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
김영석
이 허전함 참 오래간다
무리에서 떨어진다는 것
외톨이 된다는 것은 권태로운 즐거움
혼자 즐겨본다
발 까닥까닥 놀아보는 늦은 오후
저 혼자 피어있다
---김영석 시집 {안녕, 잘 지내지?}에서
혼자 핀 꽃은 외롭고 쓸쓸하고, 무리를 지어 핀 꽃은 아름답다. 모든 생명체는 무리를 짓는 것이 근본 법칙이고, 이것이 종족의 명령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형벌의 고통’은 무리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 홀로된 자의 고통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뭄과 기근, 대홍수와 천재지변, 그리고 수많은 짐승과 외부의 적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몸이 병 들거나 두 발로 설 수 없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듯이, ‘혼자라는 질병’은 그 어떤 통치약도 없는 것이다. “무리에서 떨어진다는 것/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권태로운 즐거움”이 아니라 생사불명의 혼돈이며, 어느 누구도 두 번 다시 겪어보고 싶은 않은 너무나도 끔찍한 재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홀로된 자의 고독과 즐거움은 망망대해의 표류가 아닌, 언제, 어느 때나 돌아갈 곳이 있는 자의 콧노래에 지나지 않는다. 부잣집 아들이 자기 스스로 사막횡단 여행을 떠난 것과도 같고,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의 교수가 절해고도의 외딴 섬에서 학문연구에 몰두를 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안전벨트도 있고, 구명보트도 있다. 비상식량도 넉넉하고, 그가 소속된 사회로부터 온갖 특전과 특혜도 받을 수가 있다면 홀로된 자의 고독은 김영석 시인의 [채송화]처럼 아름답고, 그처럼 즐겁고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리로부터 떨어지면 존재의 근거를 잃게 되고, 무리 속에 갇혀 있으면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홀로된 자의 자유도 자유가 아닌 병이고, 무리 속의 행복도 행복이 아닌 병이다. 홀로된 자의 행복은 공허하고, 무리 속의 행복은 자아 상실의 질병과도 같다.
홀로된 자는 끊임없이 그가 소속된 무리의 건강과 행복을 연구해야 하고, 공동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자는 끊임없이 공동체 사회를 떠나 자기 자신의 행복을 연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발 까닥까닥 놀아보는 늦은 오후”, 김영석 시인의 [채송화]는 “저 혼자 피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채송화의 그토록 간절한 꿈은 수십 만, 또는 수천 만의 ‘채송화 씨앗’을 퍼뜨리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혼자 사는 인간은 공동체 사회를 그리워해야 하고, 무리 속의 인간은 개인의 자유를 찾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채송화, 채송화----.
혼자 핀 채송화는 아름답고 예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아름답고 예쁜 [채송화]는 이내 그 흔적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가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