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산(鵲城山 496.1m)은 까치성이라고도 하며, 옛 목천현의 진산(鎭山)이다.
임진왜란 때 학자 이복장이 왜병을 물리쳤고, 동학군이 임시 주둔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작성(鵲城)’이라는 이름은 ‘까치들이 홀연히 무리를 지어 산을 뒤덮어 왜적들이 놀라 달아났다’하는 전설에 기인한다.
정상에는 이복장이 세운 성터가 남아 있고, 산기슭 남쪽에는 주인을 구하고 죽은 의견(義犬)의 전설이 전하는 개목고개가 있다.
이복장(李福長 1546~1630)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작성산에서 성벽을 수비하였는데, 10여 일 동안 수백의 왜군을 무찔렀다.
작성산 북쪽으로는 봉암산과 개죽산, 남쪽으론 은석산과 고찰 은석사로 이어진다.
은석산(銀石山 455.8m)은 산세가 수려하고 수석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은 곳이다.
산 정상부에 기우단이 있으며, 조금 아래에는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의 묘가 있다.
박문수(숙종 17년 1691~영조 32년 1756)는 본관이 고령이고, 호는 기은(耆隱)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암행어사로 활약하였고, 어영대장(御營大將)과 참찬(右參贊)을 지냈으며 후에 충헌(忠憲)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상봉산(上峯山 237m)은 은석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마지막 봉우리를 만든 병천의 진산이다.
병천(竝川)은 병천천과 광기천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아내’, ‘아우내’라고도 하고도 한다. *아우를 병(竝).
‘아우내 장터’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인 곳이며, 가까이 매봉산 아래에는 ‘유관순열사유적’과 ‘생가지’가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몇일 전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 세웠다.
산행 당일 현지에는 비가 그칠 것이라는 예보에 안도를 하며 왔다갔다하는 빗속을 뚫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산행코스: 수협천안물류센터입구-수협연수원-능선진입-△231.7-작성산-개목고개(240)-임도-정자-산길진입-은석산(U턴)-박문수묘-은석사-상봉산-병천초교(12.7km,4.5h)
궤적.
임도를 따랐더니 거리에 비해 속도가 난 것.
고도표.
<월간 산>
<월간 산> 악돌이 만화.
미리 준비한 표지기.
네비에 '수협천안물류센터'를 입력하여...
물류센터 앞에 버스를 댔다.
들머리는 곧장 '수협천안물류센터'로 올라...
다시 '수협중앙회연수원' 방향.
'수협중앙회연수원'을 지나 우측 산밑으로...
휀스를 좌측으로 끼고 오른다.
시설물들을 벗어나면...
곧 묘목을 심어 놓은 밭 좌측 나즈막한 능선이 산길.
숲속에 빤질빤질하게 등로가 숨어 있다.
얼마전까지 내린 비는 산길을 촉촉히 적셔 놓았고, 나뭇가지에 맺힌 빗방울들은 피톤치드를 한껏 뿜어내고 있다. 힐링의 시간이다.
안내판엔 '수협연수원'을 기점으로 가리킨다.
작성산 4km 중에서 딱 절반을 왔다.
업다운이 평이한 등로에서 한 차례 된비알을 그친 뒤...
빗물 머금은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까시아를 닮은 듯하나 이름이 특이했는데, 그만~?§
작성산에 올라서자 식사를 끝내고 뒷모습을 보이는 선등자들.
정상석 앞에는 '의병장 이조참판 이복장, 7개현 수성 기념'표목이 세워져 있다.
연거푸 셔터를 누른 뒤...
정상석 뒷면을 확인한다.
작성산 정상의 안내판과...
인물사진.
이정표 옆에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었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뒤 가파른 내림길.
개목고개에 내려섰다.
진동 설정으로 뒤늦게 받은 '한덤'님의 전화는 "개목고개에서 은석산으로 곧장 직등하지 말고, 임도를 따르라"는 것이다.
"강추한다"고 하였다. 추천자는 은석산을 다녀갔다는 '권 형님'.
권하는 장사 밑지지 않는다고 믿고 따랐는데, 지금도 정답인지 아리송.
개목고개의 유래비. '개목고개'는 고도 약 240m로서 '구항령(狗項嶺)'이라고도 한다.
은석산 오르는 길은 풀숲에 숨은 나무계단. 가파른 오름길이지만 너무 겁을 먹은 듯 잠깐 구수회의.
결론은 그들은 직등, 우리는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 내리막은 백석대 연수원.
우리는 가전리 방향.
여러 시비(詩碑)와 안내판을 지나자...
정자를 만난다. 일행 세 분은 여기서 쉬어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자에서 150여m 지나 휘어지는 지점에서 흙이 드러난 산길로 올라선다. 이 길은 의외로 편한 길이었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상봉산과 은석산으로 이어진 기존 등로에 들어섰고...
수월하게 임도를 따른다고 거리가 늘어진 은석산을 헐레벌떡 치고 오른다.
은석산에 올라...
표지기를 건 뒤...
이정표도 카메라에 담은 뒤...
