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리나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톨스토이는 장변소설을 많이 남기셨다. 그러나 그는 노년에 들어서 그리스도사상이 담긴
단편소설이 여러편담긴 책을 남기셨다. 그는 성서에 대한 책도 남기셨다 특이하게 정경에 들어있지
않는 토마복음서도 남기셨다.
안나카타리나 소설의 첫머리는 우리 신앙인에도 큰 교훈에 될것이다 .
저는 이러한 사실을 몇년전에 대구시립도서관에 하는 좋은책읽기에 대한
교육에 참가하면서 알게되었다.
요즈음같이 어려운시기는 많지 않을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본당과 교구는 침체되어가는 것이
눈에 비쳐지고 있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내소모임만 잘한다고 잘 자라게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200여년전에 관료가 부패하고 길거리에 걸린이 넘쳐나고 있고 나라에서
금기한 박ㅎ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것보다 더 시각한 고심이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제없이 산골짝에 목숨을 걸고 찾아가는 이들이 늘어만 갔다고 한다.
양반들은 가문을 잇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합류하지 못하기에 중인출신과 과부등이 이들을
이끌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가지 문제로 과거 교우촌들이 복원되지 못하고 있지만
수많은 교우톤이 있었음을 알수가 있고 수많은 공소가 1980년대 까지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박해를 겪으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침체는 그런의미에서 볼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사람만이라도 교본을 한줄도 읽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성서를 잘 이해할수가 없닥 하더라도
주변에 그리스도를 믿는이들을 만나보기가 어렵다고 하도라도 우리의 끊임없는 시도는
분명히 하느님은 이들을 자라나게 하시고 결실을 보게하실것입니다
성서는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각기 다른데요 같은 말씀으로 그들을 다 적용할수가 있을까입니다
성서와 대비되는 유대인의 율법서는 많은 규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성설ㄹ 배울때에는 여러가지 유형을 들을수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화라든지 비유라든지 사례든지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어릴떄부터 이숍이야기를 들었고 전래동화를 들었다
우리가 화랑이 담배먹던시절이라고 하면서 과연 호랑이가 담배를 먹을수가 있을까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해석과 표현은 그 당시의 서양철학과 연계되어있다는 것이다.
과거 중세기는 암울한 시기라고 말하면서 어두운종교싣ㄹ고 합니다
그러나 이시기를 넘어서면서 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하게되고 프랑스혁명이후에
서양은 계몽주의사조가 퍼지게되고 성서도 비평적사고로 하기 시작한다느 것인데
이들이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성서의 새로운 해석방법이었다.
고대사를 보면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에집트의 문명이
있었고 히브리인들은 아주 보잘적 없는 민족이었다.
이집트나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고대문명발상지는 다신교도들이
넘쳐났다
유일신을 모시는 유대인들은 이를 표현할길이 없었던 것이기에
그 당시 중근동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설화를 이용해서 하느님을 표현한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그가 사는 곳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갔던 것인데 그떄 이미 가나안땅에는 여러 족속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등장이후를 역사적인 사실로 보고 그 이전을 설화로 비롯되었음을
알수가 있다
제가 이러 ㄴ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난 연수회에서 천안의 어느 자매님이
하신 강의를 반박할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자매님의 강의도 그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집트는 사막지대를 지나야 하기에 그가 있는 위치이며 시각과 천문상태에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었지요 나일강에 의존해서 농사를 짓기에 더욱 더 그러했지요
천문관측학문이 발달하지 않았고 기후의 대류현상도 아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그들 나름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기초로 하여서 상상을 하였던 것이다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밤하늘의 무많은 별들이며
매일 보이는 해와 달이었다
거의 연중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사막지역이고
비가 내려도 금방 사라지는 그런 환경이었지요
창세기 처읍에 나오는 표현대로 천지를 그린것입니다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바다 강이나 아니면 하늘위의 수증기를
머금은 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다라는 큰 웅덩이에서 물이 증발해서 공중에 올라서 하늘위의 기온차이와 바람의
영향으로 결빙되어서 비나 눈으로 형태로 내린다는 사고는 전혀 없었지요
새상은 온통 물로 둘러싸여있다고 여겼던 것이고
물층아래에 해와 달과 별이 있고 아래에는 육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늘에는 하느님이 사시는 곳이고 인간이 죽어서 가는 지옥은 당아래에 있다고 믿었다.
