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과일도 제철 과일이 제일이듯이 초목이나 꽃도 제철이 돼야 진가를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이 매화(梅), 난초(蘭), 국화(菊), 대나무(竹)이다. 매·난·국·죽의 순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순서에 맞추어 놓은 것이다. 옛 선비들은 이들을 사군자라 불렀다.사군자의 맏형격인 매화는 지조 높은 선비들에게 영혼 같은 존재였다. 조선시대 대학자인 퇴계 이황은 이승과 하직하면서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고 유언했다. 죽은 후에도 매화같이 맑고 고결한 영혼을 유지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매화 예찬의 백미는 조선시대 문신 신흠이 아닐까 싶다.그는 수필집‘야언(野言)’에서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 있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고 했다.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면서 항상 거문고의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을 엄동설한에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지조를 팔아 안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한평생 품어온 향기를 팔았던 이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 경찰 총수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자업자득이고 사필귀정이요, 정권에 아부하느라 입을 함부로 놀린 결과”라고 꼬집은 한 네티즌의 댓글에 눈길이 간다.국내 환경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이는 부동산 개발업체로부터 받은 검은돈에 의해 한평생 쌓아온 명예를 스스로 몰락시켰다.현직에 있을 때는 권세를 누리고 그 자리에 잠시 물러나서는 공인의식을 망각해 온갖 유혹에 동했던 새 정부 국무위원 내정자들은 공직자 검증을 앞두고 몸을 떨구고 있다.전관예우를 받아 거액을 월급으로 챙겼던 일부 인사들에게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새삼스레 나서 출세까지 하려고 한다는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고 있다.
▲봄을 미리 알리는 매화가 꽃을 피웠다.
이번 주말부터 도내 유명 매화원에서 다양한 매화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자존심을 지킨 그 향기로 축제가 풍성해질 것이다. 그래도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향기를 팔며 일신의 안위만을 챙기려고 했던 이들에게는.
제주일보 / 고동수 서귀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