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504]延烏郞 細烏女(연오랑 세오녀)
延烏郞 細烏女
(연오랑 세오녀 : 연오랑과 세오녀)
第八阿達羅王卽位四年丁酉, 東海濱有延烏郎細烏女, 夫婦而居. 一日,
延烏歸海採藻, 忽有一巖(一云一魚), 負歸日本.
國人見之曰 : 「此非常人也.」 乃立爲王.
(按日本帝記, 前後無新羅人爲王者, 此乃邊邑小王而非眞王也.)
제팔아달나왕즉위사년정유, 동해빈유연오낭세오녀, 부부이거.
일일, 연오귀해채조, 홀유일암(일운일어), 부귀일본.
국인견지왈 : 「차비상인야.」 내립위왕.
(안일본제기, 전후무신나인위왕자, 차내변읍소왕이비진왕야.)
[解釋] 제8대 阿達羅王 즉위 4년인 정유(서기 157)에,
동해 바닷가에 延烏郞과 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바위[혹은 물고기라고도 한다.]가 나타나,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그러자 이를 본 그 나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고는 연오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日本帝記를 살펴보면, 이 무렵 신라 사람으로 왕이 된 사람은 없었다.
연오는 변방 고을의 작은 왕이지, 진정한 왕은 아닐 것이다.)
細烏怪夫不來, 歸尋之, 見夫脫鞋, 亦上其巖, 巖亦負歸如前.
其國人驚訝, 奏獻於王, 夫婦相會, 立爲貴妃.
세오괴부불내, 귀심지, 견부탈혜, 역상기암, 암역부귀여전.
기국인경아, 주헌어왕, 부부상회, 입위귀비.
[解釋]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세오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견하고,
역시 그 바위에 올라갔다. 그랬더니 그 바위도 예전처럼 세오를 태우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서, 왕에게 아뢰었다.
이리하여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세오는 貴妃가 되었다.
是時, 新羅日月無光, 日者奏云 : 「日月之精, 降在我國, 今去日本, 故致斯怪.」 王遣使求二人. 延烏曰 : 「我到此國, 天使然也. 今何歸乎? 雖然, 朕之妃有所織細綃, 以此祭天可矣.」 仍賜其綃.
시시, 신나일월무광, 일자주운 : 「일월지정, 강재아국, 금거일본, 고치사괴.」
왕견사구이인. 연오왈 : 「아도차국, 천사연야. 금하귀호? 수연, 짐지비유소직세초, 이차제천가의.」 잉사기초.
[解釋]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버렸다.
日官(하늘의 조짐을 살피고 점을 치는 일을 담당한 사람)이 말하였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이한 변고가 생긴 것입니다.」
왕은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두 사람에게 돌아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연오가 말하기를, 「내가 이 나라에 도착한 것은,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오. 그러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 대신 내 왕비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오.」라
하고는, 곧 비단을 내려주었다.
使人來奏, 依其言而祭之, 然後日月如舊. 藏其綃於御庫爲國寶,
名其庫爲貴妃庫. 祭天所名迎日縣, 又都祈野.
사인내주, 의기언이제지, 연후일월여구. 장기초어어고위국보,
명기고위귀비고. 제천소명영일현, 우도기야.
[解釋] 사신이 돌아와 이 일을 아뢰고, 그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예전처럼 빛이 났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보관하고
국보로 삼았으며, 그 창고의 이름을 貴妃庫라고 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迎日縣, 또는 都祈野라고도 하였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또는 신화)는 삼국유사와 수이전에 기록된 신라의 설화로, 신라에 살던 연오(延烏)와 세오(細烏)라는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연오 세오(랑郞과 녀女는 성별을 의미하는 말로, 이름이 아닙니다.)가
신라를 떠난 뒤 신라에서 해와 달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연오와 세오가
해와 달의 신(또는 신령)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13년에 일식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이 설화가 일식 현상에서
비롯된 전승으로 추정됩니다.
신라의 왕자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아메노히보코 신화(천일창 신화)와 비슷한 점이 많으며, 연오와 세오에 모두 까마귀 오(烏)가 들어간다는 점[1]과,
세오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의 이름이 영일(迎日, 해맞이)현이라는 점,
세오를 쇠오, 즉 금오[2]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태양신화와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제기(日本帝記)>에 아달라왕 전후 시기에 신라인이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변방읍의 소왕이거나 허구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허구라 할지라도, 연오랑 세오녀 설화는 역사서에 기록된 대표적인
일월성신 신화(해와 달의 신(령)에 대한 신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1] :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삼족오)가 산다는 전설인 양오(陽烏) 전설로
인해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동물로써 사용되었습니다.
[2] : 금오(金烏)는 금까마귀라는 뜻으로, 삼족오 또는 태양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참고자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삼국유사 권 제 1 > 제 1 기이 > 연오랑 세오녀
소재영, 1996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연오랑세오녀설화
(延烏郎細烏女說話)
서철원(2012), 「水路와 處容, 그리고 新羅 설화의 바다」,
『한국고전연구』 26, 한국고전연구학회, 75-104p.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 동해변에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조(海藻)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바위가 연오를 싣고 일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습니다.
세오는 남편 연오가 돌아오지 않자 찾아나섰다가 남편이 벗어 둔 신을 보고
그 바위에 오르니 바위가 또 세오를 일본으로 실어 갔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이 사실을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
세오를 귀비로 삼았습니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일월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려 괴변이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국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이들 부부를 찾게 되었습니다.
연오는 그들의 이동은 하늘의 시킴임을 말하고 세오가 짠 세초(細綃)로
하늘에 제사하면 다시 일월이 밝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사자가 가지고 돌아온 그 비단을 모셔 놓고 제사를 드렸더니
해와 달이 옛날같이 다시 밝아졌습니다. 비단을 창고에 모셔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하였다.
연오는 태양 속에 까마귀가 산다는
양오전설(陽烏傳說)의 변음으로 볼 수 있고,
세오도 쇠오, 즉 금오(金烏)의 변형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연오와 세오의 이동으로 일월이 빛을 잃었다가
세오의 비단 제사로 다시 광명을 회복하였다는
일월지(日月池)의 전설과 자취는 지금도 영일만에 남아 있습니다.
영일현의 영일(迎日), 즉 ‘해맞이’의 지명도 태양신화와 직접 관련이 있으며,
『일본서기』의 「천일창설화(天日槍說話)」도 같은 유의 광명의 신,
즉 태양신화의 이동전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연오랑세오녀설화」는 일찍이 우리 민족이
일본 땅을 개척하여 통치자가 되고 내왕한 문화적 사실을
원시적 태양신화의 동점설화에 붙여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좋은 예화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연오와 세오도 광명을 의
인화한 명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오랑세오녀설화 [延烏郎細烏女說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