀어 들고 있던 손가방에 접어서 넣었다. 영안실 입구에서 의관을 정제한다며 매었던 넥타이였다.
-우리가 Z자로 가고 있어요?
-그렇지. 너 길치냐? 여기서 구미가 어느 방향에 붙었어?
-이쪽 방향 아닌가요?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K가 가리키는 방향은 구미의 반대방향이었다.
-너 완전 방향치구나.
-네비게이터가 일러주는 대로 가기만 하면 돼요. 나는 이 여자만 믿어요.
-여자 말 다 믿을 건 못된다. 살아보면 알아.
B의 모친상 부음을 받은 건 어제 오전이었다.
시대에 걸맞게 부고를 문자 메시지로 받은 것이다. 작가회의에서 날아온 문자인데 다음 주에 회원인 두 시인의 새로 나온 시집 북 리뷰를 한다는 문자를 받고 오 분이 채 안되어 또 같은 번호로부터 문자가 날아온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작가회의 사무국장의 휴대폰 번호인 모양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B시인이라면 친분을 생각해서 거리는 멀지만 문상을 가야 한다. 누구와 갈까 생각하다가 K시인을 떠올렸다. 바로 K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 갈 거냐고 물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다. 문자 안 받았느냐고 물으니 메시지 확인을 못했다고 했다. B시인의 모친상이라고 하니 문자를 확인해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하며 지금 조금 바쁘다고 하고는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녀석은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회의 중에 전화를 받았던 모양이다. K라는 녀석은 시설관리공단 노조위원장을 하다가 임기가 끝나고 새로 생긴 시립 캠핑장과 한옥 체험관의 두 곳을 담당하는 팀장으로 갔다. 두 곳 다 며칠 전에 오픈을 했으니 일거리가 많은 모양이다. 또 두 곳의 거리가 이십 여 킬로 떨어져 있으니 팀장이라고 매일 두 곳을 돌아보는 것도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K의 전화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인터넷의 무료영화를 다운 받아 외장하드에 저장하고 있었다. 힘들게 받아서 외장하드에 저장시키면 이미 수록된 영화라는 메시지가 뜨는 경우도 있고 또 저장시킨 영화를 보다가 보면 이미 본 영화인 경우도 있다. 내 외장하드에는 팔십여 편의 영화가 저장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영화를 볼 시간이 없을뿐더러 심리적인 여유가 없다. 외국에 출장을 나가면 무료한 저녁 시간에 한 편씩 보는 것이다.
나는 영화에 대한 감수성이 비교적 예민해서 영화를 한 편 보고나면 그 날 본 영화가 꿈속까지 연결되어 따라온다. 리뷰를 꿈속에서 하는 셈이다. 어쨌든, 외장하드에 영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면 총알이 두둑한 전사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하여 내용이 빤한 중국의 무술영화든, 인도영화든, 허리우드의 원어로 된 영화든 가리지 않고 다운을 받는다.
지루한 멜로영화는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보다가 영화가 재미없다고 삭제하는 경우는 없다. 다운받은 공을 생각해서 끝까지 보고 지운다. 보고난 영화는 가차 없이 삭제한다. 삭제하지 않으면 헷갈려 그 영화를 한참이나 다시 보는 수가 생기기에 아예 지워버린다. 하여 내 외장하드에는 새로운 영화가 팔십여 편 들어있는 것이다. 적확하게 말하면 새로운 영화가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한 영화가 들어있다. 물론 한번 보고 삭제하지 않는 영상물도 있다. 그건 USA라는 제목의 음란물이다. 영화와 별도의 폴더에 들어있는 것인데 그런 음란물은 어디에서 다운받는지 모른다. 내가 다운받아 저장한 게 아니라 몽골에서 일을 벌여놓았을 때 데리고 있던 매니저 친바라는 녀석이 내 외장하드를 들고 가더니 어디에서 담아온 것이니 내용도 그렇고, 내 외장하드에 들어온 루트도 그렇고 완전히 외제다. 그 때 담았으니 오 년은 족히 넘었을 것인데 아직도 다 보지 못했다.
K녀석에게서 전화가 온 건 영화를 열댓 편이나 다운 받고 나서 새로운 것이 없어 인터넷을 종료시키고 점심을 무엇으로 때울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형! 내일가도 되겠네?
