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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굉필(金宏弼)
〇 노방송(路傍松)
一老蒼髥任路塵(일로창염임노진) 한 늙은이 푸른 수염 날리며, 길 먼지에 몸 맡기고
勞勞迎送往來賓(노노영송왕래빈) 수고하며 오고가는 길손 보내고 맞는다.
歲寒與汝同心事(세한여여동심사) 날씨 차가워지는데 그대와 마음 같이 하는 이
經過人中見幾人(경과인중견기인) 지나는 사람들 중에 몇몇이나 보았느냐.
〇 독소학(讀小學) - 金宏弼
業文猶未識天機(업문유미식천기) 글을 읽어도 아직 천기를 알지 못하였더니
小學書中悟昨非(소학서중오작비) 『소학』 속에서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도다
從此盡心供子職(종차진심공자직) 이제부터 마음을 다하여 자식의 직분을 하려 하노니
區區何用羨輕肥(구구하용선경비) 구차스럽게 어찌 잘살기를 부러워하리오?
◀ 이 시는 『소학(小學)』을 읽고서 쓴 시이다.
〇 술회이절 상지지당(述懷二絶 上止止堂) - 金宏弼
日邊揮翰玉堂春(일변휘한옥당춘) 임금 곁에서 붓 휘두르던 옥당의 봄
靄靄靑雲鬧後塵(애애청운료후진) 자욱한 푸른 구름, 후진이 떠들썩하였지
嶺外枕書茅屋夜(영외침서모옥야) 고개 넘어 띳집에서 책 베고 누운 밤
娟娟孤月屬斯人(연연고월속사인) 곱고 외로운 저 달 이 사람 차지로세
〚작자〛 김굉필(金宏弼, 1454~1504)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暄堂)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소학동자’라 자칭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 김득신(金得臣
〇 야음(夜吟)
露滴寒空月正西(로적한공월정서) 찬 하늘 이슬 지고, 달은 서편 이윽한데
欲成佳句意都迷(욕성가구의도미) 좋은 시구를 지으려도, 마음은 온통 어지럽다
秋宵難作還家夢(추소난작환가몽) 가을 밤 고향집으로 가는 꿈도 꾸기 어려운데
窓外鵂鶹樹樹啼(창외휴류수수제) 창밖에선 올빼미가 나무마다 울고 있구나
〇 용호(龍湖) - 金得臣
古木寒雲裏(고목한운리)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있고
秋山白雨邊(추산백우변) 가을 산에 소나기 희뿌였네
暮江風浪起(모강풍랑기) 저물어 가는 강에 풍랑이 일어
漁子急回船(어자급회선) 어부가 급히 배를 돌리네
◀ 이 시는 용산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을 그림처럼 잘 묘사한 시이다.
〚작자〛 김득신(金得臣, 1604~1684)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柏谷). 조선중기 『백곡집』, 『종남총지』 등을 저술한 시인
□ 김만중(金萬重)
〇 남계잡흥 육수(南溪雜興 六首) - 金萬重
其一(기일)
春半金城草未生(춘반금성초미생) 봄은 중반인데 금성의 풀은 자라지 않고
蕭條驛路少人行(소조역로소인행) 쓸쓸한 역 길에는 행인이 적네
陰雲接地天常曀(음운접지천상예) 어두운 구름 땅에 이어져 하늘은 항상 음산한데
積雪渾山夜亦明(적설혼산야역명) 눈 쌓인 온 산 밤에도 밝네
複峽難通千里夢(복협난통천리몽) 겹친 산 통하기 어려워 천 리 밖 꿈꾸니
四時長作九秋情(사시장작구추정) 사철 내내 늦가을 느낌이네
唯憐一曲南溪水(유련일곡남계수) 오직 한 굽이 남계의 물이 어여쁘니
萬古淸如楚水淸(만고청여초수청) 만고의 맑음이 맑은 초수와 같구나
〇 모춘(暮春)
暮春暄氣敷(모춘훤기부) 늦은 봄날 따뜻한 기운 천지에 퍼지고
草樹繞我廬(초수요아려) 풀과 나무들 내 초가집을 둘러싸네
捲簾望時景(권렴망시경) 발을 걷고 지금의 경치를 바라보니
觸目皆可娛(촉목개가오) 보이는 것 모두가 즐길 만하네
白雲散遙岑(백운산요잠) 흰 구름은 아득한 산봉우리에 흩어지고
初日滿平蕪(초일만평무) 처음으로 햇볕이 들판에 가득하네
竹抽嫩綠排(죽추눈록배) 대나무는 연약한 새잎 사이를 뚫고 나오고
桃謝殘紅鋪(도사잔홍포) 복숭아꽃은 남은 꽃잎 사이로 지네
圓荷出綠波(원하출녹파) 둥근 연꽃은 푸른 물결 위로 솟고
嘉木蔭淸渠(가목음청거) 아름다운 나무들 맑은 도랑에 그늘지우네
惠風從東來(혜풍종동래) 봄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와
谷鶯聲相呼(곡앵성상호) 골짜기에선 꾀꼬리 서로 불러대네
安得故人詩(안득고인시) 어찌 고인의 시를 얻어
永日時卷舒(영일시권서) 영원히 때때로 펴보지 않으리오
〚작자〛 김만중(金萬重, 1637, 인조 15~1692, 숙종 18):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이자 김집(金集)의 손자이다. 조선시대의 문신. 전문 한글인《구운몽》으로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였다. 그 외 《사씨남정기》,《서포만필》등의 작품이 있다.
