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정된 실체나 주체가 아니다. 나는 내 배경, 나이,성별, 외모, 학력 등으로 정의될 수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변용할 수 있는 존재다. 누구를 만나느냐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나의 신체와 사유는 매 순간달라진다."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스피노자와 우리 강독 중 저를 설레게 한 텍스트 해석입니다. 이 메시지는 일상의 혁명을 일으켜보겠다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하는 백수가 된 제게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습니다. 마치 스피노자가 ‘자신을 잃지 않고 용기 있게 한 발 씩 내딛다보면, 걷던 길은 네가 원하는 길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속삭이는 것같았거든요. 인간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응원하는 희망의 철학자, 이것이 제가 발표 주제로 들뢰즈-스피노자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들뢰즈-스피노자 철학의 '변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실체, 속성, 양태'라는 개념을 잠시 짚고 가겠습니다. 참고로 스피노자의 '신'은 우리가 아는 종교적 의미의 신이 아닌 ‘자연’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단어도 흔히들 떠올리는 아름답고 푸른 우리 강산의 자연이 아닌 '세계'로 치환하여 보면 개념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실체는 하나의 유한한 '개체'가 아닌 영원하고 무한한 본성을 가진 신이자 자연 '전체'입니다. 이 실체는 초월적 존재에 의해 창조된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이해되는 자기 존재의 원인이지요. 속성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고 양태는 실체의 속성이 다양하게 변화한 결과물입니다.
좀 더 쉽게 접근해보겠습니다. 신이자 자연인 실체는 무한한 속성으로 드러나는데, 그중 인간은 연장(부피가 있어 공간을 차지하는 것)과 사유(생각)란 두 가지 속성만 인식합니다. 연장과 사유의 속성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여 우리에게 물질과 정신, 즉 양태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나’라는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정신으로도 드러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일상을 살아가는 각가지 물질·신체의 운동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오늘의 핵심 주제인 '변용'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스피노자는 변용을 “어떤 한 양태가 다른 한 양태에게 영향을 준 결과 또는 한 양태가 다른 양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라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를 둘러싼 사람과 사물 나아가 환경들과 쉬지 않고 상호작용을 합니다. 그 접속들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가 마주한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다시 말해 변용으로서 존재하는 우리는 변화를 통해서만 존립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존재는 죽은 바와 다름없다!', 짜릿하신가요 아니면 섬뜩하신가요?
우리는 존재하는 개체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변용 되기와 변용하기의 관계라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나라는 신체(양태)는 내가 맺는 관계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하고 결정되며, 그것이 곧 '나'라는 본질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 신체(양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동방신기의 노래 〈Hug〉 가사 속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루만 네방의 침대가 되어 포근히 너를 감싸 안고 싶고, 작은 서랍속 일기장이 되어 너의 작은 비밀까지 알고 싶으며,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어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 합니다. 사랑이란 관계 속에서 화자가 사물과 동물 가리지 않고 변용되길 바라는 간절함이 보이시지요?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변용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입니다. 첫 번째로 변용되고 변용하는 관계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들뢰즈-스피노자는 누구도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변용들을 미리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한치 앞도 알수 없는 인생일지라도 살아있는 내내 변용할 수밖에 없다면, 남이 시키는 대로 혹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내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깨어있으며 매번 심사숙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변용의 실험 속으로 스스로 용기 있게 뛰어들어야 합니다. 낯설고 불편할 수 있는 모든 경험들을 통과해야만 우리는 자기 변용 역량과 한계를 알 수 있습니다. 변용,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용기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길고도 긴 탐구가 필요합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기삶을 탐구하는 연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서로의 존재와 관계망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신이란 실체의 양태들이며 서로의 존재에 의해서만 변화하고 실재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유한한 존재들은 서로 접촉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무한한 능력으로까지 성숙해갈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신체 또는 영혼이 이런저런 만남, 배치, 구성 속에서 과연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123쪽
들뢰즈-스피노자를 통해 제가 무엇과 관계하여 어디까지 변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저는 긴 호흡으로 사계절을 통과하며 제 변용 역량을 계속 실험해보려 합니다.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지금처럼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세상을 배우고 앎을 실천하려는 노력하는 나는 무엇이 되어도 괜찮을 거예요.
"전에 알던 내가 아냐 Brand New Sound~ 새로워진 나 와 함께 One More 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