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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본받는 자
엡 5:1-7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엡 5:1-7 / 사랑받는 아이가 그의 아버지를 닮는 것같이 여러분도 모든 일에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십시오. 2) 여러분을 사랑하신 나머지 여러분의 죄를 없애려고 자신을 향기로운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른 사람을 한마음으로 사랑하십시오. 3) 성적 범죄나 불결한 행동이나 탐욕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거나 남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4)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는 추잡하고 난잡한 말이나 저속한 농담을 입에 담기보다는 하나님이 얼마나 선한 분인지를 서로 이야기하고 감사를 드리십시오. 5)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는 불결하거나 탐욕스런 사람은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탐욕스런 사람은 우상 숭배자이므로 하나님보다도 이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고 숭배하고 있습니다. 6) [빛의 자녀] 이런 죄를 짓고도 그것이 옳다고 변명하는 자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이런 자들에게 내릴 것입니다. 7) 이들과는 상종도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본받아 거룩한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가운데 행하라(1-2)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악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롬 8:16, 21), 약속의 자녀이며(롬 9:8; 갈 4:28),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요 12:36). 그러므로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처럼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삼으신 크고 놀라우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섬김과 낮아짐이요, 용서와 치유의 사건이며 최후에는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감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물을 의미합니다(롬 12: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러한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3-5)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에게서 흔히 일어나는 죄악들인 음행, 더러운 것, 탐욕, 우상숭배자와 같은 것은 입에도 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골 3:5). 왜냐하면 이 같은 것들로 말미암아 자신의 양심이 점차적으로 둔해져 죄에 대한 저항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두 가지의 속성이 있는데 하나는 점점 확대되는 확장성이며, 또 하나는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는 접촉성입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이 두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 단호하게 배격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 사슬에 매여 죄의 종노릇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레 11:45)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 5:18).
속이지 못하게 하라(6-7) 바울은 육체적으로 범죄 하는 것은 영적 생활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 사람들을 향해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육체의 존재는 모두 무가치하고 악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이들과 함께 멍에를 같이 한다면 그들과 동일한 죄에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후 6:14).
적용: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사랑 고백이 반드시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 놓고 그 고백이 얼마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이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실천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대가를 바라지 말고 진심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 설 교 >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우리가 가진 성경은 소설책이 아닙니다. 학문을 배우는 경제과학교과서도 아닙니다.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교과서입니다.
성경에는 크고 작은 많은 사건 사고들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사건들 하나하나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관계된 사건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입니다.
선민 이스라엘백성은 구원 얻은 이 지구상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모형입니다.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광야 40년은, 구원 얻은 성도의 삶이 1)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과, 2)성결 된 삶을 살아야 하며, 3)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를 선택했다, 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너를 구원했다, 내가 너를 자녀 삼았다. 지금도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런 말 아닙니까?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롤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롤 모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왜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아야 할까요?
우리교회에 유초등부 아이들이 20명이 넘습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 이 걷는 뒷모습을 자세히 보면요, 정일이는요, 영락없이 차윤 집사님이고요, 지훈이도 그렇고, 노아는 어김없이 피터김 집사님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닮았습니까?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야 합니다. 자녀가 자기부모를 닮아야지 노아가 송성환 집사 닮으면 되겠습니까? 지훈이도 차집사님 닮으면 안되잖아요?
