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와 용도*
추성은
투명 커다란 원통 병 안
네모난 정물 조각으로 담긴
초콜릿 모양 영혼을 봐
알록달록하지
손상되지 않아서
달고 끔찍한 개의 목숨이다
보여? 신비를 믿지 않는 네가
죽도록 미워하던 관념이
초콜릿 모양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그만 웃고 말았지
개를 키워본 적 없는 나는
개를 관념으로밖에 모르니까
여기서 갑자기 한 남자가 등장해 톱을 들고
활엽수처럼 큰 키로 돋아난 영혼을
마구 토막 낸다면
방금까지 살아 있던 나무가
흰 알맹이만 남아 잔디 위를 뒹굴고
두 눈을 부릅뜨며 원한을 가진다면
죽지 못하고 폐허에 남은 지박령
수만 개의 눈이 있는 자작나무 숲
거기서 천진하게 뛰어노는 소년과 개
그런 게 바로 신비의 정체라면?
한때 소년이었으나
지금은 통 안에 손을 넣고
초콜릿을 집어 먹는 너를 보는
두 눈을 가진 나
나는 관념의 개에게 초콜릿 하나를
물어 오라고 멀리 던지는데
뛰어간 개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Goodbye Kisses〉, 죽음을 목전에 둔 개에게 안락사 대용으로 먹이는 초콜릿으로, 인터넷 상에서 퍼진 사진. 원통 뚜껑에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개는 죽기 전까지는 초콜릿 맛을 알아야 한다.’
―월간 《現代文學》 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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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은 / 1999년 대구 출생.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