-그래 내일가도 되겠지. 모레가 발인이니까.
-형은 내일 시간이 어때요?
-나는 아무 때나 상관없다.
-내일 S형도 같이 가기로 했어요.
-아! 잘됐네. 나는 S를 생각 못했네.
녀석의 말에 의하면 S시인과 약속을 했단다. 다음날 오후 세 시에 선산터미널에서 만나서 K의 차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가 연락은 했지만 내가 끼어 가는 입장이 되었다. 녀석은 내 차로 S를 태워서 선산터미널까지만 시간을 맞추어 오라는 것이었다. 기분은 좀 고약했지만 마다할 구실을 찾지 못하고 그러겠노라고 했다. 선산에서 영주까지는 거의 두 시간쯤 걸린다. 세 시에 만나서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다섯 시쯤 되니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적당하겠다.
녀석과 약속을 하고 생각하니 내 차를 선산까지 가져가면 술을 마시기가 거북하다. 술은 마셔도 되는데 돌아올 때가 문제다. 선산에는 대리운전조차도 없고 부른다 해도 비싸지 싶다. 다른 데서는 몰라도 장례식장에서는 한잔해야 되는데, 차를 두고 갈까? 생각하니 공단본부에 근무하는 S는 차가 없다. 교통이 편리한 곳이니 대구에서 버스로 출퇴근을 한다. S의 도움을 받기는 틀렸다.
아내에게 부탁을 해서 공단본부로 가서 S를 태우고 선산까지만 태워 달라고 할까?
그게 좋겠다.
그렇게 맘을 먹고 사무실 앞 분식집에 가서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음날 비워도 마음이 편하도록 현장에 나가서 작업 상황을 파악 해놓았다.
헌데 오늘은 아내가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새벽부터 외출하고 없었다. 어쩌다 발을 들여놓은 천연염색 전시회 준비 때문에 바쁜 모양이다. 아내는 천염염색에 살짝 맛이 갔다. 맛이 간 건 좋은데 아내의 부재로 인하여 아내에게 선산까지 태워달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일찌감치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이용해서 공단본부로 가서 S와 버스를 타고 선산으로 가는 게 편하겠다. 공단본부 앞에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 선산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다. 공단본부에서 선산까지 택시를 이용하자면 주머니가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점심을 대충 먹고 집으로 올라가 일찌감치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셋째 딸이 왔다. 요즘은 아무나 셋째 딸을 가지는 게 아니다. 출생비밀을 알면 아주 특별한 딸이다.
-근무시간에 웬일이냐?
-아버지, 어디 가세요?
셋째 딸은 대구의 어느 구청에 근무하는 새내기 공무원이다. 구미시청에 출장 왔다가 필요한 책이 있어서 책을 가지러 잠시 들렀노라 했다.
-잘 됐다. 가는 길에 아버지 공단본부까지 좀 태워다오.
공단본부에서 좀 기다릴 각오를 하고 딸의 시간에 맞추어 조금 일찍 나섰다. 검정색 넥타이와 담배만 든 손가방을 들고 나섰다. 헌데 도착을 하고 보니 S시인이 나설 준비를 다 하고 도리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는 어떡하고?
-가서 술을 마셔야지. 상주와 위로주로 한잔해야지.
둘은 현관에 있는 자판기 앞에 서서 커피를 한잔씩 빼어 마시고 바로 출발이다. 예상과는 달리 대구에서 오는 시외버스는 드물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역전으로 가서 시내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 더 편리하겠다는 데 뜻을 모으고 시내버스를 탔다. 공단본부를 지나는 시내방향의 버스는 모두가 역을 거쳐서 종점으로 간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버스 안은 한산했다. 한산한 버스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곧 시집 나온다며?
최근에 K에게 들은 소식통이다.
-출판사를 모색하고 있어. 시집을 내줄 출판사가 없네.
과묵한 S는, 대답은 마지못해 했는데 심히 심드렁했다.
-워낙에 안 팔리니까. 시대가 워낙 스마트해서 문청이나, 문학소녀가 없어요. 감성이 죽었다는 얘기지. 예전에는 시를 보면 다들 환장을 했는데.......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어요. 지구는 온난화되고 인간의 정서는 사막화되고. 정말 종말론이 다시 거론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시대를 탓하는 내 말에 S는 대답이 없었다. 물론 대답을 기다리고 한 말은 아니었다.
