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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막12:28-34)
28 A teacher of the Law was there who heard the discussion. He saw that Jesus had given the Sadducees a good answer, so he came to him with a question: “Which commandment is the most important of all?”
29 Jesus replied, “The most important one is this: ‘Listen, Israel! The Lord our God is the only Lord.[a] 30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31 The second most important commandment is this: ‘Love your neighbor as you love yourself.’ There is no other commandment more important than these two.”
32 The teacher of the Law said to Jesus, “Well done, Teacher! It is true, as you say, that only the Lord is God and that there is no other god but he. 33 And you must love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you must love your neighbor as you love yourself. It is more important to obey these two commandments than to offer on the altar animals and other sacrifices to God.”
34 Jesus noticed how wise his answer was, and so he told him,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After this nobody dared to ask Jesus any more questions.
예수님께서 한 율법학자를 칭찬하셨습니다.
34.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34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이보다 더 좋은 주님의 칭찬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주기도문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일이 믿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소명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율법학자 옆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율법사 가까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론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부활에 대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일곱 아들들이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차례로 죽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아들의 부인이 부활할 경우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그 때 예수님은 모세를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모르는 사두개인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과 사두개인들의 토론을 들었던 것입니다.
28.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28 who heard the discussion.
그리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심을 듣고 그 역시 예수님과 토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이 율법사와 예수님의 토론 내용입니다.
토론과 설교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차의 양 바퀴라고 여기는 것이 옳습니다.
이 학자의 경우 그가 그 답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 질문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토론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지식을 믿음으로 확정(confirm)했을 것입니다.
토론을 마치고 그는 주님께 칭찬을 들었던 것입니다.
34.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34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누구든지 지하상가를 들어 가면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통해 [현재위치]를 확인부터 하게 됩니다.
그래야 제대로 목적지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는 알고리즘의 발달로 엉뚱한 장소에 갈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접할 확률이 많아진 때문입니다.
그 편향된 정보로 사두개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우물 안의 내 논리를 가지고 우물 밖의 하나님의 나라를 해석할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 싶다면 토론하시라는 것입니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들었을 때 불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도 그들이 주님의 주장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으로 예수님의 생각을 수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의문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작으나 크나 모든 교회가 체온계를 장만했을 것입니다.
코로나 확산을 막아야 하는데 그것을 분별해 내는 가장 용이한 방법은 체온을 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서는 의문이 바로 그 체온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체온이 높으면 의무적으로 병원에 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의문이 있으면 예수님과 토론하기 위해 교회를 찾으셔야 합니다.
의문이 39°C를 가르치는데 그것을 무시했다가는 자신만이 아닙니다.
남에게도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코로나에 감염시킬 것입니다.
28. 예수께 물었다.
28 he came to him with a question:
이 율법학자는 의문을 들고 예수님께 갔던 것(he came to Jesus with a question)입니다.
의문을 갖았을 때 예수님과 토론하러 간 것이 율법사의 탁월함입니다.
의문을 두고 토론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모든 신앙인 또 목회자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토론은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결정적인 결함을 지적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혹은 알고 있는 것을 이제는 믿게 하는(confirm)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계명
벌서 육칠 년 전입니다.
통증이 없었는데 갑자기 눈에 심하게 눈꼽이 끼는 것입니다.
그 일로 병원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너무 간단한 치료를 했습니다.
의사가 제 눈꺼풀을 뒤집더니 조그만 티 하나를 핀셋으로 끄집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설픈 농사 흉내를 내다가 눈에 티가 들어갔던 것입니다.
의사는 저를 딱 보더니 내 문제를 간단하게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입니다.
이 율법사는 학자답습니다.
당시 종교의 문제를 단박에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오직 계명에서 유래합니다.
사람들은 본래 낙원 에덴에 살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이 에덴의 동쪽이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에덴이 될 수 없습니다.
에덴의 동쪽은 시간이 흐를수록 타락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나라로 회복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신 일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어겨서 에덴에서 쫓겨났고 예수님께서 그 계명의 말씀을 순종하셔서 에덴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든지 어느 나라 문제든지 원인이 무엇이든지 현명한 사람들이 그 대안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 현명한 학자의 관심은 계명입니다.
해석
물론 모든 유대인은 하나님 말씀을 그들의 중심에 두었던 것입니다.
