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사도행전 9장 36-37, 39하-40절. [36] 그런데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가인데,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37] 그 무렵에 이 여자가 병이 들어서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겨서 다락방에 두었다. … [39하] 베드로가 그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그를 다락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지낼 때에 만들어 둔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시신 쪽으로 몸을 돌려서, “다비다여,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 여자는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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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질병과 상관없이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많은 사람들의 제일의 소원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책에 나오는 질병을 고치는 기적 이야기를 보게 되면, 대뜸 자신에게 대입해서, 내가 그 경우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 받는 일을 연상하게 됩니다.
아람어로는 다비다였고, 이를 희랍어로 번역해서 ‘도르가’ 라고도 불렀다 하는데. 그 뜻은 ‘가젤 영양’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병들어 죽었다가, 베드로의 치유기도를 받고서, 살아났습니다. 그가 남달리 환생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요?
( 1 ) 그가 “착한 일을 많이 했고, 특별히 구제사업을 많이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행 9:36) 그 보상이었을까요?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비다에게, ‘다시 가서 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오너라’ 하실 수도 있겠지만 ‘수고 많았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거라’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 2 ) 예수님의 으뜸 제자 베드로의 간구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환생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때는 초대교회가 막 개척기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의 반석인 베드로와 함께 하심을 드러내는 일은 대단히 요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도들이 누구든, 환생해서 두번째 삶을 살다가 죽기를 바라서, 베드로에게 졸라 댄다면, 그것도 초대교회를 힘들게 만드는 일이 될 수가 있으니까요.
( 3 ) 베드로가 다락방에 올라가 만났던 여신도들이 다비다의 업적을 칭송하면서, 하나님께서 다비다를 일찍 데려가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녕 잘못하신 일이라는 투로 불평했기 때문이라면, 그래서 그가 환생하도록 기도한 것이라면, 누구는 잘 데려 가신 것이니, 그냥 두고, 누구는 잘못 데려 가셨으니, 다시 불러 오고, 하는 이상한 관행이 생기게 되겠지요.
위의 세 가지 점을 보면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누구를 데려 가신 것은 너무 빨랐다, 누구는 너무 늦게 데려 가셨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을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다비다를 왜 살리셨냐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다비다를 다시 세상에 잠시 더 두시기를 바라셨다고 말해야 합니다.
저에게 여러가지 병 증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명을 주셔서, 저를 항상 경계하시는 손길에 감사 드리고, 고혈압을 주셔서, 그나마 절제하게 해 주심을 감사 드리며, 심장 판막에 고장을 주셔서, 언제 데려가실는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 드립니다.
제 아내가 무릎을 다쳐서 통깁스를 한 채, 이 꽃피는 4, 5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출가한 저희 아들 딸들이 어머니를 아낄 기회를 주시고, 저에게는 아내를 밀착 봉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저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나이다. 저희의 건강과 생활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 만이 드러나는 데에 쓰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