책을 내기로 되어 있다.
나에게는 일곱 번째 작품집이다. 출판사를 모색하다가 시간만 가고 지쳤다. 요즘은 문을 닫았다하면 서점이다. 출판사들의 사정도 이해를 하지만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자비출간은 아니지만 이백 부를 저자가 사주는 조건으로 적당한 출판사와 계약서에 날인을 했다. 또 출간 경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후배가 하는 기획사에 가서 표지를 내 마음에 들도록 디자인해서 파일을 출판사의 메일로 보내주었다. 시는 묵혀도 괜찮지만 소설은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기에 유통기한이 있다. 소설은 오래 묵혀두면 내장부터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상한다. 하여, 자존심을 구기고 서둘러 계약서에 날인을 한 것이다.
생각하니 고린내가 물씬 풍기는 삼류 무명작가의 자존심이리라. 작금의 출판사 사정이 다 그렇다. 서울의 유명한 중간 서적도매상이 부도를 맞고부터 출판사들의 사정은 더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표지를 만들어서 보내고 출판사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지난주에 서문을 긁적여서 보냈다. 아마도 이 달 안에 소설집이 나올 것이다.
출판사를 모색하고 있다는 S에게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S는 이미 손가방에 든 시집을 꺼내 시에 눈길을 주고 있다. 요즘 시집을 사는 사람은 시인들뿐이고 소설집을 굳이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은 다 소설가이거나 지망생이다.
S는 버스를 환승하고 선산에 도착할 때까지 시집을 손에 들고 있었다. 시집에 눈길을 주고 있으니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K의 얘기로는 세 시까지 선산에 도착하라고 했는데 비록 버스를 탔지만 서두른 탓에 선산에 도착하니 두 시 반쯤 되었다, 에어컨이 달린 시내버스에서 몰랐는데 내리니 입고 있는 검정색 정장이 몸에 칭칭 감기기 시작했다. 한더위는 지난 구 월말이지만 강렬한 햇빛은 검정색 정장의 어깨와 등허리 얇은 천을 그대로 투과해서 들어오는 듯했다.
-저쪽 도서관 벤치에 가서 기다리자.
선산 터미널 부근에는 시립도서관과 소방파출소가 있다. 그곳을 몇 번 이용한 적이 있어 도서관의 구조를 잘 알고 있으며 정원의 벤치가 담배를 피우기 좋고 조용하다는 알고 있다. 도서관 정원 벤치에 도착하자 나는 윗도리부터 벗어서 벤치에 던져두고 담배를 물었다. S는 도서관에 도착해서도 벤치에 앉아 시집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K에게 전화해봐.
S는 시집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누구 시집인데 그렇게 정신이 팔려있어?
-응 후밴데, 신인이야. 서평을 써달라고 해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지만 도착했노라고 전해야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헌데 받지 않는 것이었다. 또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세 시에 약속을 했으니 그때 가면 오겠거니 하고 도서관 정원을 거닐며 기다렸다.
세 시가 되어 녀석이 나타나지 않자 다시 전화를 했다. 역시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오 분 간격으로 전화를 때렸는데 받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은 네 시가 다 되어간다.
-뭐가 이런 경우다 다 있어? 전화를 받지 않는데?
-영주로 가는 버스가 있나 알아봐.
S가 역시 시집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나는 윗도리를 걸치고 터미널로 가서 시간표를 보니 다섯 시에 영주로 가는 직통이 있다. 터미널에 다녀오는 동안 땀이 또 범벅이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S에게 다섯 시에 영주로 가는 직통이 있노라고 했다.
-그걸 보러 터미널까지 가냐? 인간아, 폰 두었다 뭐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되지. 말 그대로 스마트시대야.
S는 역시 시집에서 눈길을 때지 않고 수첩에 뭔가를 메모하며 퉁을 먹였다.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 나는 아날로그 세대야.
