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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그릇은 음식을 담은 용기이자 식탁을 장식하는 액세서리로서 진보를 거듭해 왔다. 역사 속에 각인된 그릇의 자취를 찾아 시계를 되돌려본다. |
1. 1818년에 만들어진 지구본. 휠 인그레이빙(Wheel engraving)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지구본은 루이 18세에게 바쳐졌고, 현재 쌩-루이의 프랑스 박물관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SAINT-LOUIS 2.웨지우드의 걸작, 재스퍼(Jasper) 컬렉션. 고대 로마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우아한 빛깔과 장식으로 귀족들의 필수품이었던 작품이다. WEDGWOOD 3. 1893년 네팔의 왕은 무려 800kg에 달하는 4미터의 샹들리에를 주문해 왕궁을 장식했다. SAINT-LOUIS
일찍이 나른한 오후 시간을 위한 놀이를 찾는 귀족 부인들이 없었다면, 유럽의 식기 문화가 오늘날과 같이 발달할 수 있었을까.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그네들이 아니었다면, 유럽 근세의 그릇은 아직까지도 동양에 한참 뒤쳐져 있었을 법하다.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음식을 둘러싼 물건에 대해서도 세련된 스타일을 바라는 유한 귀족들의 욕망은, 식기와 술잔, 컵 등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를 재촉했다. 몽 테뉴의 일기장을 보면, 당시만 해도 주로 사용하던 식기는 나무나 주석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하며, 여러 개의 은잔 사이에 나무잔이 함께 사용되는 예가 일반적이었다. 간간이 사용되는 은제 그릇도 그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1604년 네덜란드는 중국의 청화자기에 열광했다. 동인도회사가 중국의 차를 수입하면서 함께 싣고 온 청화자기를 유럽 사람들은‘Blue&White Ware’라고 부르며 찬탄해마지 않았고 이 비법을 캐기 위해 박차를 가했던 것. 독일 작센 공국의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의 자기가 제조된 것은 다시금 세월이 흐른 1708년이었다. 연금술사 뷔트거가 평생에 걸친 실험과 연구 끝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18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유럽 각국의 왕실이 자기 제조 공방을 갖추었고, 왕실 전용 은(Silver) 세공 장인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왕후 귀족들은 자신만의 그릇 컬렉션을 진열해 놓은 방을 꾸며, 남들에게 고급한 취향과 부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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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7세기, 루이 13세의 아내였던 앤을 위해 만들어진 이 비커는 스타링실버 위에 골드 문양을장식했다'Anne of Austria’혹은‘Queen of France’s Beaker’라는 이름을 가진 이 비커의 원본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PUIFORCAT ORFERE 5. 8백 명분의 차를 담을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티 주전자. 현재 런던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6,11,12. 1938년 7월 21일‘Tommy 컬렉션’은 베르사유 궁의 로얄 런천에 공식제품으로 사용되었다. 이 날 프랑스 대통령은 조지 4세를 위해 연회를 열었고, 19세기처럼 한 음료당 한 글라스를 사용하는 ‘서비스 부르주아’를 연출했다. 2백 개 좌석마다 11개씩의 글라스가 세팅된, 극히 호화로운 만찬으로 기억되는 순간이다. SAINT-LOUIS 7.웨지우드의 걸작, 재스퍼(Jasper) 컬렉션. 고대 로마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우아한 빛깔과 장식으로 귀족들의 필수품이었던 작품이다. WEDGWOOD 8. 전통적으로 덴마크 국민들은 왕가의 결혼식 때 선물을 주는 관습이 있는데, 지난 2004년 5월 14일 황태자 커플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선택된 선물은 로얄 코펜하겐의‘플로라 다니카’였다. 그릇에 새겨진 문양은 황태자 커플을 상징하는 것으로, 현재 여왕인 마그리트 2세가 직접 디자인했다. 플로라 다니카 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도자기 컬렉션이기도 하다. ROYAL COPENHAGEN 9. 2006년 1월, 덴마크 왕자의 세례식을 위해 제작된‘플로라 다니카’. 이른 여름의 상큼함을 딸기로, 왕자의 탄생월인 10월의 활기참을 사과로, 춥고 어두운 1월을 꿰뚫는 강한 의지를 아네모네로 상징해 각각 문양을 그려 넣었다. ROYAL OPENHAGEN 10. 나폴레옹이 애용한 티세트. 골드와 중세 명화가 매치되어 극히 화려하며, 현재 나폴레옹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지미 제공 한길사
그런가 하면 크리스털의 역사는 14세기에서 출발한다. 베니스의 크리스탈로(cristallo) 에 의해 처음 개발된 투명 유리가 보다 투명하고 발광성이 좋은 크리스털로 완성된 것은 1676년 영국에서였다. 영국 왕실은 크리스털 제조 기술을 비밀리에 유지하기 위해 기술자들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했으나, 이내 비법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고 말았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유리산업을 둘러싸고 국가 간에 전쟁처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