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편의점은 1927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사우스랜드라는 얼음 회사가 열었던 ‘세븐 일레븐’이 효시라고 합니다.
얼음을 활용해 신선한 우유와 빵, 달걀 등을 팔기 시작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처음 영업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여서, ‘세븐 일레븐’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미국 편의점에 24시간 영업이 도입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라고 합니다.
편의점의 발상지는 미국이지만 일본이 1974년 편의점을 도입한 후 백화점 매출을 꺾는 등 ‘편의점 왕국’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합니다. 일본 세븐 일레븐은 1991년 경영난에 빠진 미국의 세븐 일레븐 운영사를 사들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1989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문을 연 세븐 일레븐 올림픽 점이 실질적인 1호점으로 지금도 영업 중인데,. 후발 주자인 한국 편의점은 일본 편의점의 운영 노하우를 베끼기에 바빴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편의점이 일본 편의점을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무한 진화를 거듭해 온 덕으로 한국 편의점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일본 내 편의점은 2022년 6월 이후 계속 줄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편의점이 일본 업체를 뛰어넘은 비결로 다양한 신상품과 판매 이벤트를 쏟아내는 기획력이라고 합니다. 조립식 주택, 친환경 화장실까지 판매하고, 인쇄소, 우체국, 약국, 은행 역할도 하면서 혁신 속도에서도 일본 업체를 능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배달 서비스, 모바일 앱 서비스 등을 일찌감치 도입했고, 한국 편의점을 벤치마킹하는 일본 편의점 기업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뉴스가 있습니다.
K 편의점은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서도 훨훨 날고 있다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편의점 종주국인 미국과 일본을 꺾으며 대활약 중이라고 합니다. CU는 몽골에서 70%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GS25는 남부 베트남 지역에서 운영 점포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답니다. 일찌감치 동남아에 진출한 일본 편의점도 K 편의점의 질주에 본격적인 맞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K 편의점의 순발력과 경쟁력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고 우리 국민의 경쟁력입니다.
<지난 5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에 1인당 국민총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인구 5000만 이상의 국가 중 6위라고 한다. 이태 전에도 우리나라가 국력 순위 세계 6위에 올라 일본을 제쳤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당시에 일본은 우리보다 뒤진 세계 8위였고, 이번에는 세계 7위이다. 일본을 여러 방면에서 추월했으니, 이제 자신을 가지고 칙칙한 반일감정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물론 반일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그 뿌리의 하나는, 100여 년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느낀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고대에는 백제인들이 선진 문명을 전해줬고, 고려 때에는 구결을 전해줘 일본 가나(かな)의 기원이 됐고, 근세에는 주자학까지 전해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니 말이다.
다른 하나는, 국권의 침탈 행위가 너무도 패륜적이어서 가슴에 응어리진 굴욕감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전쟁 상황도 아니었는데, 궁궐로 쳐들어온 일본 낭인들이 한 나라의 국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불태웠다. 더욱이, 무저항주의의 3·1운동을 진압하려고 마을 전체를 불태우거나 주민들을 교회에 가두고 몰살하기도 했다.
우리의 국력이 피폐했던 탓이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한 수 밑으로 보던 일본인에게 너무도 잔학무도하게 당했기에 반일감정은 뼈에 사무쳤다. 그렇지만 반일감정이란 소극적이고 패배적인 것이다. 건설적인 감정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동안 반일감정에만 젖어 있었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건설적인 극일(克日)정신을 키워 왔기 때문에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조선보다 훌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조 후기에는 극일정신이 충만하지 않았기에 일본의 재침에 대비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으로 빚어진 굴욕감을 정신 승리로 해소하고는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
더는 굴욕을 당하지 말자며 썼던 류성룡의 ‘징비록’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읽히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베스트셀러가 됐다. 12번이나 일본에 다녀온 조선통신사들도 사행 길에 일본의 부유함과 강대함에 놀랐으면서도, 돌아와서는 국가의 경제와 안보를 다잡는 데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현대의 우리는 임진왜란보다 더 굴욕적인 국권 침탈을 당했지만, 한 번도 극일정신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본을 이겨내려고 대부분 와신상담했다. 강력한 일본군과 힘겹게 싸워온 독립군들도 극일정신을 철저히 내면화하고 있었다. 직접 싸워 본 사람만이 상대방을 정확히 알듯이, 광복군 출신의 독립군 인사들은 한결같이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젊은이들에게 극일정신을 심어줬다.
극일정신이 충만했던 산업화 시대의 산업 전사들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 예법을 배우고, 일본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일본 기술자를 초빙하고, 심지어 일본 제품을 베끼기까지’ 했다. 무장이 허술했던 독립군들은 최강 무력의 일본군을 배워 이길 수 없었지만, 청구권 자금과 극일정신으로 무장한 산업 전사들은 일본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혀서 끝내 극복해 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까지도 우리는 걸핏하면 반일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국가 위상으로 보나 세계정세로 보나, 우리는 일본과 어깨를 맞잡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그들과 유쾌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반일감정을 동원하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산업 전선에서 일본과 싸워본 적도 없는 정치인일수록 시도 때도 없이 반일 선동을 한다.
국민이 깊이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반일 선동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믿어주면 안 된다. 죽창을 들고 싸우자는 반일 선동은 ‘미국 소는 미친 소’라던 반미 선동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고 퇴보적이다.
이제 우리는 늠름하게 세계정세의 추이에 발맞춰 한·미·일 3각 동맹을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경제 결속도 다져야 한다. 머잖아 주요 7개국(G7)의 일원이 돼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문화일보. 김주성 前 한국교원대 총장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시평, ‘반일 콤플렉스’ 버릴 때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일본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책 제목이 1989년에 일본 소니의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가 쓴『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입니다.
솔직히 그때는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는 것이 제 세대에서 가능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달렸고 일본은 걸었습니다. 제가 17년 전에 직장 연수로 일본을 3박 4일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을 보고서 우리가 일본을 앞지를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일본의 농촌은 1800년대 후반에 지은 주택이 그대로인데 우리 대한민국은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새마을주택에서 현대적 주택으로 다 바뀌고 있었고, 우리 직장은 한 사무실에 네 사람이나 여섯 사람이 앉는 구조인데 그들은 창고 같은 사무실에 80명이 다닥다닥 붙은 우리나라 70년대 구조이고, 우리는 책상 위에 다 컴퓨터가 있다가 노트북으로 바뀌었는데 거기는 80명 책상 위에 컴퓨터가 다 합해야 열 대도 되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은 변화를 두려워한 것이 2024년에 우리가 일본 앞에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치인들 뿐일 겁니다.
대한민국은 정치인 판갈이만 하면 못할 것이 없는 나라인데 그 낡은 정치인들이 아직도 「죽창가」를 부르면서 친일, 반일 프레임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 걱정일 뿐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