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2티모테오 4,6-8.17-18 마태오 16,13-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28,19-2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이 사명을 수행하며
참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였습니다. 감옥살이도 하였고, 매질도 당하였으며,
동족들에게서 모욕과 멸시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뒤따르는 약속처럼 —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 — 두 사도의 고된 여정에는 늘 주님의 손길이 머물고 있음을
오늘의 독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난 일련의 사건이 주님의
구원 행위였음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복음을 선포하며 겪은 여러 위기의 순간에 늘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을 지내며 복음 선포에 대한 두 성인의 열정과
헌신을 기억합니다.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온갖 두려움에서 구하시는 분이시며(시편 34[33],5 참조), 늘 당신의 일꾼과 함께 계시며
힘을 주시는 임마누엘이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유다인들,
이방인들, 그리고 임금과 총독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교 활동을 벌여 온 그동안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의 여정을 마칠 때 바오로 사도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하도록 달려야 할 길을 달려갑시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고 약속하신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우리가 달릴 그 길에 필요한 도움을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인천교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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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2티모테오 4,6-8.17-18 마태오 16,13-19
제2독서의 말씀은 바오로 사도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느끼는 감회를 매우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그야말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는 데 헌신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이제 자신도 예수님처럼 희생 제물이 되어
피 흘려 순교하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생의 마지막을 담담히 준비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이르러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시고, 제자들에게도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1)로 복음서의 문을 여는데,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정체가 16장에서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으로
선포됩니다. 이를 시작으로 예수님께서는 세 차례에 걸쳐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예고하시고(16,21-23; 17,22-23; 20,17-19 참조),
인류를 위한 ‘구원자’로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제자였고,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과 자주 대화를 나누었으며(14,28-31; 15,15-20; 16,16-19 참조),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정체를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그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매고 푸는 권한과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고, 박해 속에서도
베드로는 주님의 보호 아래 교회를 충실히 이끌며 뒷날 순교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사명을 다합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인 오늘, 특별히 주님의 사도이며 교회의 위대한 두 성인인
베드로와 바오로의 전구를 청하면서, 우리도 예수님과 더욱 일치하여 주님께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고백하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열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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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순 바오로 신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2티모테오 4,6-8.17-18 마태오 16,13-19
교회 공동체는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닌,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는 지상 여정의 순례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베드로 사도는 명문가의 자제도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도 아닌 그저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며 두려움 속에서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 길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주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숨어서 지냈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의 반석이 되어 하늘 나라의 열쇠를 관리합니다.
그럼 바오로 사도는 어떠하였나요? 그는 베드로 사도와는 달리 명문가 출신으로
율법의 가르침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선동가며
하느님에 관한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불순분자였을 뿐입니다.
그런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주님을 박해하는 사람에서 주님을 선포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베드로와 바오로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속에서
교회는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두 사도를 이끌어 주지 않으셨다면, 그 둘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갔을 것이고 우리는 누구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완성된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변화되었듯이, 우리 자신도 우리가 만나는
공동체의 구성원도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변화될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들의 뜻과 계획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라 완전하고 완성된 공동체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교구 박형순 바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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