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수지에 사는 주부 김 모(50)씨는 올해 초 가입한 남미펀드를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 증시가 양호하리라는 전망에 잔뜩 기대를 하고 펀드에 가입했지만 실제 이들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호조를 보이는 동안에도 김 씨의 펀드는 마이너스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이유는 올 들어 미국 달러나 유로화, 브라질 헤알화 등이 강세를 보인 반면, 국내 원화가치는 급격한 하락 곡선을 그려왔기 때문. 환헤지를 하지 않았더라면 헤알화 강세의 수혜를 볼 수 있었겠지만 김 씨는 해외펀드의 경우 환헤지가 유리하다는 은행 창구 직원의 설명에 추가비용까지 내며 헤지를 택하고 말았다. 손실이 발생한 탓에 이제 와 펀드를 환매하기도 아까운 상황이다.
해외펀드 투자자들이 환율 헤지(환차손을 막기 위해 선물환 등에 투자하는 방법)를 선택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더욱이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환헤지 여부에 따른 해외펀드 수익률 차는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다.
환헤지는 투자하는 국가의 환율이 하락할 경우 입을 수 있는 손실을 막기 위해 선물환이나 통화선물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환율을 고정해 두게 된다.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는 있지만 반대로 투자 대상국의 통화가치가 올라갈 때 얻게 되는 환차익에서도 소외된다.
국내 환율은 지난 25일을 기준으로 원화가치가 달러당 1078.90원에 거래되며 3년 9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화가치 급락에 따라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겠다며 헤지를 선택한 펀드 투자자들은 1년 수익률에서 많게는 20%p 가량 수익이 줄었다. 같은 펀드에서도 헤지 유무에 따라 수익률이 큰 차이를 보이자 환헤지를 선택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간의 원화 약세로 빚어진 상황만을 보고 환헤지 여부를 선택하거나 펀드를 포기하지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26일 현재 ‘삼성글로벌Water주식형펀드’의 경우 환헤지를 선택한 1-C1 펀드의 1년 수익률이 -8.13%인 반면 환노출이 된 2-A 펀드는 수익률 10.16%를 내고 있다. 헤지형과 노출형 펀드의 수익률 차가 무려 18%p 이상 벌어진다. ‘삼성라틴아메리카주식형펀드’ 역시 헤지형인 1-A와 노출형인 2-A 펀드의 6개월 수익률은 각각 -5.43%와 5.56%로 10%p 이상 벌어졌다.
해외펀드, 환노출형이 오히려 수익률 높아
연간 수익률에서 헤지형과 노출형 사이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펀드는 ‘대신글로벌SRI주식종류형재간접펀드’다. 헤지형인 1ClassC1 펀드의 경우 1년 수익률이
-17.55%로 저조했지만 노출형인 2ClassA의 경우 4.32%를 기록했다. 헤지 여부에 따른 수익률 차이가 무려 20%p를 넘어선다.하지만 대부분의 펀드 투자자들은 헤지형펀드에 몰려 있다.
‘대신글로벌SRI주식종류형재간접펀드’의 경우 1ClassC1 펀드의 설정액은 57억원에 달하지만 노출형인 다른 Class의 상품은 모두 1억원 미만으로 집계됐다. ‘삼성글로벌대체에너지주식종류형펀드’는 헤지형인 1-A 상품에 1033억원이 투자됐으나 노출형인 2-A 펀드는 설정액이 21억원에 불과하다. 두 펀드는 연간 수익률이 각각 5.73%와 25.50%로 20%p 가량 차이가 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 등에 투자하는 펀드로 거액의 뭉칫돈이 몰리면서 국내에서 판매되는 해외펀드의 70~80% 가량이 환헤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환노출형 펀드의 성과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투자기간에 따라서는 또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대신글로벌SRI주식종류형재간접펀드’의 경우 3개월 수익률에서는 헤지형인 1ClassC1 펀드의 수익률이 -7.68%로 노출형인 2ClassA 펀드의 수익률 -10.46%보다 양호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헤지형과 노출형 펀드의 수익률 차이가 나는 것은 해외펀드의 표시통화가 달러라 할지라도 실제로 투자에 사용되는 통화는 유로화나 엔화 등 다른 통화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달러 대 원화 환율만으로는 헤지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뿐 아니라 달러화 대비 유로화,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 등도 펀드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에 따라 1년 수익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던 헤지형 펀드가 1개월, 혹은 3개월 수익률에서는 노출형보다 좋은 성과를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헤지, 투자지역·투자기간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주식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는 만큼 해외펀드 투자 시 환노출, 또는 환헤지를 선택하는 데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한 환율 전망 뿐 아니라 펀드의 투자지역과 투자기간 등도 환헤지 여부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강조한다.
김진성 푸르덴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은 대외적으로 글로벌 달러가치가 반등하고 있는 데다 국내 달러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실수요와 예비적 달러 확보 수요까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가파른 환율 상승과 그 배경이 되는 유동성 문제는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다”라고 분석했다.
조한조 우리투자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그동안 국내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이머징마켓 투자에 집중해 온 경향이 있지만 이제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이들의 비중을 줄여가야 할 시점”이라며 “달러 강세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달러 투자자산, 즉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미국펀드 등에 환헤지 없이 투자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환율 급락이 단기적인 현상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환율이 급등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계웅 굿모닝신한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그동안 해외펀드 투자가 대부분 신흥시장에 쏠려 있었던 만큼 원화 대비 강세를 예측하기 쉬웠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단기투자라면 원화 강세를 겨냥한 환헤지 상품이 나을 수 있지만 신흥시장에 장기 투자할 생각이라면 해당국가의 통화가 원화에 비해 강세를 보일 경우 환노출이 더 나을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환율이 해외펀드 투자 시 수익률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펀드 투자자들 역시 앞으로는 투자를 결정하기 전 반드시 어떠한 통화로 펀드투자가 이뤄지느냐를 살펴볼 필요성이 높아졌다. 또한 투자가 이뤄지는 모든 통화에 대해 환헤지가 이뤄지는지, 혹는 일부 통화에는 환헤지가 실행되고 일부 통화에는 실행되지 않는지 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환차익, 비과세 혜택에서는 제외
투자자들은 또 해외펀드 비과세 혜택이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즉, 환노출로 가입한 펀드가 손실을 기록했더라도 환율로 인한 수익 부분에 대해서는 14.5%의 과세가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해외펀드 환차익이 생기는 만큼 손실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소득종합과세 한계선에 있는 투자자라면 환차익에 따라 누진세율을 적용받게 될 경우 세금을 떼고 나면 남는 수익이 없을 수도 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