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설량 3cm의 많지 않은 눈이 내렸지만 인적이 드문 양평 팔당호 물안개공원과 둘레길은 천지가 하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고요히 잠겨있다.
옛사람들은 월백 설백 천지백허니~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천지가 허여니~하며 창을 하다가도 흰 눈을 오는 백발에 비유하곤 했다.
눈이 쌓이고 사람은 없는 1월 10일 남한강 풍경을 모아봤다.
희뿌옇게 해가 떠오르고 물안개공원길은 조용하다
팔당호 9층 전망대
전망대 창 너머 푸르게 보이는 풍경
북한강 물의 정원
양근성지 예수상
아유 스페이스 카페
조선의 불행한 천재 다산 정약용 묘소 앞에 선다. 그의 높은 뜻을 기리려는 듯 무덤의 경사면은 완만하지 않고 봉분이 높이 솟아 있다. 부인 풍산 홍씨와 합장한 다산의 무덤 정면에 묘비가 있고 그 옆에 새로이 같은 묘비명으로 큰 비석이 서 있는데 다산기념사업회에서 1985년에 세운 것으로 비석의 후면에는 다산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비석이 2개인 데 대한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 해명)
다산이 쓴 하피첩의 주인공인 부인 홍씨는 다산의 강진 유배 16년을 넘기고 영원히 해로하고 있다. 다신이 강진 유배시절 부인 홍씨는 그리움에 시집올 때 가지고 온 5폭 다홍치마를 보냈다. 다산은 이를 마름질하여 4권의 책 표지를만들고, 학연, 학유 두 아들이 아비 없는 가정에서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훈육과 당부의 글을 싣고 노을빛 치마라는 뜻의 하피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하피첩을 만들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한강변에 있던 다산의 집 여유당이 홍수에 떠내려 갈 때 집뒤 언덕에 있던 무덤은 유실을 막았으나 어렵게 구해낸 하피첩은 다시 6.25때 피난길에 올랐다가 정약용의 5대손은 수원역 부근에서 난중에 분실하고 말았다. 이것이 2004년 수원의 한 건축물 철거현장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를 거쳐 건축 인테리어업자에게 들어갔고 2006년 TV 진품명품에 나타났다가 하피첩임을 인정받고 이후 강진군과 매매협싱이 가격문제로 결렬되며 부산저축은행 소유주의 손으로 넘어가고 2010년 보물 1683-2호로 지정되었다. 부산저축은행도 2011년 파산하면서 예금보험공사에 의해 하피첩은 서울옥션 경매에 2015년 경매에 나와 공공기관간 경매경쟁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이 실학박물관을 제치고 7억 5천만원에 낙찰받았다. TV 진품명품에 의뢰인이 요청한 가격은 15만원으로 오천 배로 가치가 뛰었다.
다산은 강진 유배당시 많은 서책을 윤선도, 윤두서의 해남 윤씨집안에서 빌려보곤 했었는데 따라서 다산의 부인이 해남 윤씨였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가 다산의 묘비에서 발견한 숙부인 풍산 홍씨라니? 그러고 보니 하피첩 이야기에서 부인 홍씨라고 읽은 것 같은데 부인이 둘이었나?하는 의문은 무덤을 내려와 다산 유적지 여유당 대문 옆의 설명문에서 어머니 해남 윤씨(고산 윤선도의 후손)라는 표기로 정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