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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
최 인 훈
정한 시간까지는 아직 사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곧바로 걸음을 옮겨 골목으로 꺾어지는 모퉁이를 돌았다.
‘바 하바나’라고 쓴 간판이 익숙한 눈어림 속에 들어왔을 때 그것은 마치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사람을 거리에서 문득 만났을 때처럼 그녀를 서먹하게 했다.
그곳까지 걸어가는 사이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수없이 오고 간 그 골목이 아주 낯설고 맞받는 힘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뿌듯한 물체처럼 생각하는 것 이었다.
문을 열고 홀 안에 들어섰을 때 그러한 느낌은 줄기는 커녕 한층 심해졌다. 벽에 밀어붙여서 쌓아 올린 의자들의 위쪽 것은 거꾸로 한 다리를 앙상하게 천장을 향하여 뻗치고 있고, 스크린의 두 겹으로 이 의자의 더미를 성벽처럼 둘러치고 남은 빈 자리는 전에는 기름이 잘 먹어 검고 육중하게 빛나던 마루답지 않게 희부옇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녀의 눈길을 맞은 맨 처음 것은 이 빈 자리였고, 그 저편에 스크린으로 가려진 의자의 산(山)을, 그리고 그 봉우리에 솟은 삐죽삐죽한 쇠붙이의 다리들을 一이런 순서로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바로 한 달 전까지 거기서 웃고 마시고, 얼굴과 몸의 겉을 취한 속에서도 알맞게 계산하면서 주었다 빼앗다 하며 돈과 바꾸던 그곳이 아니었다. 다른 어떤 곳, 처음 와보는 어떤 곳. 아마 그녀가 영화에서 본 일이 있는 저 사막에 가서 허허한 모래의 공간과 하늘로 뻗친 앙상한 사보텐의 다리와 가시를 보았다면 그녀의 가슴은 비슷한 아픔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적 놈처럼 죽여지는 걸음에 그때마다 못마땅해지면서, 홀의 끝에 있는 카운터까지 걸어가 널판에 핸드백을 소리내어 얹으면서 그녀는 말하였다.
“누구, 있어요?”
진열대 아래 뚫린, 부엌과 통하는 문 앞에는 먹고 난 가락국수 그릇이 내놓여 있었다.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그릇이 그녀의 물음에 그만큼은 대꾸해 주었다. 그러나 저편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대꾸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불렀다. 그리고 한 손으로 백을 잡고, 남은 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기대고 선 카운터의 수직면을 조금 세게 두드렸다.
속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녀가 다시 무어라고 입을 떼려던 참에 사잇문이 열리며 그 빠끔한 빈 칸에 이번에는 거짓말처럼 낯익은 풍경 一 순자의 그 통탕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머, 언니.”
그녀는 목을 꼬아 찾아온 사람을 올려다보며 웃어 보이고는 한 번 안으로 사라졌다가 그제서야 문을 빠져나와 카운터 안에 들어섰다.
“너 아직 있었구나?”
“응.”
순자는 이마에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밀어 올리면서 또 한 번 웃었다. 부엌일을 거들고 있던 순자는 바가 닫히던 무렵에 화장이며 맵시가 부쩍 ‘언니’들을 닮아서 때가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가끔 순자에게 쓰다 남은 매니큐어 약이며 루즈를 집어 준 생각을 하였다.
“마담 안 오셨니?”
“아니.”
“언제 들렀니?”
“그러니까…… 한 사오 일 전에 오셨던데, 쉬 다시 연다구…….”
“그래?”
그렇다면 오늘 얘기를 지킬는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마담은 그녀를 다시 두고 싶어할 것은 분명하였고; 그러자면 밀린 돈을 다른 일 젖혀 놓고라도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나만 남은 의자 위에 올라 앉으면서 카운터 안에 선 순자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 들르겠단 말 없든?”
“아아니”
아무튼 기다리기로 하자. 마음먹은 일을 하자면 그만한 돈은 있어야 했다. 그 돈으로 하려는 일이 지금 그녀에게는 그 돈과 꼭 맞먹는 그저 치러버려야 할 일로 생각되었다.
