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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32회>
줄거리
왕건은 송악 환도 후 고구려 정신의 계승을 통한 자주적인 삼한통일대업에의 의지를 천명한다. 견훤은 아버지 아자개에 대한 울분을 삼키며 신라로 통하는 요로인 대야성을 공략하고자 군사훈련에 돌입한다. 신라 경명왕은 백제의 공격기미를 알아채고 고려에 구원을 요청한다. 삼한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왕건은 고토회복의 의지를 다지며 북방순행길에 오르고 황제가 없는 황도에서는 나주부인 오씨의 아들 태자 무를 다음 보위에 오르게 하려는 오다련의 물밑작업이 진행되는데...
씬 길
엄청난 행렬이 가고 있다. 철원에서 개성으로 옮겨가고 있는 황제의
환도길인 것이다. 수많은 문무백관들과 군사들, 그리고 황실의 부인
들과 태자 무가 함께 가고 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도 긴 환
도길이다. 카메라는 왕건의 표정과 오씨와 수인의 표정, 그리고 숱
한 문무 신료들의 면면들을 훑으면서 해설이 이어진다
해설 송악으로의 천도. 왕건이 궁예의 태봉 정권을 무너뜨리고 고려제국
을 세운 것은 지난 해 6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다음 해인
단기 3252년, 서기로는 919년 1월 드디어 자신의 고향으로 도읍을
옮긴다. 송악은 그가 한 때 정기대감이라는 벼슬로써 궁궐을 짓고
성을 쌓아 궁예에게 잠시 내 주었던 곳이기도 했는데 왕건이 돌아
온 이 때부터 송도, 혹은 개경 등으로 불리운다. 그것은 황도가 들
어서면서 송악군과 개성군을 합쳐져 도읍이 되었다는 뜻인 것이다.
이로써 궁예가 세웠던 태봉국의 철원 시대는 총 22년의 세월을 끝
으로 역사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고려조 오백여년의 역사가
이곳에서 새로이 쓰여지게 된다.
그들의 행렬은 그렇게 끝도 없이 가고 있다. 그 행렬에는 고려에 속
한 출연진 모두가 참여한다. 변방에 나가있는 사람들도 모두 함께
간다. 평양에 나가있는 왕식렴과 염상도 보이고, 나주에 가있던 김
언을 비롯한 윤신달, 전이갑, 그리고 전이갑의 아우인 의갑도 참여
를 하였다. 또한 상주에 가있던 배현경, 홍유, 김락들도 보인다. 그
들의 면면에서 다시 왕건의 표정으로 이어지면서 카메라는 해설과
함께 과거의 장면들을 스쳐 보여준다.
해설 왕건이 역성혁명으로 황제가 된 이후 지금까지, 그러니까 약 반년
동안은 그야말로 숨가쁜 정국의 연속이었다. 연이은 반란과 저항들
이 곳곳에서 일어났었고, 변방에 백제와 경계를 이룬 지역들이 적지
않게 등을 돌리는 현상들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웅주성을 버리고
올라왔다가 처형된 이흔암의 경우는 그 후유증이 아주 컸다. 지금
의 공주인 웅주 일대 십여 주, 현이 한꺼번에 백제땅으로 가버린 것
이다. 그러나 왕건은 슬기롭게 그 시련들을 넘겼다. 그것은 그 스스
로 몸을 낮추고 호족들을 위로하며 그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함께
한다는 인식을 기조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궁예가
추구했던 북방정책을 결코 놓지 않았다. 그는 황제가 되면서 곧바로
평양을 대 도호부로 정하고 사촌 아우 왕식렴을 직접 보내면서 그
곳을 도읍지만큼이나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대외에 크게 알렸다. 그
리고 주변 고을 사람들을 사민하여 옮겨가 살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옛 고구려의 황도를 되살려 내는데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모든 것들이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
각하자 이렇게 송악으로 오고 있는 것이었다.
씬 송악 황도 궁성.
황제 일행들이 끝없는 꼬리를 물고 그 성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의
장병들이 끝도 없는 깃발들을 나부끼며 그렇게 일행을 주도해 가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지나쳐가면 멀리 궁궐의 정전이 보여온다.
씬 동 황궁 안
수문장들이 서있다. 그리고 내군의 의장병들이 끝도 없이 둘러싸 있
다. 황제 일행들이 황궁 정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들은 정문인 승평
문(昇平門)을 지나 궁궐 뜰로 들어선다. 이미 정전인 회경전(會慶殿)
앞에 옥좌가 마련되어 있고 신료들은 일제히 자리를 잡아 황제의
대관식을 방불케 할만큼 서있다. 왕건이 마련된 자리에 가 오른다.
두 부인과 태자가 옆에 섰고, 시중을 비롯한 모든 문무 백관들이 도
열하여 있다.
왕건 경들은 들으오.
신료들 예.
왕건 짐은 오늘 이곳 개경으로 옮겨와 첫 정무를 여는 바이오. 우리 고려
는 옛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을 연 제국이요. 따라서 짐은 그
옛날 엄청난 위용을 드러내었던 고구려의 옛 수도 평양을 이곳과
마찬가지로 대우하고 크게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오. 짐은 결코 옛
고구려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외다. 경들은 이 점을 다시 한
번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오.
신료들 예,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왕건 이제 과거는 갔소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이며 더 중
요한 것은 내일을 위한 준비올시다. 우리대에 반드시 삼한의 통일대
업을 이룩하고 나아가 옛 고구려의 고토였던 저 오랑캐들의 북방대
륙을 되찾아야 할 것이외다. 이 점 또한 명심들 하오.
신료들 삼가 받들겠사옵니다, 페하.
왕건 우리 고려라는 이름이 천년 만년을 지나 우리 후손들은 물론 온 우
주 만방에 길이 남겨지는 이름이 되게 할 것이오. 경들도 짐과 함께
결코 빛이 바래지 않는 찬란한 역사의 장에 그 이름이 자손만대 오
래 오래 기억되도록들 하오. 오늘 짐이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오.
신료들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폐하.
왕건은 사뭇 고조되었다. 신료들의 면면도 하나같이 그렇게 보인다.
