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려고 출가한 여자 金一葉 !
그런데 일엽 산문집 머릿말로는 " 인간이 되려고 출가한 처녀 김일엽 " 이라고 되어있다
여자가 출가 하는것하고 처녀가 출가하는 것하고는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
세속의 단 맛 쓴 맛을 다 맛본 세상사에 능숙한 여자 보다는
세속의 번잡한 일에 물이 덜 들고 세속의 일에 적당히 서투룬 처녀가
그래도 중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을까 ?
그래서 인간이 되려고 출가한 처녀 김일엽 이라고 했을까 ?
아니다. 아니다. 그런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수도승 김일엽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김일엽을 더 사랑한다
한 인간으로서 또 한 어머니로서의 김일엽을 더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처녀의 수도승 생활 보다는 어머니로서의 수도 생활이라는 것이
더 힘들고 더 고달프고 더 험난한 고난의 가시밭길인것이다
그런데도 일엽은 그 험난한길을 잘 참아내고
끝까지 수도승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낸것이다
<청춘을 불사르고>회고록의 한 대목을 여기 옮겨 본다
중이 되려고 새로온 처녀가 자기 집에서 편지가 온 모양인데
그 편지를 보고 수덕사 뒷방에서 자꾸 울기만 하니
저런 처녀가 중 노릇을 잘 할수 있을까 ?
그곳에 있던 고참 여승이 한말
" 울지 않으려고 중이 되려 온 사람이 왜 울지 ?
설은생각이 난 다면 정답게 위로해줄 사람이 많은 세속에서 살지
산중으로 들어올 필요가 없지 않어 ? "
하며 그 처녀를 눈여겨 보았다는 것이었다
처녀는 오똑한 코에 갸름하고 하얀 얼굴을 물로 문질러 씻은듯이
젖어진 불그레한 눈과 볼에 쌩긋 웃음을 띄우고
" 비극을 구경 하느라면 情物<정물>이니 만큼
저절로 주인공의 눈물과의 共感<공감>인 눈물이 흘러지는 것이지요 머 "
하며 그 처녀는 가만히 고개를 들다 말고 수그리는 것이었다
" 연극이 따로 있는지 아나 ? "
" 그럼 따로 연극이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 "
되묻는 처녀의 눈은 잠간 더 빚났었다
편지의 내용인 즉은 계모에게
< 큰년이 놀아나더니 너희들마저 놀아나는 거냐 ?
어디를 갔다 끼니에 밥도 못 찿아 먹어 ! >
이런식으로 구박을 받을 때마다 누님이 차려다 주던 그 밥상 생각에
막내동생 진숙이는 누님이 영영 가신줄도 모르고
자꾸만 언니는 언제 오느냐고 조르는 모습 애닯퍼 못 보겠습니다
누님이 맘 돌려 돌아오실 날을 미리 반가와 하면서 붓을 놓습니다
모년 12월 20일 동생 진범 올림
대충 이런 내용 이었다

(1962년 초판 발행한 청춘을 불사르고의 원본에서 발췌.
몇년전에 어느 이삿집에서 이삿일 도와주고 얻어온 책이다)
이 대목을 읽다 보니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서역땅에서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신라의 혜초스님 선시 한 구절이 떠올라 여기 잠시 옮겨 본다
그대는 서역길이 먼것을 한탄하나
나는 동방으로 가는길 먼것을 원망한다
길은 거칠고 굉장한 눈은 산마루에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작년에 녹지 않았던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까마귀는 날아 깍아지른 멧부리에 놀라고
사람은 좁은 다리 건너기를 어려워 한다
평생에 눈물 한번 뿌려 본적이 없건만은
오늘은 천줄이나 비가 오는구나 !
이 시구를 읽고 누구나 느낄수 있듯이
구도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난한 길이 아닐까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은 구도의 길은
그 동안 자신이 애지중지하고 있던 모든것들과 작별을 고하는것이 아닌가 ?
그리고는 늘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면서
그 홀로인 홀로 마져 작별을 고하는 길인 것이다
우리는 잠시만 홀로 되어 있어도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외로움을 해소 시켜줄수 있는 대상물들을 얼마나 찾아 헤메이고 다녔던가
진정으로 인간이 외로움을 느낄때는 이 넓은 망망대해에서
나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것을 발견할때가 아닐까 ?
오늘은 이 구도자 일엽스님의 가슴을 내 것으로 하여
그 방랑의 끝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수덕사의 석양
덕숭산 수덕사의 지는 해는
청춘을 불살랐던 여승들의 최후와 같이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노을빛이
덕숭산과 수덕사 계곡을 붉게 물들이며
새털구름속으로 얼굴을 가리고
청춘을 빨갛게 불사른체
열반에 들어간다
산 길 백리 인적없는 수덕사에 어둠이 내리면
법당엔 하나 둘 등불이 켜지고
창호문 사이로 베어 나오던 외로운 그림자들 !
청춘을 불사르다 가신 님들의 그림자들 !
그 님들은 지금 어데로 가셨는가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삽기에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혼 까지도
그만 다 바치고 싶다 하셨던 간절한 님들의 말씀
오늘은 저녁 쇠북소리 되어
길게 누운 덕숭 산그림자 속으로
오옴 ~마니 반메움~을 부르며 울려 나간다
修德寺 (수덕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 조계종 제 7교구 本寺 이다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지만,
史記에는 백제 말에 崇濟法師가 창건 하였다고 함
첫댓글 오밤중에 술 묵다가 시오리길을 짜박기리고 걸어 오는 재미도 쏠쏠허던디... 시상살이 못 전디서 도망간 사람들이 어디간들 잘 전디지까? ^^
일엽스님에 대한 글을 통해 외연적 표상은 상이하게 비춰진다 하더라도 어쩜 우리네 인간 전체의 삶에 대한 적나라한 실상일 수도 있는 그런 일깨움 같은 것을 가득 담은 듯한 내용이 많이 와 닿는군요. 3편으로 나뉘어서 알차게 포스팅하신 글 감사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__)..
추운 어느 겨울 밤 마포구 대흥동 소극장에서 일엽스님 일대기'청춘을 불 사르고' 연극을 보았답니다 생생한 그 감동의 기억으로 다시 글을 읽으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