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였을 때 / 김이듬
여기 사육장이 있다. 나는 사육장 안에 있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괴로운 일 있어도 참는다. 밥 먹으며 투닥거려도 토하지 않는다. 남긴 잡곡밥과 상추, 삶은 달걀 껍질을 들고 와 닭들에게 준다. 새빨간 볏을 가진 닭끼리 피 튀기며 싸웠나 보다. 징그럽고 끔찍할 정도로 깃털이 뭉텅 빠진 닭이 궤짝 옆 흙바닥에 쓰러져 꼼짝하지 않는다. 싸움에서 이긴 닭이 나를 향해, 아니 모이를 향해 뛰어온다. 모든 닭들이 나를 포위한다. 이 조류는 태초부터 날지 않았을지, 지상의 먹이를 놔두고 굳이 날 필요 없으니까 서서히 날개가 퇴화하여 날 수 없게 된 건지, 쓸 수 없는 날개는 왜 생겨난 건지…… 내가 새였을 때, 나는 고난이 오면 도피했다.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 멀리 날아가 버렸다. 멤버들과 나는 시골 숙소에서 합숙하고 있다. 어떤 결과 뒤에 동족성이 있다. 스트레스로 암에 걸린 건지, 병원으로 실려 간 멤버의 일을 나는 위임 받았다. 매일 아침 닭에게 모이를 주는 일은 나에게 맞다. 초록색 철망으로 둘러싸인 사육장 안에 나는 있다. 나의 닭은 울지 않는다. 나의 흰 닭은 웃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한다. 나는 짧게 날지도 않는다. 산만하고 무질서하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없다. 날것 그대로의 희고 따뜻한 알을 발견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정착감이 든다.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 2023년 12월호 -----------------------
* 김이듬 시인 1969년 부산 출생. 부산대 독문과 졸업. 경상대 대학원 국문학박사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투명한 것과 없는 것』 등. <김달진 창원문학상> <22세기시인작품상> <올해의좋은시상>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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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는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었을 테지만, 언제부터인지 무리짓는 삶을 이어갑니다 철새와 텃새로 갈리면서 몸피와 상관없이 무리를 지어 삶을 이어갑니다 가장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이 양계 사업이어서 AI한번 스치면 살처분이 뒤따릅니다 어쩌다가 가둬놓지 않는 양계도 주목을 받습니다만, 합숙이 없는 게 아닙니다 매일 알을 낳고 사료를 맏아먹으며 폐계가 될 때까지 집단 속에 정착합니다 길들여지는 새나 제도에 묶여 사는 인간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시의 바탕이네요 지금 우리는 누구의 사육장 안에서 숨쉬고 있을까요?
- 최상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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