□ 김시습(金時習)
〇 고목(枯木) - 金時習
長枝蟠屈小枝斜(장지반굴소지사) 긴 가지는 서려 굽고 작은 가지는 비꼈는데
直幹亭亭聳碧霞(직간정정용벽하) 곧은 줄기는 정정하게 푸른 노을에 솟아 있네
幾歲倚巖排雨雪(기세의암배우설) 몇 해나 바위에 기대 비와 눈을 맞으면서
何年趠走化龍蛇(하년탁주화룡사) 어느 해 뛰고 달려 용과 뱀이 되려는가?
瘤皮臃腫莊生木(유피옹종장생목) 혹이 난 껍질 울퉁불퉁 장자 나무인 듯한데
奇狀巃嵷漢使槎(기상롱종한사사) 기이한 모습 우뚝우뚝 한대 사절 뗏목일세
春至無心天亦惜(춘지무심천역석) 봄이 와도 무심하니 하늘마저 애석한데
敎藤爲葉蘇爲花(교등위엽소위화) 등나무로 잎 만들고 이끼로 꽃 피웠네
〇 무제 (無題) - 金時習
終日芒鞋信脚行 (종일망혜신각행) 온종일 짚신으로 발길 닿는 대로 가노라니
一山行盡一山靑 (일산행진일산청) 한 산을 걸어 다하면 또 한 산이 푸르네
心非有想奚形役 (심비유상해형역) 마음에 생각 없으니 어찌 몸에 부림을 받으랴?
道本無名豈假成 (도본무명기가성) 도는 본래 이름 없으니 어찌 거짓으로 이룰쏜가?
宿露未晞山鳥語 (숙로미희산조어) 간밤 이슬은 마르지 않아 산새는 우는데
春風不盡野花明 (충풍부진야화명) 봄바람은 끝없이 불어와 들꽃이 아름답네
短筇歸去千峯靜 (단공귀거천봉정) 짧은 지팡이로 돌아가니 봉우리마다 고요한데
翠壁亂煙生晩晴 (취벽란연생만청) 푸른 절벽에 자욱한 노을이 저물녘에야 갠다
〇 사청사우(乍晴乍雨)
乍晴乍雨雨還晴 (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 (천도유연황세정) 천도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 (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비방하고
逃名却自爲求名 (도명각자위구명) 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며
去雲雲來山不爭 (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寄語世上須記憶 (기어세상수기억)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 (취환무처득평생) 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득이 되느니라
◀ 이 시는 잠깐 갰다가 잠깐 비가 오는 날씨를 보고 지은 것으로, 자연 현상에 비추어 인정(人情) 세태(世態)가 변함을 풍자한 시이다.
〇 산행즉사(山行卽事) - 金時習
兒捕蜻蜓翁補籬(아포청정옹보리) 아이는 잠자리를 잡고 늙은이는 울타리를 고치는데
小溪春水浴鸕鶿(소계춘수욕로자) 작은 시내 봄물에 가마우지가 목욕하네
靑山斷處歸程遠(청산단처귀정원) 푸른 산 끝난 곳에 돌아갈 길은 멀지만
橫擔烏藤一箇枝(횡담오등일개지) 등나무 한 가지 꺾어 비스듬히 메고 가네
〇 유객(有客)
有客淸平寺 (유객청평사) 청평사의 나그네,
春山任意遊 (춘산임의유) 봄 산에 마음대로 놂이라.
