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대산(德垈山)의 원래 이름은 '덕대산(德大山)'이다. ‘해동지도(海東地圖)’ (보은)에 보은군 서니면과 옥천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라는 설명과 함께 '덕대산(德大山)'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게 근거이다. 또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와 ‘한국지명총람(韓國地名總覽)’에도 ‘덕대산(德大山)은 안내면 도율리에 있다.’와 '덕대산(德大山)'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근래에 이르러 '대(大)' 자를 '대(垈)'로 표기한 기록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꽤나 너른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표지석 말고도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그 안내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도(地圖)에 옥천군 지역의 등산로와 그에 따른 지명만 표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보은군 쪽 방향은 텅 비어 있다는 얘기이다. 어설픈 이기주의(利己主義)가 아닐 수 없다. 이곳 덕대산은 보은군과 옥천군의 경계에 놓여있는 산이다. 두 지자체간에 약간의 배려만 있었어도 저런 반쪽짜리 안내도는 태어나지 않았었을 것이다. 같은 도(道)에 속한 지자체들 사이에도 저렇게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더 큰 화합을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보은군에는 ‘보은 삼산(三山)’이라 불리는 세 개의 명산(名山)이 있다. ‘지아비 산(夫山)’이라 불리는 속리산(천왕봉)과 ‘지어미 산(婦山)’인 구병산, 그리고 그 둘을 부모로 둔 ‘아들 산(子山)’인 ‘금적산’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설정에 어울리지 않게 금적산의 산세(山勢)는 완전히 딴판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로 이루어진 두 산과는 달리 금적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또한 금적산에는 애처로운 옛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주인공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여느 전설(傳說)과는 달리 비극적인 결말이 특이한 이야기이다. 먼 옛날 이곳에는 금송아지의 정성어린 구애 끝에 결혼한 금송아지와 금비들기 부부(夫婦)가 금슬 좋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인 금송아지가 밭을 갈다가 넘어져 두 눈을 잃고 말았다. 아내인 금비들기는 눈먼 금송아지를 위하여 열심히 봉양하였으나 엄청난 금송아지의 식욕을 충족시키기에는 힘이 겨웠다. 해가 거듭될수록 금비들기는 지쳐갔고 끝내는 혼자 떠나 버리고 말았다. 홀로 남은 금송아지는 금비들기를 찾아 헤매다가 지친 나머지 쓰러져 죽고 말았단다. 후세 사람들이 금송아지가 죽은 산이라고 해서 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송아지가 죽을 때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는데, 지금도 꼬리 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砂金)이 많이 나오고 머리를 두었던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서곡리에는 부자(富者)가 많이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적지맥(金積枝脈)은 백두대간 속리산 천황봉에서 안성의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구봉산(549m)을 지나 쌍암재 직전 해발 430봉에서 분기(충북 보은군 회북면과 수한면의 경계에 있음)하여 남쪽으로 충북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9.6km의 산줄기다. 주요산은 구룡산(549), 노성산(572), 국사봉(551),거멍산(495), 덕대산(575), 금적산(652), 국사봉(475)이며,가장 높은 금적산을 대표로 금적지맥이라 한다. 동쪽에는 불로천과 항건천, 거현천, 오덕천, 보청천 등이 금강으로 흐르고, 서남쪽에는 대청호가 있다.
▶산행일ː2023년 06월 28일(수)
▶산행지ː 금적산(651.6m) 덕대산(575.1m) <금적지맥>
▶코 스ː 문티재-<금적지맥>-전망대-덕대산-갈림길-금적산-안부-임도-쓰리/음지/새터말-덕수암입구
▶난이도ː B+
▶누구랑ː부산한마음산악회
▶시 간ː11:34∼15:56(휴식.목욕 포함 04ː22분)
▶거 리ː약 9.64㎞(오르내림포함 약 10.15km)
▶날 씨ː흐림(구름조금/ 미세먼지 비조금)
☞문티재(들머리)ː충북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553-2
☞덕수암입구(날머리)ː충북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254-1
문티재는 보은군의 수한면 거현리 상문치에서 옥천군 안내면 가래치로 넘어가는 해발 320m의 고갯마루이다. ‘조선지지자료’에 <문치(文峙)는 수한면 문치리에 있다. '문치주막(文峙酒幕)'이란 기록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았었음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당시 주막(酒幕)이 있던 자리는 지금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동진휴게소’가 들어서서 오가는 행인들의 쉼터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이 고개를 '문치(文峙)'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쓰는 한자가 틀리기도 한다. ‘1872년 지방지도’의 보은편에는 '문치령(文峙嶺)'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반해, 같은 고지도의 옥천군에는 '문치(問峙)'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고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표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한편으론 한국지명총람처럼 '문티령'이란 지명을 쓰기도 한다.
♣.자기 가치 찾기.♣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서
자기 가치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삶과 앞으로의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남들의
칭찬은 우리의 마음이나 영혼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첫댓글 사진잘보고갑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