네 시 반까지 기다리다가 연락이 안 되면 차표를 끊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돌아올 때가 문제다. S는 대구로 가기에 B의 모친상이니 대구의 작가 중에서 누가와도 올 것이다. 그 차를 얹혀 가면 되는데 구미로 돌아올 내가 문제다. S와 같이 대구까지 갔다가 기차로 올라와? 그럼 자정이 넘을 텐데? 상주와 대작하는 걸 포기하고 차라리 집으로 가서 내 차를 가져와? 이거, 전화가 안 되니 답답하네.
K에게 연락이 온 것은 네 시 반이 되어 버스표를 끊으러 가자며 벤치에 늘린 것을 주섬주섬 챙길 때였다.
-아, 형! 예초기 돌리느라고 시간가는 줄을 몰랐네. 선산 도착했죠?
-그래. 도서관 앞에 있다. 우리 버스타고 갈련다.
-알았어요. 화내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요. 후딱 씻고 나갈게요.
K가 도착한 것은 S가 써야할 시집의 서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급하게 나온 티가 역력했다.
-팀장이 무슨 예초기를 돌리냐?
조수석에 타고 물었다. S는 뒷좌석이 제 자리인양 타고 또 시집을 들추고 있었다.
-손이 모자라는데 어떡해요? 여직원까지 나와서 풀을 뽑았는데,
-시에서 인부들 지원 안 해주냐?
-그거 지원 좀 받으려면 엄청 복잡해요. 시의회 결재를 받아야 되는데 얼마나 지랄들 하는지. 예초기 좀 돌렸더니 손이 벌벌 떨리네. 오늘 쪼타이 박이 왔으려나?
-쪼타이 박?
-그래요. 쪼타이 박! 그 자식이 안 나타나면 B도 옳은 문인이 아닌 겁니다.
-그게 누군데?
-그런 인간이 있어요. 일 년 내내 문학모임이나 문상만 다니는 인간! 형 국도를 이용하는 게 빠르겠죠.
-그래 국도가 빠르지.
그 얘기를 끝으로 눈을 감았다. 차의 흔들림이 혼곤함에 나른함을 더했다. 잠깐 잔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영주였다.
-형! 다 왔어요.
어느 장례식장 마당이었다.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
-네비가 여기로 가르쳐주는데,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올게요.
차 시동을 끄지 않고 운전석 차문을 열어둔 채 K가 현관으로 들어가더니 금세 나왔다. 아니란다. 확인해본 결과, 영주는 이상한 곳이었다. 알고 보니 장례식장 네 곳이 한군데 밀집되어 있었다. 그 장례식장 마당을 빠져나오니 다음 골목에 또 장례식장이 있고 그 옆에 또 다른 장례식장이 있었다. 우리가 찾던 장례식장 마당에 들어서서 간판을 확인하고 차에서 내렸다. 모두들 가방에 든 부의금 봉투를 재킷주머니에 챙겨 넣고 나는 검정색 넥타이를 매는데 입구에 들어오는 승용차의 창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가오는데 보니 대구의 시인들이었다. 세 명이 타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났으니 반갑다는 소리를 못 하겠네.
-그럼 오랜만이라고 해야죠.
차에서 내리는 족족 돌아가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일행과 악수를 했다.
일행이 되어 화한이 즐비하게 들어선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검정색 정장을 한 B시인이 접빈실에 서 있다가 우리 일행을 보고 후딱 빈소로 들어갔다. 빈소에 앉아있던 상주들도 일어섰다.
-음, B가 삼형제의 막내인 모양이네.
서열대로 서있는 상주를 보고 뒤따라 들어오던 누군가 속삭였다. 빈소에 여섯이서 나란히 도열해 서자 S가 눈치를 살피고는 헌향을 했다. 헌향을 마친 S가 읍을 하고 제 자리로 돌아오자 모두 절을 두 번 했다. 절을 하면서 힐끗 보니 S는 절을 올리지 않고 묵념을 했다. 상주들과 맞절을 하고 꿇어앉은 상태에서 B가 형님 둘을 먼저 소개하고 우리 일행을 일일이 돌아가며 소개를 했다.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드려야할지.......
-먼 길을 이렇게 찾아주셔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상투적이지만 그게 상주와 오가는 가장 무난한 인사인 모양이다. 문상을 마치고 모두들 부의금 봉투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렇게 받은 봉투를 부의함에 넣고 접빈실로 나왔다. B도 따라 나왔다.
