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을 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같은 문신을 새길까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당신의 바다에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 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74세 이만호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늦여름에 돌아가셨네요. 몸은 썩어도 썩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딥블루씨 컬러의 푸르스름한 눈썹입니다.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멸치가 부드러운 눈썹처럼 구부러진 걸 말하는 거라는 걸 다 눈치 채셨죠.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을 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같은 문신을 새길까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그 때 시인도 할머니처럼 부드럽게 남고 싶어합니다. 모호한 인생이 아닌 리듬이 있는 인생, 눈으로 웃고 있는 삶을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삶의 굴곡이 있고 힘들어도 삶의 마지막은 웃으면서 마감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보입니다. 시인의 의지는 곧 이글을 읽는 독자들의 다짐이 됩니다. 시의 효용이 이런데 있는거지요.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누리는 삶, 말이죠.
나 지금 당신의 바다에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이제 시인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말을 과감하게 구체적으로 한 번 더 제시해 줍니다. '멸치의 눈썹'말이죠. 바다가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와 치환됩니다. 푸르스름한 멸치가 살아납니다. 이런 게 시입니다.
할머니의 눈썹 문신을 보고 바다에서 군무를 펼치는 멸치를 떠 올리는 시인의 시상이 놀랍습니다. 진부한 표현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생한 비유가 살아있는 시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심사위원들도 무릎을 탁 쳤을겁니다. 시는 이래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할머니의 꽃같은 시절과 멸치의 군무가 오버랩됩니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살아있음을 이야기하는 놀라운 반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리내어 읽으면 감동이 배가 되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읽어보면 파도치는 바다 멸치떼가 푸른 마음이 되어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