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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七旬) 연(宴) 소회(所懷)
전호준
어디에서 까-똑 까-똑 소리가 난다.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옷걸이에 걸어놓은 상의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 친지들, 취미 생활 동호인들이 보내는 카-톡 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보내오는 소리라, 그러려니 하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 카-톡 방에 이름은 올라 있지만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동갑내기 친구가 보낸 카-톡이다. 웬일일까? 무척 궁금해 창을 열었다.
아버님의 칠순 잔치에 정중히 모신다는 친구 아들의 청첩장이다.
회갑 여행을 한다고 부부동반 중국에 다녀온 지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칠순! 언제나 변함없는 내 모습 그대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늙은이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뒤숭숭하다. 평소 스쳐보던 경대를 두고 손거울을 찾아 돋보기안경까지 귀에 걸었다. 인생 칠십의 자세한 내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검게 물들었던 머릿결 밑둥치는 어느새 하얀 서릿발이 내렸고 자글자글 잔주름에 숭숭 뚫린 땀구멍 하며 곳곳에 곰팡이처럼 피어있는 검버섯은 보기만 해도 밉살스럽다. 정녕 칠순이란 나이를 실감하는 순간 허황해진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라 그래도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쭈그렁 망태가 되어버린 겉껍데기가 문제다. 이발을 하고 염색까지 했다. 스킨에 로-숀을 듬뿍 바르고 간만에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 빨간 넥타이로 목을 조르고 거울을 본다. 얼굴에 다림질이나 하고 밀가루만 좀 발라도 한결 나를 것 같은데, 낯짝이 무슨 와이셔츠 깃도 아니고 찹쌀떡도 아니니 어쩔 도리가 없다.
대구 죽전네거리 부근 까르르스타 라는 회갑연 돌잔치 전문예식업소다. 까르르스타, 이름 한 번 재미나다. 까르르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2시가 조금 넘어 들어가니 벌써 행사가 진행 중이다. 푸른색이 감도는 새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가발로 대머리를 숨긴 친구의 모습이 오늘따라 십년 은 젊어 보인다.
친구의 살아온 발자취를 담은 짧은 영상물에 이어 자녀들 소개와 인사 순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 모두 나와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준비한 선물을 드린다. 장남이 아버지를 업고 큰사위가 장모를 업고 손님들의 박수갈채 속에 식장을 한 바퀴 돌며 내빈들께 인사를 드린다.
손자 손녀들의 재롱 잔치가 이어졌다.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푸짐한 뷔페식, 시간이 지날수록 술잔이 더해진다.
인간칠십고래희(人間七十古來希)라 시인 두보는 사람이 칠십을 산다는 것은 드문 일이라 일찍이 노래했다. 고려 시대에는 인간칠십고려장(人間七十高麗葬)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두보의 시가 잘못 읽어진 고래희(古來希)란 말이 고려장(高麗葬)으로 와전된 해프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동방예의지국으로 효(孝)가 근본인 우리나라에서 감히 늙으신 부모님을 내다 버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당시 칠십을 사는 사람이 드물고 간혹 장수로 인한 치매나 중풍에 걸린 노인을 방치하지 말라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하기야 노인요양원이란 명목의 현대판 고려장이 성업 중이니 타임머신의 도움 없이는 알길 은 없다.
흔히들 회갑을 돌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만 육십은 사실 자기가 태어난 해의 이름으로 돌아오는 육십갑자 생애의 첫돌이다. 바야흐로 백세시대, 인생 육십은 절반을 조금 넘긴 어중간 청춘이라 착각하기 때문일까?
어릴 적 어머님을 따라 기억도 희미한 마을 회갑 잔치가 생각난다. 마을 00댁 어른 회갑 잔치가 있다는 소문은 며칠 전부터 난다. 잔치가 있기 이삼일 전부터 준비가 시작된다. 친, 인척들이 모여들고 잔치 전날엔 이웃 아낙네들과 마을 청년들, 친인척들이 한마음이 되어 마당에 차일을 치고 돼지를 잡고 전을 부치고 잔치 음식 준비에 야단법석이 났다.
서울 사는 큰사위가 100근이 훨씬 넘는 돼지를 잡고 대구에 있는 딸이 먼 옷과 은수저를 하고 막내아들이 금비녀와 금반지 몇 돈을 준비했다는 둥 발 없는 소문에 이웃들도 한껏 들떠 어머니와 수다를 떨던 뒷집 수다쟁이 아지매 생각이 난다.
