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느림보 리무진이 제천 한수면과 충주 수안보면에 걸쳐 앉은 북바위산 산행 들머리인
물레방아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 오전 10시 17분 경이다.
느릿하고 젊잖은 충청도 사람들의 성품과는 달리 충청도 쪽의 대부분 산들은 의외로 경사면이 가파른
산이 많은데 북바위로 오르는 이곳 또한 초반 기세가 여간 만만치가 않다.
습한 날씨 덕분에 머리와 얼굴은 금새 땀범벅이 되어 생수인지 땀인지 구분키 어려운 물방울이 마치
미친년 인견 속고쟁이에서 흘러 내리는 오줌 사태처럼 쏟아져 내린다.
예전엔 우리나라의 온천이라고 해 봐야 몇 군데가 되질 않았고 별 다른 휴양시설이 없던 그 시절엔 온양이나
대전의 유성으로 신혼여행을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부산의 동래와 경북의 백암 그리고 충청도의 이곳
수안보 온천이 유명했었는데 경상도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중간 기착지인 이곳 수안보온천은 온천욕과
산채정식을 비롯한 여러 향토음식을 즐기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로 성시를 이루던 곳이라 한때는 스키장도
건설하였고 한국콘도와 상록호텔을 비롯한 여러 대형 숙박시설과 함께 물놀이와 동시에 식사와 여흥을 즐기던
대형 레져 시설도 들어 섰었으나 어느 순간 이곳 상권이 된서리를 맞게 된다.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지하수를 개발하는 기술이 너무 발달하여 동네마다 골골이 온천을 뚫지 않은 곳이 없게 되자 온천욕은
적당히 동네에서 하는 걸로 생활문화가 바뀌게 되고 두번째 결정적인 요인은 수안보온천을 경유하는 지방도
뒷편으로 자동차만 쌩쌩 달리는 우회도로가 개설되어 지나던 과객들이 구태여 수안보온천엘 들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켄터기 후라이드 치킨의 창업주 커넬 샌더스 영감님의 경우이다.
도로변에서 휴게음식점을 경영하며 번창일로에 있던 샌더스는 수안보온천처럼 우회도로가 생기자 말 그대로
파산을 하게 되고 예폔네 마져 제 갈 길을 찾아 나서게 되니 주위의 사람들은 아무리 샌더스가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65세의 나이에 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들 한다. 집안에 쳐 박혀
여러 궁리를 하던 샌더스는 어릴 적 아일랜드 계열의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던 닭튀김이 생각나서 이를 바탕으로
개발하여 세계적인 성공신화를 만들게 된다. 우리나라엔
두산 그룹에서 KFC 라는 상호로 프렌챠이징 영업을 하고 있으며 매장 입구엔 안경을 쓰신, 젊잖아 보이는 샌더스
영감님이 항시 나비 넥타이를 매고 서 계신다. 요즘은 고향땅 안동엘
갈 일도 없어 졌고 같이 온천욕을 하러 다닐 쎄컨드도 없는 신세이다 보니 작금엔 수안보온천을 가 보질 못해
수안보온천의 근황은 잘 모르겠다. 내 마지막 꿈이란게 딱 한가지 있다면
30대 극초반의 중국땅 달기처럼 어여쁜 쎄컨드가 운전하는 비엠떠블유 조수석 다시방에 맨발을 처억 올리곤
션한 켄맥주 연신 깨트리며 수안보온천으로 고우 고우 하며 화려했던 절멋던 시절의 숫놈재미 다시 한번 더
보는게 꿈이라면 꿈이다. 에휴 구냥 꿈이라면 제발 깨지만은 말아 주었으면 증말 좋겠네요.
한참을 헥헥 거리며 오르다 보면 신비스런 북바위가 상부 부터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 내기 시작하는데 마치
떠 오르는 보름달처럼 아님 가지밭에서 오줌 누는 허멀건 촌색시 엉덩이 처럼 두둥실 떠 오른다.
보통 사람들은 북바위의 형상으로 보곤 마치 북의 한 면을 보는 듯 하다고들 하지만 내 눈에 북 보단
장고의 한 면과 흡사해 보인다. 우리의 전통악기인 장고는
허리 부분이 개미처럼 잘록하여 세요고라 부르기도 하고 노루 장짜 개 구짜를 써서 장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른쪽 채로 치는 채편엔 노루 가죽을 왼편 손바닥으로 치는 북편엔 개 가죽을 대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전에는 재수 좋은 과부가 가지밭에서 소피를 보았지만 요즘엔 파프리카 밭에서 일을 보고 전에는 앉아도
늘 요강 꼭지 위에 앉았지만 요즘은 큼직한 무쇠솥 뚜껑 꼭지 위에 흐 흐.
장고든 북이든 머든 어느 전망 좋은 암릉에 오르니 우리 느림보 여성대원들이 가드 레일 옆에 올챙이 떼 처럼
소리를 빽빽 질르며 몰려 있다. 언능
달려 가 보니 가파른 바위 밑으로 떨어 진 스틱을 건져 올리기 위해 푸르나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 갔었고
원위치를 할려고 암벽을 다시 오르노라니 마지막 위치엔 잡고 매 달릴 앵커가 없어 오늘 새로 오신 남성 대원
한 분이 암릉 위에서 손을 아래도 뻗었으나 약간 못 미치는 상태라 얼결에 나도 달려 들어 한손은 가드 레일을
또 다른 한손은 그 남성대원의 손을 잡으니 밑에 있는 푸르나님을 올리기에 헐 수월해 보이는 건 좋은데 젠장
여성 대원 들은 어마 어마 하며 소리만 꽥꽥 질를 따름이지 도와줄 생각은 생쥐 오줌방울 만큼도 없어 보인다.