鳥濟孤塔瀞 (조제고탑정) 외로운 탑은 고요한데 산새만 지저귀고,
花落小溪流 (화락소계류) 작은 시냇물에 꽃잎이 떨어져 흐르네.
佳採智時秀 (가채지시수) 아름다운 나물은 때를 아는 듯 돋아나고
香菌過雨柔 (향균과우유) 향기로운 버섯은 비를 맞아 부드럽노라.
行吟入仙洞 (행음입선동) 길 가며 읊조리며 신선의 계곡에 들어서니,
消我百年憂 (소아백년우) 나의 백년 근심이 녹아지도다.
〇 유산가(遊山家) - 金時習
山家秋索索(산가추색색) 산속 집 가을 되어 쓸쓸한 채
梨栗落庭除(리률낙정제) 배와 밤 뜰에 떨어지네
秫熟堪爲酒(출숙감위주) 찰벼 익어 술 담글 만하고
菘肥可作菹(숭비가작저) 배추는 살쪄 김치 담글 만하네
飢鷹號老樹(기응호노수) 굶주린 매는 늙은 나무에서 울어 대고
羸犢嚙荒墟(이독교황허) 여윈 송아지는 거친 터에서 씹어 대네
日晚喧鷄犬(일만훤계견) 날이 저물자 닭과 개 짖어 대니
前村過里胥(전촌과리서) 앞마을에 아전이 들렀나 보네
〇 제금오신화(題金鰲新話 二首) - 金時習
其二(기이)
玉堂揮翰已無心(옥당휘한이무심) 옥당에서 붓을 휘두를 마음 이미 없고
端坐松窓夜正深(단좌송창야정심) 단정히 송창에 앉았으니 밤이 정히 깊구나
香揷銅甁烏几淨(향삽동병오궤정) 구리 병에 향 꽂히고 책상이 깨끗한데
風流奇話細搜尋(풍류기화세수심) 풍류기화를 자세히 찾아보노라
◀ 이 시는 『금오신화』에 대해 쓴 시이다.
〚작자〛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등을 정리했으며 《산거백영》을 썼다.
□ 김안국(金安國)
〇 반월(半月)
神珠缺碎鬪龍魚(신주결쇄투용어) 신묘한 구슬 깨고 부수면서 어룡과 다투고
剮殺銀蟾半蝕蛆(과살은섬반식저) 은 두꺼비 살 발라내니 반은 벌레 먹었네
顚倒望舒仍失馭(전도망서잉실어) 거꾸로 넘어져 조망이 느려져 말 몰지 못하고
軸亡輪折不成輿(축망륜절불성여) 축 없고 바퀴 부서져 수레역할도 못하는구나.
〇 분성증별(盆城贈別) - 金安國
燕子樓前燕子飛(연자루전연자비) 연자루 앞에 제비가 날고
落花無數惹人衣(낙화무수야인의) 지는 꽃은 무수하여 사람의 옷을 물들이네
東風一種相離恨(동풍일종상리한) 봄바람은 한결같이 서로 이별의 한을 심으니
腸斷春歸客又歸(장단춘귀객우귀) 애달프다, 봄이 가니 객도 돌아가네
〇 유룡문산등절정(遊龍門山登絶頂) - 金安國
步步緣危磴(보보연위등) 걸음걸음 위태로운 돌길을 따라 오르니
看看眼界通(간간안계통) 보면 볼수록 눈의 경계가 트이네
閑雲迷極浦(한운미극포) 한가로운 구름은 먼 포구에 아득하고
飛鳥沒長空(비조몰장공) 나는 새는 먼 하늘로 사라지네
萬壑餘殘雪(만학여잔설) 골짝기마다 잔설이 남아 있고
千林響晩風(천림향만풍) 온 숲에는 저녁 바람 울리네
天涯懷渺渺(천애회묘묘) 하늘가에 회포가 아득한데
孤月又生東(고월우생동) 외로운 달이 또 동쪽에서 떠오르네
◀ 양평에 있는 용문산에 노닐면서 정상에 올라 지은 것
〇 칠석영우녀 이수(七夕詠牛女 二首) - 金安國
其二(기이)
鵲散烏飛事已休(작산오비사이휴) 까치 흩어지고 까마귀 날아 일이 이미 끝났으니
一宵歡會一年愁(일소환회일년수) 하룻밤 즐겁게 만나고 일 년 내내 근심하네
淚傾銀漢秋波闊(누경은한추파활) 눈물이 은하수에 쏟아져 가을 물결 넘실대고
腸斷瓊樓夜色幽(장단경루야색유) 화려한 누각에서 애끓으니 밤빛이 그윽하네
錦帳有心邀素月(금장유심요소월) 비단 휘장에 흰 달을 맞이할 마음은 있어도