김행선이 앞으로 나와 만세를 선창한다.
김행선 대 고려 제국 만세!
신료들 (합창한다)
김행선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신료들은 계속 합창을 따라한다. 모두들 그렇게 들끓고 있다. 부인
들의 표정에서, 그리고 다시 광평성 원로들을 지나 왕유와 최응, 태
평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또한 유금필과 능산, 박술희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 수많은 장수들의 면면에서 만세 소리는 그렇게 들끓고
있다. 천천히 디졸브 되며......
씬 동 황궁 조당 외경
씬 동 조당 안
문무신료들이 여전히 가득 차 있다. 왕건은 옥좌에서 계속해 영을
내린다.
왕건 경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왕건 이곳 송도는 경들도 알겠거니와 짐의 고향이며 선조님들이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뿌리를 내리고 정착했던 곳이오. 짐이 그 은덕을
어찌 살펴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짐은 우선 그분들의
시호를 정하고 추존해 올리려 하오.
김행선 지극히 합당하고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이미 원로 대신들이 그와
같은 모든 세안을 살피어 폐하께 올렸사옵니다. 영을 내리시오소서.
왕건 고맙소이다. 짐도 이미 그것을 보았소이다. 최시랑은 광평성에서 올
려온 그 예문을 읽으라.
최응 예, 폐하.
최응이 앞으로 나와 절하고 기록을 펼쳐 읽는다.
최응 광평성의 원로분들이 올리신 소청을 폐하께오서 윤허하셨고 다시
학사들이 머리를 모아 정하여 모신것을 알리옵니다. 먼저 폐하의 증
조부님을 시조 원덕대왕으로, 증조모님을 정화왕후로 추존하여 올려
모시고, 조부님을 의조 경강대왕으로, 조모님을 원창황후로, 또한,
폐하의 아버님을 세조 위무대왕으로, 그 어머님을 위숙황후로 추존
하실 것이옵니다. 또한 이 분들의 능의 봉분을 황실의 위엄에 걸맞
게 높히실 것이며 성대하게 제실을 짓고 제를 올릴 것이라 하셨사
옵니다. 모쪼록 국가의 의식을 맡은 관청에서는 이에 합당한 준비와
의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최응이 서류를 접어 그렇게 예를 취하고 뒤로 물러난다.
왕건 모두들 들으셨소이까?
신료들 예.
왕건 다행히 광평성의 원로들이 짐과 황실의 위엄을 생각하여 청하여주
었고 학사들이 머리를 모아 예문을 지어올려주니 이 나라 황제로써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신료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그 일 외에도 시급히 할 일이 또 있소이다. 이미 이 황도에 시전(시
장)을 세우고 방리(坊里, 도시계획)를 정하였으며, 조정의 각 관부와
내성, 외성을 세웠소이다. 우리 고려가 오늘날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가피가 컸음을 결코 외면할 수 없을 것
이오. 도성 주변에 명소 열 곳을 찾아 사원들을 크게 세우도록 하시
오. 이 또한 시중이 직접 나서서 원로들과 대소관료들이 함께 추진
하도록 하오.
김행선 예. 폐하
해설 왕건이 송악에 천도하면서 삼대조상을 추존한 것은 왕씨 가문의 자
손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성 안에 열 곳
의 사찰을 세우라 지시한 일은 다분히 그가 황제에 오르는 것을 도
왔던 그의 정신적 스승 도선대사와 그리고 크게 도움을 받었던 사
무외 대사는 물론이고, 석총, 허월같은 고승들의 역할을 잊을 수 없
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당시는 후삼국 모두가 불교
를 정신적 지주요 종교로써 공인하고 있었으므로 왕건으로서는 세
상에 불교에 대한 그의 깊은 배려를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고려는 별 무리 없이 송악에 도읍지를
정착시키게 된다.
씬 궐 안 어느 길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였다. 오씨와 수인들이 걸어온다. 수많은 상
궁 나인들이 따르고 있다.
오씨 이보게 아우님,
수인 예, 마마
오씨 역시 이곳 송악은 참으로 좋아보이네 . 왠지 철원은 늘 남의 집에
얹혀 있는 기분이었어. 이제서야 내 집에 온 것 같네 그려.
수인 저도 그런 생각이 드옵니다, 마마.
오씨 요즘 아이는 건강한가?
수인 예, 마마
오씨 아이 이름이 태라고 하였던가?
수인 예, 폐하께서 그리 지어주시었사옵니다.
오씨 우리 태자 무처럼 크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겠네 그려, 호호호...
수인 아무래도 그래야 겠지요. 형님의 처소는 어디시옵니까?
오씨 이보게 박상궁, 내 처소가 어디라 하던가?
박상궁 바로 저기 저 곳이옵니다. 실은 황후전으로 쓰려고 했던 곳이온데
황후마마께오서 피접을 나가 계시어 마마께서 쓰시는 것으로 되어
있사옵니다.
오씨 이런, 그렇다면 황후전이 없다는 말인가?
박상궁 아니옵니다. 황후마마께서 돌아오시면 쓰실 전각은 따로 준비를 한
다 들었사옵니다.
오씨 호호호, 그렇구먼, 그래야지. 아우는 어느 처소인가?
수인 저는 저 쪽 후원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사옵니다. 아주 조용하고 아
담한 곳이라 들었사옵니다.
오씨 호호호...........내 처소로 자주 좀 놀러오게나.
수인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하오면.... (상궁들에게) 자, 가세나.
김상궁들 예, 마마.
수인들이 그렇게 가자 오씨의 표정은 금방 굳어지며 본다.
오씨 똑똑한 사람일세. 겉으로는 웃지만 아주 욕심이 많아. 박상궁이 잘
그런 점을 알아야 할 게야. 그래야 내가 황후가 되면 자네는 제조상
궁이 되는 게야. 상궁 중에 제일 어른인 제조상궁 말일세.
박상궁 예, 마마. 어찌 소인이 그것을 모르오리까? 잘 뫼시겠사옵니다. 소인
을 믿으시고 편안히 지내시오소서.