이것저것 더 묻지도 않고 속으로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멍해 있는 ‘언니’와 마주 서 있기가 심심했던지 순자가 가락국수 그릇을 집어들면서 곧 다녀올 터이니 비우지 말아 달라고 나간 다음에도 그녀는 까딱도 않고 손으로 턱을 괴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겹으로 된 나들이 문은 그나마 맑은 유리가 아니었고, 위 아래로 길죽한 창에는 두꺼운 커튼마저 가려져서 홀 안은 한결 어두웠다. 그녀가 앉아 있는 어두운 곳에서 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커튼에 배어서 밖은 마치 검은 안경을 쓴 남자의 동공처럼 보였다. 그녀의 망막에는 검은 안경을 쓴 어떤 해사한 눈자위가 퍼뜩 떠올랐으나 그녀 속에 있는 노여움이 거칠고 빠르게 그 그림자를 뭉개어 버렸다. 얼굴에 피가 오르는 느낌에 스스로 화를 내면서 그녀는 백을 열고 화장용 줄칼을 꺼내 손톱을 다듬기 시작하였다.
언제나처럼 그 작업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무료한 때, 또는 둘레가 시끄러울 때, 저쪽 말을 귀담아 듣고 싶지 않을 때, 또는 눈을 마주치기 싫을 때, 좋을 때, 또는 나쁠 때 ㅡ 어느 때건 손톱에 매달리는 버릇은 동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어서 그들은 그녀의 말보다도 그녀가 손톱을 손질하는 품을 보고 대답을 들었다. 더 손 댈 자리가 없어 보이는 손톱에서 그녀는 아주 작은 그리고 희미한 흠을 찾아내어 조심스레 갈고 닦아 갔다. 어두운 속에서 그 일은 더욱 시간이 걸리고 온 조심을 필요로 하였다. 줄칼의 어림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손틉의 윤곽을 엇바꿔 다루면서 그녀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같은 장사 집들이 늘어선 깊숙합 골목 안은 한 시를 조금 지나 이 시간에 아주, 조용하여서 그녀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그녀는 가끔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고 또 구석의 의자의 산을 뒤돌아본다. 손톱을 만지고 있는 사이 그곳에 문이, 그곳에 의자의 산이 아직도 있어 주고 있는가를 다짐하려는 것처럼 보였고, 문에서 누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출입구로 갔던 눈길은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 바늘의 움직임처럼 의자의 산 쪽으로 미끄러져서는 다시 손톱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녀의 동료들은 이 작업을 두려워했었다. 신참자들은 말을 가름한 이 동작 앞에서 ‘선배’를 느꼈고 경쟁자들은 짜증을, 그리고 마담은 이 홀의 ‘1번(番)’의 무게를 보았었다. 물론 그 ‘1번’이 ‘1번’답지 않은 울림을 목소리에 풍기는 선배 앞에서 그녀는 천천히 줄칼을 꺼냈었다……. 순자는 이내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되었는데 마담도 나타나지 않고. 순자 얘기대로라면 마담은 올 테지. 오지 않으면 하고 생각해 보니 을씨년스런 홀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마치 사람처럼 우뚝 마주선다. 만일 오지 않으면. 그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풍경을 꼭 닮은 생활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으나 그때는 색칠한 불빛과 마지막 자리에 서 있다는 썩은 안정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굴 속의 어둠. 하늘을 찌르는 사보텐의 산(産) 그 속에 마지막 자리에서 한 발 더 내디디려고 허위적거리는 마음이 있다: 그녀는 속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의 그녀가 손톱에 신경을 쏟고 있는 그녀와는 달리 돌아앉아서 혼자 하는 푸념 이고 그녀는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그런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생각이다.
마담이 온 것은 약속에서 너끈히 한 시간은 지난 때였다. 순자의 말대로였다. 바로 곧 열게 된다고 마담은 말한다. 꾸밈새를 새로 할 생각인데 돈은 넉넉히 들여서 새보 차리는 맛을 낼 작정이라고도 한다. 마담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녀는 마음이 안 놓인다. 빚갚기를 미루기 위해서 허풍을 떠는 것인지 보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 뜨아해서 제대로 맞장구도 치지 않는 그녀에게 마담은 핸드백에서 수표를 꺼내주면서 말했다.
“요즈음 바쁠 테지. 원 다른 애들하구야 다르지. 너야 이만 돈에야 궁색 했겠니? 그래 그 녀석은 아직 붙잡지 못했니?”
