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24-27)> 서양건축사 – 근세
한 달에 두 번(둘째 그리고 넷째 수요일)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 아내와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5월 8일 어버이날)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안산대학교 양용기 교수(건축디자인과)의 ‘근세 서양건축사’관련 강의를 경청했다. 인문학 강의를 수강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으며, 지난해에는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올해는 건축사를 공부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에 작약(芍藥)꽃이 만발하였으며, 연못의 수련(睡蓮)도 꽃을 피워 반갑게 맞았다. 작약(Paeony)의 학명은 ‘Paeonia lactiflora’이며, 속명 ‘paeony’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 식물을 약용으로 최초 사용한 ‘Paeon’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러해살이풀인 작약은 5월경에 중심 줄기 끝에서 하나의 꽃이 피어나는데 꽃의 크기가 상당히 크고 향기가 진하다. 열매는 8월 중순경에 터져서 종자를 뿌린다. 작약 뿌리 등은 약으로 쓰이며, 생리통 등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작약차를 끓여 마시기도 한다. 꽃말은 ‘부끄러움’ ‘부귀영화’ 등이 있으며, 중국에서는 ‘정이 깊어 떠나지 못한다’는 꽃말도 있어 연인들이 자주 선물한다.
꽃 모양 때문에 작약꽃이 모란꽃과 자주 오인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모란(牡丹)은 나무이며, 작약(芍藥)은 풀이다. 꽃은 비슷해도 줄기를 보면 확연히 차이나는 걸 알 수 있다. 모란을 꽃의 왕인 화왕(花王)이라 표현하는 것처럼 작약은 꽃의 재상인 화상(花相)이라고 표현한다.
양용기 교수의 ‘근세 건축사’ 강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근세(近世)는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였다. 이전 시대 중세(中世)는 기독교에 모든 바탕을 두었기에 인간의 시도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로마(Eastern Roman Empire)의 멸망은 당시 기독교에 의지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심한 정신적 충격이었다. 서로마(Western Roman Empire)가 먼저 멸망하고 동로마가 멸망했다는 의미는 곧 기독교의 몰락이다. 또한 이슬람에 의한 동로마의 멸망은 더욱 그렇다. 이를 계기로 종교에 대한 재해석과 인간의 역할에 대하여 인문주의자들이 주장하면서 중세의 신본주의(神本主義)에서 인본주의(人本主義)로 변화가 되어 등장한 것이 근세이며 르네상스가 등장한다.
(1) 르네상스(Renessance), 1400-1530년
중세(中世)와 차이를 두기 위하여 등장한 르네상스는 인간의 역할이 커지는 시기이다. 그래서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부른다. 과거의 스케일은 대부분 신(神)에게 맞춰졌으나 르네상스에 들어와 인간 신체에 적합한 스케일로 모든 것이 재정비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다양한 지역에 대한 시도도 이뤄지면서 이에 대한 발명이 줄을 이어 다양한 발명품이 등장한다.
모든 것의 중심이 하나님 하나였던 세상에서 신과 인간이라는 두 개의 중심이 형태에 등장한다. 르네상스는 새로운 것이 아닌 중세를 거부하고 중세 이전의 고대 신인동형의 시대를 다시 끌고 오는데 대부분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내용이다. 신학 중심의 학문에서 이를 재정비하여 하나님 중심의 일인체계에서 고대의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역할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다.
(2) 매너리즘(Mannerism), 1520년
메너리즘은 이탈리아 1520년대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후기에서 시작해서 1600년대 바로크가 시작하기 전까지 지속된 유럽의 회화, 조각, 건축과 장식 예술의 시기를 지칭한다. mannerism은 영어 manner(양식)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maniera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규칙과 질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르네상스는 정확하고 사실적인 것에 중점을 두어 이를 미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미 다빈치 등이 자리를 매김하므로써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이를 뛰어 넘을 만한 실력을 갖추지 않고는 어렵다. 그래서 이러한 규칙을 깨고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이는 르네상스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매너리즘이다. 이들은 르네상스가 시도한 규칙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된다.
(3) 바로크(Baroque), 1600년
바로크의 원어는 ‘일그러진 진주’란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전성기가 지난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유럽 건축미술의 한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에 이어 매너리즘은 예술의 사춘기로 르네상스 입장에서 보면 반항적인 분야이다. 왕족의 권력과 교황청의 권력으로 가득찼던 조직에서도 이러한 현상으로 부르주아(bourgeois, 부와 권력을 가진 유산계급)의 움직임이 포착되는데 이들도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미 권력으로 가득한 바탕에 이들의 역할이 추가되면서 본래의 형태는 더욱더 복잡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바로크’이다.
아직 종교적인 부분이 주를 이루는 시대로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부를 신앙심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들은 성당에 자신들의 기부를 추가하면서 형태의 틀은 깨지고 오히려 모든 것이 화려해지만 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대되어 부르주아들은 더욱더 자신들의 건축물에 많은 부분을 추가하게 된다. 이렇게 추가시킨 것을 우리는 장식이라 부른다. 바로크 시대는 부르조아의 등장으로 권력의 흐름이 다초점의 시대가 되었고 식민지의 풍부함으로 권력의 흐름이 바뀌어 가는 시대이다. 르네상스 주의자인 이들을 ‘삐뜰어진 진주’ 같은 사람들이라 불렸다. 가치있어 보이나 흠이 있는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매너리즘을 통한 바로크는 분명 틀에 밖힌 시대에서 새로운 변화임은 분명하다.
(4) 로코코(Rococo), 1730년
로코코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비롯된 말로 ‘조개 무늬 장식’을 뜻한다.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장식의 양식으로 바로크 양식에 이어 신고전주의보다 앞선 양식으로 당시의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미술전체에 널리 걸친 양식을 가리킨다. 식민지의 확장은 부르주아를 키웠고 이에 반해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왕권은 이 부르주아를 더 의지하게 되는 양상으로 시회의 흐름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회는 이들의 역할이 더 증가하게 되고 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는 곧 권력 유지용으로 만들었던 사회적 규칙과 질서가 무너지는 것일 수도 있다. 왕권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경제적 권력은 사회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부의 자유로움은 곧 사회를 변화시키고 권력자들이 누렸던 많은 부분이 부르주아들에게 넘어가면서 변화를 갖고 온다. 식민지 확장과 새로운 문물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낸다.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이 부르주아들도 권력자들이 누렸던 것을 차지하면서 부르주아가 이끄는 사회가 등장하는 데 이것이 로코코이다.
(5) 신고전주의(Neo-Classicisme), 1760년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는 후기 바로크에 반발하고 고전 고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함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 양식이다. 고대적인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고 고고학적 정확성을 중시하며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신고전주의의 예술은 형식의 정연한 통일과 조화, 표현의 명확성,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르주아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덩 로코코의 등장은 곧 권력을 불안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에 사회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군력에 충성하지 않고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변화에 권력자들은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권력자들에게 충성하는 것이 곧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라는 부등호감은 많이 약해졌다. 그래서 이들은 일어나는 사회의 변화를 막아 보려 하지만 그것은 곧 먹히지 않는 수준까지 왔다. 그래서 권력이 모든 것이였던 시대의 고전주의 산물을 다시 갖고 와 변화하는 시민을 일깨우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신고전주의’이다.
<사진> (1) 근세 건축, (2) 박물관 정원.
靑松 朴明潤(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8 May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