翠簾無意上金鉤(취렴무의상금구) 푸른 발에 금갈고리를 올릴 뜻은 없네
只應萬劫空成怨(지응만겁공성원) 다만 응당 만겁도록 부질없이 한만 쌓이리니
南北迢迢不自由(남북초초부자유) 남과 북이 아득하여 자유롭지 못하네
◀ 이 시는 7월 7일 견우와 직녀를 노래한 것
〚작자〛 김안국(金安國, 1478, 성종 9~1543, 중종 38): 본관은 의성.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조선전기 수교리, 예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저서로는 『모재집』·『모재가훈(慕齋家訓)』·『동몽선습(童蒙先習)』 등이 있다.
□ 김인후(金麟厚)
〇 상원석(上元夕) - 金麟厚
高低隨地勢(고저수지세) 높고 낮은 건 지면의 형세 따라서이고
早晩自天時(조만자천시) 이르고 늦은 건 하늘의 때로부터이네
人言何足恤(인언하족휼) 사람들의 말 어찌 근심할 만하겠는가?
明月本無私(명월본무사) 밝은 달은 본래부터 사적인 것이 없는데
◀ 이 시는 5세에 지은 시임
〇 차덕무운 (次德茂韻) -金麟厚
雨後輕雲捲白衣(우후경운권백의) 비 그친 뒤 가벼운 구름 흰 옷 걷으니
靑山野水鷺先知(청산야수로선지) 푸른 산 들판 물을 해오라기 먼저 안다.
西簷斜日長吟處(서첨사일장음처) 서쪽 처마에 지는 해를 길게 읊은 곳은
疏竹微風獨立時(소죽미풍독립시) 성긴 대나무에 살랑바람에 홀로 선 때이어라.
◀덕무에 차운하여
〇 花枝(화지) 꽃가지-金麟厚
墻外花枝欲動春(장외화지욕동춘) 담 너머에 꽃가지 봄이되니 움트려 하는데
年年長見舊精神(년년장견구정신) 해마다 늘 옛 정신을 보여 주네
無端更被東風妬(무단갱피동풍투) 까닭없이 다시 봄바람의 시샘을 받고는
掩抑寒姿向玉人(엄억한자향옥인) 추워하는 모습으로 움츠러들어서 주인을 바라보는 구나
〚작자〛 김인후(金麟厚, 1510~1560) : 요약조선 중기의 문신. 1540년 문과에 합격하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여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다. 인종이 즉위하여 9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정진하였다.
□ 김일손(金馹孫)
〇 차수헌(次睡軒)
落日長亭畔(락일장정반) 정자 있는 둔덕에, 지는 해 드리우고
離盃持勸君(이배지권군) 이별의 잔을 잡고 그대에게 권하노라
危樓天欲襯(위루천욕친) 높은 누대는 하늘에 치솟고
官渡路橫分(관도노횡분) 벼슬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去客沒孤島(거객몰고도) 유배가는 길손은 외딴 섬으로 멀어지고
浮生同片雲(부생동편운) 덧없는 인생은 조각구름
江風不解別(강풍불해별) 무심한 강바람은 이별의 사연도 모르고
吹棹動波文(취도동파문) 바람불어 물결치며 배 떠나보낸다
〇 차금대유(굉필)상필재선생운 오수 – 金馹孫
(次金大猷(宏弼)上畢齋先生韻 五首)
其四(기사)
空山花落月如氷(공산화락월여빙) 빈산에 꽃잎 지고 달은 얼음 같은데
蜀魄聲中哭未能(촉백성중곡미능) 두견새 소리에 통곡도 할 수 없네
自是無心人世事(자시무심인세사) 이로부터 세상일에 뜻이 없어져
帝鄕何處白雲乘(제향하처백운승) 제향이 어디인가? 백운 타고 가련다
◀ 이 시는 김굉필이 필재 선생에게 올린 시에 차운한 시이다.
