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전어도 먹을 겸 바람도 쐴 겸해서 서해안으로 내달렸다. 일부 회원들 중에는 서천의 홍원항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문화재와 자연이 어우러진 고창으로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 다행히 광주에 아는 분이 있어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하니 여행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인터체인지를 나가니 강성숙, 강영란 자매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두 분의 안내로 고창읍 사무소에 들러 관광과 관련된 자료를 받고 바로 흥덕면에 있는 연화문 당간지주를 보러 갔다. 김인동 회원이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연화문 당간지주이니 꼭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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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군 흥덕면에 있는 갈공사 연화문 당간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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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 면사무소에서 향교로 나 있는 길을 찾아 가니 길옆에 큰 팽나무가 향교 입구임을 알린다. 그 나무 옆으로 옛날 관리들의 청덕선정비가 스무 기쯤 서 있다. 관찰사와 현감을 지낸 사람들의 이름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똑 바로 가면 흥덕 향교이고 길 중간쯤 논 가운데 당간지주가 단정하게 서 있다. 좌우 대칭형의 돌기둥 두 개가 이곳이 절의 입구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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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대칭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형태가 조금은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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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 가까이 가 보니 돌기둥의 양쪽으로 연화문이 세 개씩 돋을새김 되어 있다. 위쪽에 있는 두개의 연꽃은 검은 이끼가 끼어 고색창연하고, 아래 하나의 연꽃은 화강석의 밝은 회색빛 그대로다. 전체적으로 아주 단순 소박하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지금은 없어진 갈공사(葛空寺)의 당간지주로 보인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런데 갈자가 잘못된 것 같다. 칡 갈(葛)이 아닌 목마를 갈(渴)이어야 의미가 통한다. 공(空)을 갈구한다고 해야 불교적이기 때문이다. 갈애(渴愛)가 불교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개념이라면 갈공(渴空)은 선불교가 추구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흥덕면에서 아산면과 부안면 선운사 앞을 지나 구시포로 향한다. 다른 때 같으면 이곳에서 풍천 장어 좀 먹고 가자고 난리일 텐데 이번 여행의 어종은 전어이니 ‘장어 원조집이 어디냐’ 하는 정도로 대화가 끝난다. 몇 년 만에 선운사를 오는데 그때보다는 길이 많이 좋아졌다. 차가 곰소만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내륙으로 들어가 심원, 해리를 지나 구시포에 이른다.
구시포(九市浦)는 과거 염전을 만들기 위해 수문(水門)을 설치하였는데 그 수문의 모양이 소의 구시통(구유) 같아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구시포까지는 멀기도 하다. 우리가 전화로 점심을 예약한 집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1시다. 전어를 회, 구이, 무침 순서로 주문하자 강 자매님이 준비한 대나무통술과 고창의 복분자술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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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포의 전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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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 내가 맑은 술을 먼저 먹어야 하니 대나무통술을 먹자고 제안한다. 파라핀으로 밀봉한 뚜껑을 여니 술 냄새가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소주잔에 한잔씩 따라 맛을 보니 알코올에 대나무 향기가 배어서인지 아주 부드럽다. 또 대나무 통을 통해 술이 숨을 쉬어서인지 순하기까지 하다. 곧 바로 회가 나오고 맑은 대나무술에 먹는 전어 한 점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전어회의 얕은맛이 순한 대나무술과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어서 복분자주에 구이, 무침 등을 맛있게 먹는다. 복분자주는 사실 서양의 포도주와 비교해 손색이 전혀 없는 훌륭한 술이다. 고창군이 복분자를 가공해 올리는 수입이 연간 수백억은 된다고 하니 복분자는 이제 선운사, 인촌과 미당, 고인돌과 함께 고창의 명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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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농장에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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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 전어와 칼국수로 점심을 즐기고 찾아간 곳이 공음면에 있는 학원농장이다. 이 농장은 농업이 아닌 관광업을 주로 하는 농장으로 봄이면 청보리밭 축제를, 가을이면 메밀꽃 축제를 연다. 현장에 가보니 메밀꽃이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도 하고, 겨울에 싸락눈이 온 들판을 뒤덮은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을 60년 이상 산 나이든 회원들이 메밀밭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아주 즐거운 표정이다. 메밀밭 경계에는 해바라기들이 노란꽃을 피워 하얀 메밀꽃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메밀꽃의 즐거움에 취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오후 5시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무장읍성으로 간다. 무장읍성은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무장의 관아 건물로 사적 제346호이다. 조선 태종때 무송현과 장사현을 합쳐 무장진(茂長鎭)을 만들고 진관을 두 현의 중간 지점인 이곳 성내리에 만들었다고 한다. 방어성인 옹성의 형태로 만들어졌고 원래 13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과 남문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건물로는 동헌(東軒)인 취백당(翠白堂),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鎭茂樓), 객사인 송사지관(松沙之館)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무장읍성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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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읍성의 남문인 진무루: 저녁의 어스름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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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 취백당은 무장현감이 근무하던 동헌으로 조선 명종 20년(1565)에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3년 원형에 가깝게 보수한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겹처마 양식 건물로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진무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무장읍성의 정문 겸 무장진의 파수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무루에 오르면 무장현 지역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송사지관은 무장현의 객사로 선조 14년(1581)에 건립되었다. 송사지관은 수령이 임금께 예를 올리는 정청과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인 좌․우익 헌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로 오르는 계단 양 옆에 조각이 특이한데 문양이 구름과 연꽃 등으로 보인다. 혹자는 호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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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동헌인 취백당의 내부 모습: 가운데 연대기와 싯구 등이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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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 해가 벌서 서쪽으로 상당히 기울었다. 나오는 길에 현감들의 선정비를 보고 이렇게 선정을 베푼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째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배를 곯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가는 곳마다 선정비가 없는 곳이 없으니. 일부 현감의 선정비는 깨진 채 뒹굴고 있다. 안 세운 것만도 못한 선정비다.
우리 일행은 고창군 구시포로의 하루 여행을 정리한다. 다시 고창읍내를 지나 백양사 인터체인지로 향한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강씨 자매님들과 헤어진다. 두 분은 남으로 그리고 우리는 북으로 향한다. 어둠이 전보다 조금은 더 짙어졌다. 가을이어서인지 밤공기도 조금은 차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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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뒹굴고 있는 선정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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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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