오씨 호호호.... 암, 자네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자, 우리 처소
로 가세나. 궁궐이 정말 마음에 드이. 아주 마음에 들어.
씬 동 황궁 대전
술상이 놓여 있다. 왕건과 최응, 태평, 그리고 사기장들이 함께 있
다. 박술희와 유금필도 보인다.
왕건 아무튼 큰 역사를 하나 마무리 지은 것 같소이다. 참으로 정신없이
지나간 몇 달이었소이다. 이번에 환도 말이올시다.
배현경 나라 중심을 옮기는 일이옵니다. 어찌 쉽겠사옵니까?
홍유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많은 것들이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사옵니다.
왕건 이 모두가 혁명을 이끌어주었던 경들의 공이올시다.
복지겸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저희 공신들은 일찍이 공신에 책봉되면서 절
대로 나라의 높은 권력이나 이익의 근처에 가지 않기로 하였사옵니
다. 저희들의 사심없는 충정은 아직도 변함이 없사옵니다.
능산 그러하옵니다, 폐하. 오늘 이렇게 별도로 많은 대신들을 물리치고
소신들만을 불러주심은 너무도 과분하옵니다.
유금필 능산 장군의 말이 맞사옵니다. 폐하의 과분하신 배려에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박술희 정말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모두들 고맙소이다. 나 또한 경들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이 나라를
이끌고자 마음을 갈고 닦소이다. 나라를 운영하는 일은 누구 하나의
힘으로 결코 되는 것이 아니올시다. 서로가 도와야지요. 그리고 스
스로 몸을 낮추어야 백성이 편안한 것입니다. 경들을 볼 때마다 참
으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능산 폐하, 아직도 삼한은 서로가 그 주인이 되고자 칼을 들고 서 있사옵
니다. 비록 잠시 전쟁이 뜸했사오나 언제까지 편안하지는 않을것이
옵니다, 이제 환도를 마쳤사오니 그 준비를 다시 또 서둘러야할 것
이옵니다.
홍유 지극히 당연한 말이옵니다, 문제는 역시 백제일 것이옵니다. 비록
백제가 상주에서 일시 물러갔으나 저들은 우리에게 원망이 많사옵
니다.
왕건 실은 백제 일 뿐만 아니라 환도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나라 밖의 여
러가지 일들을 이제 그 실행에 옮기고자 경들을 부른 것이오. 태평
낭중이 이야기해보게.
태평 예, 폐하.(설명하듯) 환도하기 이전부터 폐하께오서는 변방의 여러
가지에 대해 깊이 살펴보셨사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평양
성 일대의 북방은 오랑캐들의 수렵장이 되어 있습니다. 비록 왕식렴
공과 염상 장군이 가있지만 그 힘이 부족해보이옵니다. 아무래도 그
곳 출신이신 유금필 장군께서 가셨으면 하옵니다.
유금필 허허허허....(웃는다)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올시다. 비록 소장이
많은 전장터를 돌아다녔지만 사실 북방은 제 텃밭이올시다. 보내만
주신다면 시끄러운 많은 것들을 잠재워 보이겠습니다.
왕건 아주 든든한 말일세, 금필 아우. 그곳뿐만 아니네. 오산성(지금의 예
산) 일대에 많은 유민들이 오갈 데가 없어 떠돌다가 거리의 시체로
죽어나간다고 하네. 아무래도 홍유 장군이 좀 가서 그 유민들을 안
착시켰으면 하오.
홍유 이를 말씀이옵니까. 이 자리가 파하는대로 즉시 달려가겠사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짐도 조금 더 남아있는 나랏일들을 정리하고 나면 친히
북방으로 가 볼 참이오. 능산 아우는 그 때 나와 함께 가기로 하고
술희 아우와 배장군은 당분간 이 황도를 지켜주어야 겠소이다.
그들 예, 페하.
왕건 아무리 경들의 생각이 사심이 없다 하더라도 이 나라의 운영은 바
로 짐의 곁에서 짐을 대신하고 있는 경들이오. 짐 또한 경들을 믿고
있기로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소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국가적
과제는 평양성을 복원하여 북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과 삼한을 통
일하는 것이오. 그러자면 당연히 남으로는 백제와 운명을 건 싸움을
계속하게 될 것이오. 이에 관한 일들도 빈틈없이들 처리해주길 바라
오.
그들 예, 페하.
왕건 이제부터 모든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올시다. 다시 말이오. 경
들이 짐과 함께 그 역사를 다시 쓰는 것입니다. 힘들을 냅시다.
그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씬 백제 황궁 외경
견훤(E) 고려가 도읍지를 송악으로 옮겼다고?
씬 동 조당
견훤이 많은 문무신료들과 함께 조회를 열고 있다.
견훤 결과적으로 도읍을 송악으로 옮긴 것은 이제부터 뭔가 새롭게 도약
을 해보겠다는 뜻이 아닌가?
최승우 그렇다 할 수 있사옵니다. 송악은 고려의 왕 왕건의 고향이옵니다.
그만큼 나라를 세우고 보다 안정적인 것을 택한다는 뜻도 있었을
것이옵니다.
견훤 그럴테지.
능환 기왕이면 고려가 자리를 잡기 이전에 저들의 경계를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저들은 분명 나라 안이 정리되는 대로 우리를
노리고 들어올 것이옵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노릴 필요가
있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렇게 서두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많은 것을
참아온 우리야. 허허허허..........(웃음)
공직 하오나 폐하, 이찬의 말씀이 옳은 것 같사옵니다. 고려는 지금 송악
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변방에 대한 경계가 아무래도 조금은 흩어져
있을 것이옵니다. 빈 곳을 찾아 우리가 먼저 공략을 취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옵니다.
신덕 그렇지 않사옵니다. 바깥을 단단히 해놓고 안을 정비한다는 것은 정
치의 기본이옵니다. 완벽하게 계산된 승리가 없는 전투는 결과적으
로 아군 또한 전력이 약화되는 원인이 될 수 있사옵니다. 차라리 고
려보다는 신라 쪽에 눈을 돌리심이 가한 줄로 아옵니다.