하나님은 자기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 까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습니다.그렇다면 하나님을 닮고,본 받으며 사는 것,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본받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희생의 삶의 살아야 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5:2절을 우리 다 같이 보시겠습니다.<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사람은 모두 2,208명이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을 구조할만한 구조선이나, 구명조끼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 1,513명은 끝내 생명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 중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늘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먼저 선박회사 사장인 <브루스 이스메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인과 비서, 그리고 수많은 선객들을 버려두고 제일먼저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비난 속에 살았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 존 스미스선장은 끝까지 구명보트 승선을 거부했습니다. 승객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뉴욕의 메이시 백화점 사장 <스트라우스>부부가 있습니다. 남편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도 승선을 거부합니다. 입고 있던 모피코트를 하인에게 입혀준 뒤, 그 하인을 구명보트에 태웠습니다. 그리고는 부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기도하며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악장인 웰레스 하틀리가 있습니다.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한 뒤 결국 바다에 빠졌습니다. 어쩌다 널빤지 하나를 손에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옆에 보니 어떤사람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거예요. 붙잡고 있던 널판지를 그 사람에게 건네주면서<예수 믿고 구원 얻으시라.>고 전도한 뒤, 자신은 서서히 물에 빠져들어가 죽었습니다. 십자가를 생각하고 희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그 배에 승선했더라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도 십자가의 사랑, 찬송할 때도 십자가의 사랑, 심지어 서로 다툴 때도 십자가의 사랑을 내세워서 상대방에게 펀치를 날리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주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조금도 희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돈 10불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몸도 얼마나 아낍니까? 주님께서 우리를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을 감수하셨다면, 그 주님의 희생 때문에 구원얻은 우리 또한 십자가의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2.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 된 삶을 버리고 성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당시 에베소는 다양한 이방문화가 혼합되어 있어서 죄악의 온상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인들 가운데는 주님을 영접했음에도 아직 옛 사람의 성품을 벗어버리지 않은 채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도바울도 본문에서 죄악된 생활의 모습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음행, 더러운 것, 탐욕,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 회롱의 말 등, 이런 행위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단마귀가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 5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나니>
베드로전서 1:4절에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인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에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구원얻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면, 그 증거를 무엇으로 나타내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삶의 열매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5:22-23절에서,너희가 정말 예수 믿고 거듭났고, 영으로 난 자 되었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되었고, 성령세례를 받았다면, 성령의 열매, 곧 삶의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다면 나는 과연 거듭났을까?> 좀 겁나지 않습니까? 세례 받았으니까, 믿으면 된다고 했잖아! 예수 믿으면 죄사함 받는다고 하니까 구원받았겠지, 정말 그럴까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또 요한계시록 3:1절에도<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시록 3:15-16절을 같이 보십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떠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두렵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빛의 자녀들로 살아야 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당마다 정신이 없습니다. 한나라당의 경우 현직국회위원의 60%를 공천에 탈락시킨다고 해서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국회위원이나 장관이 되었으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국회의장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털려 먼지를 날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깨끗한가 싶었더니 털어보니 먼지가 소복히 쌓였고, 저 사람은 청빈한줄 알았더니 저 사람도 온통 꾸중물통에 빠져있고,
국회위원과 수녀가 한강에 빠졌는데, 소방수가 와서 수녀보다 국회위원을 먼저 건져주었대요? 왜냐하면 국회위원을 빨리 건져내지 않으면 한강물이 오염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오죽하면 이런 말이 만들어졌을까요?
금뺏지는 빤짝빤짝 빛이 나는데, 그들의 내면세계는 검다 못해 새까맣습니다. 정치인들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사회구석구석에 불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온통 썩었습니다. 심지어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달처럼 살아야 할 교계지도자들의 내면세계도 어두침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결혼식 주례를 할 때, 간혹 인용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1:4절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
하나님은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뒤에 이것은 징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징조가 영어 성경에 보시면 Sign으로 번역되어져 있습니다.
태양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달과 별은 우리 예수 믿는 성도와, 가정과, 교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것은 단순히 빛을 비추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적 곧 Sign입니다.
태양은 자기 스스로 빛을 만들어 비춥니다. 그러나 달은 자기스스로 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을 비추게 됩니다. 어떤 Sign입니까? 1)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받아, 내가 받은 생명의 빛, 내가 받은 복음, 내가 받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웃에 나눠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어두운 밤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 별은, 깜빡 깜빡, 자기의 위치를 알려줄 뿐입니다. 우리가 놀웍이나, 세리토스 아니면 플러턴 어디에서 살던지,
이곳저곳 모두 어두운 죄악세상 아닙니까? 어두운 죄악세상에서 <여기 우리 예수 믿는 가정입니다. 빤짝빤짝> <나는 예수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김 아무개 집사입니다. 빤짝 반짝> 우리 모두 달과 같은, 별과 같은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처럼 행하라>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빛 된 삶일까요? 이어 9절에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요한일서 1: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빛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어둠은 마귀사단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으로 사는 삶의 모습은 1)착하게 사는 것이고, 2)의롭게 사는 것이고, 3)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는, <열매맺지 않는 저 무화과나무 당장 찍어버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사실은 무화과나무 들으라고 하신 말씀인데, 그 무화가나무가 누굽니까?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 아닐까요? 무서운 경고 아닙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고, 나는 그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본받아 살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은 일주일에 한번 예배의 대상일 뿐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사랑받은 자의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사랑은 주고받을 때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고, 죄악된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받은 자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