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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BTS?
방탄소년단.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유머로 소비할 수 있는 ‘응. 아빠는 젊을 때 방탄소년단이었단다’라는 조롱의 댓글에 사람들의 공감이 주를 이룬 것만 보아도, 방탄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하고 투박한 이미지가 아이돌 그룹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소년단이라는 약간은 유치한 이름도 한몫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B형 1명 A형 4명이라는 뜻의 아주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B1A4를 좋아하다가 방탄소년단을 알게 돼서 그런지 딱히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되면 청년, 노년이 단어로 바꾸어 쭉 활동할 수 있는 천재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 이제 방탄소년단 좋아해’라고 하자, 크게 웃으면서 ‘방탄소년단? ㅋㅋㅋ 차라리 에이포용지 걔네가 낫다’라고 하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그날 먹었던 치킨까지 기억날 정도로.
총알을 막아낸다는 방탄이라는 단어와 10대와 20대가 받는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자신들만의 생각과 가치를 지켜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지만, 멤버들 또한 그룹 이름이 부끄러워 누군가 물어보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로 대답하기도 했다고 한다. 데뷔 2년 전에 확정된 팀명인데도 말이다. 심지어는 데뷔 직전까지 친척들에게 숨긴 멤버도 있다. 이름이 명분을 담고 있어도 명분을 행하기 전이라 사회에서 이름이 이름으로 통용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해 본다.
데뷔 후 방탄소년단은, 특히 랩을 하는 멤버들은 깊은 정체성의 고민에 빠졌다. 한국 힙합에서 아이돌 래퍼는 진짜 래퍼로 인정받지 못했다. 노래나 춤 실력은 부족하지만, 얼굴은 조금 생겨서 래퍼 포지션으로 데뷔하는 사람들이 아이돌 래퍼라는 그 당시의 편견이 있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아이돌 데뷔 이전 언더씬에서 활동하며 그들 스스로를 래퍼이자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했지만, 데뷔한 후 세상은 그들을 그저 아이돌로만 불렀다.
여기서 아이돌이란 단어 자체적으로는 우상, 숭배의 대상을 말한다. 종교적 맥락에서 사람들이 경배하는 신상을 의미했다. 이 단어가 대중문화로 넘어오면서, 많은 사람이 동경하고 따르는 스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배우, 개그맨 등의 다른 스타들에게는 아이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솔로 가수도 똑같이 춤추거나 노래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그들을 아이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는 흔히 아이돌은 외모가 뛰어나고 춤을 잘 추는, 기획사에서 만들어낸 상품, 이미지를 파는 존재, 소비되고 사라지는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아이돌이라는 이름이 원래 담고 있어야 할 실질과 괴리가 있다. 만약 아이돌이 정말 우상, 즉 사람들이 동경하고 따를 만한 존재라면 단순히 외모가 좋고 실력이 좋은 것을 넘어 어떤 가치를, 메시지를, 삶의 태도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혹은 아이돌이라는 단어 대신 그들의 역할과 위치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새로운 명칭을 찾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럼, 아티스트라는 말이 아이돌을 대신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갖고, 창조적인 작업을 하며, 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창작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칭한다. 물론 많은 케이팝 아이돌이 작사, 작곡, 안무 제작, 앨범 발매 등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만들어진 곡을 받아 준비하는 데 그친다. 또한, 대부분의 결정권을 소속사가 가지고 있어, 콘셉트를 정하고, 음악 추구 방향을 정하고, 활동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회사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티스트라는 이름 또한 그들을 온전히 정의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음악을 만드는 생산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기획사가 투자하고, 훈련시키고, 데뷔시키고, 활동을 관리한다는 케이팝 산업에서 아이돌은 그 과정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마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 같은 결과물에 가깝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나도 작사, 작곡, 안무 창작을 하지 않는데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위화감을 느낀다.
나도 알 수 있는 이런 모순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사자는 더 큰 괴리를 느끼며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생각한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의 실질과 세상이 바라보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의 실질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2016년 발매된 슈가의 사운드클라우드 앨범의 수록곡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팔아먹었다고 생각했던 자존심이 이제 나의 자긍심이 돼. 그는 아이돌이 되는 것을 래퍼의 자존심을 팔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젠 자신의 자긍심이며 자신은 아이돌임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수차례 정신을 파고들며 고뇌하고, 방황했지만, 고민의 끝 정답은 없었고 본인의 정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이름이 담고 있어야 할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고, 실질이 그 의미에 맞도록 하는 적극적인 행위 그 자체, 이것이 공자가 말한 정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이름이나 지위에 합당하게 마땅히 해야 할 도리나 책임인 명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그 기준인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하는데, 내가 누구인가 분명히 밝히려는 노력은 나의 본질, 역할을 확립하는 첫걸음인 것 같다.
10대, 20대의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당당히 본인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정 아이돌과 아티스트라는 이름에 맞게 활동하며 그들은 세계로 나아갔다. 팀명 방탄소년단은 BTS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팀명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앨범 표지에 쓰이곤 했던 Bangtan Sonyeondan, Bangtan Boys에서 따온 BTS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Beyond The Scene이라는 뜻을 추가하여 청춘이 현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해 나간다는 메시지 담았다.