마담은 약속대로 돈을 준다는 일이 안 훨 일이¡기나 하는 것처럼 그녀의 변명을 대신해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가 열리면 다시 나올 것으로 믿고 있는 이쪽이 거북할까봐 어루만져 주는 ’것임 이 분명하였다.
아직도 붙잡지 못했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상처를 건드리운 고양이처럼 화가났다. 그녀는 말없이 수표를 접어 핸드백에 받아 넣으면서 인제는 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자기는 이 돈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자 또다시 화가 나는 것이었다.
P온천으로 가는 기차는 서울역에서 오후 네 시에 있다. 이튿날 그녀는 이 기차를 탔다. 휴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등차 안은 듬성했다. 떠나기 조금 전에 뚱뚱한 중년의 남자가 그녀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었다. 혼자 있고 싶은 그녀에게는 귀찮은 일이었으나 대뜸 자리를 옮기기두 어려웠다. 그녀는 창밖에서 뒤로 달려가는 오월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어제 그녀가 앉아 있었던 바의 풍경과 조금도 다른 것이 아닌 것처렴 부고 있었다.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전히 그녀 자신에 달려 있었고, 그녀는 죽기로 마음먹었고, 지금 자기 주검을 눕힐 자리로 빨리 달리고 있으니. 하숙집에서 죽키는 죽어도 싫었다. 죽은 다음에 안 마당에 세든 집 식구들이 자기 방문 앞에서 떠들썩하고 들여다보고 할 것을 생각해서 그랬고, 약을 마시구 잠이 들기까지 그 좁은 방에서 천장을 쳐다보고 었어야 할 생각은 죽음 그것보다 더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가진 것을 팔았더니 밀린 집세와 구명가게의 빚을 갚는데 꼭 맞았다. 그래서 마담에게서 받은 돈은 그대로 남았다. 그녀는 P온천에는 전에 가 본 적이 있다는 것과 가기가 가깝다는 까닭으로 그곳으로 자리를 골랐다. 모든 일은 끝나고 이제 열차 시간표처럼 꼭 짜여진 시간만이 잇달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모든 것은 여전히 거짓말만 같다. 그것이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어느 누군가 그녀의 마지막 바램까지를 몰래 다스리고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쳐 보았자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처럼. 자기만이 정할 수 있는 일에 다른 사람이 참견하고 자기는 그것과 싸워야만 한다는 느낌이, 그리고 그 일이 다름아닌 제 손으루 죽자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녀에 게는 짜증스러운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그 짜증스러움이 밖으로부터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맞은편 자리부터 오고 있었다. 이맛전이 희뿌연 그 남자는 담배 연기 사이로 그녀를 뜯어보고 있었다. 몸으로 알 수 있는 그 남자의 눈길은 뭣하는 계집인지 안단 말야 하는 투의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이 들자 그것은 무거운 고단함을 떠말겼다. 그러자 그녀는 거의 날래다고 해야 할 움직임으로 핸드백을 열었다. 줄칼은 없었다. 그러자 그녀 앞에 요즈음 들어 처음으로 부피 있는 느낌이 ― 아득하도록 깊은 구렁텅이가 빠끔히 아가리를 벌렸으나 곧 인색하게 아물려졌다.
마치 그녀를 위한 것처럼 차내 판매원이 다가왔다. 그녀는 사과를 사고 칼을 빌렸다. 그녀는 되도록 천천히 껍질을 벗겼다.
“멀리 가십니까?”
뚱뚱한 남자는 끝내 말을 걸어온다. 그녀는 손에 든 칼로 그 소리가 나는 쪽을 힘껏 푹 찌르고 싶은 흉포한 북받침을 겨우 참는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눈길 어림의 그쪽에 싱글거리는 남자의 얼굴이 있다. 그녀는 토마토 껍질을 벗기듯 얇게 천천히 사과를 벗겨간다. 칼끝을 그쪽으로 보내고 싶은 욕망에 지그시 버티듯이. 내 얼굴에 하는 일이 나타나 있는 것일까 하고 그녀는 생각해 본다: 그 일이 어떻고 저렇구가 아니라 의당 막 굴어도 좋으려니 하는 남자의 눈길에 그녀는 미움을 느낀다. 이 남자 ㅡ 이 처음 만난 뚱뚱한 남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만일 이 사나이를 데리고 간다면¨ 자살 계획에 어떤 어긋남을 가져올까? 술에 약을 타서 먹여 놓고 나는 혼자 그 자리에 가서 죽을 수 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되는 일이다 하고 생각한다. 자기의 죽음이 거짓말 같았던 꼭 그만큼 그 일을 조금도 심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죽여 버리자…… 아.