〚작자〛 김일손(金馹孫, 1464, 세조 10~1498, 연산군 4):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소미산인(少微山人). 춘추관 기사관(記事官)으로 있을 때는 세조찬위(世祖纂位)의 부당성을 풍자하여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다. 1498년(연산군 4)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 때 사림파 여러 인물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 김정 (金淨)
〇 도상유기암 암상유화 유향가애 시이기지 - 金淨
(途上有奇巖 巖上有花 幽香可愛 詩以記之)
利路名途各馳走(이로명도각치주) 이익(利益)의 길과 명예(名譽)의 길로 각각 내달리느라
阿誰寓目賞幽芳(아수우목상유방) 누가 눈을 두어 그윽한 꽃을 감상했겠는가?
朝朝暮暮空巖上(조조모모공암상) 아침마다 저녁마다 부질없이 바위 위에서
浥露臨風獨自香(읍로림풍독자향) 이슬에 젖고 바람 맞으며 홀로 향기 내네
◀ 이 시는 길을 가던 도중 기이한 바위 위에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윽한 향기가 사랑할 만하여 시로 기록을 남긴 시
〇 영해송(詠海松)
海風吹送悲聲遠(해풍취송비성원) 바닷바람은 슬픈 소리를 멀리 불어내고
山月高來瘦影疏(산월고래수영소) 산달은 높이 돋아 수척한 그림자 성글구나.
賂有直根泉下到(뇌유직근천하도) 샘 아래까지 뻗은 곧은 뿌리 있어
雪霜標格未全除(설상표격미전제) 눈서리 몰아쳐도 아직 완전히 없애지 못했구나.
〇 제탑산룡암(題塔山龍巖) - 金淨
千尺巖崖傍碧流(천척암애방벽류) 천 척 바위 벼랑 곁으로 푸른 물 흐르고
如今佳會飮芳醇(여금가회음방순) 오늘 같은 좋은 만남에 향기로운 술 마시네
若將此樂爲圖畵(약장차락위도화) 만약 이 즐거움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作我千年長醉人(작아천년장취인) 나는 천 년 동안 술 취한 사람 되겠지
◀ 이 시는 탑산의 용암에 쓴 것으로, 시중유화(詩中有畵)가 잘 표출된 시이다.
〇 제로방송(題路傍松 三首) - 金淨
其二(기이)
海風吹去悲聲遠(해풍취거비성원) 바닷바람 불어 가니 슬픈 소리 멀리 퍼지고
山月高來瘦影疏(산월고래수영소) 산 달 높이 뜨자 파리한 그림자 성기네
賴有直根泉下到(뇌유직근천하도) 곧은 뿌리 샘 아래까지 있음에 힘입어
雪霜標格未全除(설상표격미전제) 눈서리 모르는 품격 전부 없어지지 않았네
其三(기삼)
枝條摧折葉鬖髿(지조최절엽삼사) 가지는 꺾이고 잎은 헝클어져 내려와
斤斧餘身欲臥沙(근부여신욕와사) 도끼에 찍히고 남은 몸은 모래 위에 쓰러질 듯하네
望絶棟樑嗟己矣(망절동량차기의) 기둥이 되기 바람은 사라져 자신을 한탄하나
楂牙堪作海仙槎(사아감작해선사) 비쭉이 나온 가지는 바다 신선의 뗏목이 될 만하구나
〇 차의지동지운(次義之冬至韻) - 金淨
玄機無外亦無停(현기무외역무정) 하늘의 이치는 무궁하고 또 멈춤도 없으니
誰識虧盈造化形(수식휴영조화형) 누가 이지러지고 차는 조화의 모습을 알겠는가
萬物未生凝涸處(만물미생응학처) 만물이 자라지 못하는 얼거나 마른 곳에도
一陽萌動暗回靑(일양맹동암회청) 하나의 양이 싹터 움직이면 몰래 푸른빛으로 돌아오네
◀ 이 시는 의지(義之)의 「동지(冬至)」 시(詩)에 차운한 시임.