견훤 신라라...... 그래, 그건 짐도 같은 생각일세, 신덕 장군.
애술 신라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이옵니다만은,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대야성을 도모하심이 어떻하옵니까?
견훤 (꿈틀하며) 대야성?
애술 예, 폐하. 그간 크고 작은 신라에 관한 첩보들을 받아본 결과, 신라
는 갈수록 그 위기가 더하다 하옵니다. 특히나 지난 번 두 번씩이나
우리 백제국에게 치명적 타격을 주었던 신라의 그 노장 충신들이
지금은 나이 팔순이 가까워 전선에 나올 수 없다 하옵니다. 노려볼
만 하옵니다, 폐하.
박영규 애술 장군의 말에 적극 공감하옵니다. 지금 고려는 안정적인 바탕위
에서 전 전선을 정비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런 고려를 노리기보다
는 차라리 신라를 택하시오소서, 폐하.
최필 신도 생각이 같사옵니다. 이제 대야성으로 갈 때가 되었사옵니다.
견훤 아우의 생각은 어떠한가?
능애 어찌 신이라고 하여 생각이 다르겠사옵니까? 이미 많은 신료들과
장수들이 신라의 최대 관문인 대야성을 생각하고 있었사옵니다. 영
을 내리시오소서, 폐하.
견훤 파진찬의 생각은 어떠한가?
최승우 (미소)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하오나 성급함은 전쟁에 있어 금물
이옵니다. 좀 더 관망하시면서 특별히 훈련된 군사들을 대야성 안으
로 잠입시키고 때가 이르거든 안과 밖에서 협공하는 전략이 필요하
옵니다. 지난 번에는 너무 정면 승부를 걸다가 타격을 입었사옵니
다.
견훤 그건 그랬어. 전략에 관한 것은 좀 더 논의를 하기로 하고 일단 방
향은 그리 정하세. 옳은 말이야. 고려가 이제 내부를 정비하고 나면
막바로 신라로 가려고 할 것이야. 안되지, 그 길목을 절대로 내어줄
수는 없지. 이보게 이찬,
능환 예, 페하.
견훤 이번 대야성 공략은 국가적인 과제일세. 우리는 어쨌든 신라로 가야
해. 그러자면 대야성을 반드시 넘어야 해. 지금부터 군을 정비하고
준비하라. 파진찬을 도와 줘.
능환 예, 페하.
견훤 그리고 상주 방면도 그래. 이제 그곳에 아버님이 아니 계셔. 언제까
지 저들에게 맡겨 놓을 수만은 없어. 태자는 들어라.
신검 에, 페하.
견훤 나는 이번에 대야성을 공략하면서 또한 상주 일대를 노리고 싶다.
그에 관한 것을 이찬과 상의하여 그 책임을 맡도록 하라. 대야성 쪽
은 내가 친히 맡을 것이니 너는 그 쪽 방면의 일을 맡아. 알겠느냐?
신검 예, 페하.
견훤 그래. 꽤 오래 쉬었어. 이제는 다시 기동을 할 때야. 그러나,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돼. 고려가 송악으로 마침 옮겨갔다 하니 인사차 사신
을 한 번 보내서 내부 사정을 알아보도록 해.
최승우 마땅하고 옳으신 일이옵니다. 그리 하겠사옵니다.
견훤 그래, 대야성으로 가는 것이야, 대야성, 대야성이라....... 허면 신라의
그 대야성에 잠입하는 일은 누가 맡을 것인고?
애술 신이 맡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애술 장군이? 핫하하하하.... 그렇다면 그 걱정도 덜었네 그려. 그래,
이번에는 대야성을 꼭 함락해야지. 이 번이 벌서 세 번째야 세 번...
또 망신을 당해서는 아니 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삼한을 통일하려
면 결국은 서라벌을 얻어야 해. 신라를 먼저 얻는 나라가 결국은 삼
한을 통일하는 것이야. 신라 말이야.
견훤이 모처럼 흥미가 당기는 듯 생각에 잠기는 그 표정에서.....
씬 인서트 어느 산야
많은 무리들이 장사꾼 차림으로 삼삼오오 이동하고 있다. 애술과
그 부장들이 가고 있다. 그들이 멀리 사라지고 나면...
'씬 인서트 어느 훈련장
백제군의 장수들이 수많은 군대를 조련하는 모습들이 보여온다. 수
많은 마필들과 군사들과 공격용 장비들이 움직이고 있다. 견훤이 손
수 단 위에서 고개를 끄떡이며 보고 있다. 그 광활한 훈련장의 모습
에서
씬 신라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조당
신라의 문무신료들이 모여있다. 경명왕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옥좌
에 앉아 신료들과 마주해있다.
경명왕 백제가 다시 우리 대야성을 치려고 군사 훈련에 들어갔다 하오. 저
들이 대병을 일으키면 막을 길이 없으니 어쩌면 좋소이까?
신료 1 이미 백제의 견훤왕이 우리 대야성을 노린지는 오래 되었사옵니다.
그러나 두 번 공격하여 두 번 다 실패하였으니 이번에도 우리가 열
심히 싸우면 막을 수 있사옵니다.
신료 2 열심히 싸우다니요? 우리에게 무슨 힘과 군사가 있어서 저들을 막
고 싸울 수 있단 말이요?
신료 3 그렇다고 앉아서 성을 내주자는 말이오이까? 있을 수 없소이다.
신료 2 말만 앞세우지 말고 그렇다면 대책을 내놓아 보시구려. 우리 신라가
지금 무슨 힘이 있소이까? 지금까지 버티어 온 것만 하더라도 기적
같은 일이올시다.
김율 그렇지가 않소이다. 우리가 싸우고자 한다면 왜 길이 없겠소이까?
폐하. 신 김율은 아뢰옵니다. 지금 송악으로 천도한 고려에 사신을
보내면 어떠하겠사옵니까?
경명왕 고려라니요? 그렇게되면 우리 신라가 고려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
하는 것이 되는게 아니겠소이까?
신료 1 말도 아니되옵니다. 어찌 반역의 무리들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사옵
니까?