“아.”
자기 것보다 먼저 나온 남자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엄지 손가락을 누르며 그 손에 잡고 있던 사과를 떨어뜨렸다. 누르고 있는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새어나온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기나 했던 것처럼 말없이 일어나서 시렁에서 트렁크를 집어들고 차칸의 맨끝 자리로 가서 앉았다. 손수건에서 싸 쥐고 있는 손가락 끝이 톡, 톡, 쏘는 아픔 속에 그녀는 의자등에 머리를 기대고 처음으로 편안한 몸매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푸른빛으로 더럽혀진 사막이 자꾸 다가온다. 속에 사막을 품고 있는 여자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남이, 그 무정함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
P온천에 이르니 바야흐로 해질 무렵 이다. 내어 주는 방은 마음에 들었다. 밥맛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방에 있기도 무료해서 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한다.
여기저기 노점 이 벌여진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그녀에게는 그들 모두가 이 고장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들 가운데 자기 같은 마음으로 이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즐거운 사람들로 보인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부러운 생각은 없다. 목적지에 온 지금 그녀의 마음은 더욱 비어 있다. 사보텐마저 없어진 사막 같다. 그 가시마저. 그래서 더욱 거짓말 같다. 자기가 내일이면 죽는다는 일이.
골목길에 교회가 있다. 불이 켜친 창문이 길쪽으로 나 있다.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본다. 양쪽 벽에 의자가 한 줄씩 놓이고 가운데는 비어 있다. 설교단 뒤편에 금누렁 예수상이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천주교회라는 것을 안다. 그 텅 빈 홀을 어디선가 본 듯 싶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마침내 어제 들렀던 바의 그 치워놓은 휑한 마루를 자기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안다. 자그만한 그 교회는 바의 홀보다 얼마 더 넓지 않다. 그녀는 예수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황금의 두 팔을 힘없이 올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앞에 석고로 된 마리아가 석고의 아기를 안고 서 있다. 마리아는 유복자를 안은 홀어미 같이 보인다. 세상의 어느 어미 아들하고도 같지 않은 그 식구들이 말없이 살고 있는 이 작은 집에서 그녀는 그들대로 문제를 안고 있는 한 집안을 본다. 문득 위로 치켜진 예수의 금누렁 팔이 점점 늘어지면서 소리내어 땅에 떨어질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오래 지켜서서 본다. 기다리고 있으면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이어 그녀의 마음에 또 엉뚱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저기 매달린 사내 저 황금의 팔을 가진 사람이 그 팔을 들어 나를 부른다면 나는 죽는 것을 그만두어도 좋다고 그녀는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느끼는 것이었다. 죽기가 겁나서도 아니지.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기의 죽음이 거짓말처럼 겉돌지 않고, 죽음은 무거운 돌처럼 그녀의 발목에 매달린 것을 그녀는 바랐던 것이다. 그녀는 저울의 이쪽 접시에 올라 앉아 있다. 그리고 다른 쪽 접시에 그녀의 결심을 ―― 죽음의 결심을 얹었던 것이지만 그것은 비누방울처럼 가벼워서 살아 있는 그녀의 몸과 맞먹어 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안달나게 한다. 그녀는 거의 비는 마음으로 예수를 바라본다. 그러나 예수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마치 죄인처럼. 마리아도 움직 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래도 오래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부끄러웠다. 그녀는 돌아섰다.