평소에 보기 드문 커다란 교자상에 탑처럼 쌓아 올린 이름도 모르는 진기한 음식들이 한가득, 상다리가 휘어질 듯 신기했다.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지고 나도 모르게 꼴깍꼴깍 침이 넘어갔다.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어른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좌정하고 은빛 머리를 곱게 빗어 올려 금비녀 꽂은 할머니가 치마저고리도 단정하게 동반 좌정한다. 그때 그 모습은 마을의 상 어른이고 위엄 그 자체였다. 나에게는 결코 오지 않을 까마득한 연륜의 큰 어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의 절을 받고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술잔을 올리며 잔치는 무르익어갔다. 이어 푸짐한 음식과 잘 익은 동동주에 흥이 돋아 지고 북과 징 꽹과리의 흥겨운 장단에 마당이 떠나갈 듯 잔치는 절정에 이르렀다.
급기야 소 질 메가 등장한다. 질 메에 꽃방석을 깔아 오늘의 주인공을 태우고 마당을 돌며 더덩실 춤을 추고 흥겨운 노랫가락으로 무병장수를 축원하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마음이 되는 온 마을 잔치 한 마당이었다.
백세 시대를 맞아 회갑 잔치란 용어는 무의미해졌다. 육십 환갑을 첫돌이라 치부해 버린다. 간혹 동갑끼리 혹은 부부가 함께 해외 또는 국내 여행으로 회갑연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세이다.
이미 칠순 잔치란 용어도 무의미해지고 팔순을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몇 백 년을 살 것 같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이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지만 팔순까지 건강하게 잔칫상을 기다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주변 친구들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몇 잔술에 취기가 돈다.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인사가 왠지 걸맞지 않을 것 같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아보자는 인사를 하고 식장을 나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대라 지하철이 제법 붐빈다. 자리에 앉았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일어나며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한다. 공차 타는 주책에 자리까지 빼앗는다는 생각이 들어 사양하듯 손사래를 치며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휴대폰에 얼굴을 묻고 못 본 척하는 세태에 인물과 품성을 볼 때 어느 명문가의 자손일 것이란 짐작만 해본다. 고맙다.
아직 손주를 보지 못해 할아버지 소리가 어색한 나는 예의 바른 젊은이의 할아버지 소리가 고맙다기보다 섭섭하게 들리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어느 사이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가?
지난 세월이 모두가 꿈결 같고 인생 칠십도 지나고 보니 모두가 한순간이다. 내리라는 안내 방송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서쪽 하늘에 기울어진 해를 바라본다. 모든 게 부질없고 무상함이 느껴지는 서글픈 순간이다. 그래도 내일 다시 태양은 떠오른다.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2017. 3. 4일 밤 친구의 칠순 연에 다녀와서...
첫댓글 어디서나 흔히 듣는 '할아버지'라는 호칭, 그리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의 자리양보, 그 모든 것이 밖에서 나를 보는 모습이지 내가 나를 보는 모습은 아니라고 강변해 봅니다. 아직은 더 젊어 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글도 쓰고 산에도 가고....살아봅시다. 잘읽었습니다.
계절은 가고 나이를 먹더라도 마음 만은 젊게 가지고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늙으면 더 빨리 늙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까요. 친구의 칠순연을 통하여 인생을 관조하며 쓴 작품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백세인생이 노랫말 속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젊음도 청춘도 마음먹기 달렸다고 생각해 봅니다. 회갑연, 칠순연의 모습도 상세하게 그려주시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어서 잘 읽었습니다.
대경상록아카데미과정에 칠순이 훨씬넘은 회원님이 많으시고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시는 회원님이 늘어나고 있어 백세시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칠순이 새로운 활동의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몇 백 년을 살 것 같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이지요. 친구분 칠순잔치를 통해서 인생을 관조하신 글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빨리 손주를 보셔서 또다른 내리사랑의 맛을 느껴보시면 그것 역시 행복이 아닐까요.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늙어갑니다. 그러나 상록봉사단에서 활동하는 선배님들은 항상 젊어보입니다. 나이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칠순잔치에 소 질매가 등장한다니 새로운 풍습을 소개 받는 군요. 친구의 칠순잔치에 초대받아 고맙긴 했지만 할아버지란 소리를 듣기는 반갑지 않은 심정 동감입니다. 언제부터 노인으로 보이는 자신의 처지가 딱해 보입니다. 공감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든군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생활하는가에 따라 젊은 오빠도 되고 늙은 할아버지도 되는것이 아닐까요. 칠순잔치에 초대받으신것도 좋지만 팔순잔치에 초대받으시면 더 좋겠지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저는 회갑연도하고 칠순잔치도 하였지만 마음은 한창이라고 여기며 살고있습니다. 우리는 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이라, 김형석 교수는 이기간에 가장 주요한 것은 지혜다 하였습니다 .함께 지혜를 꽃피워 봅시다.
칠십이 넘으면 내가 찾아가라고 하더랍니다. 불러줄 사람이 별로 없다고 어느날 아들의 머리카락 몇개가 흰 것을 보았습니다. 칠십을 훌쩍넘는 나이 그래도 반겨주는 문우회를 찾아 올곳이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