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엑스포 현장 도착상전이 벽해가 되었네
반도의 남단 후미진 곳
외롭던 항구도시 여수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고 갈파하신
충무공이 거북선과 대포를
만들어 왜군격퇴의 본부로
삼으셨던 전라 좌수영, 여수
사십년전 가난을 벗어 보고자
서울행 야간 완행 열차를 탔던
여수역 자리엔 엑스포 정문이,
플랫폼이 있던 자리에는
높고 웅장한 아쿠아.룸이,
녹슬은 철길옆 억새풀만이
파도소리를 듣던 자리에는
각양 각색의 전시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구나.
젖은 그물을 펼쳐 말리던
오동도 입구에는 6성급의
호텔이 유월의 태양아래
한껏 위용을 뽐내고 있고
여수 시내와 오동도 사이에
놓인 석산 밑으로는 두개의
터널이 뚫려 수많은 차량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구나.
하수처리장, 장례식장이
호텔에다 자리를 내 줬고
너저분하던 시장바닥이
이순신 광장이 되었네.
엑스포 전시관은 내국인은
물론 세계각국에서 몰려온
방문객으로 넘치고 있으니
이를두고 어찌 여수가
다시 태어났다 아니할 수
있으랴. 상전이 벽해로
변했다 아니할 수 있으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 실감나고
사십년동안 낙후된 걸
하루아침에 따라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앞으로도 이런 영광이
고향 여수에 두고 두고
재현되기를, 가난하기만
했던 항구도시에 활력과
희망이 바닷물처럼 넘쳐
흐르기를 기원하노라.
2. 엑스포 전시관 앞에서
엑스포 관람을 위해
긴 줄에 서 있는 동안
동행한 아들이 말한다.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결혼후에는 시부모인 우리
부부와 한 집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러리라 짐작 했지만
서운한 생각이 든다.
아들 여친은 우리 부부를
무척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대해 왔기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안 믿기지만,
아들과 한 집서 사는 것보다
아들이 어엿한 가장으로 우리
품을 떠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기다림이 지루해 휴대폰에다
메모를 하고 있자니 동년배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작은 글자가 보이냐고 묻는다.
자신은 그런 작은 글자는
전혀 보이질 않고 엑스포도
자식들이 보내줘서 왔단다.
여보, 그대와 내가
나이가 비슷해 보인다고
내가 그대와 같다고 생각마소.
그대와 나 겉모습은
엇 비슷할지 몰라도
그대는 세월의 물결에
몸을 맡긴 한개 나무토막
나는 세월의 거친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 비늘 하나
빠지지 않은 한마리 연어,
가슴속 끓는 열정이 너무 뜨거워
때로는 차가운 급류에 몸을 던져
식힌 후 비상하는 한마리 솔개
3. 엑스포 국제관을 둘러 보고
로봇 물고기가
춤을 추고
로봇 춘향이
그네를 탄다
로봇 드러머가
드럼을 치고
로봇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연주한다.
이런 여러가지 일들을
모두 로봇에게 시킨다면
사람은 무엇을 하려는가
로봇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사람의
말동무도 되겠지만
로봇이 두보나 이백처럼
술한잔 먹으면 흥에겨워
청산유수로 시를 읊을까
힘든 삶 맺힌 설움
시한 수로 달래주기도 할까
로봇에게 혈관이 있고
그 혈관에 따뜻한 피가
흐르지 않는한 그리 못하리라.
인과응보의 법칙과 무관하게
다른 로봇이 비참히 부서질 때
이를 보고 뜨거운 눈물 흘리는
가슴이 없다면 그리 못하리라.
4, 해저 생명체를 보고
빛은 생명이요,
빛이 있어
생명이 있다고
배웠거늘
한 줄기 빛도 없는
암흑의 해저에
무수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니
경이롭구나.
빛아래 살고있는
무수한 생명체를
창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암흑세계에도
무수한 생명체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능력앞에는 그저
무릎 꿇 수 밖에...
5, 금오도에서
말로만 듣던 금오도
입달린 사람 모두가
절경이라고 권하길래
하루코스로 배를 타고
들어간 금오도
과연 명불 허전이로다.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많은 아열대 기후를
보이는 낙원 같은 섬
임진란때 충무공께서
거북선과 판옥선을
만드실 때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가셨고
경복궁 중건 때도
목재를 공급했던 섬
조선왕실 사유지로
지정되어 왕실 사슴
사냥터로 사용되다
120년전 일반인들의
이주를 허용했던 섬
가장 험난하다는 3코스
산행로를 따라 걸으니
푸른 바다와 절벽이
어울어진 비경이
걸음마다 펼쳐진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는
무의미하고도 반복적인
행위의 의미를 영원의
시간에게 묻는 듯
무심한 파도소리는
내 가슴에 애잔한
여운을 남기고
산위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이마에 솟는 땀을
말끔히 씻어준다.
이윽고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해안의 절경,
여길 두고 그 어느 곳에
또 다른 천국이 있으랴.
아내는 이 섬 어딘가에
집을 짓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여생을 보내잔다.
좋지 그래 좋지
서울에서 한 없이
먼 것이 단점이지만,
세상사 모두 잊고
이 절경속에서
맑은 공기 마시고 산다면
백년까지는 문제없이 살겠지.
6. 금오도 들어가는 배위에서
다도해 바다위에
누가 저런 걸작을
그려 놓았나.
멀리 있는 섬은
희미한 연두색
가까이 있는 섬은
진한 초록색
바다 표면에는
코발트색 비단을
깔아 놓았고
눈에 안 보이는
바람은 찰랑대는
파도로 표현하였네.
유월의 태양은
잿빛 구름사이를
밀치고 나와
자신의 모습을
바다속에
던져넣고 있는데
뉘라서 이토록
큰 캔버스에다
이토록 웅대한
걸작을 그렸을까
조물주의 신비한
손이 아니라면,
조물주가 마음먹고
휘저은 붓이 아니라면
7. 여수로 귀항하는 배위에서
바다는 언제나 제 자리에
있어 그 영원함을 입증한다.
해와 달, 별과 바람 같이
영원한 존재들하고만
무언의 대화를 하면서
사람의 탄생, 성장 소멸을
무심히 지켜보고만 있다.
바다는 사람의 운명따위엔
털끝 만큼도 관심이 없다.
바다는 그저 분노하고
가라 앉히고 또 다시
분노하기를 반복할 뿐
바다여,
그대 파도에 날개를 달아
그대 영원함을 뽐내지 마라.
사람도 죽어
영원 속에 묻히면
영원의 일부가 되나니
8. 여수로의 귀항
웅장한 무변대의
바다를 움직이는 것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람
바람에 멱살잡이 당한 바다는
성난 흰 이빨을 드러내고
해안선을 물어 뜯으며
분풀이를 하고 있다.
해안선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점점이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까지 흰 이빨로
물어 뜯기 시작한다.
성난 파도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바다 속으로
끌고가려는 듯 괴성을
지르며 미쳐 날뛴다.
바다의 분노앞에
사람이 만든 배는
추풍낙엽처럼 흔들린다.
육지로 둘러 싸인 만에 들어서자
손아귀에서 힘이 빠진 바람은
바다를 멱살잡이에서 놓아주고
분노가 풀린 바다는 파도를 가라 앉힌다.
하루종일 정열을 불살랐던
태양은 부드러운 회색이불에 싸인채
서산 위에 길다랗게 누워 휴식을 취한다
항구로 무사히 귀항한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두어지는 도시의 거리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