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의 {사상의 꽃들} 15에서
바퀴 달린 가죽가방
이선희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을
무엇을 쑤셔 넣으면 한없이 들어갈
바퀴 달린 가죽가방
비뚤어지게 서 있는 것이
희끗희끗 때 묻은 것이
울퉁불퉁 늘어진 것이
벌써 여러 곳을 거쳐 왔을
바퀴 달린 가죽가방
여행의 경유지나 기착점을 모른 채
속이 열릴 때까지 지퍼를 닫고 굴러갈
바퀴 달린 가죽가방
낡은 바퀴로 끝까지 가 보겠다며
공항 대기실, 의자 옆에 손들고 서 있는
바퀴 달린 가죽가방
----이선희 시집 {환생하는 꿈}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인간 사회는 그가 지닌 힘의 크기에 따라 계급적인 서열제도를 구축하게 된다. 크나큰 힘을 지닌 자는 지배를 하고, 크나큰 힘을 지니지 못한 자는 복종을 하게 된다. 모든 무리는 ‘소수지배의 원칙’에 복종하게 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타인의 명령에 복종을 하게 된다. 명령을 한다는 것은 복종을 하는 것보다 수천 배는 더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의 역사 철학적인 지식과 함께, 타인들의 심리와 행동양식을 꿰뜷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마음과 뜻대로 나를 이끌 수가 있다면 이제는 나의 목표와 공동체의 목표를 일치시키고, 그 목표가 이상적인 낙원이든지, 영원한 제국이든지간에, 만인들을 설득시키고, 만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이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이 세상의 모든 곳을 찾아다니며, 그 고장의 역사와 전통을 익히는 것을 말한다. 그 여행지가 자기가 살고 있는 국가일 때는 국내여행이 되고, 그 여행지가 그가 소속된 국가 밖일 때는 외국여행이 된다. 수많은 국가와 수많은 저자들의 책을 읽으며 떠나는 독서여행도 있을 수가 있고, 영화와 음악을 통한 문화여행도 있을 수가 있다. 자아의 발전사가 세계의 형성사가 되고, 세계의 형성사가 자아의 발전사가 되는 여행이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여행이란 그 주체자가 자유롭고, 타인들과 이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내 자신을 내 마음대로 이끌고 다닐 수 있는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행자의 삶은 해방자의 삶이 되고, 해방자의 삶은 자유인의 삶이 된다.
이선희 시인의 [바퀴 달린 가죽가방]은 사물(가죽가방)을 인간화시킨 시이며, [바퀴 달린 가죽가방]을 인간화시킴으로써 가난한 자유인의 애환과 그 의지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배부른 노예가 더 나을까? 가난한 자유인이 더 나을까? 먹고 사는 생존이 문제일 때는 배부른 노예가 더 나을 수도 있지만,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가난한 자유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을/ 무엇을 쑤셔 넣으면 한없이 들어갈/ 바퀴 달린 가죽가방”, “비뚤어지게 서 있는 것이/ 희끗희끗 때 묻은 것이/ 울퉁불퉁 늘어진 것이/ 벌써 여러 곳을 거쳐 왔을/ 바퀴 달린 가죽가방”, “여행의 경유지나 기착점을 모른 채/ 속이 열릴 때까지 지퍼를 닫고 굴러갈/ 바퀴 달린 가죽가방”은 ‘남부여대男負女戴, 유리걸식流離乞食’의 피난민이나 조국을 잃어버린 난민과도 다른 데, 왜냐하면 수많은 세월동안 여러 곳을 거쳐왔고, 앞으로도 그 가난한 자유인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너무나도 분명하고 고집스럽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든 탐욕과 정주민의 집착을 버리고, 내가 내 마음대로 “낡은 바퀴로 끝까지 가 보겠다며/ 공항 대기실, 의자 옆에 손들고 서 있는/ 바퀴 달린 가죽가방”의 삶의 철학이 그것을 말해준다.
자유인이란 강한 인간의 가장 이상적이 모델이지만, 그 반사회적인 성격 때문에 그만큼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과 사회와 단체와 국가의 모든 안전장치를 거부하고, 자기가 자기 자신의 주권자가 되어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 안전과 불안, 수많은 고통과 기쁨과 위험과 쾌락을 취사선택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는 [바퀴 달린 가죽가방]은 그의 삶의 축소판과도 같고, “비뚤어지게 서 있는 것이/ 희끗희끗 때 묻은 것이/ 울퉁불퉁 늘어진 것이/ 벌써 여러 곳을 거쳐 왔을/ 바퀴 달린 가죽가방”은 그의 어렵고 힘든 삶의 체위와도 같다. 개인의 자유도 있고, 사회 속의 자유도 있다. 법률 속의 자유도 있고, 국가 속의 자유도 있다. 개인의 자유로 이 수많은 자유들을 거부하고, 이곳 저곳을 향하여 더없이 낡고 남루한 육체를 끌고 다닌다는 것이 오히려, 거꾸로 그를 피곤하고 지친 자유인으로 구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의 경유지와 기착지도 모르고, 여행의 목적지와 종착지도 모른다. 잠시 잠깐 동안 “속이 열릴 때까지 지퍼를 닫고 굴러갈/ 바퀴 달린 가죽가방”은 오히려, 거꾸로 자유로운 여행자의 삶을 추구하다가 그 [바퀴 달린 가죽가방]에 구속되어 있는 자유인의 삶을 말해준다. 자유인은 자유 속에 구속되어 있고, “낡은 바퀴로 끝까지 가 보겠다”는 그의 시대착오적인 똥고집과 이데올로기 속에 구속되어 있다.
하늘은 넓고 하늘은 무한히 높다. 새의 불행은 무한히 넓고 높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날개를 접고 내릴 곳이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자유는 다만 하나의이상이자 환영일 뿐, 자유는 이선희 시인의 [바퀴 달린 가죽가방] 속에 잠들어 있다.
시인은 역사 철학자이자 심리학자가 되어야 하고, 또한, 시인은 아주 탁월한 현실주의자이자 초현실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바퀴 달린 가죽가방]을 역사 철학적으로 인간화시키고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그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은 어느 누가 감히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이선희 시인의 [바퀴 달린 가죽가방]: 나는 자유인이고 나는 복종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