-야, 영주는 장례식장이 몰려있네. 엄청 헷갈렸다.
-그래요, 희한하게 몰려있어요.
B의 표정에 슬픔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슬픔은 고사하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서 희색이 만연했다.
-모친 연세가 올해 얼마지?
누군가 물었다. 모두가 궁금한 사항이었다. 아흔둘이라고 했고 장수하셨다고 주고 받는 사이에 음식이 나왔다. 상주인 B는 우리 일행에게 술을 한잔씩 따라주다가 들어오는 문상객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문상객이 몰리는 시간이었다. 다음날이 출상이니 문상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이라 하겠다.
-B도 옳은 시인인 모양이네!
잔을 들고 있던 K가 들어오는 문상객들에게 눈길을 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기 쪼타이 박이 온 걸 보니 B도 유명문인 반열에 든 것이네요. 시시한 문인들 문상은 안가는 작자입니다.
-누구?
-저기 뒤에 들어오는 녀석인데, 쪼타이 박이라고 일 년 내내 문상만 다니는 인간입니다.
입구에 들어오는 작자에게 눈길을 던졌다. 후줄근한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나비넥타이는 검정색이었는데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어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단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빈소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접빈실에 들어와 앉아있는 문상객들을 죽 둘러보더니 끼일만한 위인이 없었든지 빈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내가 앉은 자리 맞은편이었다. 전주가 있었든지 얼굴이 조금 불콰했다.
마주앉은 B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힐끔힐끔 그를 살폈다.
왜 빈소에 문상을 하지 않을까? 이상한 종교를 믿는 작자인가?
그가 자리를 잡고 앉자 도우미 아주머니가 재바르게 음식을 날라다주었다. 그 음식 쟁반을 보더니 먹지 않을 것은 도로 가져가라고 골라주고 술도 소주는 마시지 않는다며 돌려보내고 맥주를 청했다.
맥주와 컵이 도착하자 맥주병 뚜껑을 나무젓가락으로 익숙하게 따고 거침없이 콸콸 잔을 채우더니 한 컵을 단숨에 마시고 트림을 했다. 그리곤 안주를 집지 않고 다시 잔을 채우더니 또 단숨에 들이켰다. 딱 두 잔에 작은 맥주병은 바닥이 났다. 그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더니 맥주병을 들어 보였다. 맥주를 더 달라는 얘기였다. 아주머니가 재바르게 맥주를 한 병 들고 가자 그는 병을 받으며 아주머니에게 주문을 했다. 주문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명령조였다.
-아예, 두 병 더 가져다 놓으세요.
상주인 B가 접빈실로 나온 것은 혼자 앉은 그의 식탁에 빈맥주병이 세 개가 놓여있을 때였다.
-야! 너 어제 안 올라갔냐?
쪼타이 박을 발견한 B는 인사보다 귀찮은 듯이 식탁 앞에 서서 말했다.
-형님, 앉아서 얘기해요. 다른 사람들 보는구먼.
마지못한 듯이 B는 그의 옆에 앉았다.
-형님! 한잔 하실래요? 한 잔 해야 곡소리가 잘 나와요.
-야! 이거 환장하겠네. 왜 어제 안 올라갔어?
-대충 그리 알고. 쉿! 다른 사람들 듣는구먼요.
-왜 안 올라갔냐니깐?
-술이 너무 취해서 여관에 자고나니 노자가 없어요. 그리 알고. 쉿! 다른 사람들 듣는구먼.
-어제 내가 차비 넉넉히 줬잖아?
-아무튼, 그리 알고.
그리 알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만하자는 참으로 편한 말이다.
-알았다. 오늘은 난리치지 말고 조용히 마셔라.
-내가 무슨 난리를 쳤다고 그래요? 그리 알고. 갈 적에 노자나 넉넉히 주세요.
주고받는 대화로 미루어 어제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무슨 일이었는지 저어기 궁금했다.
B는 말을 마치고 돌아앉아 우리 탁자 쪽으로 합류했다.
-저 친구 누구냐?
낮은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저 자식? 시인인데 좀 특이한 인간이에요.
-시인?