다음날은 맑게 개인 날씨였다. 천천히 몸차림을 하고 한낮 가까이 여관을 나섰다. 이 집은 산 언저리에 시내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녀가 작정한 자리는 그 산속에 있다. 그 자리는 죽음을 마음 먹은 참부터 그녀의 마음 속에 있었다. 세 번 이곳에 올 적마다 산속에 있는 그 자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죽자고 마음먹은 참에 졸리운 사람이 침대로 걸어가듯 그녀의 마음은 그 자리로 겉어갔던 것이다. 산은 한참 달아오르는 훈김과 풀 냄새로 싱싱하고두 취하게 하는 몸내음을 풍긴다. 그 자리로 가까이 가면서 그녀는 숨이 가빠진다. 산길의 비탈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반대편 접시에 그녀의 진실에 맞먹는 묵직한 저울추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자리였다. 산에 가는 사람이면 어디선가 언젠가 한 번은 만나기 마련인 산모퉁이에 묘하게 ㅅᅟᅮᆷ은 아늑한 빈 터. 산속에 있는 무덤이 흔히 그런 명당인 경우가 많지만 그보다 더 막히고 아늑하였다. 멀리서 그녀는 거기를 알아보려고 살핀다. 수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조심스레 발을 옮겨 디디면서 그녀는 비탈을 옆으로 가로질러 간다. 엉킨 나뭇잎 사이로 빈터가 나타난다. 그러자 그녀는 우뚝 섰다. 그리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그곳을 조금 몸을 굽히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이 있다.
그녀는 좀더 걸어나갔다. 그러나 거기가 한계였다. 나무숲은 거기서 끊어졌다가 그 빈터 가까이에서 다시 듬성듬성 비롯되고 있는 데다가 그녀가 있는 자리에서 조금 나가면 작은 낭떠러지다. 그녀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좀더 잘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빈터를 둘러 서 있는 나뭇가지와 잎새가 흐늘흐늘 움직이는 탓으로 사람의 온몸을 볼 수는 없었다. 한 쌍이 잔디에 누워 있다. 여자는 남자의 팔을 베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모로 누워 있다. 그녀는 풀썩 주저앉았다. 바로 풀이 우거진 발 밑에 주저앉은 것이었으나 사실은 하나의 떨어짐 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타고 있던 저울에서 저쪽 접시의 무게가 갑자기 옮겨지고 그녀의 마음은 허망하게 내려갔다. 그녀는 다시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치마에 다닥다닥 붙은 가시가 돋힌 열매를 하나하나 옷의 올에서 뜯어 내면서 줄곧 고개를 들지 않았다. 치마에 붙었던 열매가 다 없어지자 그녀는 손가락에 풀을 감아서 똑똑 따내기 시작했다. 햇빛으로 덥혀진 공기와 밸이 터진 풀과 흙의 독특한 냄새가 버무려져 진하게 퍼져 일어난다. 그 냄새는 떨어질 때의 멀미 같았다. 그녀는 속이 올라왔다. 얼마나 지났는지 아무튼 무척 오랜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는 지친 느낌을 안고 그녀는 일어섰다. 빈터의 남녀는 여전히 누워 있다. 또 한 번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가 들린 듯 싶었다. 그녀는 웃음소리에 쫓기듯이 자리를 떠 여관으로 돌아왔다.
온 밤 그녀는 뒤숭숭한 꿈속을 헤맨다. 푸른 잔디 위에 두 남녀는 행복스럽게 웃으면서 누워 있다. 자세히 보니 여자는 어느새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말한다. 당신 팔을 베고 이대로 죽고 싶어. 이보다 더 행복하게 죽을 순 없잖아? 남자가 말한다. 왜? 하늘이 저렇게 근사한데. 이 풀냄새 좀 맡아 봐. 죽으면 다 그만이야. 그러나 여자는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싫어이, 지금, 당신과 내가 꼭 붙잡고 있는 지금 이대로 영원해치고 싶어. 남자는 또 어느새 예수였다. 예수는 황금의 팔올 그녀의 머리 밑에 받친 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쓸쓸하게 웃었다. 그 얼굴이 누군가를 닮았다고 꿈속의 그녀는 생각하였다. 예수는 햇빛에 반짝이는 나머지 한편의 금빛 팔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죽을 수 없어. 어머. 하고 여차는 말한다. 그거 무슨 뜻? 너는 내 팔에서만 죽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죽어요. 안 돼, 하고 예수는 말하면서 누운 채로 호주머니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러자 해사한 눈자위가 꼭 누구를 닮았다고 꿈속의 그녀는 생각하였다. 왜 안 돼? 하고 그녀는 베고 누운 금빛의 팔을 머리로 비빈다. 예수는 말하였다. 꼭 되는 사업인데 좀 돌려 줘. 그녀는 비로소 그가 누구인가를 알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남자의 팔에서 미끄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거기서 잠이 깬다. 아직 한밤중이었다.
