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터
패트릭 라일리 신부 순교터 · 춘천교구 묵호성당
“목자는 양떼를 두고 떠날 수 없어”… 그날의 외침 들리는 듯
동해에서 강릉을 향하는 7번 국도 길목.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16-2번지 인근을 지나자 우측에 ‘라 신부님 순교터’라는 푸른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을 각오하고 신자들을 위해 본당에파트리치오 남은 라 파트리치오 신부, 바로 하느님의 종 패트릭 라일리 신부의 순교터다.
현수막이 걸린 입구를 따라 나 있는 작은 길을 오르자 라일리 신부를 기리는 순교비가 나타났다. 길의 끝에 순교비만이 있어, 이 길이 순교비를 순례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마련한 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날 지나간 태풍으로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이곳저곳에 낙엽과 가지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강릉 피래산 자락에 자리한 고개 ‘밤재’, 산과 국도, 철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등산로도 아닌 길이었기에 순례를 목적으로 찾아오지 않는 이상 누군가 지나칠 리 없는 곳이었다. 춘천교구 묵호본당이 눈에 띄게 걸어 놓은 현수막이 없었다면, 이 자리를 찾기조차 어려웠을 터였다.
인적 없는 곳에 덩그러니 놓인 순교비를 보니 어쩐지 라일리 신부의 유해가 이곳에 방치됐던 70년 전의 이맘 때가 그려졌다. 동해시 묵호에서 공산군에게 잡힌 라일리 신부는 공산군에게 강릉으로 끌려가던 중 1950년 8월 29일 이곳 밤재에 자리한 터널 인근에서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7월 말부터 거의 한 달 가까이 무더위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상한 음식을 견디며 옥살이를 한 라일리 신부는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이송 과정에서 라일리 신부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공산군이 라일리 신부를 사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라일리 신부 유해는 1950년 9월 28일 강릉이 수복된 이후 그를 기억하는 신자들의 노력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현재 라일리 신부 유해는 춘천 죽림동 춘천교구 성직자묘역에 안치돼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이 넘는 시간, 지금 우리가 순교자 성월로 지내는 이 시기에 순교자 유해는 제대로 수습되지도 못한 채 이곳에 방치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