벤치가 있는 '암행어사 박문수 묘' 갈림길에서 계단을 내려선다.
다시 은석사 방향.
'박문수 묘'에 내려선다.
박문수는 평생 암행어사를 지낸 것처럼 생각되지만 암행어사는 아니었고, 지역도 영남에 국한되었다.
박문수가 환곡(還穀)을 백성들의 밑천으로 돌렸고, 탐관오리들을 다스리며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이 일들이 확대 재생산돼 설화와 전설로 남은 것이다.
보통의 사대부 묘에는 문인석이 서 있기 마련이지만 박문수 묘 앞에는 특이하게 무인석(武人石)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병을 금했던 조선시대에 군사력을 의미하는 무인석을 세우기가 부담스러웠을 텐데.
예학의 거두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에 따르면 무관(武官)도 무인석을 세울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하여 난을 진압한 공신 등 권문세가 일부에서 간간히 무인석을 조성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중종반정 1등공신 성희안, 이괄의 난을 평정한 이수일, 계유정란 공신 박중손과 한명회, 중종 때의 병조판서 이장곤 등의 묘에 무인석이 서 있다. 대부분 무인이거나 난을 진압한 공신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박문수 묘엔 왜 무인석이 서 있을까?
영조 때인 1728년 소론과 남인이 일으킨 이인좌(李麟佐)의 난과 관련이 있다.
이 난을 진압한 사람은 분무공신(奮武功臣) 1등으로 책정된 오명항(吳命恒, 1673~1728)이다.
이 때 오명항을 따라 종사관으로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이 박문수(1691~1756),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이다.
이들의 묘에는 모두 당당하게 칼을 짚은 무인석이 서 있다.
다시 양 옆엔 망주석(望柱石) 두 개.
석주의 다람쥐 조각을 세호(細虎)라고 한다. 다람쥐는 우주상행(右柱上行)과 좌주하행(左柱下行)이 원칙.
이들 무인석은 조선의 르네상스시대 답게 모두 완성도가 뛰어나 '최천약(崔天若)'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최천약은 숙종과 영조 대 과학기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격인 인물이다.
그는 각종 천문 기계, 무기, 악기를 제작했고, 왕릉 건설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좌우에 도열한 무인석.
비석엔 '조선행병조판서영성군 증영의정충헌박공문수묘'.
박문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정치가로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고령(高靈) 박씨로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소론에 속한 인물이면서 항상 공(公)적 입장을 잃지 않았다. 또 재정과 군사 개혁, 백성 구휼에 앞장선 실무형 관료였다.
내려서는 길은 나무계단.
은석사에 내려서자 권형님과 한덤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은석사 보광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두 문화재는...
보광정 안에 모셔져 있다.
‘천안 은석사 목조여래좌상(天安銀石寺木造如來坐像)’과 후불 탱화인 ‘은석사 아미타극락도(銀石寺阿彌陀極樂圖)’.
‘은석사 목조여래죄상’은 안정적인 비례와 근엄한 인상, 단순한 옷주름이 특징으로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 불상이다.
그 옆의 흔들린 사진.
임도를 따라 해우소를 지나...
모퉁이 간이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능선을 이어가면...
다시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의 이정표.
뒤돌아 본 모습.
임도를 거슬러 다시 산길.
정자가 있는 곳이...
상봉산이다.
이정표에 은석사가 2.3km, 병천이 1.2km.
2층 팔각정자는...
상봉정(上峯亭).
낙관엔 명장(名匠) 유철규(柳鐵圭).
간간이 흩부리는 비의 영향인지 유독 뚜꺼비가 많이 보인다.
상봉산 표지기.
생활관 방향.
병천초등학교 방향.
학교 뒤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
학교 옆 낮은 담장을 따라 내려가...
뒤돌아 보는 모습.
병천초등학교는 정문이 따로 있고, 여기는 학교 주차장 입구다.
우리 버스가 대 있는 곳은 병천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 작은 로타리 옆의 주차장이다.
주차장 끄트머리에 우리 버스가 보인다.
씻을 곳은 버스 뒤 회사건물 뒷편 물호스. "와우~~"
落照(낙조)
落照吐紅揭碧山(낙조토홍괘벽산) 낙조는 붉은 빛을 토하고 벽산에 걸렸는데
寒鴉尺盡白雲間(한아척진백운간) 찬 갈가마귀는 백운 사이에 날기를 그쳤네.
問津行客鞭應急(문진행객편응급) 나루터를 묻는 나그네의 말채찍은 급한데
尋寺歸僧杖不閑(심사귀승장불한) 절을 찾는 스님의 지팡이 한가하지 않네.
放牧園中牛帶影(방목원중우대영) 방목하는 들판에는 소 그림자 길고
望夫臺上妾底鬟(망부대상첩저환) 망부대 위에는 아내의 쪽진머리 낮더라.
蒼煙古木溪南路(창연고목계남리) 고목에 푸른 연기 서린 개울 남쪽 길에는
短髮樵童弄笛還(단발초동농적환) 단발 초동이 피리 불며 돌아오더라.
-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지은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