이튿날 그녀는 전날과 같은 시간에 산으로 올라갔다. 전날보다 길이 가깝게 느껴져서 그녀는 되도록 천천히 올라갔다. 빈터를 바라보는 데까지 왔다. 그녀는 두려운 광경을 마주보듯 그쪽을 건너다봤다. 오늘도 두 남녀는 벌써 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여자가 메쿄 있는 남자의 팔이 햇빛 속에서 환한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다. 남자가 짙은 누렁 샤쓰를 입고 있었다. 어제 보았을 때도 그 옷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여자가 몸을 뒤채는 것이 보이고 이어 암암한 웃음소리…….
그녀는 곧 돌아서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마루 끝에 의자를 내다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런 일은 전혀 꿈도 꾸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한 결론을 내리는 데도 퍽 시간이 걸렸다. 그 터를 찾아낸 바에는 두 남녀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날마다 빈터를 찾기가 쉬웠다. 그들은 며칠이나 있을 셈인가? 그것도 알 수 없다. 그들이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길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설령 그녀가 갔을 때 그들이 빈터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이곳을 떠났다거나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되지 못한다. 만일 그녀가 약을 먹고 잠이 들었을 때 그들이 온다면 일은 틀리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 두 사람만이 거기를 찾아내라는 법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곳을 쓴다는 일부터가 안 될 말이었다. 남은 길은 두 가지 뿐이었다. 거기서 죽는 것을 그만두는 일. 그것은 어려웠다. 죽음을 결심한 참부터 마음에 둔 탓으로 이제 그녀에게는 죽음이자 그 터였다. 거기서 죽을 수 없으면 죽을 길이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잡혀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밤사이에 거기서 약을 먹는 일이다. 비록 그 터라는 데서는 마찬가지였으나 밤에 거기서 죽음을 기다린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으려니와 그터 그 자리의 맛도 바뀌는 일이었다. 그녀가 처음 그 터를 본 것도 낮이었고 드러누워서 보는 하늘과 거기 떠있는 여름 구름과 둘러선 나무들의 술렁댐이며 환한 공기가 그곳의 모습이었다. 밤의 그곳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그녀로서는 밤에 거기를 쓴다는 것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새 사실이었다.
자리에 든 다음에도 언제까지나 매듭도 짓지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잠깐 눈을 붙였는가 하면 빈터의 다정한 한 쌍이 나타나고 그녀는 어느새 깨어 있고 하였다. 그런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버릇대로 그녀는 눈을 붙이려는 헛된 안간힘을 썼다. 몇 방 건너 객들이 떠들던 소리도 멈추고 커다란 여관에서 자기만이 깨어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녀는 끝내 무서운 소설의 무서운 대목을 마지못해 열어 보는 어리수긋한 독자처럼 그녀의 마음의 어떤 문을 열었다. 거기 그 풀밭에 그녀 자신과 검은 안경을 쓴 해사한 ‘그’와의 추억의 자리라는 것을 깨닫기나 한 것처럼 자기 행위의 뜻이 밝게 두러나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나는 겄이었다. 그리고 자기를 짓밟는 것이 그 공지를 멋대로 차지한 남녀의 속셈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밉살스러웠다. ‘그’에게 순정을 주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아주 없다. 그런 순정을 믿지 않는 데서 비롯한 사이였으므로, 오히려 ‘그’의 순정을 그녀가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급은 안 됐다고 느끼는 그러한 사이였다. ‘그’가 돈을 돌려 달라고 할 때도 그런 미안함을 조금 때우는 생각이 있었고 ‘그’에게 성의를 보인 것은 아니라고 그녀는 생각했었다. 설령 다른 남자가 (‘미스터 강’이나 ‘한’이었더라도) 그런 다짐으로 말해 왔으면 그녀는 응했으리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빈터에 정답게 누운 남녀를 보는 순간 그녀는 환각(幻覺)이라고 의심하였다. 자기와 ‘그’가 거기 누워 있었으므로. 그것은 기쁨의 환각이었고 그 환각과 죽음은 맞먹었다. 바로 다음 순간에 환각은 깨어지고 그녀는 허망하게 떨어졌다. 그때 그녀는 그 떨어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다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환하였다. 