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5일 인천구장. 그곳에서는 SK와이번스와 LG트윈스의 프로야구개막전이 열리고 있었다. SK선발은 에르난데스, LG선발은 2000시즌 외국인최다승을 올린 해리거. 이승호를 누르고 데뷔전을 개막전으로 치룬 에르난데스는 5⅓이닝동안 3실점을 하며 4이닝 5실점한 해리거를 누르며 한국무대 첫 승을 올린다. 그렇게 굵고 짧은 에르난데스의 한국무대는 시작되었다.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으로 용병3명을 보유하고 있던 그 당시 팀의 브리또,에레라와 함께 도미니칸3총사로 불렸다. 에르난데스는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바탕으로 삼진을 밥먹듯이 잡는 투수였다 .반면 일반적으로 강속구 투수들이 그렇듯 제구력은 뛰어나지않아서 볼넷도 상당히 많이 허용했다.
그래서 팬들은 그의 경기를 볼때마다 항상 가슴을 졸이며 봐야했다. 2001시즌 성적 14승 13패에서 보듯 제구력이 잘 되는 날은 한없이 좋았고, 제구력이 안좋은 날에는 볼넷을 남발하며 패하고 말았다.
좋지않은 제구력으로 인해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누가뭐래도 에르난데스는 이승호와 함께 팀의 원투펀치였다. 이 때문에 당시 SK의 전력은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막바지까지 4강진출다툼을 하는 선전을 보여주었다. 결국 시즌성적을 앞에서 말했듯이 14승 13패로 마무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왠만한 A급 투수가 거둘수있는 성적을 보여줬다. 하지만 에르난데스의 매력을 다른곳에 있었다. 바로 투구이닝과 탈삼진수. 무려 223⅔이닝을 소화해내며 219개의 삼진을 잡아 최동원이후 200이닝-200탈삼진을 돌파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 될 줄이야...
이러한 활약덕분에 에르난데스는 2002년도에도 SK에서 뛰게 되었다. 지난시즌 성적덕분에 받는돈도 그 전해 총액 14만달러에서 19만달러로 뛰었다. 받는 돈이 늘었듯 그의 활약도 더욱 눈부셨다. 제구력이 향상된 덕분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에르난데스는 2002시즌 44⅔이닝을 던지며 볼넷을 단 16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2001시즌 223⅔이닝을 던지며 무려 149개의 볼넷을 허용한 그였기에 더욱 놀라웠다.
하지만 문제의 5월 8일 대구 삼성전. 선발투수인 그는 어김없이 승리를 따내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삼성 1번타자인 박한이와 2스트라이크 노볼의 승부. 갑자기 이상이 느껴졌다. 결국 에르난데스는 규정에 따라 박한이와의 승부만을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게 끝이었다. 그 후 재활에 매달렸지만 회복을 못했고, 7월들어 4강싸움이 급했던 SK는 이미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어가던 롯데와의 트레이드를 시행했다. SK는 에르난데스와 윤재국,박남섭을 내줬고 롯데는 용병 대니얼 매기와 조경환을 SK에 내줬다. 에르난데스는 용병없이 경기를 펼치려는 롯데에서 퇴출당했고, 7월말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 짤막한 일화 한토막. 아래는 그 당시 났던 스포츠서울 기사의 일부내용이다.
SK 통역 김현수씨는 그를 배웅하기 위해 동행하면서 SK구단이 마련한 선물을 건넸다.에르난데스의 두 아들에게 주는 옷이었다.에르난데스는한국말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했다.그러더니 슬그머니 김씨에게 만년필을 선물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10만원짜리 귀고리를 처음 장만했다고 좋아하던 ‘짠돌이’가 거금을 썼다.
1년반의 한국생활.짧은 기간이지만 에르난데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그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한국이 부와 명예를 안겨준 ‘꿈의 나라’였다.그는 기량뿐만 아니라모범적인 생활태도로 최고의 외국인선수라는 평가를 들었다.마운드에서는‘투사’였지만 덕아웃에서는 ‘개그맨’이었다.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인디언 휘파람’으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김현수씨는 출국장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즐거울 때나 힘들 때 소주잔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정을 나눈 동갑내기 친구였다.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잘 가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작별의 순간,에르난데스가 손을 흔들자 가슴이 미어졌다.
에르난데스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석별의 정이 끓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출국장에 들어서면서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며손을 흔들었다.입가에는 미소를 지었지만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에르난데스는 갑자기 김씨에게 고함을 쳤다.“현수! 반드시 재활에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내년에 그 만년필로 내 계약서 다시 써줄거지?”
위 기사에서 보듯 에르난데스는 성적 못지않게 성격도 좋았고, 마음씨가 따뜻한 선수였다. 하지만 에르난데스는 꼭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2004년 초반 소식으로는 그 당시까지 에르난데스는 여전히 재활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짧은 한국생활로 인해 한국야구팬들에게 깊이 어필을 하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 에르난데스는 성적,성격 모두 좋았던 훌륭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첫댓글 에르난데스.. 제구력은 아주 불안했지만... 닥터K로서의 명성은 대단했죠~ 백넘버가 29번이었나? 하여튼 SK의 한때 에이스..
두산으로 돌아오지 ㅡㅡㅋㅋ
아..에르난데스 뿐만 아니라 모든 용병 선수들이 비록 실력이 않되어 떠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안되어 보이는 건 어쩔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