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죽음도 불사합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돈과 사랑입니다. 그 외에도 흔하지 않지만 사명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애국심도 포함됩니다. 사실 미치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종 의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표현입니다. 소위 순국이나 순직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끔 남을 구하고 희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치게 한다,’는 뜻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순교가 더 가깝다고 봅니다. 소위 종교적 신념, 제대로 표현한다면 ‘믿음’이겠지요. 우리는 유명 종교에서 선교나 포교 중에 많은 순교자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일반사람들 생각에는 종교에 미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가장 강력한 힘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순교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지요. 말 그대로 믿음의 힘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초기 천주교 전파 중에 많은 박해가 있었고 따라서 순교자도 많았습니다. 이어서 기독교는 특히 일제의 압정과 공산주의 치하에서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지금도 기독교에 적대적인 나라에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신자들이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것은 내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사실 신앙이란 것 자체가 신비한 힘이지만 어떻게 시작되는가 설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개인마다 동기가 다를 것입니다.
문제는 종교를 표방하면서 전혀 방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종교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거나 신을 믿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물론 내세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내세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마도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자기 종교를 따르지 않으면 핍박하고 억압하고 목숨까지 해한다면 종교의 본래의 목적을 이탈하는 것이 아닌가요?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IS'가 이슬람에서 분파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IS의 본 줄기인 이슬람조차 그들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그 집단이 특히 어린 청소년들을 미혹하여 자기 집단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도 매우 교묘하고 치밀하게 발전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접속은 기본이고 이제는 개인 대 개인으로 접근합니다. 소위 SNS(Social Network Service)라는 통신 기술을 통하여 관계를 만들고 교제를 이어가며 친밀한 사이로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사람으로 만듭니다. 고민을 파악하고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가까워집니다. 그 후에는 자기 사상을 주입합니다. 세상이 종말을 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세계 곳곳의 참상을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신의 명을 받고 이제 부름을 받았다고 인식시킵니다.
한창 반항기 곧 사춘기의 ‘소냐’는 어느 날 자신의 고민을 SNS에 올렸다가 답신을 봅니다. 다정한 상대방의 말에 넘어가 교제가 이루어지고 순차적으로 그와의 사이가 돈독해집니다. 그의 말 속에 종교와 신이 들어있고 그 신앙에 빠져듭니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부모를 떠나서 그들의 조직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가 주는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비슷한 경우가 ‘멜라니’에게도 일어납니다. 소냐는 친구 두 명을 초대하여 함께 시리아로 떠나려 합니다. 불행히도(?) 소냐는 공항에서 쓰러지고 경찰에 체포됩니다. 시리아의 IS조직과 합류하여 프랑스 테러에 가담하려했다는 혐의입니다. 모든 것을 참작하여 감옥생활은 면하지만 감시 받으며 전문상담원의 상담을 받습니다.
‘언젠가 이해하게 될 거야, 나의 삶의 의미를. 언젠가 이해하게 될 거야, 이 세상의 의미를’ 그렇게 노래하며 끝납니다. 과연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떠나는지도 모릅니다. 하기야 그럴 시간조차 없이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때로는 살기가 바빠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도 해보지 못하고 그냥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했다고 삶이 나아지거나 세상이 나아지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봄직 하지요. 하루하루 부딪치고 해결하며 이어갑니다.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하며 새 날을 맞이해도 그냥 그렇고 그런 날을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 다른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이 모양 저 모양 애쓰기도 합니다.
평범한 삶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삶을 나누며 알아갑니다. 그렇게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배우고 그래서 서로 위로도 해주고 밀어도 주고 협력도 합니다.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 돌아보며 살아야 하고 그렇게 협력하는 기구나 모임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국가적 아니면 사회적 기구일 수도 있고 단순히 보통사람들의 모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모임이나 단체를 구성하고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조직에 들어가서 함께 하는 즐거움도 나누고 서로 필요에 따라 돕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픈 현실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테러조직도 더 무섭게 발전하며 특히 어린 생명들을 미혹하여 사용한다는 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살피며 철저히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영화 ‘하늘이 기다려’(Heaven Will Wait)를 보았습니다. 2016년 프랑스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