-네. 참여시를 쓰는 노동시인이에요. 꼴은 저래도 시는 곧 잘 쓰죠. 시평도 잘하고. 남들 시집 낼 적에 곧잘 서평도 써주고 그래요.
-나는 처음 보는데?
-양주인가 남양주인가 저 위쪽, 어디에 살아요.
-멀리서 오신 손님이네.
-여기는 먼 곳이 아니에요. 부고만 접하면 제주도까지도 가는 인간인데, 일 년에 반은 상갓집에서 보내는 인간이랍니다. 갈 차비만 있으면 되니까 걱정 없이 다니는 거죠. 차비가 모자라면 택시를 타고 가서 상주에게 택시비를 받아내죠.
-재미있는 친구구먼. 그러면 가족은 뭐 먹고 사나?
-저 자식이야말로 전업 작가죠. 가족이 없으니 저러고 다니는 거 아니겠습니까. 백수에 아직 총각이랍니다. 고료로 먹고 사는 시인은 저 인간 밖에 없을걸요. 검정색 저 나비넥타이는 항상 출동대기로 가지고 다닙니다. 그래도 악의는 없어요. 맑은 정신에 얘기해보면 굉장히 순수해요. 요즘 찾아보기 힘든 시인이죠.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입구에 문상객 한 무리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B는 후딱 자리에서 일어나 빈소로 들어갔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들어오는 무리들은 대구의 작가회의 회원들인데 모두가 시인이고 한 명은 평론을 하는 친구다.
-그렇지. 이제야 올 사람들이 어지간히 왔구먼.
마주앉은 S가 혼잣말로 뱉었다.
S는 그 무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무리들이 조문을 마치고 나올 적에 B도 따라 나왔다. 대구에서 온 시인 중의 누군가가 좌중을 둘러보고 쪼타이 박을 보고 알은 체 했다.
-하이. 쪼타이 박! 왔구먼. 오랜만이네. 우리는 이 자리에 합세하지.
다른 자리는 좀 복잡했고 쪼타이 박이 독차지 하고 앉은 자리가 만만했던 모양이다. 대구의 시인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악수를 하고 쪼타이 박이 앉은 식탁에 합세를 했다. 대구의 무리들이 자리에 앉자 S가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그 팀이 갈 적에 동행할 요량인 모양이다. 상주인 B가 앉은 무리들에게 술을 한잔씩 따르자 쪼타이 박도 빈 잔을 B에게 내밀었다.
-너는 어지간히 마셔라.
B는 핀잔을 주면서도 도우미아줌마를 불러 맥주를 청했고 쪼타이 박의 잔을 채워주었다. 운전으로 인하여 술을 마시지 못하는 K에게 조금 미안했다.
-얼굴도장 찍었으니 이쯤에서 우리는 빠지지? 술을 안 마시니 지겹지?
-견딜만해요. 쪼타이 박, 공연을 보고 가야죠.
-무슨 공연?
-좀 기다려 봐요.
K가 말을 아끼고 내 잔을 채워주었다.
-야, 쪼타이 박, 오늘도 상주 한번 울려야지?
이것만 마시고 나도 그만 마신다고 K에게 말하고 소주잔을 들고 있는데 대구에서 온 무리 중의 누가 쪼타이 박에게 제안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주를 울려?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어지간히 왔을 성 싶은데 그럴까요?
쪼타이 박이 수긍하는 투로 좌중을 둘러보고 묻자 상주인 B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이 새끼! 이거, 또 시작이구먼. 미치겠네.
B가 말릴 짬도 없이 쪼타이 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좌중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내일 B형 모친 황천길 편안하게 가시고 우리가 먼저 길을 한번 닦읍시다. 제가 앞소리를 하면 여러분은 목청을 아끼지 말고 큰소리로 뒷소리를 해주세요. 어어하~ 워어하~ 어해넘차 어어요~`
만가輓歌, 상여 앞소리였다. 처음에는 뒷소리를 대구에서 온 무리들만 따라 했으나 쪼타이 박은 구성지게 뽑아내며 뒷소리 안 하는 사람에게 손짓을 하자 너도나도 후렴을 따라했다.