외우고 읽고 쓰고 삶에 적용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삶에 중심에 두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말씀 적용의 현장에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며 그들의 잘못을 이렇게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막3:4)
주님의 지적을 따르면 그들은 정확한 법적용을 통해 율법이 요구하시는 정신을 정확히 비켜나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자들의 말도 깨닫지 못해서, 그를 정죄함으로써, 예언자들의 말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행13:27)
그들은 외우기까지 했던 그 말씀을 완전히 부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의 내용이신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계명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계명이 있는가?
아니면 모든 계명이 갖아야 하는 근본정신이 있는가?
그들은 으뜸 되는 계명을 간과함으로써 법의 정신을 역행하는 법실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법실천을 통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들어라
실은 이 율법학자의 질문의 답을 듣기 전에 들으라는 주님의 요구가 있습니다.
29. '이스라엘아, 들어라
29 ‘Listen, Israel!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이었습니다.
그는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종으로 고백합니다.
물론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종의 일방성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근본적인 고백입니다.
신앙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일을 이릅니다.
우리가 오늘 교회에 모인 것도 설교 즉 하나님이 말씀을 일방적으로 듣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입이 아닌 귀만 열고 있을 것입니다.
실은 토론 역시 그 분의 뜻을 깨닫고 수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설교자는 많은 말을 하게 되지만 제 잡지식을 제대로 걸러 내야만 합니다.
내 말을 통해서 오직 타자(하나님)의 뜻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설교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을 들음에 있습니다.
벌떡 일어나고 입신하고 예언하고.......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사람은 복은 받은 것입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계1:3)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황당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으로 들렸다면 내가 그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만 보니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알아들었습니다.
미국 사람은 영어를 잘 알아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경의 말씀을 아멘으로 수용했습니다.
유일성
그런데 그들이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신 하나님부터 먼저 아셔야만 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만이 사랑의 유일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이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해와 달이라도 우주라도 그것이 그분의 손에서 피조된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29.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29 The Lord our God is the only Lord.[a]
그렇게 말하면 불당 안 가면 된다, 혹은 굿 안 하면 된다, 돼지 대가리 앞에 절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 않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의 돌판을 받으러 갔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4. 아론이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받아 녹여서, 그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부어 송아지 상을 만드니, 그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5. 아론은 이것을 보고서 그 신상 앞에 제단을 쌓고 "내일 주의 절기를 지키자" 하고 선포하였다.(출32:4,5)
그들은 주님의 절기를 금송아지를 놓고 지내자고 한 것입니다.
아는 교수님이 저에게 교회에 대해서 아주 불평을 했습니다.
성경 공부의 내용 중에 교회 성장을 위한 3p, 기도(pray) 설교(preach) 주차장(parking lot)이라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은 parking lot이 뭐냐고 교회가 대형마트냐고 흥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한 대상이라는 것은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도 그 일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껍데기는 성전인데 그 안에 금송아지가 있으면 안 됩니다.
진정성
우리는 배우가 울면 따라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지만 배우들은 실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얼싸안는데 사랑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심과 전혀 다른 행동을 익숙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나를 속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열성적인 내 종교 행위로 본인의 천국이 보장된 줄 알았던 것입니다.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1-23)
이 사람은 자신의 껍데기 종교 행위를 가지고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30.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0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어느 어린이 공원에서 대형 회전 놀이기구가 60m 하늘에서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땅으로 떨어져 버렸고 할아버지가 사력을 다해 손녀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죽을 각오를 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
아마 이것은 결혼 생활에서 불문율일 것입니다.
혹시 부부싸움을 하며 부부가 서로 비난을 하더라도 남편이나 부인의 집안을 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경우 막장까지 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당사자가 욕을 듣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가 욕을 듣는 것을 더 못 참으실 것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서 형제를 죽이러 총칼을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동족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두 사랑의 대상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31.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31 ‘Love your neighbor as you love yourself.’
그래서 하나님 사랑은 곧 사람 사랑입니다.
그것은 동일한 내용입니다.
기준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그는 일평생을 중환자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병 나을 기회조차 챙길 수 없었습니다.
물이 동하면 연못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데 중병으로 자신이 거기에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온통 그런 환자들이었었습니다.
조금 나은 환자라도 제 몸이나 겨우 감당할 정도였습니다.