표면적으로는 이름과 역할의 확장이었다. 정명의 관점에서 성장한 실질이 새로운 이름을 요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팬인 나는 기분이 묘했다. 많은 아미가 그러했든 나는 그들을 방탄 아님 탄이들이라는 약칭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해외 시장으로 넓어지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비티에스'로만 불리기 시작했다. 공식 석상에서도, 언론에서도, 심지어 국내 활동에서도 BTS, BTS, BTS. ‘방탄소년단? ㅋㅋㅋ’ 했던 아빠가 ‘이야 너희 비티에스 대단하더라’ 했을 때 묘하게 황당한 기분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을지라. 뭔가 방탄소년단이라는 한국 이름은 약해지고 BTS라는 이름이 강해지며 국내 활동보다는 해외 활동을 중시할 때는 ‘큰물에서 놀아야지 그치..’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끼리 단란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영어 노래가 나왔을 땐 조금 서운한 기분까지 들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홍대병이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곧, BTS라는 이름의 리브랜딩은 그들에게 강화되고 또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부여했다고 깨달았다. 대한민국의 학업 시스템에 의문을 던지고 현실을 비판하며, 동시에 진정으로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오며 그들은 대한민국 아이돌의 지위로 유엔 연설을 하기까지 했다. Love Yourself 캠페인을 통해 자기애의 메시지를 전하고, 유엔에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격려했다. 단순히 팬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해외 특히 미국 시장 진출로 괜히 서러운 기분이었는데 이 계기로 ‘그래 이게 방탄이지’ 생각하며, 속된 언어로 뽕에 차서 연설문을 달달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또한, BTS는 본인들이 고수해 온 음악에 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치관을 유지하며 음악 활동을 했다. 어느 해외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다이너마이트는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욕도 없고 선정적이지 않은 가사와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적인 멜로디로 아이들의 떼창을 유발한다.’ 이보다 그 가치관이 빛을 발하는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난 지금은 욕도 조금 들어있고, 팝송 같은 곡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들이 초기부터 지켜온 음악적 철학과 사회적 메시지는 여전히 그들의 그들일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이름 사용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에 맞는 실질을 채워감은 물론 진정한 의미의 아이돌이자 아티스트로 성장해 온 것이다.
비슷한 시기, 리더 랩몬스터는 자신의 이름을 RM으로 바꿨다. ‘Real Me’라는 뜻이라고 했다. 스스로가 지향하는 음악에 더 부합하고, 보다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되는 이름으로 변경하고자 했다고 했다. 랩으로 압도하는 괴물 같은 존재하는 의미에서 시간이 지나며, 단순히 랩으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무엇보다 김남준 본인 자신을 나타내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개명이다. 이를 통해 개인의 성장에 따라 이름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자신의 실질을 정직하게 담고 있느냐는 것이다. RM은 여전히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남아있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으로 소통할 수 없고,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름이 있어서 명분이 생기는 걸까, 아니면 명분이 있는 것에 이름이 붙는 걸까?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이 먼저 있었기에 그들이 청춘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청춘을 대변하겠다는 의지가 먼저 있었고, 그래서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걸까. 성장해 간다는 메시지를 먼저 생각하고 수월한 소통을 위해 BTS라는 이름을 확장한 걸까 아니면 그냥 일단 해외 진출을 위해 이름을 사용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럴싸하게 의미를 갖다 붙인 걸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장이 되면 사장처럼 생각하게 되고, 부모가 되면 부모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만들어진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다는 말도 맞다고 본다. 사장의 역량을 갖춘 사람이 사장이 되고, 부모의 책임을 질 준비가 된 사람이 부모가 된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름이 먼저냐 실질이 먼저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름은 실질을 규정하고, 실질은 이름을 채우며, 채워진 실질은 다시 이름을 확장하거나 변형할 수 있고, 그렇게 확장되고 변형된 이름은 또다시 새로운 실질을 요구한다. 이런 순환 속에서 정명은 한 번 달성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추구해야 하는 과정인 것 같다.
공자가 말한 정명은 어쩌면 이 순환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름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게 아니라, 이름과 실질의 일치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조율하며 둘 사이의 긴장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라는 것, 그것이 내가 이해한 진정한 정명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2500년 전 살던 공자의 말이다. 이름과 실질이 일치해야 한다는 정명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 사상을 알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왜 ‘난 BTS 말고 방탄소년단을 좋아했어, 나는’이라는 말을 했던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 덕질 동안 해온 방탄에 대한 고찰을 풀어낸 좋은 기회이자 나는 내 이름과 나의 실질과 일치하는지 돌아봐야겠다고 다짐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첫댓글 이름을 지을 때는 그것이 가진 특징과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실질적인 부분이 영향을 끼치고, 이름이 지어진 다음에는 그것에 따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좋은 이름은 부르기에 편하고, 계속 불러야 한다는 것도 심리적으로는 반복을 통한 자기 암시 효과와 유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에는 그 실질적인 의미가 들어 있어야 하고, 부를 때마다 그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자어 이름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 이름이 지어질 때 부모님들이나 주변 분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를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일반적으로 한자어 두 개가 겹쳐진 이름을 그저 자기를 타자와 구분하는 의미 정도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댜 보니 최근에는 한자까지도 같은 이름도 상당히 많습니다. 한글 이름도 같은 이름이 많습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음악을 하면서 새로운 의미로 확장되는 것도 자신들은 이러저러한 음악세계를 추구한다는 선언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