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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Cambodia Herald 2012-1-21 (번역) 크메르의 세계
찌어 솟 캄보디아 집권당 상무위원 사망
Veteran revolutionary Chea Soth dies

(프놈펜) --- 캄보디아의 부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찌어 솟(Chea Soth: 1928년생)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 상무위원이 토요일(1.21) 향년 84세로 사망했다. 그는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 붕괴 후 캄보디아 경제 재건의 기획자였다.
찌어 솟 위원은 금요일(1.20) 투병 중이던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후, 프놈펜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집권 CPP 당서열 8위의 고위급 인사이며, 상무위원이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가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베트남인들에게 패한 후 개최된 '1954년의 제네바 협정' 직후 베트남으로 건너 간 캄보디아 전사 1천명 중 1명이었다.
찌어 솟은 하노이의 '베트남 통신'(VNA)에서 근무하면서 크메르어 기사를 담당했다. 그는 훗날 베트남이 폴 포트(Pol Pot)의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을 쓰러뜨리기 위해 포섭했던 첫번째 캄보디아인들 중 한명이 되었다.
1954년에 베트남으로 건너갔던 사람들 중에는 소수민족 지도자로서 오늘날 CPP 당서열 7위인 보우 통(Bou Thong) 상무위원,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 붕괴 직후 총리를 맡았다가 현재는 야당인 '인권당'(HRP)에 몸담고 있는 뻰 소완(Pen Sovann), 1984년 모스크바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 쩐 시(Chan Si 혹은 Chan Sy) 등이 있다.
찌어 솟은 1981년의 총선거(=인민투표) 직후, 기획부장관이라는 강력한 직위에 임명됐다. 이 자리는 농업부, 상무부, 재무부, 그리고 새로 구성되고 있던 '캄보디아 국립은행'(NBC)까지 감독하는 직위였다. 또한 그는 1975~1979년 사이의 크메르루주 정권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수많은 사체들을 처리하는 임무도 관할했다.
기획부장관 시절 그는 이르면 1983년부터 민간 경제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당시 그는 "자본주의 사업가가 되기 시작한 이들이 이미 존재한다"고 말했다.
1984년, 그는 당 간부, 경찰, 군대 등에서 발생하던 부정부패와 뇌물 관행에 대해 창끝을 겨누며 단속에 나섰다. 그는 모든 일처리마다 이틀 안에 영수증을 발행할 것을 촉구하면서, 비공식적인 돈을 수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호주의 역사가 마가렛 슬로콤(Margaret Slocomb)은 "당시 당이 이 단순한 지시를 따랐다면, 아마도 캄보디아 사회는 정말로 많이 변화했을 것"이라고 적은 바 있다.
1989년, 찌어 솟은 1991~1995년 사이의 장기적인 경제사회계획을 논의한 내각회의 참석자 8명 중 1명이었다. 그는 CPP의 전신인 '캄푸치아 인민혁명당'(KPRP)이 1985년에 가진 제5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경제정책을 지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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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우리는 경제계획만 있었지, 5개년 계획은 갖고 있지 않았다. 지방에서는 우리(중앙 정부)가 균형에산이나 사업실행에 참조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제 않았다. 우리는 단지 대강의 추정치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
훈센(Hun Sen) 총리 역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개혁정책을 지칭하면서, 다음과 같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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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 전략 및 장기계획'이란 말을 '장기 개발목표'란 말로 바꿔야만 한다. 이러한 이행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에 하지 않았던 일이라 할지라도 해야만 한다." |
[역주] 베트남의 침공으로 1979년 1월 캄보디아에서 친-베트남계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이 수립된 후, 1981년 선거에서 뻰 소완을 총리로 하는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 훈센, 쩐시, 찌어 솟이 부총리를 맡았다.
[자료 화보집] 찌어 솟 상무위원 일가가 시하모니 국왕을 알현하는 모습
사진제공 : 캄보디아 왕실 (일시: 200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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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사 내용이 좀 애매하네요..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인지..
나중에 <프놈펜포스트>에서 혹시라도 더 깔끔한 기사라도 내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