은근히 부화가 치밀어 여성대원들도 내려 와서 쬼 도와 주면 어디 덧날 일이 있냐고 했더니만 여성 대원들은
내려 가 봐야 당신처럼 붙잡고 늘어 질 가운데 토막이 없는지라 무용지물 이란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주둥이를 꾸욱 다물었다. 남자 아이가 대 여섯살이 되도록 엄마랑 여탕에 가서 목욕을 잘 하고
오더니만 어느 날 할머니에게 앞으로는 여탕엘 안 가겠다고 한다. 아빠랑 같이
남탕엘 가야 미끈하여 넘어 지드래도 붙잡고 늘어 질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잠시 시간을 역순하여
오전에 물레방아 휴게소에서 산행 채비를 갖추는데 한 여성대원이 가까이 다가 온다.
우리 느림보의 원년 멤버이신 로즈님 이시다. 반가이 악수를 나누며 이 여성분의 손을 어루 만지고 또 어루
만지노라니 어느 때 어느 시절의 어떤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 간다.
1973년엔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쾌거가 날아 든다.
대한민국 최초로 구기종목에서 세계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강호 일본과 중국을 연 이어 격파한
사라예보의 두 영웅은 탁구 여자 복식조를 이루었던 이 에리사와 정 현숙 선수 였었다. 귀국하여선
전국을 카퍼레드하며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었고 이 에리사와 정 현숙 선수는 한국 체육계에 후일 지대한
공헌을 하시게 되는데 이 에리사 선수는 명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태릉 선수촌 촌장에 이어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 까지 역임을 하시게 된다. 정 현숙 선수는 좀 전에 악수할 때 처럼
라켓을 거머 쥐곤 쉐이크 핸드의 손을 앞 뒤로 사용하여 라켓 앞과 뒤에 붙은 이질라바를 사용하여 테이블에서
상대방의 공을 계속하여 커트로 걷어 내며 기운을 뺏버리고 펜을 쥘 때 처럼 두 손을 오무리는 펜 호울더의
이 에리사 선수는 넷트에 바짝 붙어 상대방의 공을 눈 꿈쩍 하는 순간에 각도를 틀면서 되 받아 치는 전형적인
전진속공수이다. 그때 이 에리사 선수가 개발한 변칙 타구인 루프 드라이브(LOOP DRIVE)는 일종의 유행어
처럼 세간에 돌아 다녔다. 이 에리사 선수는 54년 생이고 서울여상 출신인 반면에 두살 연상인 정 현숙 선수는
동덕여고 출신이였다.
오늘 나와 악수를 나눈 로즈님은 불운하게도 이 두 영웅과 동시대에 태어난 죄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
하진 못하셨지만 이 에리사 선수가 졸업한 탁구 명문 서울 여상에서 펜 홀더 타입의 전진속공수로 명성을
날리시던 분이다. 남자가 두줄기 눈물과 똑 똑 떨어지는 한줄기 오줌방울만 흘리지 말아야 할 뿐 더러 절대로
일 없이 깝죽거리지 말아야 할 두 군상의 여성들이 있다. 전직 배구나 탁구 선수를 말한다.
전광석화 처럼 빠른 싸대기 함 맞아 본 일이 있남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위력은 으 으 음
나 처럼 맞아 본 넘이 아니면 절때로 알 수가 없는 노릇이졈.
북바위에서 사시리계곡쪽 하산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여 에이팀이 간다는 운무 속의 박쥐봉을 올려다
보니 도무지 하산시간을 맞출 자신이 없이 구냥 쉽게 하산하는 뫼약동쪽 콘크리트 도로를 선택하는 용단을
내린다. 도로로 내려 와
문을 닫은 휴게매점의 수도에서 간단히 등산화를 딲고 나니 연락을 받은 느림보 리무진을 운영하시는
전 사장님께서 그 등치 큰 관광버스를 끌고 우리를 태우기 위해 오신다. 여간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니다.
이 전사장님의 인품을 보노라니 근쟈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종근당의 이 장한 회장이 문득 생각난다.
나이도 어리고 자신과는 위치관계가 도무지 깜냥도 되질 않는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해 대는 그런 이 장한 회장이 운전대를 잡고 우리 느림보의 전 사장님 같은 분이 회장자리에 앉으면
참으로 좋은 세상이 올 것이란 생각이 꿀뚝처럼 간절하다.
다음 주 홍천 응복산에 뵙기로 하고 이만
분당 탄천변에서 월악산 산양 돌삐 드립니다.
첫댓글 돌삐님 더운날 힘드셨지요?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숨이 턱까지 차고..
누가 이런 고생 시켜서 한다면 쌍욕 나올판..ㅎ
그러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 산..
그 산에서 우리는 오른者만이 느끼는 희열과 행복을 느끼며
다음 산행을 기약합니다.
산에서 얻는 청정한 마음의 자유..
돌삐님의 장편의 산행기는 그 산길에서 나오는거 맞지요?ㅎ
한때 온 국민의 자존심을 팍팍 세워 줬던 두 탁구 여제들의 추억담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합니다.
담부터 로즈님 앞에서 까불지 말라는 뜻이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