억조~창생~ 만~민들아 가안다~ 가안다~ 내에가~ 가안다~ 워어하~ 워~ 워~ 워어하~ 어해넘차~ 어이오~
워어하~ 워~ 워~ 어해넘차~ 어이오~
상여소리치고는 프로급이었다. 나도 마시려던 잔을 놓고 후렴을 따라했다. 슬프기보다는 신이 났다. 돌아보니 빈소에 있던 안상주들도 나오고 서빙을 하던 아줌마들도 동작 그만! 쪼타이 박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소리가 워낙에 구성지고 절절했으므로 문상객 모두가 후렴에 동참했다. 앞소리를 하던 쪼타이 박은 제자리에 서 있지 않고 제 흥에 겨워 식탁 사이를 돌아다니며 곡조에 맞추어 팔을 흔들며 후렴을 동조했다. 그 옛날 고향에서 초상이 나면 발인 전날 저녁에 발을 맞춘다고 어른들은 빈 상여를 메고 만가를 부르며 소리와 발을 맞추곤 했었다. 그때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광경을 구경하고 상주들은 나와서 울었다. 만가와 상주의 울음이 조화가 되어 슬프기보다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이 났다. 문득 그 시절 생각이 났다.
앞소리를 하던 쪼타이 박은 망자의 입장에서 마지막 길에 노자를 적선하라는 소리를 하며 큰 그릇을 들고 돌아다니며 앞소리를 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주머니를 열었다. 나도 지갑을 열어 지폐 두 장을 그릇에 담아주었다. 빈소에 새로 문상을 오는 사람들이 들어서자 즉흥적인 소리로 문상을 미루고 망인의 길에 동참하라는 소리를 구성지게 하니 어리둥절하며 입구에 서서 구경을 하다가 후렴을 따라하는 형편이었고 상주들도 문상객이 오거나 말거나 눈인사만 하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상여 앞소리치고는 과히 일품이었다. 문상객 모두가 동참한 소리마당, 흥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소리는 약 이십 분간 지속되었다. 노자 적선에 고맙다는 앞소리를 하고 인생 부질없으니 싸우지 말고 잘 살라는 소리를 하며 앞소리를 마치자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어디선가는 상갓집이라는 사실도 잊고 앵콜! 하며 외쳤다.
-이야! 장난이 아닌데?
-저 자식 한 물건 한다니까요.
소리마당이 끝나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남은 소주를 마시고 자리를 털었다.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대구의 시인들도 나왔다. 담배를 한 대씩 나누어 피우고 각자의 차에 올랐다.
앞서 가던 대형화물차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차선을 변경했다, 그 바람에 놀란 K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게 미쳤나?
-천천히 가. 여기서 갓길로 넣어서 상주 영덕간 고속도로를 타야해. 저 차도 이 길이 초행인 모양이네.
-도착하면 오밤중 되겠는데요.
-그래도 천천히 가. 길치야! 이 도로는 터널이 엄청 많아서 위험해. 그건 그렇고 쪼타이 박 그 친구도 길치다. 그치?
-무슨 길치요? 상갓집을 얼마나 잘 찾아다니는데?
-인생 길치란 얘기야. 그 친군 시를 쓸 게 아니라 소리를 했어야 했어. 그러면 성공했을 건데.
-그 친구, 팔도 상여소리를 꿰뚫고 있어요. 전라도에 가면 전라도 상여소리, 충청도에 가면 충청도 상여소리를 해요. 오늘 상여소리는 경상도가 맞죠?
-응. 영판 우리 고향 상여소리였어. 오늘 노자가 꽤 걷혔지? 다음 상가가 생길 때까지는 푸짐하게 쓰겠네. 그 친구 그렇게 먹고 사는구먼.
-아니에요. 그렇게 걷은 돈은 몽땅 부의함에 넣어요. 그리고 여비는 상주에게 얻어서 가요. 어제 저녁에도 한 소리 걸쭉하게 했대요.
-그래? 그 친구 진정한 소리꾼이구먼. 워어하~ 워어하~ 워해넘차~
-아, 그만해요. 도로가 설어서 죽겠구먼.
-이 길로 쭉 가면 동상주가 나온다. 그러면 거기서 내려야 돼.
그 말을 일러주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취기가 올라오는데 쪼타이 박의 구성지고 절절한 상여소리가 귀에서 풀어지고 있었다.
그래, 쪼타이 박 소리대로 인생 부질없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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