그녀는 사랑했던 것이다. 순정. 그녀는 낄낄낄 웃었다. 연거푸 낄낄낄 웃었다. 그 천한 웃음소리가 자기의 목구멍이 아니고 방구석 어둠 속에 숨은 어떤 여자의 것인 것처럼 느끼면서 퍼뜩 잠에서 깨었다. 꿈속에서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금방 생각은 달아나고 다만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저 빈터에서 바람결에 끌리던 알릭락말락한 여자외 짧은 웃음소리였다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밤의 나머지 시간은 방금 꾼 꿈의 안팎을 돌이켜 생각해 내려는 씨아질로 새워졌다. 텅 비어서 자꾸 몸이 솟구치는 저울대의 저편에 이번에는 그 꿈을 올려놓으려고 무진 애를 쓴 것이다. 그러는 중에 그녀의 마음은 다른 끝을 잡았다. 그녀는 빈 터의 남녀가 자기 자신과 ‘그’처럼 언젠가 갈라지는 날을 그려봤다. 다정스럽게 팔을 베고 있던 그 여자가 자기처럼 혼자 그 빈터를 찾게 될 어느날인가를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거짓말처럼 마음이 찹잡다. 마치 온 밤내 그 맺음을 얻기 위해 애쓰다가 기어이 뜻을 이룬 것처럼 느끼면서 크게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곧 깊은 잠이 들고 늦은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뜬 것은 전날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머리가 깨끗하고 고단한 기운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점심 때가 되어 그녀는 몇 술 뜨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아무튼 오늘까지만 더 가보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간밤 잠들 때 얻은 심술궂은 희망이 아직도 그녀를 평안케하고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도 어제처럼 안타깝지 않았다. 오늘 또 자리를 차지한 그들을 보게되더라토 크게 실망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하지. 오히려 그녀는 오늘도 그들이 왔겠거니 하고 있었다. 황색의 샤쓰를 입은 남자와 그 여자의 자리에 그녀는 마음 속에서 자기와 ‘그’를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날처럼 벼랑에까지 와서 빈터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가 본 것은 남녀가 누워 었던 언저리에 둘러서 있는 여남은 될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순간 속이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몸을 움직여 그날 이후 처음으로 망보던 곳을 빠져나와 낭떠러지를 조심스레 더듬어 내려서 사람들 쪽으로 다가갔다.
둘러선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그들 사이에 끼어 들었을 때도 그녀를 거들떠 보는 사람은 없었다.
남녀가 누웠던 자리에는 거적대기가 덮여 있고 두 사람의 머리와 팔과 다리의 남은 부피가 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를 받친 채 한낮이 가까운 환한 햇빛 속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남자의 샤쓰 소매에서 내민 팔이 검푸르게 썩어 있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언게 죽었답니까?”
“저쪽 저 안경 쓴 형사가 그러는데 한 일주일 된 것 같다는군요.”
그녀는 꿈결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였다. 거적대기 밑에서 전날에 들은 웃음소리 一 젊온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가 환해지고 다리에서 맥이 풀리면서 그녀는 풀밭에 쓰러졌다.
일주일을 더 묵고 그녀는 서울로 오는 열차를 탔다.
창가에 앉은 그녀는 가게에서 새로 산 줄칼로 골똘히 손톱을 다듬으면서 가끔 창밖을 내다본다.
올 때나 마찬가지로 창밖에서는 푸르게 더럽혀친 사막이 흘러가고 있었으나 그녀는 그 속의 한 풍경을 보고 있었다. 어느 사보텐의 그늘 속에 한 쌍의 남녀가 가지런히 누워 있다. 남자는 그녀가 모르는 얼굴이다. 여자는 사보텐에 가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사보텐의 가시의 저편에서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 손톱 다듬는 손이 저절로 멈춰지고 그녀는 홀리운 듯이 그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주 귀에 익고 사무치는 목소리였다. 암암하게 들려오는 수리.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의 웃음소리였다.
-끝-
2016년 7월 1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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