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버지
노병철
난 한 번도 내 아버지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연히 내 엄마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대가리가 굵어지면서 아랫마을 개똥이에게 또 하나의 젊은 엄마가 생겨 짭짤하게 용돈 챙기는 것을 보고 나도 새엄마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새 아버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내 성이 아버지와 다르게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요즘은 부모라는 개념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단순했던 개념이 계부, 계모가 생기므로 해서 조금 복잡해지는 관계 설정이 된다. 입양되어 간 양부모와는 다른 개념의 부모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결혼한 부부 가운데 네 쌍 중에 한 쌍은 이혼한다고 한다. 이들이 혼자 살지 않고 재혼(再婚) 혹은 삼혼(三婚), 사혼(四婚)을 한다고 가정해 보면 낳은 애들은 상당히 복잡한 족보를 가지게 된다.
어릴 때 친구 아버지는 장 씨인데 친구는 김 씨라 어린 내가 많이 혼란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내 짧은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가지 않은 일이었기에 엄마에게 물어봤다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데 관심 가진다고 뒤지게 맞을 뻔했다. 우리나라는 결혼해도 여자나 남자 성이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애들 성은 부모 중 어느 쪽으로 다 가능하다고 되었고 심지어는 엄마가 재혼해도 재혼한 남자 성으로도 애들 성을 바꿀 수 있다. 이 말인 즉 성(姓)으로서는 더는 혈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끔 김박영숙이란 이름을 보는데 부모의 성을 같이 붙여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 가부장적 전통 성씨를 거부하는 페미적인 성격이 강해 괜한 분란을 일으킬까 싶어 대놓고 묻지는 않았는데 앞에 오는 성이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만약 아버지 성이 앞이라면 이 또한 페미로선 거부감이 드는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름을 자기 부모가 지어주었다면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현재 스페인 문화권 사람들은 양성(兩姓) 쓰기를 한다. 김박영숙이 장이철수와 결혼하면 그 자식 이름은 부모 이름을 따서 ‘장이김박동수’가 되는 건가? 뭐가 이래 복잡한지 모르겠다.
일본에선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일본은 결혼과 동시에 여자 성이 남자 성으로 바뀐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도 그런 줄 알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선 부부가 의논해서 어느 성으로 할 것인지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일본은 선택이 아니다. 무조건이다. 미얀마, 몽골은 성이 없다. 이름만 있다. 그래서 이 나라들도 이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요즘 우리나라엔 귀화한 외국인들이 하도 많아 2백여 개의 성을 가지고 있던 나라가 이젠 6천 개 가까이 된다.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성도 4천 개가 넘는단다. 단일민족이라고 떠들면서 순수혈통을 자랑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은 성명이 아니라 씨명(氏名)이라고 하는데 원래 무사 아래 계급에는 성씨를 가질 수 없게 하다가 메이지 시대에 와서야 '성씨 의무령'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이 씨(氏)를 갖게 된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빠르다. 우리나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대부분의 백성에게는 성이 없었다. 고려 때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는 봉미제도가 시행된 이후 성과 본관이 서서히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귀족 중심이었고 조선 초기까지 인구의 90%가 성씨가 없었다고 한다. 왜란과 호란 이후 성씨와 족보가 없으면 상민으로 전락 되어 군역을 져야 했기 때문에 족보를 사들여 양반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40%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성을 가지게 된 것은 조선 말기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 바로 전 민적법에 의해서다. 모든 사람이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가 되었다. 이때부터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양반 성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족보를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을 성씨로 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인구의 과반수나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전주 이씨 대동보에 10만 명을 더 넣은 일도 바로 이때이다. 성씨의 종류가 4천 개가 넘는 중국이나 10만 개가 넘는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은 성씨의 종류가 매우 적고, 그마저 인구도 편향된 이유이기도 하다. 졸지에 전 국민이 양반이 되었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요즘도 잘나가는 문중 2백여 곳은 제사를 지낼 것이다. 물론 그 집 자손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택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말이다. 그 뼈대 있는 문중에 한번 묻고 싶다. 딸애가 외국인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의 성을 그 집 문중 성으로 한다면 그 문중에선 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사실 우리 집안 문중에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딸이 김 씨랑 결혼했는데 자식에게 우리 성을 붙인다면 문중에선 받을 수 있냐고. 질문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답이 없다. 조상에 대한 개념 정리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새 아버지가 두 명 아니 세 명 되는 세상이 곧 온다. 애들이 뭔 죄가 있어 이 집안 묘사 갔다가 저 집안 청사제 갔다 해야 하는지 설명을 준비해야 할 때다.
"사돈지 준비하셨는가?"
"그게 뭔데요?"
첫댓글 성을 없애고 그냥 자기들 짓고 싶은 대로 이름 지으면 쉽게 해결 될 것으로 생각 합니다.^^
우리의 삶엔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거대한 기류가 흐른다고 봅니다.
그 기류에 따라(원하고 원하지 않고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몹쓸병을 얻을 수도 있고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재혼을 두 번 할 수도 있고~~~~
내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듯요.
이렇든 저렇든 우리에겐 너무도 귀한 삶이 아니겠는지요.
공감합니다 ^^
우리 문중에도 조카가 장씨의 딸인데 엄마의 재혼으로 박씨의 딸이 되었어요
요즘 아이들, 족보 그런 것 관심없어요 지 먹고 살기도 바쁘고 3포 5포 N포 시대에
무슨 의미 있나요 재혼 이혼 그건 이제 문제도 아니구요
자기 인생 알아서 살면 됩니다 즐겁고 건강하게~~
제가 아는 분은 학원 원장인데 새 아내가 데려온 딸의 성을 따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걸 보았습니다 박원장에서 양원장으로 ~ 그런데 또 이혼했어요 다음엔 어떤 원장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