신료 2 살고자 한다면 급한 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사옵니까? 신 또한 사신
을 보내는 것에 공감하옵니다. 고려의 왕 왕건은 즉위하면서부터 지
난 날 폭군 궁예가 우리 신라를 핍박하던 모든 것을 혁파하고 그
나라의 운영 기조를 우리 신라의 것으로 택하였사옵니다.
김율 그러하옵니다, 고려는 또한 나라의 주 적을 우리 신라가 아닌 백제
라 천명하였사옵니다. 이미 고려의 힘은 아래로는 상주에서부터 나
주까지, 그리고 북으로는 평양성을 넘고 있사옵니다. 어찌 반역의
무리라고 외면할 수만 있사옵니까? 지금이라도 사신을 보내시오소
서, 폐하. 우호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경명왕 (한숨) 일리있는 말이외다. 비록 우리가 천 년의 역사가 있다하나
지금은 다시 후삼국 중 가장 작은 나라가 되었소이다. 체면을 생각
할 때가 아닌 것 같소이다. 병부경은 즉시 고려로 가도록 하오.
김율 예, 페하.
경명왕 근자에 들어 나라에 좋지 않은 징조를 알리는 여러가지 징후들이
일어나고 있소이다. 이는 백제가 우리를 본격적으로 노리기 시작했
다는 것일 것이오. 그렇소이다. 고려와 손을 잡지 않으면 그나마 갈
길이 없소이다. 병부경은 속히 가서 우리 신라의 사정을 알리고 도
움을 청하도록 하오. 어서 가오.
김율 예, 폐하.
해설 이 때의 신라, 신라의 왕은 제 54대 경명왕이었다. 경명왕은, 2년 전
왕위에 올라 지금에 이르렀으나 이미 신라의 국운은 기울대로 기운
때였다. 그는 한 때 중원의 후당에 조공을 바치며 허약해진 나라를
잡아보려고 애를 쓴 적도 있었으나 실패하였고, 이렇게 견훤의 압박
에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왕건 쪽에 구원을 청하게 된다. 왕건에게
사자를 보내는 일은 그들이 반란이라 불렀던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 된다. 이미 신라가 그 빛을 잃어가는 증거를 본격적
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
리고 신라의 역사 기록 또한 이 때의 일을 여러가지로 불길하게 적
고 있다. 삼국유사에 보면 이 때의 몇 가지 징후들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제 54대 경명왕 때인 정명 5년 무인에 사천왕사 벽화
속의 개가 울었다. 이 때문에 3일 동안 불경을 외워 이를 물리쳤으
나 반나절이 지나자 그 개가 또다시 울었다. 또한 정명 7년 경진에
황령사 탑 그림자가 금모사지의 집 뜰 안에 한 달 동안이나 거꾸로
바꿔 비쳐보였다. 또 그 해 10월에 사천왕사 오방신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으며, 벽화 속의 개가 뜰로 달려나왔다가 다시 벽의 그림 속
으로 되돌아갔다" 라고 쓰여 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여주세요)
신라의 쇠망을 알리는 어두운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씬 어느 산길
김율이 사신 일행을 이끌고 가고 있다. 가끔씩 김율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가고
씬 백제 훈련장
여전히 장수들과 수많은 군사들이 어울려 훈련에 여념이 없다. 견훤
은 금강을 데리고 또한 박씨와 고비를 대동하여 높은 단 위에서 그
훈련을 관망하고 있다. 최승우도 함께 보이고.......... 그 함성소리들.
그리고 퇴각과 공격을 계속하는 군사들의 모습에서......(도대체 몇 명
을 가지고 훈련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태조 왕건이 왜 이렇게 쪼
그라들었습니까? 답답합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을 표시하
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어느 강가 또다른 훈련장
신검과 능환이 박영규와 함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능환 지금 황궁 밖 훈련장에서는 폐하와 황후 마마를 모시고 대대적인
훈련을 거듭한다 하옵니다.
신검 ......(가득한 불만의 표정)
능환 태자마마도 저와 더불어 이곳에서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옵니다.
그리고 반드시 상주 방면의 공격에는 커다란 획을 그으셔야 하옵니
다.
박영규 허허허....... 그리 하셔야지요. 태자마마는 누구보다도 많은 전선에서
싸운 경험이 있으시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보람을 찾아야 할
것이옵니다.
신검 글쎼올습니다. 과연 그렇게 되려는지요.
박영규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무엇이 두려울 게 있사옵니까?
신검 아바마마는 늘 저를 비롯해서 제 아우들을 나무라기만 하십니다. 한
번도 이 나이가 되도록 칭찬 한 번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전쟁에
나가 다치거나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바마마의 그 꾸중
이 늘 두려웠사옵니다. 이번이라고 다를 것이 없지요.
능환 태자마마, 힘을 내시오소서. 이번에는 신도 태자마마를 뫼시고 있거
니와 여기 매형이신 박영규 장군께서도 함께 하십니다. 반드시 잘
될 것입니다.
신검 내 두 아우는 아직 어립니다. 그 아이들을 모두 멀리 변방으로 보내
놓으셨습니다. 차라리 저도 변방에 가있는 것이 나을 뻔하였습니다.
능환 태자마마는 황실의 맏이이십니다. 변방이라니요? 계속해 많은 전투
경험을 쌓으시고 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배우셔서 황제페하의 뒤
를 이으셔야 하옵니다. 약한 마음은 버리시오소서. 우리는 반드시
이번에 성공할 것이옵니다. 고려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옵니다.
희망을 가지시오소서, 태자마마.
신검 .....(한숨만)
씬 송악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신라에서 온 사신들이 큰 절을 하며 왕건에게 예를 올리고 있다. 많
은 문무대신들이 보고 있다. 북방으로 간 유금필과 예산으로 간 홍
유들은 보이지 않는다. 왕식렴과 염상도..... 나머지는 다 함께 있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을 띠며 이 흥분의 현장을 보고 있다.
왕건 신라국에서 짐에게 사신을 보내오다니. 참으로 고맙고도 또 감격스
러운 일이요.
