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울란바토르에 사는 이헤레의 취미는 말 타고 활쏘기다. 그녀는 국제 대회 우승자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조랑말을 탔다. 지금은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지만 고향은 고비사막이다. 고비사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할머니다. 그녀는 여름 방학이면 할머니 집에 가서 할머니를 도왔다.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일찍 깨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낙타 젖을 짜서 양손에 양동이를 들고 해를 등지고 초원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면 '평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때 이헤레는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저런 분이 우리 할머니란 말이지.' 마음속에 조용한 자부심이 꽃폈다. 할머니가 낙타 젖을 짜고 있는 한 세상은 망할 것 같지 않았다. 고비사막에는 '여자가 대학에 가면 집안이 잘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헤레도 집안에서 유일하게 울란바토르의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나무 심는 동아리가 있었다. 이헤레는 크게 놀랐다. 고비사막에는 나무가 없었다. 사람이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숲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의 영역에나 속하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심은 나무에는 이름표를 걸어 줬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처음 나무를 심을 때는 땅이 너무 딱딱해서 기계가 망가질 지경이었다. 몇 년 뒤에 다시 가 보니 이름표는 사라졌지만 나무가 뿌리를 내린 땅이 부드러워졌다. '아, 이런 걸 변화라고 하나 봐!'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무를 심는 국제 NGO단체인 '푸른 아시아'에 취직했다. 이헤레는 사람들과 나무를 심는 것이 좋았다. 자기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랑 함께하는 것이 좋았고, 그 사람들이 "이 나무가 나중엔 숲이 돼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좋았다. 2023년 연말에 푸른 아시아 송년 파티가 열렸다. 한 사람이 이헤레의 눈에 들어왔다.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으며 춤을 추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뭉흐자르갈이었다. 그녀 또한 돈드고비 출신 유목민이었다. 그녀는 양과 염소를 길렀다. 그렇지만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물이 말라갔다. 가축이 먹을 풀의 길이도 짧아졌다. 뭉흐자르갈의 가족은 가축들과 함께 북쪽으로 이동했지만 결국 '조드'라는 극심한 한파로 대부분의 가축을 잃었다. 조드는 어린 아이만 빼고 몽골 사람 모두 아는 기후재난 단어다. 영하 40도까지 간다는 조드가 닥치면 땅이 얼어붙어 가축들은 굶어 죽었다. 뭉흐자르갈은 가축은 포기하고 농사를 짓고 살기 위해 정착했다. 하지만 양과 염소가 그리웠다. '우리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거야?' 그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품에 안고 자던 새끼 양과 염소의 감촉, 함께 부스럭대며 깨던 아침의 느낌이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때마침 가축들이 풀 먹는 것을 볼 수 있는 푸른 아시아 사업장에서 채용 공고가 난 것을 보고 취업했다. 뭉흐자르갈이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었다. 유목민이었을 때도 아침에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축들에게 물을 주는 것이었다. 뭉흐자르같은 가축을 기르는 것과 나무를 기르는 것이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식물은 단지 걸어 다니지 않을 뿐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나무를 돌보는 전 과정이 행복해졌다. 뭉흐자르같이 제일 좋아한 것은 조림 사업장 안에 있는 여섯 그루의 소나무였다.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이었다. 푸른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었다. 그녀는 가끔 나무를 새끼 양이나 되는 것처럼 끌어안았다. 그녀는 나무에 애착을 보였다. '어쩌면 이 나무들이 자라서 조드를 막아 줄지 몰라. 초원이 말라 가는 것을 막아 줄지 몰라. 가축들을 살게 해 줄지 몰라.' 나무에 물을 주면서 이렇게 빌었다. "제발 씨앗 하나라도 어디로든 날아가서 나무가 되어 줘." 나무는 그녀가 가장 오래 바라보는 것이 됐다. 그녀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으므로 언제나 행복해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지금 행복하다.'라는 말은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이 믿음이 그녀에게서 평화와 미소를 만들었다. 바로 이헤레가 연말 파티에서 본 미소였다. 누군가 내게 독창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이 독창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뭉흐자르갈이나 이헤레가 그런 독창성 속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독창성은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고 힘을 내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사랑하다'와 '지키다'라는 동사를 잘 연결시키진 않는다. 그러나 두 단어를 연결하면서 무수히 많은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삶이 태어난다. 바로 이럴 때 사랑은 가장 창조적인 단어다.
정혜윤 | 라디오 피디
정혜윤 님은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라디오 피디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는 내 마음이 머무는 장소'라고 생각하는 이야기 채집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아무튼, 메모》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삶의 발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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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고맙습니다 ~
하루라는 새날이 밝았습니다
독감 유의하셔서 즐거운
나날로 채워지시길
소망합니다
~^^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쿠인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날씨는 매섭지만
새로이 맞이하는 오늘
지인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좋은 하루보내세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