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원〉
두목
화려했던 과거는 향기로운 먼지 따라 사라지고
흐르는 물은 무정한데 풀은 절로 봄이네
해 질 무렵 동풍에 들려오는 원한 맺힌 새 울음소리
떨어지는 꽃잎은 마치 누대에서 떨어지는 사람 같아라
繁華事散逐香塵 번화사산축향진
流水無情草自春 유수무정초자춘
日暮東風怨啼鳥 일모동풍원제조
落花猶似墜樓人 낙화유사추누인
[通釋] 석숭이 부와 사치로 번성하였던 과거사는 여인들이 날리던 향기로운 먼지 따라 모두 사라졌건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물은 무정하게 예전 그대로 흐르고 초목은 절로 봄 경치를 이룬다. 해 질 무렵 봄바람에 들려오는 새소리는 원한이 맺힌 듯한데, 꽃잎은 마치 그 옛날 누대에서 몸을 던진 녹주처럼 떨어진다.
[解題] 당나라 문종(文宗) 개성(開成) 원년(元年(836)), 두목이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어 동도(東都:낙양)를 담당하고 있을 때 지은 작품이다. . 두목이 황폐해진 옛 금곡원의 터를 보고 석숭과 녹주의 옛일을 회상하며 느낀 감회를 읊은 작품이다. 앞의 두 구에서는 영화로웠던 석숭의 금곡원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모습과, 오직 강물과 초목만이 예전처럼 그대로 있음을 대비시켜 고금(古今)의 영고성쇠(榮枯盛衰)에서 느끼는 무상감을 표현하였다. 뒤의 두 구에서는 영화로운 삶을 살았던 석숭과 녹주의 비극적 종말을 봄바람 속에 들려오는 새소리와 낙화를 통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봄날 떨어지는 꽃잎을 누대 위에서 몸을 던진 녹주에 비유한 참신한 발상은 두목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시 전체가 눈앞에 펼쳐진 정경에서 촉발되는 서정을 표출하여 회고적(懷古的) 감상을 섬세하게 표출한 명편으로 평가받는다.
[集評]
○ 마지막 구절은 표현된 뜻 너머에 신묘함에 있으니, 아득하여 다함이 없다.
○ 앞의 세 구절은 경(景) 속에 정(情)이 있는데 모두 옛일을 애도하며 느끼는 창망하고 쓸쓸한 심사를 함축하고 있다. 네 번째 구절은 꽃으로 사람을 비유하였으니, 낙화로 누대에서 떨어진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봄을 슬퍼하고 옛일을 느꺼워하며, 경물을 보고 정회를 일으켜 사람과 꽃이 합쳐져 애처로움에 넋을 놓게 하는 경지를 이루었다.
역주
역주1> 金谷園(금곡원) : 진대(晉代) 석숭(石崇)의 별서(別墅) 이름이다. 지금의 하남성 낙양시 서북쪽 금곡간(金谷澗)에 옛터가 남아 있다. 석숭의 〈金谷序(금곡서)〉에 “나는 별장을 가지고 있는데 하남 경계의 금곡 냇가에 있다. 높고 낮은 곳에 맑은 샘과 무성한 숲이 있고 여러 과실과 대나무와 약초 등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다.[余有別廬 在河南界金谷澗中 或高或下 有淸泉茂樹 衆果竹木草藥之屬 莫不畢備]”라고 하였다.
역주2> 繁華事(번화사) : 석숭이 금곡원에서 누린 호화롭고 운치 있는 생활을 뜻한다. 석숭은 큰 부자로 금곡원을 매우 사치하게 꾸미고 수많은 종과 처첩을 두고 부귀한 삶을 영위하였으며, 관리와 문인들을 초대하여 풍류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역주3> 香塵(향진) : 침향목(沈香木)으로 만든 분말을 지칭한다. 진(晉)나라 왕가(王嘉)의 《拾遺記(습유기)》에 “석숭은 또 침수향(沈水香)을 가루가 되게 부숴서 분말처럼 만들고, 상아로 만든 상 위에 깔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밟게 하였다.[石崇又屑沈水之香如塵末 布象牀上 使所愛者踐之]”라고 하였다. 후대에는 향기가 나는 먼지라는 뜻으로 여자들이 걸으면 일어나는 향기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역주4> 流水(유수) : 金谷水(금곡수)를 가리킨다. 금곡수는 신안(新安)으로부터 낙양(洛陽) 동남쪽으로 흘러 금곡원을 경유하여 전하(瀍河)로 들어간다.
역주5> 東風 : 동쪽에서 부는 바람으로, 봄바람을 상징한다.