이는 노아의 홍수장면이나 야고보가 아들을 생각하면서 슬퍼하는 장면에서
이들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혁명은 인간에게 자유의 의지를 주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갔지만
그당시 많은 수도원이 습격당하고 사제들이 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계몽주의 사상으로 그리스도교의 사상은 그 중삼이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질은 인문주의 또는 인간주의였던 것이다.
저도 개념은 듣고 알지만 이를 잘 표현하기는 어렵네요
이러한 유럽의 교회몰락은 그것이 가톨릭이 되었든 개신교가 되었든간에
처참하게 몰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이탈자의 수가 가속되고 큰성당과 수도원이 이슬람교사원이나
술집이나 마술학교로 바뀌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특히 젊은 계층이 붕괴되어서 새로운 사제가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큰성당의 수입은 신자들의 헌금이 아니라 관광객들의 입장수입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인간철학에 빗대어서 의존한다는 것이다.
유럽은 이미 계시종교에서 깨달음의 신앙으로 변질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의 약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불교는 미국으로 건너거사 미국의 재가운동을 일으키고 수많은 불경경전을
영어번역본으로 발간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이미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말일성도교회인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통교회에서 하는 부활과 성탄을 지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서양 젊은이들이 두명씩 짝을 지어서 선교를 하는 장면을 볼것이고
길가에 세운 왕국회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들교리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중에는 그리스도본질을 잃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이는 성서를 멀리하기 떄문이라는 것입니다
성서형제회도 초기기록을 보면 성서공부도 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였지만
제가 들어온 지난 10년간을 보면 분명 헌장에 들어있는데 어느곳에서도
성서연구에 대한 노력이나 관심을 전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본을 들여다 보자는 내용은 그 교본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생활속에 들이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본안에는 창설자신부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말씀이 군데군데 들어있지만
성서연구나 보급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교본을 완전히 탐독하더라도
성서말씀이 저절로 우리생활가운데 마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하는 시노드에서 경청과 친교가 큰 화두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요즈음의 큰문제는 성서읽기를 게을리 하기 떄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마음을 갖고 발버둥친다고 해도
그 중심이 그리스도말씀에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것이 없이는 우리가 말하는 친교는 단지 우리들의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버스를 대절해서 성지순례나 연수회등을 피정형태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중심안에 그리스도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더 세속화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터전에서 코이노니아팀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말씀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큰모임이나 연수회 묵상회는 빛을 바라는 일이 될것입니다
지금 성서형제회가 침체기에 든것은 우리가 교본내용을 아지 못하기 떄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 말씀인 성서가 없기 떄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코이노니아에서 단원들이 돌아가면서 감당하더라도 성서연구를 제대로
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려는 활동이 팀전체이든 아니면 팀내에 조별을 통해서 세상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코이노니아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이런점을 관찰해보세요
먼저 주님을 초대하는 기도일것입니다. 우리모임이 주님과 함께한다는 인식이 안되어있으면
묵상중에 주님이 들려주시는 말을 듣지도 못할뿐더러 성서묵상하기도 어려울것입니다
성서를 한줄씩 돌아가면 낭송하는데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중간중간마다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단원이 준비된 성서연구발표를 하는대 이때에 지식적인 전달이 아니라 발표당사자가
한주일을 살면서 이복음말씀으로 깨달은바를 중심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대화방향이 전개되어나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리 소식지에 한달치의 성서묵상자료가 마련되어있지만
이들은 특정인이 개별적으로 하는 묵상자료인지라 참고문헌은 될수가 있지만
우리들의 실정에 적합하다고 보여지기가 어려울것입니다.
우리는 코이노니아 팀 활동의 결속력을 위해서 생활에 대한 많은 대화가 이루어져야 할것입니다
아마도 만나기가 어려울때에도 팀간의 소통을 위해서 단톡을 마련하거나 해서
끝임없는 소통을 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임에는 회원뿐만 아니라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함꼐 해야 할것입니다
저는 레지오가 발전하는 이유가 협조단원에 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단원이 되어서도
6개월활동후에 선서를 하게 하는 것도 주요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조그만한일이나 사소한일부터 최선을 다해 달려나가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