남을 배려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 환자에게 자리를 챙겨 들고 가라고 명령하셨는데 그 날은 하필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꼴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38년 만에 병이 나은 사람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러니까 그날 주님은 주님을 38년 된 병자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 병자를 내 아들이나 딸로 여기신 것이니다.
남을 사랑하는 그 기준이 자신입니다.
나에게 적용할 기준으로 남에게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부정
예수님은 이 율법사가 요구한대로 가장 으뜸되는 계명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두 계명 외에 으뜸 되는 법이 없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정을 통해 이 법을 더욱 명료하게 하신 것입니다.
31.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1 There is no other commandment more important than these two.
사랑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형 놀이기구에 거꾸로 매달려서 사랑을 보일 수 있습니다.
혹은 두 손을 들고 경배 찬양을 하면서 의미 없는 사랑의 껍데기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내가 38년 된 병자가 되어서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은 아내 사랑한다면서 장인어른을 비웃는 모질란 사람입니다.
정말로 최고의 계명은 사랑이며 사랑은 모든 계명의 정신입니다.
교회는 오직 이 사랑의 계명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할 뿐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를 향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데올로기를 대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의 계명을 증거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시장경제를 주장하신 적이 있나요?
동의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달려가서 영생의 길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의 요구대로 그에게 영생을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 주님의 말씀에 머리를 숙이고 돌아갔답니다.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마19:22)
예수님의 말씀을 부자가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사는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했던 것입니다.
32.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32 “Well done, Teacher! It is true,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열자마자 처녀의 몸에서 예수께서 나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마칠 때는 주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더니 너희도 나와 같이 십자가를 감당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진리입니다.
우리 한국 역사도 그렇습니다.
제주 4.3, 광주 5.18, 세월호의 학생들, 전기 고문, 물 고문, 성 고문.......
그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이 없습니다.
한강 작가의 이번 노벨상 수상을 통해서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한국의 현대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이 한국의 역사 밖에서 산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부정
3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
32 that only the Lord is God and that there is no other god but he.
여러분은 예수님과 이 율법사의 대화 중에 수없이 반복되는 이 부정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모든 것이 부인되는 하나님 만의 유일성!
조금 유식한 척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이 배타성을 두고 옹졸하다며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믿는 우리는 움츠러들기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뭐 모르는 소리입니다.
기독교의 내용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껴안고 포옹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원수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어놓는다는 일입니다.
그런 내용성이 제대로 드러난다면 그 누구도 교회를 그런 식으로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그 십자가를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그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종말의 때에 하나님 외에 주님이 없다는 배타성과 동시에 철저한 십자가의 내용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말의 교회의 길입니다.
3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2 that only the Lord is God and that there is no other god but he.
종교 제의
그런데 이 탁월한 학자는 그 사랑의 행위를 특별히 종교 제의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는 사람들의 위험 요소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믿는 사람들에게 종교 제의를 내세우며 사랑을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혼선을 지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말대로 사랑의 계명이 종교 제의의 비교 우위에 있음을 주님은 동의하신 것입니다.
33.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33 It is more important to obey these two commandments than to offer on the altar animals and other sacrifices to God.”
그런데 신앙의 정신을 위배하는 종교적인 껍데기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이런 지적을 하신 것입니다.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마23:23)
10.27일 광화문에서의 모임이 주변 교회들이 소란합니다.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인이 할 일은 돈 200억 원으로 종교화된 세를 과시하는 정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약한 존재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 정치 현실을 보십시오.
도대체 사람의 힘으로는 대안이 없습니다.
200억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두고 200만 명이 교회에서 기도할 뿐입니다.
그렇게 10번의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동성애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동시에 모든 차별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이 모임을 주동하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회 세습, 불법 제정, 불법 건축, 무당에게 안수하는 정치 목사들입니다.
그들을 따라서 태극기 들고 광화문을 뛰어다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3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2 It is true, as you say, that only the Lord is God and that there is no other god but he.
이 토론 후에 주님은 이 율법학자를 칭찬하셨습니다.
34.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34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의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구리가 나타나더니, 이가 나타나고, 어두움이 세상을 덮고........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시는 나라입니다.
사람이 일으킬 수 없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시는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결국에는 그들이 두 손을 들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불순종하는 자들은 그 폭력과 함께 홍해 빠져 죽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