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욱 다미아노 신부
연중 제12주일
욥기 38,1.8-11 2코린토 5,14-17 마르코 4,35-41
기준(~답게)
찬미예수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어떠한 개별적 자리는 그 자리에 맞갖은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 자리에 맞는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자리에 맞는 모습을 하지 않게 된다면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게 되고,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부모의 자리가 있고, 자녀는 자녀의 자리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교사의 자리가 있고, 학생은 학생의 자리가 있습니다.
공적인 곳에서는 각자마다의 자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리에 맞갖은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
우린 ‘~답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맞는 모습을 하지 않으면 ‘~답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다운’ 모습을 가지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리에 맞는 기준을 알고 행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가 ‘~답네.’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자리의 기준을
잘 알고 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타인의 어떠한 평가는 결국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고 행하는 것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사도적 기준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기준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 사도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은 ‘거센 돌풍’에 겁을 먹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또 자신들은
누구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인지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인해 예수님과 함께 있지만
겁을 먹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명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하십니다.
◾돌풍 (라이라프 λαῖλαψ)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돌풍 안에서도 두려움 없이 예수님의 현존을 믿고 따르며 살아간다.
복음의 돌풍은 우리 삶 안에 하느님께서 계심을, 그분이 우리의 고난과 고통에 함께 하심을
깨우치는 회개의 자리가 된다.
대구대교구 최종욱 다미아노 신부
2024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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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석 실베스테르 신부
연중 제12주일
욥기 38,1.8-11 2코린토 5,14-17 마르코 4,35-41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련의 시기에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련
이 하느님을 떠나서 혼자 세상을 방황하다가 참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불신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졌다는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의 삶이 잠잠하고 평안하다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이 평지풍파가 계속 일고 있어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는 하지 않는지?’ 이럴 때 제자들은 누구를 찾았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스승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스승 예수님께서 자기들 배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다시 찾았을 때 그들은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해주셔서 그들이 평안할 수 있었다기보다 그렇게 해 주실 능력을 가지신 분을
자기들 배에 모시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을 때 바다의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고난과 죽음의 풍랑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확고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요한 1서에서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이긴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라고 전해 주며, 야고보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1요한 5,4)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 아야 합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야고 1,2-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바다에는 항상 크고 작은 풍랑이 일어납니다. 바닷가에 나가보면 아무리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에도 작은 물결이 계속해서 밀려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활에도 항상 크고 작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를태운 배가 폭풍을 만나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사도 27,14 참조)
우리도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폭풍을 만날지 모릅니다. 사업이 실패를 해서 파산을 하는
경우도 있고, 천재지변으로 인해 1년 내내 땀 흘려 애써 지어놓은 농사를 망쳐 거두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건강을 잃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활에 많은 시련의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신앙생활에도 언제 어디서 어떤 시험을
당할지 모릅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깨어 기도하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 꼭 깨닫고 명심해야 할 것은 인생의 풍랑, 신앙의 풍랑,
시련의 바람을 잔잔케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심을 잊지 않아야합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위험이 몰아치는 우리 인생의 위기에 잊지 말아야 할 해결책은
“나를 믿으라.”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임을 기억하며 확고한 믿음을 간직해 야겠습니다.
전주교구 송호석 실베스테르 신부
2024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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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2주일
욥기 38,1.8-11 2코린토 5,14-17 마르코 4,35-41
“나를 구원할 분이 내 인생이라는 배에 함께 타고 계십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면서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가르친 C.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은 어려움을 벗기 위함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누리는 평화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가 적어도 이 믿음을 통해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거나, 나에게만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거나, 남들보다 운이 많은 나이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삶에서 쉼 없이 고통이 몰려오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고,
또 실제로 죽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구원할 분이 내 인생이라는 배에 함께 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청해야 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사실 아무리 작은 너울이라도 우리가 느끼는 체감 충격과 걱정은 큰 돌풍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또 사실 엄청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돌풍이 오기도 합니다. 큰 돌풍이 우리가 정신도 못 차리게
온다든지, 연속적으로 온다든지 하는 것에 우리는 절망하지만, 그런 것도 사실 중요하겠지만,
내 인생이라는 배에 주님께서 함께 타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과 모르고 항해를 하는 것과는
배 위에서의 삶이 차원이 달라집니다. 돌풍이 없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돌풍 속에서도
예수님처럼 평화를 누리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평화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계시기에 믿고 돌풍이 불고 배가 침몰할 거 같은 상황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고 성모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깨닫지 못했다 뿐이지 우리 인생의 많은 돌풍을 주님께서 잠잠케 하셨습니다.
잠잠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르 4,41)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믿고 계신 분들은 “내 인생에는 주님께서 계시기에 그 어떤
돌풍에도 난 평화를 누릴 수 있기에 아무 걱정이 없다.”라는 고백을 할 것입니다.
주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평화로우면 됩니다.
부산교구 김원석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4년 6월 23일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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