역주6> 墜樓人(추루인) : 누대에서 몸을 던진 사람이란 의미로, 석숭이 총애하던 애첩 녹주(綠珠)를 지칭한다. 석숭의 반대 세력이었던 손수(孫秀)가 녹주를 탐하여 집요하게 요구하였으나 석숭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자, 손수는 석숭을 제거할 계책을 꾸몄다. 이 때문에 석숭이 반악(潘岳) 등과 정변을 도모하였는데 손수가 계획을 미리 알고 석숭을 소환하였다. 이에 석숭이 녹주에게 “내가 지금 너로 인해 죄를 얻게 되었다.”라고 하자, 녹주는 죽음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한 뒤 누대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晉書(진서)》 〈石苞‧石崇傳(석포‧석숭전〉 참조.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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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숭(石崇, 249년 ~ 300년)은 중국 서진(西晉)의 문인으로, 석포의 막내아들이며, 자는 계륜(季倫), 아명은 제노(齊奴)이며 청주(靑州) 발해군(渤海郡) 남피현(南皮縣) 사람이다.
무제(武帝) 때 수무령(修武令)으로 관직을 시작해 성양태수(城陽太守) 등을 지내고 안양향후(安陽鄕侯)로 봉해졌다.
혜제(惠帝) 때 중랑장(中郞將), 형주자사(荊州刺史) 등의 벼슬을 하였다.
형주자사에 부임하면서 항해와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되었는데, <진서(晉書)>에는 "멀리 가는 상인과 상인을 위협하여 치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마충의 황후인 가남풍(賈南風)이 조정에서 전권을 휘두르며 가씨(賈氏) 일족의 권세가 커지자 가남풍(賈南風)의 조카인 가밀(賈謐)과 가까이 지내며 이른바 '24명의 벗(二十四友)' 가운데 하나로 불렸다. 학문과 시에도 능통하여 문인으로서의 명성도 높았다. 6권으로 된 문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사귀인(思歸引)', '사귀탄(思歸歎)' 등의 시가 전해진다.
또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는데, <진서(晉書)>와 <세설신어(世說新語)> 등에는 황제의 인척인 왕개(王愷)와 부를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낙양[洛陽]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을 지었는데, 집안을 매우 호화롭게 꾸며 뒷간도 화려한 옷을 입은 십 여명의 시녀들이 화장품과 향수를 들고 접대하게 하여 손님들은 침실인 줄 알고 놀라 돌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금곡원(金谷園)에 관리와 문인들을 초대하여 주연(酒宴)을 자주 열며 풍류를 즐겼는데, 주연(酒宴)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세 말의 술을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금곡주수(金谷酒數)'라는 말은 '술자리에서 받는 벌주 (이백의 ‘춘야도리원서‘에 나옴)를 가리키게 되었다.
석숭에게는 녹주(綠珠)라는 애첩(愛妾)이 있었는데, 피리를 잘 불 뿐 아니라 악부(樂府)도 잘 지었다. 그는 녹주를 총애하여 '원기루(苑綺樓)' 또는 '녹주루(綠珠樓)'라고 하는 백장 높이의 누각을 지었다.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의 측근이었던 손수(孫秀)가 녹주의 미색을 탐하였으나 석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300년, 사마륜이 가후(賈后)의 세력을 제거하고 전권을 장악하자, 석숭은 황문랑(黃門郞) 반악(潘岳)과 함께 사마윤(司馬允)과 사마경(司馬冏) 등과 연합해 사마륜을 제거하려 했다. 손수가 이를 알고 대군을 이끌고 금곡원을 포위하자, 녹주는 누각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였고, 석숭은 반악 등과 함께 사로잡혀 참수당했다.<위키백과>
두목(杜牧, 정원 19년(803년)~대중 6년(852년))은,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이다. 경조부(京兆府) 만년현(萬年縣, 지금의 산시 성 시안 시) 사람으로 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樊川)이다. 《통전》의 저자로 유명한 대학자 두우의 손자로, 마찬가지로 당나라 후기의 시인으로 꼽히는 두순학은 그의 서자로 알려져 있다.
성당(盛唐) 시대의 시인 두보와 작풍이 비슷하며, 노두(老杜) 두보와 구별하기 위해 소두(小杜)라고도 부르며, 동시대의 시인 이상은과 함께 「만당의 이두(李杜)」로 통칭된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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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1권 오언고풍단편 22.금곡원(金谷園)-무명씨(無名氏) |
금곡원(金谷園)
無名氏(무명씨)
當時歌舞地 (당시가무지)
不說草離離 (불설초이이)
今日歌舞盡 (금일가무진)
滿園秋露垂 (만원추로수)
그 당시 춤추고 노래하며 놀던 곳이
풀이 무성해지리라 말하지 않았지
지금은 노래와 춤 간 곳 없고
동산 가득 가을 이슬만 드리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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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숭은 낙양[洛陽]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을 지었는데, 집안을 매우 호화롭게 꾸며 뒷간도 화려한 옷을 입은 십 여명의 시녀들이 화장품과 향수를 들고 접대하게 하여 손님들은 침실인 줄 알고 놀라 돌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상기 두목의 ‘금곡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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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고문진보]금곡원(金谷園)- 두목(杜牧) / 금곡원-무명씨(無名氏)[금곡원 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