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유감
내가 엉덩이를 보고 놀란 것은 TV에서다. 아프리카 그 어디쯤이다. 여인네들의 키가 장대같이 길고, 엉덩이는 버쩍 들려서 붙어있었다. 아니, 불쑥 솟아 있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것은 엉덩이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함지박을 엎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먹을 것이 없다던 저들인데, 엉덩이는 푸짐하고, 키는 미루나무처럼 후리후리했다. 참 희한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엉덩이는 지극히 표준이다. KS 규격품이라서 나무랄 데가 없다. 볼록렌즈처럼 볼록하게 나오지도 않았고, 오목렌즈처럼 오목하게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리 봐도 봉긋, 저리 봐도 봉긋, 섹시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운 엉덩이 미운 데가 없다. 흠이라면, 단지 뒤에 붙어있다는 거다. 안타깝다. 규격에 벗어난 둔부는 해당 사항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둔부는 품격을 달리한다. 미적 감각이 빼어난 엉덩이다. 이것을 뒤에 달고 있다는 것은 송구스러운 일이다. 통통한 둔부를 볼 수 없다는 건, 심히 유감스럽다. 또 한 가지는 역사다. 엉덩이 이전에 볼기짝이 당한 고통을 알아야 한다. “니 죄를 니가 알렸다.”, “저, 저놈을 매우 쳐라!” 그 두 마디에 볼기짝이 작살났다. 이제 그 자리를 교대해 줄 때가 됐다.
남들은 보고, 자기는 못 본다? 매우 불합리하다. 아름다운 엉덩이가 찬밥인가, 그렇지 않다. 해결책이 있다. 젖가슴처럼 앞쪽에 달고 다니면 만사 오케이다. 그래야 보고 싶을 땐 언제라도 볼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엉덩이를 앞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허걱, 말 참 이쁘게 하신다!’ 문제는 엉덩이의 빈자리를 어느 부위가 대신 할 것인가? 신경이 쓰인다. 내가 물었다. “젖가슴, 당신은 지금까지 앞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했어요, 이제 엉덩이와 교대 한번 하면 어떨까요? 엉덩이 자리로 가보실래요?” “아니, 아기 젖 때문에 앞자리에 있었지, 무슨 말씀을 그래 하세요, 뒤에 붙어있으면 아기 젖을 어떻게 주나요!” 거절이다. 옆에서 미모의 얼굴이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다. “그럼, 얼굴이 가보실래요?” “얼굴이 간판인데 가긴 어딜 가요!” 불가다! 마지막 희망은 눈이다. 눈을 뒤통수에 붙여놓으면 왔다 다. 엉덩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상판대기 이목구비 중에서 눈을 제외한 귀와 입과 코는 절대 반대다. 이러니 뭐가 되겠나, 앞뒤로 하나씩 하면 어떠냐는 제안에, 그러면 보기 싫어서 안 된단다. 그래서 여지껏, 어물쩍, 그냥 그냥 지내왔는가 보다.
사실, 요즘 와서 내 엉덩이에 관심이 많다. 엉덩이 임무는 두 다리 관리다. 다리는 엉덩이 소속이다. 동굴에 살던 옛날, 엉덩이와 다리는 분업을 약속했다. “엉덩이 넌 액세서리니까 뒤쪽에 달려만 있어,” “나 두 다리는 걷기만 할게!” 뭐 이런 이야기가 오갔었다. 어느 날 지친 다리가 불평했다. “엉덩이 네가 좀 앉으면, 다리가 좀 쉴 수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다리를 혹사 시킨 엉덩이가 미안했다. “그래, 그럼, 내가 엉덩이 좀 붙이고 있을 테니까, 다리 너거들도 좀 쉬어!” 그때 서로 합의 본 것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뻑 하면 엉덩이가 앉게 됐다는 전설이다.
세상은 변한다. 맨땅만 고집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엉덩이 동반자는 의자다. 엉덩이는 여전히 다리 핑계를 대고 의자에 죽치고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야 할 엉덩이에 녹이 슨다. 축 널브러져 편하긴 하다. 의자와 일심동체가 되어, 마침내 탁구공처럼 통통 튀고 귀엽던 엉덩이가 펑퍼짐하게 퍼진다. 엉덩이 관리가 총체적 부실이다. 따지고 보니 내 엉덩이도 반품이나 교체 대상이다. 노화 현상이 뚜렷하다. 그래도 자신했다. AI도 나왔고, 의술과 과학이 발전됐겠다. 뭘 못하겠나! 성형으로 코 세우고, 닳고 닳은 무릎뼈도 갈아 치우고, 임플란트 이빨도 박아 넣는데, 뭘 못할까! 엉덩이라고 다르겠나, 엉덩이도 질 좋고, 빵빵한 놈으로 갈아 치울 날이 올 거야, 그때까지만, 참고 견디자, 징징 짜는 엉덩이를 무시하고 지냈다.
무시하면 벌 받는다. 아이고, 엉덩이야, 뼈가 아니라, 살이 아프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비계로 채워져야 할 엉덩이를 뼈가 홀로 지킨다. 통뼈 가문의 수치다. 왕년엔 그랬다. 산도 타고, 들도 타고, 길도 탔었다. 그땐 그때였고, 지금은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눈부신 산하가 그리운지, 앉아만 있는 엉덩이는 가자 하고, 다리는 쉬자 한다. 서로가 막무가내다. 이제 머리통까지 가세한다. 머리통은 자판을 좋아하고, 엉덩이는 통증을 호소하고, 다리는 자꾸 걷자고 한다. 완전히 콩가루다. 분열은 파멸이다. 타협을 보기로 했다. 벌집 모양의 푹신한 방석을 깔아 봤다. 맹 아프다고 한다. 허 참, 이거 비싼 건데, 그럼 어쩌란 말인가, 서서 해! 아이디어는 좋다! 서서 자판을 때릴 수 있나? 엉덩이 너 이래저래 참 유감이다. 2026.8.23.일.
첫댓글 너무재미있는글읽게해주셔서감사합니다.ㅎㅎ
문득생각해보니 칭찬과보상없이저도함부로.당연히사용하기만했네요ㅎㅎ다리와엉덩이는서로가지켜주고배려하는그런관계이군요!!!
느낀점이많은시간이었습니다.♡♡♡
미흡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자극이 되어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올려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장 샘이 글 잘 쓰신다는 건 동네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아직미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