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10]친구들의 시산제始山祭, 삼삼칠 박수!
몸은 고향에 있어도, 오늘 오전은 마음이 유난히 불암산 시산제 현장에 있는 듯했다. 화창한 봄이 시작되는 이즈음, 우리(전라고6회 재경동문회)는 해마다 30여명의 친구가 모여, 우리와 우리 가정의 건강과 발전을 빌면서, 시산제를 지내 왔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 3년은 제를 지내지 못했으나 신령님도 불가항력을 이해하셨을 터. 산령님께 조촐한 제수를 차린 후 ‘올해에도 지난해처럼 잘 보살펴 주시라’고 빌며 3배를 올렸다. 멀리 남원에서 서예가 근봉 친구가 신위神位를 쓰고, 임실의 우천 친구가 축문을 지어올렸다. 그리고 작년말 졸지에 세상을 떠난 벽곡 친구를 기리며 묵념과 함께 추모사를 낭송하는, 예년에 없던 의식이 더 있었다.
비록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축문과 추모사를 낭송해보자는 뜻으로, 축문과 추모사 전문을 올린다.
축문
삼가, 불암산 신령님께 고하나이다.
검은 토끼의 해인 단기 4356년,
서기 2023년 양력 3월 18일(음력 2월 27일)
6학년 2학기에 접어든
전라고 6회 동문 30여명이
여기 불암산 중턱에 모여
신령님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생각해보면, 전대미문의 코로나19 병란病亂이
지난 3년간 지구촌을 온통 흔들어놓았습니다.
허나, 아직도 그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새로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하여
아주 모처럼 3년여만에
산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령님께 3배를 올리며 우정을 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막 나가는 정치, 흔들리는 사회, 먹구름 경제 등
여러 부문에서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부디 영험하신 신령님이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남북통일이 조만간 이루어지는
그런 아름다운 금수강산,
한반도 평화가 천년 만년 이어지도록 굽어 살펴주옵소서.
또한 작게는 우리 개개인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위한
신령님의 가호加護를 간절히 빕니다.
시집장가가지 않은 우리 친구 자녀들이 앞다퉈 가정을 이루고,
치명적인 암이나 애꿎은 교통사고로 고생하는 걸 없게 해주시고,
익어가는 노년의 삶에 배우자를 더욱 사랑하게 해주소서.
또한 친구들과 산행, 여행, 당구, 음주 등 각종 취미생활을 한껏
즐기며 좋은 ‘추억의 탑’을 쌓아가게 하며,
졸지에 유명을 달리해 친구들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게 해주소서.
아울러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저지른
삶에 대한 우리의 불성실과 태만, 잘못을 반성합니다.
올해는 우리 친구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모교에 입학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졸업한 지 47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 이 경건한 의식은
앞으로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으며
더욱 성실하고 진실되게 살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회장 민장식을 비롯하여 부회장 최규록, 정재득,
사무총장 최규근 등 회장단과 30여명이 삼배 드리옵니다.
차린 음식이야 변변하여 송구스럽우나,
우리의 마음이니만큼 부디 하강하셔 흠향하옵소서.
상향尙饗
이어서 장상수 친구에 대한 추모사가 이어졌다.
추모사
허어-, 벽곡 장상수, 이 사람아.
만물이 소생하는 이 찬란한 봄에
이 좋은 계절에, 이 명산에서
내가 자네의 추모사를 읽어서야 쓰겠는가?
여기 불암산 중턱에
이렇게 친구들이 많이 모이니
평생 팔방미인이자 호인好人이었던 자네 생각이 더욱 간절하네.
한없이 그립고 보고 싶네. 왜 아니 그러겠는가.
해마다 이때쯤이 되면
시산제 명소를 새벽 득달같이 잡아놓고,
올라오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어주던,
친구들 일이라면 늘 솔선수범 앞장서던 자네,
대체 어떻게 그렇게 황망히 떠나버렸단 말인가.
어느새 100일도 지나고 4개월이 넘었네그려.
“잘 살다 오시게. 나 먼저 가게” 이런 한마디조차 남기지 않고,
홀홀히 떠난 황천은 어떻던가?
나훈아의 노랫말처럼,
먼저 간 저 세상,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 없던가?
작년 11월 13일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의 날이었네.
모두 멘붕이 걸렸다네.
불과 일주일 전인 일요일,
10여명의 친구들과 만나 웃으며
좋은 시간을 가졌던 자네가 아닌가.
무관武官인 경찰 출신답게 건장한 신체에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내리라는 믿음을 줘놓고,
이 많은 친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해놓고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건가?
알고 보니 자네는 참 ‘몹쓸 사람’이었네그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부모도, 형제자매도 잃고 사는 판이고,
살다보면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친구들도
잃게 되며, 그리고 모두 잊고 살게 마련이지 않던가.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
허어-, 결국 죽은 사람만 불쌍한 것인가?
단지, 서운하고 아쉽고, 또 지독한 그리움 뿐일 것을.
생사生死가 이토록 유별有別할 것임을 탓한들
무엇 하겠는가?
그러니 우리, 옛날의 선시禪詩나 한 편 읊조리세.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이요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인 것을
산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라.
뜬구름 그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생사의 오고감도 역시 이와 같지 않겠는가.
벽곡, 이제 이승의 일은 모두 잊고
잘 가게. 그리고 영면하시게.
우리도 나름대로 열심히, 성실히, 건강하게 살다가
언젠가, 조만간, 자네를 만나게 될 것을 믿네.
자네가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던 6회 친구들이
모여 호곡號哭하며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하네.
사랑하네, 친구.
또한 고마웠네. 친구. 잘 가시게.
추모사가 낭송되는 동안 분위기가 순간 숙연해졌다. 하지만 친구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게 아닐까. 내년 시산제에는 이런 추모사가 다시는 없기를 빌 뿐이다. 남녘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꽃소식을 전한 지 오래이고, 구례 섬진강 백리길 벚꽃들이 오늘내일 꽃망울 터트릴 채비를 하고 있다. 오직 티없이 맑은 봄날, 불암산 창공에 무심한 흰 구름만이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이제 일년 중 가장 큰 연례행사인 ‘1일 소풍’때 만나 못다나눈 이야기꽃을 한껏 피우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