김율 예, 페하. 저희 신라국에서는 일찍부터 폐하께 인사를 드리려 하였
사오나 국내의 여러가지 사정이 복잡하여 그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이제서야 문후를 드리니 살펴 받으시오소서.
왕건 신라는 삼한의 주인이였고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올시다. 이제
우리 고려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그 문안을 오니 짐은 감계가
무량하오이다. 앞으로 양국이 서로 돕고 의지하여 잘 지내보도록 하
십시다.
김율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저희 신라인들은 폐하께오서 얼마 전 등극하
시어 우리 신라와 화친을 표하시고 백제를 적국으로 대하신다 하시
는 것을 확인한 바 있사옵니다. 사실 백제는 늘 우리를 핍박하려고
노려오고 있사옵니다.
왕건 알고 있소이다. 앞으로도 변함 없이 우리는 신라를 도울 것이오. 가
서 귀국의 황제께 잘 전해 주시구려.
김율 예, 페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김행선 이로써 신라와 우리 고려는 화친의 의를 맺고 확인하였사옵니다. 이
는 양국은 물론이거니와 삼한의 평화를 위해서도 참으로 소중한 것
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폐하의 은혜와 덕망이 참으로 크시옵니다.
왕건 나라와 나라가 평화의 약속을 맺는 것은 그만큼 양국의 신료들이
또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일일 것이오. 이곳에 있는 여러 신료들
은 오늘의 일을 각별히 기억하고 살펴서 작은 일이라도 실수가 없
도록 해주기를 바라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자, 먼 길에 고단했을 것이오. 가서 편히 쉬도록 하오.
김율 예, 폐하.
김율은 그렇게 나간다. 태평이 다시 말한다.
태평 폐하, 백제국에서도 방금 전 사신이 도착했다 하옵니다.
최응 백제국의 사신은 신라와 달리 우리 형편을 엿보고자 왔을 것이옵니
다. 그 점을 헤아리시오소서.
왕유 그렇사옵니다. 이미 대야성을 치려고 군사를 훈련중이라 하옵니다.
저들의 의도를 살필 필요가 있사옵니다.
왕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는 우리의 환도를 축하한다고 오는 사
람들이올시다. 그들 또한 박정하게 대하지 말고 들이도록 하시오.
신료들의 대답과 함께 잠시 후 백제의 사신 공달이 공작선과 죽전
을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 읍하여 절을 한 후에 아뢴다.
공달 폐하, 백제국의 아찬 벼슬을 하는 공달이옵니다. 아국의 폐하의 친
서를 봉행하여 왔사옵니다.
공달이 견훤의 서찰을 전한다. 김행선이 그것을 받아 다시 올리면,
왕건이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인다.
왕건 우리가 환도를 한 것을 축하한다 하니 고맙구려. 그래, 귀국의 황제
께서는 편안하시오?
공달 예, 페하.
왕건 이렇게 귀한 선물까지 보내주니 또한 고맙구려. 이 공작선은 귀한
것인데 아마도 백제국이 그만큼 영화와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
는 것인가보오. (사이) 그리고 또 이 죽전은 대나무가 무성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그만큼 백제의 무력이 대단한 것을 알리고 싶
은 모양이구려.
공달 저같은 사람으로써야 예물의 의미를 어찌 알겠사옵니까?
왕건 허허허.... 아무튼 좋소이다. 그래, 달리 부탁하는 말씀은 없었소이
까?
공달 저희 황제폐하께서는 지난 날 이 곳으로 오신 폐하의 아버님 일을
궁금해 하시옵니다. 그리고 심히 걱정하고 우려하셨사옵니다.
왕건 그 어른은 이 사람이 아버님처럼 뫼셔온 분이올시다. 어쩌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나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그리 전해 주시오.
공달 예, 폐하.
왕건 그보다도 지금 백제국에서는 대야성을 도모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
소이다. 우리 삼한은 가급적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살았으면 하는 것
이 짐의 생각이오. 그 소문이 사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해 주시
구려.
공달 예, 폐하. 하오나, 전국 시대에 있어서 서로의 영토를 확장하고 세를
늘리려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정책이옵니다. 백제와 신라의 일을
가지고 고려에서 간섭함은 옳지 않은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통촉하
시오소서, 폐하.
태평 (미소지으며) 대단하시구려. 여기가 고려 제국의 조정이라는 것을
잊으신 모양이구려? 이미 신라가 우리 고려에 구원을 청해 왔소이
다. 우리 대국 고려가 적은 나라의 도움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그
점도 알아주었으면 하오.
공달 예. 신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저희 백제에서도 또한 알아야 할
것이옵니다. 가서 저희 폐하께 그리 말씀 올리겠습니다.
최응 백제국의 파진찬 어른은 요즘 어떠하십니까?
공달 (흠칫하며) 저희 파진찬 어른을 잘 아시오이까?
최응 일전에 상주에서 한 번 뵌 일이 있습니다. 가서 이 최응이가 안부
여쭙더라고 전해주시구려.
공달 그 또한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건 아무튼 예물은 잘 받았소이다. 축하 인사도 잘 받았고. 그러니 가서
전하시구려. 우리 모두 조용히 잘 살아 보자고 말이오. 아시겠소이
까?
공달 예, 폐하.
오아건 물러가 쉬고 떠나시구려.
공달 예, 페하.
그렇게 공달이 나간다. 신료들은 모두 왕건을 본다. 그러나 왕건은
여유가 많아 보인다.
왕건 우리는 경들이 본 바와 같이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을 모두 받았소
이다. 이는 우리 고려가 명실공히 삼한의 패권주의에서 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올시다. (사이) 여러 신료들은 신
라와 백제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고 끊임없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오.
신료들 예, 폐하.
왕건 이제 짐은 일찍이 신료들에게 말한 바와 같이 북방을 잠시 순행해
야 겠소이다. 그간 배현경 장군과 박술희 장군이 이 도성을 지키게
될 것이고, 백제와 신라에 관한 일은 순군부의 태평 낭중이 관할하
게 될 것이오. 병부는 잘 공조하도록 하시오.
원극유 예, 폐하.
