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풍류(風流)는 단순한 유흥이나 한가로운 놀이를 뜻하지 않았다.
옛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벗들과 고담준론을 나누며, 시를 짓고 때로는 술잔을 기울였다.
정자에 앉아 거문고를 뜯으며 바람 소리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노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긴장을 풀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자연의 흐름을 바라보며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기도 했다.
풍류는 그렇게 자연과 예술, 놀이와 사색이 어우러진 삶의 태도였다.
글자 그대로 풍류(風流)란 바람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유연하여,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말한다.
‘풍류’라는 말은 중국에서 먼저 쓰였다. 중국에서는 문학과 예술, 세속을 벗어난 삶의 멋,
자유분방한 선비의 태도 등을 폭넓게 가리켰다.
이 말은 한반도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와 만나 또 다른 깊이를 더했다. 신라 말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고 했다.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실려 전하는 이 글에서 최치원은 풍류 안에 유교·불교·도교의
가르침이 본래 함께 들어 있다고 보았다.
풍류를 외래 사상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여러 가르침을 아우르며 자라난 고유한 정신문화로
이해한 것이다. 화랑이 산천을 찾아다니며 수련하고 노래와 춤을 즐긴 것도 그 한 모습이었다.
풍류의 중요한 특징은 삶을 하나의 목적과 효율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흐르는 물길에 술잔을 띄우고 그 잔이 닿기 전에 시를 짓던 유상곡수(流觴曲水)의 놀이가
그랬고, 윤선도가 보길도 부용동에 원림을 가꾸고 「어부사시사」를 지은 삶도 그러했다.
그런 시간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쓸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풍류는 오랫동안 화랑과 선비, 예술가들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근대화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경제적 성과가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쓸모없는 시간’은 낭비로 여겨지기 쉬웠다.
성취와 경쟁, 효율과 생산성이 사회 전반에서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풍류는 한가한 취미나 사치로 오해받으며 일상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풍류를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생겼다.
<AI 시대의 풍류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AI는 수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내고 분석한다.
복잡한 계산을 대신하고,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지
추천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은 인간의 삶을 훨씬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효율을 삶의 대부분 영역에서 평가 기준으로 삼게 됐다는 데 있다.
얼마나 빨리 했는가. 얼마나 많이 했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이런 질문에 익숙해질수록 아무런 성과도 만들어내지 않는 행위는 점점 쓸모없게 여겨진다.
풍류는 비효율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효율만으로 삶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 태도다.
휴대전화 알림을 끈 채 동네 골목을 삼십 분쯤 걸어보는 일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불러보는 것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아닐 수 있다.
마당이나 베란다에 앉아 바람을 느끼는 시간 역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과는 다르다.
멍하니 쉬는 듯한 그때에도 우리 마음은 조용히 흩어진 생각들을 이어 붙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간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풍류가 바람소리와 물소리속에서 마음에 여백을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풍류는
끊임없이 연결되고 최적화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왜 지금 풍류가 필요한가>
AI와 디지털 기술이 삶을 빠르게 최적화할수록, 인간은 자신만의 속도와 감각을 잃어버리기
쉬워진다.
풍류는 기술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채워주지 못하는 삶의 여백을 되찾는 지혜다.
효율이 높아진다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모두 줄어들지는 않는다.
어떤 것들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중 하나가 스스로 선택하는 힘이다. 보이지 않는 규칙처럼 작동하는 AI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볼지, 무엇을 들을지, 무엇을 살지 끊임없이 추천해 준다.
추천받으면 편리하다. 하지만 편리함이 계속되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추천받은 것을
구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풍류는 이 지점에 작은 틈을 낸다.
추천 목록 대신 우연히 들은 노래를 찾아 듣는다. 정해진 코스 대신 낯선 길을 걸어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AI가 알려준 선택지 밖에서도 스스로 선택하는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몸의 감각도 중요하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손가락 몇 번으로 수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화면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흙을 만지고, 음식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악기를 연주하고, 산길을 걷는다.
바람의 온도를 느끼고 비 냄새를 맡는다.
이런 경험은 데이터로 기록할 수는 있지만 기록된 데이터가 그 경험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더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우리는 직접 경험하는 즐거움을 의식적으로 지켜야 한다.