〚작자〛 김정(金淨, 1486년(성종 17) ~ 1521년(중종 16)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고봉(孤峯). 조선전기 이조정랑, 순창군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 김정희(金正喜)
〇 도망 (悼亡) - 金正喜
那將月姥訟冥司(나장월모송명사) 어쩌면 월하노인을 데리고 저승에 하소연하여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 내세에는 부부가 처지를 바꾸어서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나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그대로 하여금 나의 이 슬픔을 알게 할까?
◀ 이 시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지은 시
〇 사국(謝菊) - 金正喜
暴富一朝大歡喜(폭부일조대환희)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너무나 기쁜데
發花箇箇黃金毬(발화개개황금구) 핀 꽃들 하나하나가 황금 구슬이구나.
最孤澹處穠華相(최고담처농화상) 가장 외롭고 담백한 곳에 화려한 억굴
不改春心抗素秋(불개춘심항소추) 봄 마음 고치지 않고 가을 추위를 버틴다.
〇 승 (蠅 ) - 金正喜
天末蟲飛沸若雷(천말충비비약뢰) 하늘 끝에 벌레 날아 우레같이 들끓으니
幾時大火聚邊回(기시대화취변회) 어느 때 대화가 모인 가로 돌아갈까?
憐渠浮世多情甚(연거부세다정심) 불쌍한 너는 뜬세상과 너무도 다정해서
抵死驅之抵死來(저사구지저사래) 한사코 몰아내면 한사코 기어드네
◀ 이 시는 추사(秋史)가 유배 시절 파리를 보고 읊은 영물시(詠物詩)
〇 취우(驟雨) - 金正喜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나무 나무 더운 바람 잎들이 나란한데
正濃黑雨數峯西(정농흑우수봉서) 몇 봉우리 서쪽에는 비 짙어 새까맣네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애) 쑥빛보다 새파란 한 마리 청개구리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제) 파초 잎에 뛰어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내네
◀ 이 시는 초여름 소낙비가 내린 정경(情景)을 노래한 시이다
〚작자〛 김정희(金正喜,1786년(정조10) ~ 1856년(철종7) 자 원춘(元春), 호 추사(秋史)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노(果老) 농장인(農丈人) 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조선후기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실학자·서화가.
□ 김종직(金宗直)
〇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 - 金宗直
桃花浪高幾尺許(도화랑고기척허) 복사꽃 띄운 물결이 몇 자나 높았는고
銀石沒頂不知處(은석몰정부지처) 하얀 돌은 머리까지 잠겨서 어딘지 모르겠네
兩兩鸕鶿失舊磯(양량로자실구기) 쌍쌍의 가마우지 옛 돌을 잃고
銜魚却入菰蒲去(함어각입고포거) 물고기 물고는 곧 부들로 들어가네
◀ 이 시는 보천탄에서 지은 것이다.
〇 화산기(華山畿)
塚上靑靑連理枝(총상청청연리지) 무덤 위에 푸르게 난 연리지여
行人爭唱華山畿(행인쟁창화산기) 행인들은 모두 화산기 노래를 부르는 구나
野棠花發當寒食(야달화발당한식) 들에 해당화 필 때 한식 오니
幾度春魂化蝶飛(기도춘혼화접비) 몇 번이나 그들의 혼은 호접이 되어 날아갔느냐
〚작자〛 김종직(金宗直, 1431, 세종 13~1492, 성종 23): 호는 점필재(佔畢齋). 아버지 김숙자(金叔滋)는 고려 말·조선 초 은퇴하여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던 길재(吉再)의 제자로,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운 종직은 길재와 정몽주(鄭夢周)의 학통을 계승한 셈이다. 김종직의 학문은 정몽주와 길재의 도학사상(道學思想)을 이어받아 절의(節義)와 명분을 중요시하고 시비를 분명히 밝히려고 했다. 그는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이 그가 죽은 후인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그는 부관참시를 당하였으며, 많은 제자가 죽음을 당하였다.