김행선 하옵고 폐하, 신은 시중으로써 한 말씀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왕건 말씀하시구려.
김행선 폐하께오서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온 이후 하나도 둘도 백성들을 생
각하시는지라 궁궐의 규모가 초라하고 또한 사람이 적사옵니다. 나
라에는 마땅히 그에 걸맞는 규모와 위엄이 서야 하옵니다. 백제와
신라가 우리 황궁을 우습게 볼까 염려되오니, 황궁에 궁인들을 그에
걸맞게 두시고 또한 위엄을 세우게 하여 주시오소서.
박지윤 지극히 옳은 청이옵니다. 황궁은 나라의 상징이옵니다. 허락하시오
소서, 폐하.
유천궁 신 유천궁 시중의 말에 크게 공감하옵니다. 황궁은 폐하의 위엄이시
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오다련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허허허..... 경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떻게 계속하여 외면하리오? 그
리하도록들 하오. 그러나, 분에 넘치게는 하지들 마시오.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웃는 왕건의 얼굴에서 해설로 이어지며 인서트
씬 인서트
황궁 안으로 많은 내관과 상궁들과 각 처에서 올라온 처자들이 들
고 있다. 오씨와 유씨가 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서
해설 궁녀들의 입궁, 이 때만 해도 궁궐의 규모나 황실 안의 살림살이가
어떠했는지는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왕건은 이
때부터 많은 부인들을 보게 된다. 나중의 기록으로는 무려 비빈 모
두를 합쳐서 그 부인만 스물 아홉에 이르며 스물 다섯 명의 태자와
아홉의 공주를 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왕건이 호족들을 다스리고
회유하기 위한 정략적 결혼이 많았지만, 궁인들 쪽에서 택한 여인들
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본 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씬 송악 도성문
대소신료들과 오씨, 수인을 비롯한 상궁 나인들이 줄지어 순행길에
나서는 왕건을 배웅하고 있다. 왕건이 박술희를 보며 말한다.
왕건 이번에 북방 순행길은 우리 영토를 살피고 확인하러 간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참으로 크네. 그 동안 아우가 도성을 잘 지켜주게.
박술희 여부가 있사옵니까, 폐하. 편안히 다녀오시오소서.
배현경 가시는 김에 옛 고구려의 영토를 모두 보시고 오시오소서.
왕건 고맙소. 실은 나도 벌써부터 마음이 들뜹니다. 태평낭중이 할 일이
많을 게야. 백제의 동태를 예의 주시해보게나.
태평 예, 페하. 염려 놓으시오소서.
김행선 이곳 황도의 일은 염려하지 마오소서. 신들이 잘 살피겠나이다.
왕건 고맙소이다, 김시중.
오씨 조심하시오소서.
수인 조심하오소서.
무 조심하오소서, 아바마마.
왕건 오냐. 부인들도 몸조심들 하시구려. 자, 그럼 가세, 능산 아우.
능산 예, 페하.
복지겸 폐하를 뫼시어라!
부장들 폐하를 뫼시어라!
드디어 왕건 일행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군들에게 영이 떨어지
면서 군사들은 부산해지고, 신료들은 일제히 '평안히 다녀오시오소
서'하는 인사를 한다. 왕건들은 그렇게 점차 도성에서 멀어져간다.
그런 그들을 박술희가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박술희를 오씨가 묘한
시선으로 본다. 오다련도 그렇다. 그리고 디졸브 되면.......
씬 산길 혹은 들판길
멀리서 왕건의 일행들이 다가와 지나쳐 가고 있다. 왕건을 수행하는
능산과 최응, 복지겸이 보인다.
왕건 (주변을 보며) 과거에 폐주는 비록 망령이 들어 처음 세운 뜻을 잃
었으나, 그 사람이 뜻했던 북방 정책은 진실로 옳았던 것이오.
최응 그렇사옵니다. 방법이 과격하고 급했던 것이옵니다.
능산 그러나 폐주는 너무 이상에만 치우쳐서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었사
옵니다.
복지겸 그렇다 하더라도 폐주가 품었던 그 뜻만은 높이 살만 하옵니다.
왕건 내가 이렇게 북으로 가면서 마음이 설레는데 그 정책을 주도했던
폐주는 오죽 했겠소이까? 그러고 보면 세월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
오. 삼한의 통일대업만 아니라면 아무리 세월을 쏟아부어도 북으로
가는 길은 아깝지 않을 것인데......
능산 폐하께오서는 능히 삼한대업과 북방대업을 모두 이루실 것이옵니다.
최응 그러하옵니다. 폐하만이 그 일들을 다 하실 수 있사옵니다. 초조해
하지 마시오소서.
왕건 하하하....... 짐을 너무 추켜들 세우는구먼. 그리만 된다면 오죽 좋겠
는가. 아아, 어느새 사십이 훌쩍 넘었네. 할 일은 많고 남은 세월은
너무도 짧네 그려.
사람들 ......
왕건들 그렇게 지나쳐 가고
씬 황도 외경(밤)
씬 동 황궁 어느 전각
박술희가 갑옷 차림으로 앉아서 올라온 장계들을 살피고 있다. 몇
개를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한 쪽으로 치우는데 헛기침 소리
와 함께 다련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다련(E) 계시오이까, 박장군?
박술희 ...... 누구시오이까?
오다련 (들어서며) 다련군이올시다.
박술희 어이구, 오대부께서 어쩐 일이시옵니까?
오다련 깊은 밤에 홀로 고생이 많으실 것 같아 잠시 들렸소이다. 어떻소이
까, 밤도 긴데 가볍게 한 잔 하는 것이?
박술희 폐하를 대신하여 나랏일을 보고 있는 몸입니다. 술을 할 수야 있겠
습니까? 허허허.... 헌데 어쩐 일이신지요?
오다련 그저 이것저것 좀 답답해서 들렸소이다.
박술희 뭐가 그리 답답하신지요?
오다련 이제 나라가 제자리를 잡았고, 황실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헌데.....
박술희 말씀하시지요.
