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일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3주일
지혜서 1,13-15; 2,23-24 2코린토 8,7.9.13-15 마르코 5,21-43
믿음 속에 숨은 약속
“인간의 행복은 신앙의 대상이자 목적인 하느님을 뵈옵는 데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간의 목적으로 설정하셨으므로 하느님과 합일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요 목적이다.
그러나 이 목적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하느님께서 먼저 길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라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잡하고 어지럽고 힘든 요즘의 삶에,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한
행복을 얻고 누리기 위해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무엇이며,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복은 ‘믿음’ 에 있다” 는 것입니다.
먼저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린 딸이 죽어가자, 예수님께 자기 집에
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시고 그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길을 가던 도중에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회당장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6절).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던
사람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셔서,
죽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소녀가 깊은 잠에서 깬 것처럼, 곧바로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요청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이 이야기 안에, 마르코 복음 사가는 다른 이야기 하나를 삽입시켰습니다.
하혈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마자 낫게 된 치유 사화입니다.
여인의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던 신적 구원 능력을 불러일으킨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이 누구 때문인지
아시려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군중 앞에서 ‘모든 것을’ ‘고백’ 했을 때,
그분께서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34절).
이어진 두 개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가지 주제, 곧 믿음이 있고 예수님께서 생명의 원천이시며,
그분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시는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행복이 그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늘은 교황 주일입니다. 교황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나약한 우리들을 위해 늘 기도해 주시고,
세상의 유혹 앞에 자주 길을 잃고 넘어지는 우리들을 위해 진리의 길을 제시해 주시는
교황님께서 건강하시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춘천교구 안수일 요한 보스코 신부
2024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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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
연중 제13주일
지혜서 1,13-15; 2,23-24 2코린토 8,7.9.13-15 마르코 5,21-43
두려움에서 일으켜지는 믿음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마르코 5,22) 이 구절의 그리스어 성경 원문을 더 직접적으로
번역하면, “회당장들 가운데 야이로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와서….”가 됩니다.
회당장이라 하면, 비록 그 규모가 작다 하더라도, 한 동네의 유다교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입니다.
죄의 용서를 선포하시고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심지어 안식일에 치유의 기적마저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실상 많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청원하는 ‘회당장’ 야이로의 모습은 매우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야이로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예수님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죽어가는 딸을 살릴 분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는 길에 또 다른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 피 흘리는 여성을 부정(不淨)하다 보았던 구약의 규정들을 상기해 볼 때,
(레위기 12장; 15장 참조) 예수님께서 허용하신 이 접촉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삼종기도 강론(2021년 6월 27일)에서, “하혈하던 여인이 바랐던
예수님을 향한 이 접촉은, 이 병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부정함으로 인한 ‘고립’에서,
다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의 회복 또한 의미한다.”는 메시지를 주신 바 있습니다.
부정함의 옮음 따위는 걱정하지도 않으시고, 오랜 세월 피폐했을 그녀의 삶을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일으켜 세우십니다.
하지만 이 모든 광경을 힘겹게 지켜보았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야이로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는, 하혈하던 여인이
치유되는 이 시간들이 결코 아름다운 기적의 순간으로만 여겨졌을 리 만무합니다.
그저 자신의 딸 아이가 죽어가는, 초조하고 야속한 시간이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이래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딸이 그 누구보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아직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는 중인데,
집에서 딸의 죽음을 알려옵니다. 절망적인 소식입니다.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직 믿어라!”(마르 5,36 필자 번역)
예수님은 그의 두려움을 곧바로 알아보시고, 믿음을 북돋우십니다. 그렇기에 이후로 이어지는
야이로의 침묵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에게 불평하지 않습니다. 속은 오죽했으련만, 그래도 주님을 보채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시간을 당신 뜻에 따라 쓰시는 데에 감히 개입하지 않습니다.
두렵지만 오직 주님을 믿습니다.
“탈리타 쿰!(소녀야, 일어나라)”
예수님의 이 음성과 함께 딸뿐만 아니라, 그렇게 야이로의 믿음 또한
두려움에서 일으켜 세워집니다.
서울대교구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
2024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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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렬 모세 신부
연중 제13주일
지혜서 1,13-15; 2,23-24 2코린토 8,7.9.13-15 마르코 5,21-43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
‘액자 형식’의 문학 구조는 액자가 그림을 둘러 꾸며주듯 바깥 이야기가 그 속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 기법을 말하는데, 오늘 복음이 그런 형식으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액자 밖은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딸이 죽게 되었음을 알리며 살려 달라
간청하자 군중은 서로 밀쳐대며 그분을 따르게 된다.
이어 이야기는 액자 속으로 들어와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인이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겠지.’(마르 5,28)라고 생각하며 예수님 옷에 손을 댄다.
군중이 밀쳐대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당신 옷에 손을 댄 사실과 기적의 힘이 나간 것을 아셨고,
여인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한 행동과 믿음을 확인하시고 구원과 건강을 선언한다.
상황은 다시 액자 밖으로 나와 회당장 집에서 딸이 죽었음을 알렸지만, 예수님은 군중의 소란과
비웃음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며 소녀를 일으키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 많은 곳에서 믿음을 강조하셨는데,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마태 17,20)이며,
토마스 사도를 향해서는 믿음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요한 20,29) 과학과 합리적 이성이 진리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는 지금의 세상에서
신앙의 어리석음과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따르는 선택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믿음을 통한 반전의 이야기는 성경에 차고도 넘쳐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5월 제1차 세계 어린이날 담화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이사 49,15 참조) 날마다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당신의 영으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며,
사랑하는 아빠, 자애로운 엄마의 눈길로 우리를 보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의 여정은 세상의 가치와 논리가 아닌 어리석음과 불가능을 믿고 따를 때 당신의 영을 통해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고 그것을 느끼고 사는 삶이 아닐까 싶다.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집을 방문하여 말씀만으로 병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실천한 여인과 소녀의 부모처럼 믿음을 가질 때 신앙은 성장할 것이다.
예수님은 신앙의 길에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
부산교구 김정렬 모세 신부
2024년 6월 30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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