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캠핑대전에서 파키스탄 대학생을 만나다
처음 인도인이나 스리랑카 젊은이라 생각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예..... 예.... 파키스탄에서 왔습니다"
"아하~~~"
나는 파키스탄 인도 국경 도시 라호르시를 생각했다
41도의 무더위,수많은 인파
ㅡ도무지 어디를 어떻게 해서 박물관과 불교 유적지를
답사할 것인가 아득했으니,이 젊은이를 보니 그 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학생은 한국과학연합대학(?)에 다닌다 했다.
카이스트인지,과학대학인지?
한국과 파키스탄의 정치와 문화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고,그는 한국의 선진문명 내지 문화에 크게 감동해
머나먼 유학의 길을 온 것이라 했다.
나는 라호르 박물관의 부처님 고행상을 참배한 기억
과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참을 묻고 또 지도를 보며 찾은 라호르 박물관
그리고 이슬라마바드,페샤와르,탁실라로 이어지는
무덥고 또한 대중교통편이 열악한 상황에서 불교
유적지를 찾았으니,옛 불교문화가 대거 보존ㆍ전시되고
있었으나 또한 대거 파괴되고 부처님 두부가 파괴되어
옛 찬란했던 간다라 문명의 부처님 역사가 일면 쓸쓸한
부분도 있었다.나는 두루 참배하다 해머로 머리를 맞은
듯 부처님 고행상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인간 고행의 극한, 자기 생명을 바친 정진,아니 중생사랑
을 위해 한 목숨 바친 청년 붇다의 고행상이 유리창 넘어
로 비출 때, 나는 온몸의 자아가 다 붕괴되듯,혹은 모든
전생이 다 지워지고 무너지듯 온 몸의 전율을 느꼈다.
여기서 파키스탄 젊은 연구생(31살)을 만나 그 옛날
파키스탄 불적지를 답사연구를 갔던 생각은 지금 년식
이 조금 지난 마당에 큰 추억이요,스스로 수행의 여정
을 되돌아 보는 의미있는 기억 저편이었다.
무더위와 전염병,치안부재와 전쟁의 현장에서 기어코
부처님 유적과 부처님 유물을 친견해야 한다는 절박함
은 젊은 광기와 치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생각
이다.
그래 꼭 잘 먹고 풍요롭게 사는 것만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 고행상 ! 우리는 언뜻 내가 바라는 권력
재물,인복등 여러가지를 추구힌며 그 어느 선상에서
이루어지면 '행복 만땅! 이제 더 원하는 것 없어' 하겠지
만, 기실 그 목적하는 바 재물,권세,인기등을 얻었다 해
실로 그 전보다 반드시 행복하고 자유로울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때로는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땀나는 한걸음 한걸음 여정이 실로 행복이고 해탈이었음
을 아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이뤘지만 결국 붕괴되는
파국을 맛본후에 깨닫게 되는 모습이라 하겠다.
부처님 고행상앞에서 나의 사유
그래 현실에서 조금 모자라도 좋다
내 소구하는 일이 조금은 성취되지 않음도 좋다
조금은 바람이 불고
조금은 자신이 흔들려도 좋다.
조금은 궁핍해도 좋고
조금은 서러위도 좋고
조금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좋다.
부처님 고행상
그 극한의 자기정진과 보살사유속에 이미 우리 중생의
행복은 완전히 갖춰짐이다.
부처님 고행속에 우리들의 자유는 이미 완성됨이다.
파키스탄 젊은 대학생과 많은 말을 나눴지만 나는
오직 부처님 고행상에 내 모든 의식이 꽃혀 있었다.
불기 2568.6.9 0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