오다련 이제 태자의 나이 아홉이 되십니다. 무릇 나라가 안정되려면 그 후
손을 정하여 보위를 대비케 하는 것은 정책의 기본이올시다. 나는
이미 늙었는데 누구도 이 일을 말해주는 이가 없소이다.
박술희 ........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오다련 너무도 답답하여 폐하의 가장 측근이시고 의제가 되시는 박장군께
하소연 좀 하러 왔소이다.
박술희 하긴, 듣고 보니 이해가 가옵니다. 이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가
되었지요. 그나저나 지금으로써는 황실의 맏이이신 그 분 밖에 누가
또 있을 수가 있겠소이까? 언제가 되든 그 분께서 되실 것이 아니
옵니까?
오다련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올시다. 내 장군께 이렇게 부탁하러
왔소이다. 아무리 나랏일이 바쁘다 하셔도 이번에 폐하께서 평양을
다녀오시면 장군께서 이 일을 좀 거론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그 은
혜는 평생 잊지 않겠소이다.
박술희 (생각하다가) 대부 어른으로써는 당연한 걱정이십니다. 사실 때는
되었지요. 분명히 이야기 할 때가 되었습니다. 허나 뭐 은혜랄 것
까지야 있겠사옵니까? 오히려 이 나라 신료로써 그리고 폐하의 아
우로써 해야 할 말은 해 드려야지요.
오다련 그렇게 해주시겠소이까, 장군? 사실 이렇게 가슴앓이를 해온지가 꽤
되었소이다. 좀 도와주시구려, 박장군.
박술희 허허허.......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는 것인데 뭘 돕고 말고 할 것
이 있겠사옵니까? 그렇게 하시지요.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소장이 직
언을 올리겠습니다.
오다련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장군. 아이구, 이거 십 년 묵은 체증이 한
꺼번에 내려가는 것 같소이다. 고맙소이다, 장군.
박술희 허허, 뭘 그런 걸 가지구요. 허허허.....
씬 평양 가는 길
어둠 속에서도 왕건 일행의 길은 계속된다. 밤이 깊었고, 달빛이 밝
다. 복지겸이 함께 기며 말한다.
복지겸 폐하, 벌써 밤이 늦었사옵니다. 조금 더 가면 행궁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니 그곳에서 침수를 드시고 내일 다시 길을 떠나도록 하시오소
서.
왕건 그렇게 하십시다. 어느 새 우리가 평산(평주)까지 이르렀구려.
최응 그러하옵니다. 먼 길을 너무 내쳐 오신 것 같사옵니다. 잠시 쉬었다
가심이 어떠하겠사옵니까?
왕건 이제 곧 행궁에 도착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냥 가세. (하다가) 허,
참 달빛이 아주 밝네 그려. 보름달이 떴어.
능산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이 참으로 보기가 좋사옵니다.
그들 그렇게 멈추어 선다.
왕건 그렇네 그려. 아직 가을이 오려면 좀 남았는데 벌써 기러기가 보이
네 그려. 참 잘 날고 있네. 누가 한 번 저 기러기를 쏘아 맞춰보지
않겠는가? 아우가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는가?
능산 기회를 주시니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하오면 폐하, 저들 중 어느 기
러기를 쏘면 되겠사옵니까?
왕건 어느 기러기? (하다가) 허허, 이런..... 그렇다면 앞에서 가는 세 번째
가 좋겠네 그려.
능산 하오면 폐하, 그 기러기의 어느 쪽 날개를 맞추오리까?
왕건 어느 쪽? 아우가 오늘 너무 장담을 하는 것 같네, 그려. 그렇게 자
신이 있다면 왼쪽 날개를 맞추어 보게나.
모두들 ....(호기심으로 보고 있고)
왕건 대신에 맞추지 못한다면 벌주를 마시도록 하게나.
능산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허면 쏘아 올리겠사옵니다, 페하
모두들 본다. 능산이 재빨리 전통의 살 하나를 뽑아 그대로 쏘아 올
린다. 그리고 얼마 후, 그것은 신기였다. 공중에서 세 마리의 기러기
가 살을 맞아 그대로 낙하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신기해서 보고
있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뻥해서 능산
을 보던 왕건이 내군에 영을 내린다.
왕건 가서 저 기러기를 가지고 와 보라!
대답과 함께 내군 부장 장수장이 달려가 그것을 주워 와 올린다. 왕
건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왕건 자네야 말로 신궁일세, 그려. 내가 일찍이 아우의 활솜씨를 알고 있
었으나 이 정도까지인줄은 정말 몰랐네. 대단하이.
최응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신궁이시옵니다.
복지겸 능산 장군의 활솜씨는 예전부터 정평이 나있었사옵니다, 폐하.
왕건 물론 나도 알고 있었소. 그러나 오늘 다시 보니 그저 놀라워 말문이
막힐 따름이오. 사실 능산 아우는 오랫동안 내 옆에서 너무도 공이
많았었어. 그러나 이 형은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어.
능산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페하? 아우를 자애하여 주시는 것 하나로 신
은 늘 목숨을 걸고 있사옵니다.
왕건 아닐세. 그렇지 않아도 내 오래전부터 아우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
까 생각이 많았네. 그리고 자네는 아직까지 성씨가 없었어. 이 나라
의 일등공신인데도 말이야. 나는 그래서 아우에게 신씨 성에 숭겸이
라는 이름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해 왔었는데 어떻겠는가? 자네의
덕과 충의를 높이 숭상한다는 뜻일세.
능산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토록 깊이 이 아우를 생각하여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형님 페하.
왕건 이제부터는 숭겸이로 부르겠네. 아울러 이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간
일대의 모든 땅을 아우에게 하사할 것일세.
신숭겸 망극하옵니다, 폐하!
해설 신숭겸. 이렇게 해서 능산의 이름은 신숭겸이 된다. 또한 신숭겸은
이렇게 해서 평산 신씨의 시조로 불리운다. 그리고 당시 하사받았던
그 땅은 궁위전이라 하여 지금까지도 자손들이 이를 지키고 있다
한다. 그래서였을까? 신숭겸은 훗날 대구의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목
숨을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그 의리를 지킨다.
<13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