□ 김창협 (金昌協)
〇 강행(江行)
蒹葭片片露華盈 (겸가편편로화영) 갈대 줄기줄기 이슬꽃 가득하고
蓬屋秋風一夜生 (봉옥추풍일야생) 초가집에 밤새껏 부는 가을바람
臥遡淸江三千里 (와소청강삼천리) 맑은 강 삼천리 길을 누워서 오르니
月明柔櫓夢中聲 (월명유노몽중성) 꿈결에 듣는 밝은 달빛, 노젓는 소리
〇 도담 차자익운(島潭 次子益韻) - 도담 자익의 시에 차운하다
江光黯黯晩霞生(강광암암만하생) 강 빛은 어둑어둑 저녁노을 물들 때
鷁首三峯照眼明(익수삼봉조안명) 뱃머리에 봉우리 셋 훤히 눈에 들어오네
戍削雲根無地湧(수삭운근무지용) 깎아지른 바위산 구름 위에 솟아났고
參差鴈序自天成(참차안서자천성) 기러기 들죽날죽 줄짓는 듯 하늘이 내었구나
松梢老鶻衝船起(송초노매충선기) 솔가지 늙은 새매 배 부딪듯 나는데
泓下潛龍應笛鳴(홍하잠룡응적명) 깊은 물밑 잠긴 용 피리 불듯 울어대네
欲借樵柯問仙路(욕차초가문선로) 선경이 어디메냐 나무꾼께 물어볼까
石門深入聽碁聲(석문심입청기성) 돌문 깊이 들어서자 바둑 소리 들리네
〇 산민(山民) 산속에 사는 사람 - 金昌協
下馬問人居(하마문인거) 말에서 내려 주인 계시오 하였더니,
婦女出門看(부녀출문간) 부녀가 문을 열고 내다본다.
坐客茅屋下(좌객모옥하) 손님을 띠집 안에 모셔 앉히고
爲我具飯餐(위아구반찬) 음식상을 차려 내온다.
丈夫亦何在(장부역하재) 남편은 어디 가셨습니까?
扶犁朝上山(부리조상산) 따비를 메고 아침에 산에 갔는데
山田苦難耕(산전고난경) 산밭이 참으로 갈기 어려워
日晩猶未還(일만유미환) 저물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四顧絶無隣(사고절무린) 사방을 돌아봐도 이웃이 없고
鷄犬依層巒(계견의층만) 닭과 개만 언덕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中林多猛虎(중림다맹호) 숲속엔 맹수들이 많아
採藿不盈盤(채곽불영반) 나물도 그릇 가득 캐지 못한단다.
哀此獨何好(애차독하호) 딱하구나. 무엇이 좋아서
崎嶇山谷間(기구산곡간) 이 험한 산골에 살고 있을까.
樂哉彼平土(락재피평토) 좋지요. 저 평지에 가서 산다면야.
欲往畏縣官(욕왕외현관) 가고파도 탐관오리 무서워 못 간다오.
〇 우부 이수(又賦 二首) - 金昌協
其一(기일)
蒹葭岸岸露華盈(겸가안안로화영) 갈대 자란 언덕마다 이슬 꽃 가득한데
篷屋秋風一夜生(봉옥추풍일야생) 거룻배 지붕에 가을바람 밤새도록 불어오네
臥遡淸江三十里(와소청강삼십리) 배에 누워 맑은 강 삼십 리를 거슬러 오르니
月明柔櫓夢中聲(월명유로몽중성) 밝은 달빛 아래 노 젓는 소리 꿈결인 듯하네
◀ 이 시는 1688년, 그의 나이 38살에 청풍부사(淸風府使)로 재임하던 시절, 남한강을 기행(紀行)하면서 지은 시이다.
〚작자〛 김창협(金昌協, 1651~1708) 본관 안동. 자 중화(仲和). 호 농암(農巖) ·삼주(三洲). 시호 문간(文簡). 과천(果川) 출생.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 숙종 때 대사성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수항이 사사(賜死)된 뒤 은거하고 후에 관직도 사양하였다. 그의 학설은 이기설로 이이보다는 이황에 가까웠으며, 문학과 유학의 대가로서 이름이 높았고, 호론을 지지하였다.