우연한 연결과 창의적인 생각은 집중할 때만 생기지 않는다. 걷다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생각이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생각은 직선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돌아가고, 멈추고, 엉뚱한 곳으로 튀어 나가
다른 생각과 부딪치면서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AI가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연결해 주는 지금, 인간에게는 자신의 경험과 감각에서 뜻밖의
연결을 발견하는 능력이 더욱 소중해진다. 풍류는 그 우연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둔다.
<하나의 속도로만 살지 않기>
풍류의 가치는 단순히 ‘쉬는 시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는 하나의 기준으로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기 쉽다.
빠른 것이 좋은 것. 많은 것이 좋은 것. 효율적인 것이 좋은 것.
하지만 자연에는 하나의 속도만 있지 않다.
나무는 나무의 속도로 자라고, 강물은 강물의 속도로 흐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천천히 걷는다.
누군가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풍류에는 서로 다른 삶의 속도와 감각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다.
물론 풍류가 과거에는 여유 있는 계층의 문화였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정자와 잘 가꿔진 정원, 거문고와 시회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오늘의 풍류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이제 여백을 누리는 데 정자도 거문고도 필요하지 않다.
퇴근길에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는 일, 이어폰을 빼고 바람과 빗소리를 듣는 일이면 충분하다.
정다운 이들과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들며
노래 한 자락 부른다면,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시간이 된다.
한때 일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던 풍류를 오늘날에는 누구나 일상의 작은 선택으로
다시 즐길 수 있다.
< AI에게 맡길 것과 인간이 지킬 것>
산업화는 인간에게 놀라운 풍요를 가져왔다. 기계는 인간의 힘을 덜어주었고, 디지털 기술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제 AI가 그 흐름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AI에게 맡기게 될 것이다.
그것은 피할 일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변화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AI가 하지 못하는 일을 억지로 찾아내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AI가 잘하는 것과 인간이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구별하는 데 있을지 모른다.
계산은 AI가 더 잘한다. 정보를 찾는 일도 AI가 더 빠르다.
하지만 이슬비를 맞으며 떠오르는 감정, 오래된 노래 한 곡에 되살아나는 젊은 날의 기억은
각자의 삶 속에서 생겨난다.
이런 것들은 생산성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속에서 오래 남는 것은 때때로 이런 것들이다.
속도와 효율은 AI에게 맡겨도 된다. 그러나 삶의 리듬과 방향까지 맡길 수는 없다.
<맺음말>
옛사람들은 일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을 바라보았다.
소리를 듣고, 벗과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시간이었지만, 실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살아간다. AI는 그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까지 AI의 속도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걸음을 늦추고, 바람 냄새를 맡고, 물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효율과 속도를 따지지 않는 것.
오래전 우리 선조들은 ‘풍류’라는 이름으로 그런 여백을 누렸다.
그것은 과거의 한가로운 풍속으로만 남을 일이 아니다.
AI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 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는 더 중요해지는 질문이 있다.
무엇을 더 빨리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할 것인가.
그 물음은 바람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유연하게, 틀에서 잠시 벗어날 줄 아는 마음에서 나온다.
풍류는 바로 그 질문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준다.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유연함. 그것이야말로 AI가 인간의 지적 활동을 점점 더 많이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인간다운 능력일 것이다.
<오늘의 팝송> Free as the wind / Andy Williams
Free as the wind(바람처럼 자유롭게)는 영화 .빠삐용의 주제가로 Andy Williams 가 불렀다.
빠삐용은 1974년 앙리 샤리에르의 자전적 수기를 영화화한 탈출영화의 최고작이다.
억울한 죄수의 끝없는 탈출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실존인물 앙리는 탈출에 성공한 뒤 베네수엘라에서 자유인으로 살았다. 그곳에서 노동자, 노름꾼,
은행털이, 요리사, 호텔 지배인등 밑바닥 인생을 보내다 1973년 7월 스페인에서 세상을 떠났다.
https://youtu.be/It3Gzz-N2rk
첫댓글 좋은 글과 노래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비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AI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금의 현실.
AI가 인간을 대신한 그 시간과 공간의
여백을 어떻게 인간답게 쓸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 제시에 깊이 공감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자리님.
AI가 우리 삶 속에 깊이 자리잡을수록 그 여백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풍류가 새로운 역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I는 좋은 문명의 도구맞는거 같아요
가혹하게 도구를 부려먹어도 패널티를 매기지않는게 문제이지만요 나이스한거 같긴해요
맞습니다.
AI를 잘 써야합니다.
감사합니다. 드가님.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소유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