□ 김창흡(金昌翕)
〇 갈역잡영 백칠십륙수 (葛驛雜詠 百七十六首)
其一 (기일)
尋常飯後出荊扉 (심상반후출형비)
輒有相隨粉蝶飛 (첩유상수분접비)
穿過麻田迤麥壠 (천과마전이맥롱)
草花芒刺易罥衣 (초화망자역견의)
늘 밥 먹은 뒤 사립문을 나서면
그때마다 날아 나를 따르는 나비가 있네
삼밭을 뚫고 보리밭 둑 꼬불꼬불 걸어가니
풀과 꽃의 가시가 쉽게 옷에 걸리네
其百五十五 (기백오십오)
風鞭電屐略靑丘 (풍편전극략청구)
北走南翔鵬路周 (북주남상붕로주)
收得衰軀歸掩戶 (수득쇠구귀엄호)
不知何物在心頭 (부지하물재심두)
바람 채찍과 우레 신발로 조선을 둘러보아
북쪽으로 달리고 남쪽으로 날아 두루 구만 리를 다녔네
쇠잔한 몸을 거두어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으니
무엇이 마음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네
◀ 이 시는 김창흡이 설악산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64세 때 다시 함경도로 여행을 나섰는데, 그때 길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 「갈역잡영」으로, 위의 시는 그중의 일부분이다
〇 中仙巖
層巖如砌玉 (층암여체옥) 층층의 암벽은 섬돌의 옥 같고
淨掃以松風 (정소이송풍) 솔바람으로 깨끗이 쓸었네
好客來長嘯 (호객해장소) 좋은 손이 와서 긴 휘바람불고
新花古壁紅 (신화고벽홍) 새로운 꽃은 오랜된 절벽에 붉게 피었네
◀ 이 시는 단양팔경의 하나인 중선암에 대하여 읊었다.
〚작자〛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조선 후기의 학자. 기사환국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형 창집 ·창협과 함께 은거하였다. 후에 관직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성리학에 뛰어나 형 창협과 함께 이이 이후의 대학자로 이름을 떨쳤으며, 낙론(洛論)을 지지하였다. 김창협의 동생이다.
□ 김택영(金澤榮)
〇 문황매천순신작(聞黃梅泉殉信作) - 金澤榮
麥秀歌終引酖巵(맥수가종인짐치) 맥수 노래 마치고 독 술잔 끌어당기니
五更風雨泣山魑(오경풍우읍산리) 새벽 비바람에 산도깨비 우네
誰知素定胸中義(수지소정흉중의) 누가 본디 정해져 있는 마음속 의리를 알랴?
已在嘐嘐十咏時(이재교교십영시) 이미 큰 뜻이 열 가지 읊을 때에 있었네
詞垣誰復是眞才(사원수부시진재) 사원에 누가 다시 참재주 있느냐?
璧月無光斗柄摧(벽월무광두병최) 구슬 달은 빛이 없고 북두자리 꺾였네
知否賞音人獨在(지부상음인독재) 마음 아는 사람 홀로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靑楓江畔望魂來(청풍강반망혼래) 푸른 단풍 강 언덕에 혼령 다시 오기를 바라네
◀ 이 시는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쓴 시
〇 패강별곡2((浿江別曲2)
只怕郎心似去波(지파낭심사거파) 임의 마음이 떠나가는 물결인 것이 두려워요
大同江水水空多(대동강수수공다) 대동강 강물은 공연히 많아
長送歡舟唱棹歌(장송환주창도가) 멀리 보내고 기쁘게 배 태워, 뱃노래 부르네
啼盡紅蓮花兩頰(제진홍련화양협) 울음 그친 붉은 연꽃 같은 두 뺌엔
祗今無淚可添波(지금무루가첨파) 지금 눈물 말랐는데, 어찌 푸른 강물에 보탤 수 있겠소
〚작자〛 김택영(金澤榮, 1850, 철종 1~1927): 호는 창강(滄江), 당호는 소호당주인(韶濩堂主人). 한말(韓末)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시문(詩文)에 모두 뛰어났다.
□ 김흔(金訢)
〇 낙매후우강전((落梅後又岡前1)
春事還隨畵角殘(춘사환수화각잔) 봄날의 일들은 다시 화각소리에 쇠잔해지고
攀條不覺屢盤桓(반조불각루반환) 가지를 잡고 서서 몇 번을 서성이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北枝容有餘芳在(북지용유여방재) 북쪽 가지에 남은 향기 남아 있어
爲報吟人洗眼看(위보음인세안간) 시 읊는 사람 위해 눈 씻으면 바라본다
〚작자〛 김흔(金訢, 1448년(세종 30) ~ 1492년(성종 28)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군절(君節), 호는 안락당(顔樂堂). 문장은 율시에 능하였으며, 시호는 문광(文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